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하고, 아시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이 도주를 함에 따라 미국이 20년 전에 시작한 전쟁은 거의 그 종착점에 접어들었다. 탈레반은 아직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slamic Emirate of Afghanistan)의 재건을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전쟁 종식을 선언했다. 미국은 테러의 온상 제거와 탈레반 박멸이라는 두 목표 모두 달성하지 못한 채 서둘러 짐을 싸야 했다. 바이든은 9월 11일까지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밝혔지만 탈레반은 8월 공세의 고삐를 당겨 불과 보름 만에 십여 개의 주 수도들을 탈환하고 카불에 입성했다.

미국인들은 미국-탈레반 전쟁이 자신들의 전쟁사에서 가장 긴 전쟁임을 모르는 경향이 있다. 특히 이라크 전쟁에 이목이 쏠리면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국민들의 가시권에서 한동안 벗어났었다. 특히 미국을 절반으로 분열시켰던 베트남 전쟁과 달리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국민과 의회의 감독을 거의 받지 않았다. 전쟁은 막바지에 접어들었지만 미군과 나토 연합군, 민간인을 포함에 수십만 명이 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고, 빚으로 전쟁을 치른 미국은 다음 세대까지 그 부채를 갚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채무가 미래세대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치른 미국의 비용을 지금 완벽하게 셈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점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버드 대학 케네디 스쿨의 린다 빌메스(Linda Bilmes)와 브라운 대학 전쟁 비용 프로젝트(Brown University Costs of War)는 비교적 최근 시점까지 미국의 전쟁 비용을 계산하였다.
일단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비용을 알아보기 전에 기간, 사망자, 비용에 있어서 미국이 관여한 전쟁들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10개의 전쟁을 살펴보자. 우리는 미국이 벌인 다른 전쟁의 규모를 살펴봄으로써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실제로 미국의 전쟁사 혹은 역사에서 어떤 위치에 놓이게 되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 비교를 통해 몇 가지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첫째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며, 둘째 현지인을 미군의 방패막이로 쓴 전쟁이며, 셋째 채무에 기초한 다시 말해 미래 세대에 전비 부담을 전가하는 부채 전쟁이며, 넷째 아무런 명분도 획득하지 못한 비민주적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역대 전쟁 비용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제외하면 미국이 치른 전쟁 가운데 가장 긴 전쟁은 17년 9개월이 소요된 베트남 전쟁이었다. 베트남 전쟁에 소요된 비용은 1968년 당시 미국 GDP의 약 3.8%였으며, 약 5만 8천 명의 미군이 사망했다. 전쟁의 기간에 비하면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치른 물리적 비용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전쟁이 미국인들의 뇌리에 깊이 남은 것은 펜타곤 문서 폭로로 드러났듯이 이 전쟁은 부도덕한 전쟁이었으며,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국내를 전쟁 지지와 반전세력으로 분열시켰기 때문이다. 사망자 측면에서 보면 남북전쟁이 가장 유혈적이었다. 남북전쟁에서 남군과 북군을 합쳐 모두 75만 명이 사망했다. 이 전쟁은 적어도 남부에서 제도상의 노예제를 철폐하였다. 가장 많은 재원이 소모된 전쟁은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미국은 약 4조 7천억 달러, 미국 당시 GDP 36%를 전쟁에 쏟아부었다. 이 전쟁으로 미국은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를 물리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나아가 미국은 마샬 플랜으로 유럽의 전후 복구를 촉진하였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비용: 20년 전쟁, 미군의 방패막이가 된 아프가니스탄인, 그리고 신용카드 전쟁
20년 전쟁
2001년 911 테러에 책임이 있는 알카에다 관련자의 미국 인도를 거부한 탈레반 정권에 대한 2001년 10월 7일 항구적 자유작전(Operation Enduring Freedom)이라는 이름의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거의 20년이 걸렸으며, 미국 전쟁사에서 최장의 전쟁이 되었다. 미국 인구의 1/4은 아프간 전쟁이 개시된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이다.
미군의 방패막이가 된 아프가니스탄인
미군 자체의 인명 손실은 약 2천4백 여명이지만, 미군과 관련된 민간업자, 아프간 민간인, 아프간 정부군과 경찰, 탈레반 전사, 기자와 구호단체 종사자를 포함하면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숨진 사람의 숫자는 약 17만여 명이 이르며,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관련된 파키스탄 사망자를 포함하면 그 숫자는 약 24만 명으로 치솟는다. 아래 도표를 보면 미군과 현지 민간인/정부군/탈레반 사망자들 간의 극단적 차이를 볼 수 있다. 이 극단적 차이는 미군은 현지 아프간 군대와 경찰들을 훈련하는 역할에 중점을 두었고, 전투는 결국 현지인들이 치렀다는 것이다. 아프간 정부군과 경찰, 심지어 민간인들은 이 20년 전쟁에서 미군의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

신용카드 전쟁과 비민주적 전쟁, 비싼 전쟁과 공허한 결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비용을 꼼꼼하게 계산했던 하버드 캐네디 스쿨의 린다 빌메스(Linda Bilmes) 교수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신용카드 전쟁"이라고 불렀다. 그에 따르면 미국스페인 전쟁, 남북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을 포함한 이전의 모든 미국이 관여한 전쟁에서 미국은 세금을 늘리고 전쟁 이외의 지출을 줄였으며, 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올렸다. 트루먼 대통령은 한국 기간 동안 최고 한계 세율을 92%로 인상했다. 그는 200개가 넘는 연설에서 자신이 만들고 반복한 용어인 "선불"(pay-as-you-go)가 도덕적으로 옳다고 믿었다. 존슨 대통령은 난색을 표했으나 1967년 최고 세율을 77%로 인상하는 베트남 전쟁 추가부담금을 부과했다.
반면 2001년과 2003년에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을 벌이면서 의회가 세금을 인하했다. 그 이후로 미국은 국가 신용카드에 빚을 쌓아 이러한 전쟁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되었으며, 아프가니스탄은 전적으로 채무로 치러진 전쟁이었다. 이전의 모든 미국의 주요 전쟁에서 전쟁 예산은 초기 기간 이후 일반 국방 예산에 통합되었다. 이것은 의회와 국방부가 국방 예산 내에서 절충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911 이후 전쟁은 대부분 추가 지출로 자금을 조달했다. 911 이후 전쟁은 비상사태 및 해외대반군작전(Overseas Contingency Operations, OCO) 법안을 통해 자금을 지원받았다. 이 법안은 지출 한도가 면제되고 예산의 다른 곳에서 상쇄 삭감이 필요하지 않다. 한국 전쟁은 35%, 베트남은 32%에 비해 현재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한 직접 전쟁 지출의 90% 이상이 추가 자금으로 지출되었다.
미 국방부와 국무성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2002년~2020년까지 아프가니스탄에 군사비로 지출된 비용은 모두 8,430억 달러이며, 재건에 지출된 비용은 1,310억 달러로 모두 9,740억 달러, 거의 1조 달러가 투입되었다. 하지만 이 비용의 대부분은 차입의 형태로 지출되었기 때문에 그 차입에 대한 이자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퇴역 군인에 대한 돌봄 비용 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브라운 대학의 전쟁비용 프로젝트는 미국 정부의 공식 통계보다 2배 이상 많은 비용이 투여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아래의 그래프에 따르면 미국이 2001년부터 2021년 4월까지 아프가니스탄에 투여한 비용은 국방부의 해외대반군작전을 위한 9,330억 달러의 비용을 포함해 모두 2조 2,610억 달러에 달한다. 이 비용은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비용의 1/2에 해당한다. 그러나 빚으로 치러진 전쟁에는 이자가 따르기 마련이기 때문에 2050년까지 갚아야 할 이자를 계산하면 그 비용은 6조 5,000억 달러(이 가운데는 이라크 전쟁비용도 포함되어 있다)로 제2차 세계대전의 비용을 훌쩍 뛰어넘는다.


위의 숫자도 엄청나지만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무엇보다도 의회 민주주의를 우회한 비민주적 전쟁이었다. 미국 의회는 2001년 9월 18일, 911 테러의 주범의 추격과 체포를 행정부에 허락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선전 포고를 의결한 것은 의회가 아니었다. 상원 세출 방위 소위원회(Senate Appropriations defense subcommittee) 의원들은 베트남 전쟁 당시 전쟁 비용에 대해 42차례에 걸쳐 논의를 했으나,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개시된 2001년부터 2021년 여름까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전쟁 비용에 대한 언급은 겨우 5회에 그쳤다. 또한 상원 재정위원회(Senate Finance Committee)는 2001년 9월 11일부터 2021년 여름까지 단 1차례만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의 비용을 언급했을 뿐이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크게 두 가지 목적 아래 시작됐다. 하나는 아프가니스탄이 테러의 온상이 되는 것을 막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탈레반의 축출이다. 부시에 의해 선언된 이 목표는 초기 탈레반의 축출과 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로 성공을 거두는 듯했지만, 미국이 이라크에 자원을 투여하고 아프가니스탄을 방치하는 동안 탈레반은 다시 부활했다. 늘어나는 전비를 감당할 수 없었던 오바마는 목표를 아프가니스탄이 테러의 온상이 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으로 하향 조정했으며, 탈레반 축출이라는 목표를 포기하고 탈레반과 협상하기 시작한다. 트럼프는 오바마의 하향 조정된 목표를 더 가차 없이 추진하며 철군을 서둘렀으며, 바이든은 아프가니스탄이 테러의 온상지가 되든 안되든 무조건 미군의 철군을 서둘렀다. 그 결과 아프간 정부군이 오래 버틸 것이라는 미국의 예상을 뒤집고 탈레반은 진공을 본격화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카불에 입성했다. 탈레반 정권이 수립되었을 당시에도 이 정권은 아프가니스탄의 북부까지 지배하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거의 전국을 장악해 더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했다.
미국은 두 개의 목표 중 하나는 달성했다고 자위하고 있지만, 실은 그 어느 것도 달성하지 못했으며, 쫓기듯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고 있다. 비싼 전쟁이었지만 대가로 받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전쟁이었다. 탈레반은 다시 돌아왔고, 탈레반 지도부와 테러집단을 경쟁적으로 지원했던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전히 건재하다. 탈레반은 기존의 근본주의적 이슬람에서 보다 현대적인 탈레반 2.0으로 변신했다고 일부에서는 주장하지만, 기존의 체제가 복귀할 가능성은 적지 않다. 탈레반의 수장 하이바툴라 아크훈자다(Haibatullah Akhundzada)는 이슬람에 관해 보수적이고 강경한 입장을 가진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비용은 아직 다 정산되지 않았다. 전쟁에 든 비용보다 더 많은 채무와 이자가 미국을 기다리고 있으며, 도망치듯 허겁지겁 아프가니스탄에서 나온 미국에게서 더 이상 기존의 슈퍼파워를 기대하기는 점점 더 힘들어졌다. 미국이 이 전쟁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그들은 더 비싼 비용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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