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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좋은 전쟁"(good war)에서 미국 역사상 최장의 전쟁이 된 20년의 악몽과 패배

Zigzag 2021. 8. 2.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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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철수와 탈레반의 전진

탈레반은 오사마 빈 라덴과 2001년 911 테러와 관련된 다른 알카에다 인사들을 숨기고 보호해왔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과 나토 침략군과 지역 동맹국들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단 두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20년 후, 미국은 철수하고 있으며, 승리에 대한 낙관의 열기는 식은 지 오래다. 폭력적 충돌을 줄이고 휴전을 원하는 현 아프간 정부와 "새로운 이슬람 정부"를 원하는 탈레반 사이에서 합의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 서방 전문가들은 탈레반이 곧 그들의 통치를 회복할 수 있으리라고 예측하고 있다.

미국은 아프간 정부에 대한 수십억 달러의 군사적 지원과 훈련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 의회 연구서비스(CRS)에 따르면 2014년 이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국방 및 보안군(Afghanistan National Defense and Security Forces, ANDSF)에 자금을 지원하는 데 필요한 연간 50억 달러에서 60억 달러의 약 75%를 지원했으며, 그 잔액은 미국 파트너와 아프간 정부로부터 나왔다. 2021 회계연도에 의회는 2008 회계연도 이후 가장 낮은 연간 지출액인 30억 달러가 조금 넘는 금액을 ANDSF에 지출했다.

그러나 이러한 계속된 지원에도 불구하고 탈레반은 재편성되었고 점차 힘을 되찾았다. 2015년 이후 공세를 강화하기 시작한 탈레반은 거의 매일 아프간 정부군과 미군을 향해 공격했고, 2018년에는 이미 국토의 거의 절반을 장악했다. 탈레반 정규군은 약 6만 명으로 추정되며, 그들의 아프간 정부군에 대한 작전은 5월 1일 미군 철수가 시작된 이후 전국적으로 수많은 공격을 포함하여 계속 강화되고 있다.

탈레반, 라슈카르 가(Lashkar Gah), 칸다하르(Kandahar), 헤라트(Herat)에 대한 공세 강화

교전은 특히 아프간 남부 및 서부 3개 주요 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라슈카르 가(Lashkar Gah), 칸다하르(Kandahar), 헤라트(Herat)는 8월 1일 일요일에도 충돌이 계속되었다. 탈레반은 바이든이 9월 11일까지 거의 모든 미군을 철수할 것이라고 발표한 이후 급속도로 농촌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해왔다. 근본주의 이슬람 민병대는 이미 이란과 파키스탄의 국경지역을 포함한 아프가니스탄 영토의 절반까지 점령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아직 지방 수도를 차지하지 못했다.

많은 미군과 영국군이 목숨을 잃은 헬만드(Helmand) 주의 수도인 라슈카르 가가 현재 가장 취약해 보인다. 소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탈레반은 친 탈레반 소셜 미디어 계정들을 통해 시내 중심부에 탈레반 전사들의 동영상을 올렸다. 아프가니스탄 특수 부대가 그들을 몰아내기 위해 파견되어 있지만, 라슈카르 가에서는 23일에도 격렬한 전투가 계속됐다. 보도에 따르면 반란군들은 토요일 주지사 사무실에서 불과 수백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해 질 녘에 뒤로 밀려났다. 아프간과 미국의 공습은 탈레반 진영을 목표로 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정부군은 수십 명의 무장세력을 사살했다고 밝혔다. 주민 할림 카리미(Halim Karimi)는 AFP(Agence France-Presse)와의 인터뷰에서 "도시가 최악의 상황이다.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겠다. 탈레반이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지도 않을 것이며 정부도 폭격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칸다하르 공항의 비행은 탈레반의 로켓 2발이 새벽에 이 시설을 공격해 활주로에 일부 손상을 입히면서 일요일 중단되었다. 이 시설은 탈레반이 도시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필요한 물류 및 항공 지원을 제공하는 동시에 아프가니스탄 남부의 대규모 지역에 대한 공중 커버를 제공하는 데 필수적이다. 칸다하르 하원의원은 토요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이미 추방되었고 인도주의적 재앙이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도시가 탈레반으로 넘어갈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굴 아흐마드 카민(Gul Ahmad Kamin)은 시시각각 상황이 악화되고 있으며 도시 내 전투가 20년 만에 가장 심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탈레반이 칸다하르를 주요 중심지로 보고 있으며 임시 수도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이 지역이 함락된다면 이 지역의 다른 5~6개 주들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탈레반 전사들이 도시 여러 곳에 있으며, 대규모의 시민 인구 때문에 무장세력이 완전히 안으로 진입할 경우 정부군이 중무기를 사용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칸다하르에서는 군대와 탈레반 간의 교전 중에 수천 명이 이재민이 발생했다. 출처: BBC by EPA

위의 두 도시와 달리 헤라트는 아직까지는 안정적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아프가니스탄 특수부대가 경제적으로 중요한 이 도시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부군은 도시 외곽의 탈레반 진지를 공격하기도 했다. 아울러 아프가니스탄 군대는 무장 세력에 맞서기 위해 시민들을 동원한 베테랑 군벌이자 반탈레반 사령관 이스마일 칸(Ismail Khan)과 함께 싸우고 있다.

헤라트의 아프간 정부 군대가 도시를 방어하고 있다. 출처: BBC by AFP

아래의 두 지도는 탈레반과 정부의 아프간 각 지역 통제 상황을 나타내는 것으로 2017년 일부 지역에 국한되었던 탈레반의 지배는 2021년 현재 거의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아프가니스탄 수렁에 빠진 미국

이미 수만 명의 아프간 정부군과 민간인이 사망했다. 미국은 2,440명 이상의 병력을 잃었고 동맹국은 1,100명 이상을 잃었다. 2001년부터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제공한 재건과 안보만을 위한 원조는 미국 의회연구서비스에 따르면 약 1,440억 달러에 달한다. 미군 철수 후에도 바이든 행정부는 의회에 아프간 군인 지원에 수십억 달러를 더 쓰도록 요청할 계획이며, 여기에는 심지어 아프간 군인들의 급여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아프간 정부는 육상에서의 전투는 물론 자신을 보다 현대화된 '탈레반 2.0'으로 묘사하는 탈레반의 선전과 미디어 공세에서도 밀리고 있으며, 미국과 아프간 정부는 모두 정당성 위기로 내몰렸다. 지난 10년간 미국은 베트남 전쟁 못지않게 아프가니스탄이란 수렁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으며, 빈 라덴은 제거했지만 미국이 몰아냈던 탈레반은 더 강한 존재로 심지어 일종의 국가처럼 미국과 협상 테이블에 앉는 당사자가 되어 부활했다.

결국 베트남전 못지않은 엄청한 재정적 도덕적 부담 끝에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시절 본격적으로 철군을 선언하게 되며, 1년 이상의 협상 끝에 2020년 2월 카타르의 도하에서 탈레반과 협정에 서명하게 된다. 협정의 핵심은 2021년 5월까지 모든 미국과 국제군의 철수와 다른 그룹(알카에다 포함)이 아프간 땅을 이용해 미국과 동맹국을 위협하는 것을 막기 위한 탈레반 조치라는 두 가지 내용의 "상호 연계" 보장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우선 135일 이내에 1만 2000명 규모의 아프간 주둔 미군을 8600명 규모로 감축한다. 그리고, 아프간 국토를 테러 공격의 거점으로 하지 않는 등의 평화 합의를 탈리번이 이행했다고 판단하면 2021년 봄 경에 완전 철수한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리처드( David Richards) 전 영국군 사령관은 국제적 철수가 아프간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탈레반의 통제와 새로운 국제 테러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프가니스탄의 EU 특사인 토마스 니콜라슨(omas Niklasson)은 전쟁이 훨씬 더 악화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탈레반이 지금 생각하는 방식, "과거에 그들이 가지고 있던 것, 즉 이슬람 토후국을 재건하는 것"이 두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위험과 탈레반의 합의 위반에도 불구하고 올해 초 바이든 대통령은 9월 11일까지 철군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911 테러의 원흉인 알 카에다를 분쇄하고, 아프가니스탄이 또 다른 테러의 온상이 되는 것을 방지했다는 형식적 명분이 생겼기에 바이든으로서는 미군을 위험에 빠뜨리고 미국을 재정적, 도덕적 수렁에 빠뜨리는 아프가니스탄에 더 이상 집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 군사적 실패

전문가들은 미국이 탈레반의 부활을 막지 못한 주요 이유에 합의에 이르지 못했지만, 몇 가지 점에서는 대체적인 의견의 일치가 있다. 첫째, 우선 미국은 정치 사회적으로 실패했다. 미국은 점령군으로서 자신들의 존재가 탈레반의 투쟁을 부채질하고 카불 정부의 능력을 제한한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해왔다. 알카에다는 약화되었지만 아프간에서의 폭력과 실정의 사이클은 반복되었다.

탈레반은 이러한 미국의 약점을 파고들어 갔으며, 자신들을 과거와는 다른 보다 합리적인 세력으로 포장하고, 자신들의 전쟁을 성전으로 묘사하며 대중과 아프간 부족들의 지지를 확대해 나갔다. 아프가니스탄과 워싱턴의 미군 고위 지도자들의 고문이었던 카터 말카시안(Carter Malkasian)은 그의 저서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국 전쟁, 역사'(The American War in Afghanistan, A History)에서 미국의 노력이 헛된 이유 중 하나는 이슬람의 영향과 외국 점령에 대한 저항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그러한 요소들이 미국인들이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반면 미군을 점령군으로, 아프간 정부를 꼭두각시로, 자신들의 전쟁을 민족적, 애국적 성전으로 묘사하는 탈레반의 세련된 내러티브는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으며, 이 내러티브 전쟁에서 미국과 아프간 정부는 이미 패배했으며, 심지어 뉴욕타임스 같은 서방 언론조차 탈레반을 현대화된 세력으로 묘사했다.

두 번째로 미국의 효율성을 중심에 둔 신자유주의적 군사력 재편은 단기간의 정권 전복에는 효과적이었지만 점령지를 장기적으로 안정화하는 안보와 치안능력의 부재를 가져왔다. 미군은 탈레반을 축출한 뒤 초기에 아프가니스탄을 안정시킬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초기 성공 이후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을 혼란에서 안정으로 이끄는 주도적 역할을 잘못 수행했다는 것이다. 미군은 이미 럼즈펠드의 효율성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으로 정권의 전복에는 신속성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그 후 그 지역을 안정적으로 통제하고 치안을 유지할 수 있는 병력과 활동에 에너지를 투여하지 않았다.

지속 가능한 치안유지 능력의 결여는 현지인과의 협력을 필요로 했다. 현지 민간 지도자들은 아프가니스탄을 자기 방어가 가능한 민주주의로 건설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했고, 미국은 그 과정을 경제적, 군사적 원조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의 군사전략은 목표와 비용에 대한 현실적 정책을 결여했다. 그들은 탈레반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자신들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오류를 범했다.

2001년부터 워싱턴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을 취재한 AP 통신의 로버트 번스(Robert Burns)는 "아프가니스탄은 미국의 군사력의 한계점에 대한 교훈"이라고 말한다. 그 교훈은 미국 군사력뿐만 아니라 미군과 군사전략의 한계 또한 여실히 드러냈다. "전투에서 승리하고 여전히 전쟁에서 패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현상적 역설을 보여 주었다. 아니면 적어도 기술적으로 우월한 세력이 적보다 더 효율적으로 죽일 수 있지만 승리를 닮은 최종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21세기에 탈레반처럼 빈약한 정부의 전복조차도 지속적인 성공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미국처럼 잘 무장되었을지라도 정복군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최소한 미국인들이 습득하는 데 더딘 지역 정치, 역사,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 다른 요인은 부시의 2003년 이라크 침공과 관련되어 있다. 미국이 이라크에 초점을 맞추고 엄청난 소모전을 벌이면서 아프가니스탄은 미국의 주요 관심사에서 멀어졌다.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미군은 2002년 약 8천 명에 불과했으며, 2005년까지 2만 명 수준에 머물렀다. 미국이 자원을 이라크에 쏟아붓는 동안 아프가니스탄은 부차적인 관심사로 밀려났다. 퇴역 미군 중장이자, 전 아프가니스탄 대사를 역임한 칼 아이켄베리(Karl Eikenberry)에 따르면 내전의 유산을 안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국가 재건의 청사진을 결여했던 미국에 이 "부차적 쇼(sideshow)는 치명적 선택"이 되고 말았다. 2001년에 10월 7일 미국이 아프간 전쟁을 시작하던 날 럼스펠드는 시작된 미국의 아프간 전쟁을 결말이 열린 전쟁으로 묘사했지만, 그것이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 되리라고 예상하지는 못했다.

탈레반은 재기의 기회를 얻었다. 탈레반은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2003년 파키스탄에서 재건 작업을 시작하고 2006년부터 본격적인 공세에 들어갔으며, 3년 만에 아프간 남부와 동부의 상당 부분을 점령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취임과 함께 이라크에서의 "나쁜 전쟁"(bad war)과 달리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좋은 전쟁"(good war)을 부활시키겠다며 2009년 말까지 병력을 10만 명 수준까지 증파했으며, 점점 높아지는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어졌다. 아프가니스탄에 비용이 가장 많이 들던 해는 한 해에만 약 1,100억 달러가 소요됐으며, 이는 미국 연방 교육 예산의 절반에 맞먹는 규모였다. 따라서 오바마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전쟁의 목표를 탈레반의 제거에서 미국 본국에 대한 테러 위협의 제거로 낮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국에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든 값비싼 전쟁임이 드러났고, 결국 트럼프는 2018년 탈레반과의 협상을 시작하며 철군의 명분을 마련했다.

미국은 아프간 정부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을 약속했지만 미군의 철군으로 부패한 아프간 정부와 군벌이 탈레반의 공세를 버텨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군의 철군은 아마도 더 길고 피비린내 나는 내전의 전조가 될 수도 있다. 전쟁이 시작되던 20년 전, 미국이 내 걸은 테러의 온상을 거세하고, 탈레반을 축출한다는 두 개의 전쟁 목표 중 그 어느 것도 사실은 달성된 것이 없다. 미국의 목표는 더 이상 "좋은 전쟁"이 아니다. 미국은 단지 하루라도 빨리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수렁에서 벗어나고, 20년 전쟁의 악몽에서 깨어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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