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셰익스 피어 소네트

셰익스피어 소네트 7~12 원문과 번역, 해설

Zigzag 2022. 4. 1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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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소네트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는 1609년에 《SHAKE-SPEARES SONNETS》라는 타이틀로 출판되었다. 총 154편의 소네트중 2편(138번과 144번)은 이전에 출판된 적이 있으며 나머지는 새롭게 출판되었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집이 어떤 경위로 출판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분명 셰익스피어에 의해 씌었지만 출판은 1609년 5월 20일 토마스 소프 소네트의 주제는 연애와 출산, 아름다움, 정치, 죽음 등이다. 각 소네트는 3개의 4 행련 과 마지막 2 행련 (대구)의 합계 14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셰익스피어 소네트 각운은 'abab cdcd efef gg'로 구성되어 있다. 보통 volta 혹은 turn이라 불리는 세 번째 사행련의 첫 번째에서 시의 분위기가 바뀌고, 새로운 사실 ​​또는 본심의 노출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셰익스 피어의 소네트에는 젊은 미남(Fair Youth), 라이벌 시인(Rival Poet), 그리고 다크 레이디(Dark Lady)라는 3명의 인물이 언급된다. 라이벌 시인은 78번~86번 소네트에 등장하며 나머지 소네트들의 대부분은 젊은 미남과 관련되어 있고, 나머지는 다크 레이디에 대한 것들이다.

소네트 1번~17번: 이 소네트들은 젊은 미남(Fair Youth)을 위해 빨리 결혼해 아이를 낳고 그 미모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일련의 소네트는 '출산 소네트'(Procreation sonnets) 혹은 생식 소네트라고 불린다. 소네트 18번~126번: 소네트 18번에서 126번까지는 젊은 미남에 대한 작가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소네트 127번~152번: 이 소네트들은 다크 레이디(The Dark Lady)로 불리는 작가의 정부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다. 소네트 153번~154번: 마지막 두 편은 우화적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는 각 번호별 소네트 원문과 간단한 해설 그리고 본 역자의 번역을 싣는다.

1609년에 출판된 셰익스피어 소네트집 'SHAKE-SPEARES SONNETS' 커버


<소네트 7>

해설: 시인은 이전의 소네트들에서 추구했던 것과는 다른 또 다른 주제를 탐구한다. 그는 해 뜨는 것과 지는 것, 젊음과 나이 사이를 직유적으로 그린다. 그의 일목 녘에 그 젊음은 더 이상 숭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지 않을 것이다. 그가 자신의 이전의 아름다움을 반영하고 이어갈 아이들이 없다면, 그는 알려지지 않은 채 어두운 시간의 깊은 곳으로 사라질 것이다.

해가 뜨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존경하고, 마치 그것이 왕인 것처럼 경의를 표한다. 그것이 정점에 도달하기 위해 하늘로 더 높이 올라갈 때, 사람들은 여전히 그것을 동경한다. 그러나 저녁 무렵에 내려앉으면서 무시되고 떠오르는 다른 별들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청년이여, 당신이 아들을 낳아 떠오르는 태양이 되지 않는 한, 나이가 들면서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라고 셰익스피어는 말하는 것이다.

동녘 하늘을 바라보라, 저 우아한 빛이 
그 불타는 머리를 들면 지상의 눈들은 죄다 
이 새로운 광경에 경의를 표하며
그 신성한 위엄을 바라보네.
그리고 가파른 하늘의 언덕에 오르면,
중년 속에서도 강건한 청춘을 닮았소.
그래도 인간의 눈은 그 아름다움을 흠모하고,
그 황금의 순례를 경배하오.
그러나 정상의 정점에서 지친 전차와 함께
허약한 노인처럼 비틀거리면, 
지금껏 충직하게 경배하던 눈들도 이제는 눈길을 돌리고
그 황혼의 길로부터 눈길을 거두어 다른 곳을 본다네.
   그러면 그대도 정오에서 스러져가며
   눈길조차 받지 못한 채 죽을 것이오, 만약 아들을 얻지 못한다면 말이오.

Sonnet VII

Lo! in the orient when the gracious light
Lifts up his burning head, each under eye
Doth homage to his new-appearing sight,
Serving with looks his sacred majesty;
And having climb’d the steep-up heavenly hill,
Resembling strong youth in his middle age,
yet mortal looks adore his beauty still,
Attending on his golden pilgrimage;
But when from highmost pitch, with weary car,
Like feeble age, he reeleth from the day,
The eyes, ‘fore duteous, now converted are
From his low tract and look another way:
   So thou, thyself out-going in thy noon,
   Unlook’d on diest, unless thou get a son.


<소네트 8>

해설: 이 소네트에서는 청년들의 결혼 실패와 아이 낳기 실패라는 주제는 계속된다. 음악을 듣는 속에서의 명백한 슬픔이 비유로 제시되고 있다. 음악 그 자체는 화합과 화음으로, 아버지, 자식, 어머니의 행복한 가정을 다스리는 것과 유사하며, 분리된 현이 마치 음악에서 서로를 울려 퍼지는 것과 같다. 젊은이는 이 조화에 굴복하지 않기 때문에 슬퍼진다.  이 소네트는 그를 훈계하면서, 단 하나의 삶에 자신을 헌신하는 것은 자신을 가치 없는 존재로 만들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그대는 듣는 음악이면서 어째서 그대에게는 음악이 슬피 들리는가?
달콤함은 달콤함과 다투지 않고, 기쁨은 기쁨 속에서 기뻐하오.
어째서 그대는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사랑하는가?
그리고 그대는 어째서 그대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을 즐겁게 받아들이는가?
잘 조율된 음들이 하나로 이어짐으로써 만들어낸 진정한 조화가
그대의 귀를 거슬리게 한다면
그대가 해야 할 역할을 다하지 않는 홀 몸이기 때문에,
음악이 부드럽게 그대를 꾸짖고 있는 것이오.
하나의 현은 다른 현의 다정한 짝이 되어
조화를 통해 서로 반향 하며
아버지와 아이, 행복한 어머니를 닮아 
다 같이 하나로 즐거운 노래를 함께 하고 있소.
   그들의 소리 없는 노래는 여럿이지만 하나가 되어
   그대를 향해 , ‘홀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노래하고 있소.

Sonnet VIII

Music to hear, why hear’st thou music sadly?
Sweets with sweets war not, joy delights in joy:
Why lov’st thou that which thou receiv’st not gladly,
Or else receiv’st with pleasure thine annoy?
If the true concord of well-tuned sounds,
By unions married, do offend thine ear,
They do but sweetly chide thee, who confounds
In singleness the parts that thou shouldst bear.
Mark how one string, sweet husband to another,
Strikes each in each by mutual ordering;
Resembling sire and child and happy mother,
Who, all in one, one pleasing note do sing:
   Whose speechless song being many, seeming one,
   Sings this to thee: ‘Thou single wilt prove none.’


<소네트 9>

해설: 시인은 청년이 결혼을 거부하게 만드는 것이 누군가를 과부로 만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인지 묻는다. 시인은 그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젊은이는 그의 뒤에 자신의 형태나 사본을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 자체가 과부를 견디지만 아름다움의 상실에 대한 위안을 얻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녀들 속에서 부활한 그 청년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이 한 가지 완고함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용서할 수 없는 수치이며,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의 결핍을 보여주고 자신과 그의 상속인을 모두 죽이는 것과 같다.

미망인의 눈가를 촉촉히 적실 것이라는 두려움이
그대가 자신을 독신으로 소모하는 이유인가?
아, 그대가 자손 없이 죽게 된다면,
온 세상은 미망인같이 그대의 죽음을 슬퍼하게 될 거요.
온 세상이 그대의 미망인이 되어 늘 눈물을 흘릴 것이오
그대가 자신의 모습을 세상에 남기지 않고 떠났기에,
모든 미망인이 남편의 모습을 간직할 것이오
아이들의 눈동자를 통해 남편의 모습을 마음속에 말이오.
보시오, 아 세상의 헤픈 자가 자산을 탕진할지라도
바뀌는 것은 장소일 뿐 세상은 여전히 그 자산을 향유할 것이오. 
그러나 아름다움의 낭비는 세상의 종말을 가져오게 하며,
아름다움을 사용하지 않는 사용자는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자요. 
   그대의 마음에는 타인을 향한 사랑이 내려앉지 않을 것이오
   자신에게 그런 살인적인 치욕을 범한다면 말이오.

Sonnet IX

Is it for fear to wet a widow’s eye,
That thou consum’st thy self in single life?
Ah! if thou issueless shalt hap to die,
The world will wail thee like a makeless wife;
The world will be thy widow and still weep
That thou no form of thee hast left behind,
When every private widow well may keep
By children’s eyes, her husband’s shape in mind:
Look what an unthrift in the world doth spend
Shifts but his place, for still the world enjoys it;
But beauty’s waste hath in the world an end,
And kept unused the user so destroys it.
   No love toward others in that bosom sits
   That on himself such murd’rous shame commits.


<소네트 10>

해설: 이것은 시인이 자신의 후손을 빼앗기지 않기를 세계를 위한 염원이라기보다는 젊은이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을 선언하는 연작의 첫 번째 소네트이다. 여기에 두 가지 진술이 있다. 첫째, 시인은 자신의 더 나은 의견이 어느 정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면서 젊은이들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바꿀 기회를 갖기를 원한다는 것이다(9번째 행). 둘째, 그는 청년의 의도를 변화시키기 위해 '나를 사랑하기 위해'라는 설득력 있는 논증을 시도한다. 이 두 가지 모두 어느 정도의 사랑을 암시하긴 하지만, 사랑이 보답받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이 중 어느 것도 궁극적인 사랑의 선언에 이르지 못한다. 어쨌든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다음에 나올 몇몇 소네트들의 더 열정적인 진술에 대한 준비이다.

그것과는 별도로, 이 소네트의 주장은 이전 소네트의 주장과 유사하다. 즉, '인류에게 고의적으로 이기적이고 잔인하지 말고, 허물어져가는 가문을 출산으로 대체하고 수리하라'는 앞의 논거와 유사하다. '그렇게 하면 당신은 계속 살 수 있고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은 당신에 대해 더 좋게 생각할 것'이라고 말한다.

치욕이오, 누군가를 사랑한다 하지 마시오
자신의 장래를 강구하지 않는 자여.
그대가 만인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할지라도
그대는 분명 아무도 사랑하고 있지 않소.
왜냐하면 그대는 살인적인 증오에 그토록 집착하여, 
자멸적인 음모를 서슴지 않고,
저 아름다운 집을 허물어뜨리려 하고 있으나,
그 집의 복구는 그대의 우선적인 욕망이 되어야 하오.
아, 생각을 달리 하시오, 나도 그대에 대해 달리 생각할 테니.
아름다운 그대는 부드러운 사랑보다 증오가 깃들게 할 것인가?
그대의 자태처럼 우아하고 친절하시오,
아니면 적어도 그대 자신에게 인정을 베푸시오.
   나에 대한 사랑을 위해서라도 또 하나의 그대를 만드시오,
   아름다움이 그대 후대나 그대 안에 늘 살 수 있도록.

Sonnet X

For shame deny that thou bear’st love to any,
Who for thy self art so unprovident.
Grant, if thou wilt, thou art beloved of many,
But that thou none lov’st is most evident:
For thou art so possessed with murderous hate,
That ‘gainst thy self thou stick’st not to conspire,
Seeking that beauteous roof to ruinate
Which to repair should be thy chief desire.
O! change thy thought, that I may change my mind:
Shall hate be fairer lodged than gentle love?
Be, as thy presence is, gracious and kind,
Or to thyself at least kind-hearted prove:
   Make thee another self for love of me,
   That beauty still may live in thine or thee.


<소네트 11>

해설: 이것은 소네트 1과 같은 주장에 서있다. 실제로 '모두가 그대와 같은 마음이었다면'(7행)이라는 구절은 우리가 이미 젊은이가 어떻게 행동하려고 마음먹었는지, 우리가 이전에 있었던 것들로부터만 얻은 정보를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미 다른 소네트들을 전제하고 있다.

'젊음은 급격히 쇠퇴하고, 이 쇠퇴는 젊은이가 낳을 수 있는 아이들에 의해 보충될 수 있다. 후손을 두지 않으면 모두 늙고 쇠퇴할 운명에 처할 것이다. 그대는 분명히 너무 아름다우므로 죽음의 운명은 불모의 가혹하고 음침한 영혼에게 맡기시오. 그대는 천성적으로 타고났기 때문에 자연이 당신을 인장으로 만들어 많은 후손을 두려워할 것이다.'

그대는 쇠약해져 가는 것만큼 빠르게 다시 성장할 것이오 
그대가 남겨 둔 그대의 후손 속에서.
그대가 젊어서 물려주는 주는 신선한 피는
그대가 젊음을 잃게 되어도 자기의 피라고 할 수 있을 것이오.
그러함 속에서 지혜와 아름다움과 번영이 살아있을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우둔함과 노령과 차가운 쇠퇴만 있게 되오.
모두가 그대와 같은 마음이라면 시간은 종말을 고하고,
60년만 지나도 세상은 멸망할 것이오.
자연이 보존을 위해 만들지 않은 사람들,
즉 추하고 볼품없고 난폭한 자들은 황량하게 사멸토록 하시오.
자연에게서 최상을 물려받고, 더 많은 것을 제공받은 이들을 보시오.
그대는 그 풍성한 선물을 넉넉히 길러내야 하오.
   자연이 그대에게 자신의 인장으로 새겨놓은 의도는,
   그대가 더 많은 후손을 두어 그대가 사멸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오.

Sonnet XI

As fast as thou shalt wane, so fast thou grow’st
In one of thine, from that which thou departest;
And that fresh blood which youngly thou bestow’st,
Thou mayst call thine when thou from youth convertest.
Herein lives wisdom, beauty, and increase;
Without this folly, age, and cold decay:
If all were minded so, the times should cease
And threescore year would make the world away.
Let those whom nature hath not made for store,
Harsh, featureless, and rude, barrenly perish:
Look whom she best endow’d, she gave the more;
Which bounteous gift thou shouldst in bounty cherish:
   She carv’d thee for her seal, and meant thereby,
   Thou shouldst print more, not let that copy die.


<소네트 12>

해설: 이 소네트는 너무 유명해서 거의 해설이 불필요하다. 그것은 항상 언어 역사상 가장 훌륭한 소네트 중 하나이다. 모든 것을 끝내는 느리고 빠른 시간의 흐름은 실제로 풍부하지는 않지만 매우 중요하고 파괴적인 영향으로 묘사되어 우리가 읽을 때 필멸의 삶이 우리를 거의 정면으로 응시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행의 의미가 전개되는 방식은 마치 시계가 똑딱거리는 것과 같거나 좌우로 흔들리는 추의 거침없는 움직임과 같다. 이 소네트는 시계처럼 사건의 순서를 따라 진행된다. 전체적인 효과는 암울하고, 시간에 대한 용감한 저항이 있는 결론의 2행은 아무것도 구원받지 못할 것이며 시인이 줄곧 촉구해 온 것의 실체는 시간 앞에서 초라할 뿐이다.

시간을 알리는 시계 소리를 헤아릴 때,
휘황한 낮이 흉측한 밤으로 가라앉는 것을 보네.
제비꽃이 절정을 지나치는 것을 볼 때,
흑발의 곱슬머리는 하얗게 온통 은빛으로 변해가네.
우뚝 솟은 나무가 황량하게 잎을 떨구는 것을 볼 때,
한 때 폭염의 가축에 그늘을 제공했던 그 나무가
여름의 초록이 모두 다발로 묶이어서,
하얗고 까친 수염을 드러내는 관짝이 되어 달구지에 실리면,
나는 그대의 아름다움에 의문을 던지게 되오.
그대 또한 시간이 유린한 것들 속으로 가야 하오.
그리고 감미로운 것과 아름다운 것은 스스로를 폐절하기에
다른 것이 자라는 것만큼 빨리 죽어 사라지오.
   그 무엇도 시간의 낫질을 막을 수 없소
   후손을 두어 시간이 그대를 취할 때 막아 나서지 않는다면 말이오.

Sonnet XII

When I do count the clock that tells the time,
And see the brave day sunk in hideous night;
When I behold the violet past prime,
And sable curls, all silvered o’er with white;
When lofty trees I see barren of leaves,
Which erst from heat did canopy the herd,
And summer’s green all girded up in sheaves,
Borne on the bier with white and bristly beard,
Then of thy beauty do I question make,
That thou among the wastes of time must go,
Since sweets and beauties do themselves forsake
And die as fast as they see others grow;
   And nothing ‘gainst Time’s scythe can make defence
  Save breed, to brave him when he takes thee h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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