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바도르 아옌데 이후 가장 좌파적인 후보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이후 가장 극우적인 후보 사이의 대결이 된 칠레 대통령 선거는 결국 35세의 젊은 좌파 후보 가브리엘 보리치(Gabriel Boric)의 압승으로 끝났다. 보리치는 지난 11월 21일 1차 선거에서 카스트에 비해 2% 뒤졌지만 12월 20일 결선 투표에서 약 56%의 득표로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Jose Antonio Kast)를 12% 차이로 따돌리고 차기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보리치는 수도 산티아고에서 자신의 근거지를 넘어 정치적 극단주의를 편들지 않는 농촌 유권자들을 끌어들여 선거 전 여론조사 예측보다 더 큰 격차로 1차 선거 결과를 뒤집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그가 1차 투표에서 3위를 차지했던 안토파가스타(Antofagasta)의 북부 지역에서, 그는 거의 20 퍼센트 포인트 차이로 카스트를 앞섰다. 또한 이번 결선 투표에서는 1차 투표에 비해 120만 명이 추가로 투표해 투표율이 56%에 육박했다. 카스트는 즉각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보리치의 "거대한 승리"를 축하했다. 흔히 "시카고 보이스"로 알려진 시카고학파의 신자유주의는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 정권 아래서 최초로 실험되었고 그로 인해 칠레의 경제는 극단적인 불평등에 시달려 왔다. 이러한 불평등은 2019년 거대한 전국 시위를 촉발했다. 보리치는 선거 캠페인 동안 피노체트의 신자유주의 모델을 "묻어 버리겠다"라고 말하며 슈퍼리치들에 대한 세금을 인상해 사회복지를 확장하고 불평등과 싸우며 환경 보호에 앞장서겠다고 공약했다. 그는 또한 LGBTQ 그룹과 원주민들에 대한 포용정책을 공약했다. 이 글은 Guardian의 12월 20일 자 기사 Who is Gabriel Boric? The radical student leader who will be Chile’s next president의 번역으로 보리치의 경력과 정책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 역자 주
가브리엘 보리치는 누구인가? 칠레의 차기 대통령이 될 과격한 학생 지도자
보리치는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쓰라린 유산을 영원히 묻어버리기로 단호히 결심한 집단 출신
4개월 전, 35세의 가브리엘 보리치(Gabriel Boric)는 자신이 간신히 경쟁할 나이가 된 대통령 예비선거에서 승리를 주장하며 여론조사를 혼란에 빠뜨렸다. 그러나 내년 3월 11일, 그는 역사상 어떤 대통령 후보보다 더 많은 표를 얻은 칠레의 최연소 대통령으로 취임할 것이다.
보리치는 칠레의 갑작스러운 교대식의 원동력이다. 그는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의 쓰라린 유산을 영원히 묻겠다고 단호하게 결심한 급진적 학생 지도자 세대에 속한다.
그는 예비 경선 승리의 밤에 무대에서"칠레는 신자유주의의 발상지이자 그 무덤이 될 것입니다!"라고 외쳤고 팔뚝 문신은 걷은 소매 아래에서 튀어나왔다.
피노체트 장군의 잔혹한 독재는 칠레에 극단적인 경제 모델을 부여했고 보리치와 그의 영향력 있는 학생 지도자 집단은 그것의 폐기할 책임을 짊어졌다.
“나는 역사가 우리에게서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라고 그는 일요일 밤 대통령 당선자로서 무대에서 열렬한 군중 앞에서 선언했다.
“저는 다양한 곳에서 지칠 줄 모르고 사회 정의를 추구한 사람들의 긴 궤적의 계승자처럼 느껴집니다."
보리치는 1986년 푼타 아레나스(Punta Arenas)에서 태어났으며 파타고니아(Patagonia) 빙원 아래에 있는 자신의 고향인 마가야네스(Magallanes)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법학 학위 마지막 해에 접어든 2011년, 보리치는 칠레를 마비시킨 교육 시위의 지도자였으며, 보리치의 대통령 선거 운동에 참여했던 몇몇 젊은 지도자들이 정치에 뛰어드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학위를 마치지 못했고 2013년 칠레 하원의원 선거에서 승리하여 의원으로 두 번 재임하면서 칠레의 두 전통적 연정을 넘어선 최초의 하원의원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대선 1차 투표에서 피노체트 장군의 극우 지지자인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José Antonio Kast)에게 간발의 차로 패한 이후, 그는 그의 프로그램을 현저하게 조정해, 현재 그를 라 모네다(La Moneda, 칠레의 대통령 관저 - 역자 주)에 입성하게 만든 중도파 유권자들에게 어필했다.
시위의 최전선에서 열광했던 시절과 달리 보리치는 이제 단정하고 겸손하며 진지하다. 반면 그는 종종 문신을 가리는 말끔한 블레이저를 착용한다. 그의 여자 친구 이리나 카라마노스(Irina Karamanos)는 결과가 나온 후 일요일 밤 그와 함께 무대에 섰다.
그는 칠레를 분권화하고, 복지 국가를 구현하고, 공공 지출을 늘리고, 여성, 논바이너리(non-binary) 칠레인 및 원주민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포용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의 유산을 정의할 피노체트 독재의 속박에서 나라를 구출하는 것이 보리치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보리치가 이끄는 2011년 학생 세대가 이전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맡으면서 향후 4년은 이러한 과정의 시작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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