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수미 씨가 9월 2일 암투병중 별세했다. 1970년대 초 가요계를 풍미했던 그는 공식적으로는 대마 가수라는 불명예를 안고 1970년대 중반 이후 조용히 가요계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의 퇴장의 배후에는 사실 PD 권력과 연예계의 고질적인 비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3대 악': 폭력, 비리, 약물
예나 지금이나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가장 큰 3대 문제점은 폭력, 비리(금품과 성문제), 약물이었다. 밤무대, 방송 프로그램, 기획사 등 메커니즘은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이 3대 문제점은 예나 지금이나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불투명성, 독특한 시장구조, 이익을 둘러싸고 벌어진다는 점에서 거의 유사하다.
1975년은 연예계에 소위 정풍운동이 일어난 해이다. 대마초로 연예인들이 속속 구속되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1970년 5건에 불과했던 대마 단속은 1974년 411건으로 급증했다. 1975년 검찰은 가수, 탤런트, 배우 등 약 40명의 연예인을 수사대상에 올렸다. 그런데 대마 사건의 다른 한편에서 연예계 비리와 폭력 사건이 불거져 나왔다.
1975년 4월 22일 조선일보 사회면을 크게 장식한 사건은 방송사 PD 등 7명의 구속이었다. 방송사 PD들이 돈을 받고 가수들의 방송 출연을 좌우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바로 아래 어제 작고한 가수 고 이수미 씨 기사도 보인다. 이 두 사건에는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있었는데 바로 가수 이수미 씨와 PD이자, DJ인 이종환이다.
'밤의 디스크쇼', '여성 시대' 등으로 알려진 이종환 씨는 밤의 대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연예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위의 기사를 보면 그는 두 사건에 연루되었다. 하나는 그가 개그맨 박성원의 자살의 원인 제공자이며, 다른 하나는 '이수미 자해' 사건이 실은 가해 사건이었으며, 그 가해의 유력한 피의자라는 것이다.
이수미, 박성원, 이종환: 연예계 권력과 비극
박성원은 당시 잘 나가는 개그맨으로 이장호 감독의 영화 출연, 음반 발매, TBC와 전속 MC 계약으로 '오라 오라 오라'라는 음악 프로를 가수 서유석과 함께 공동 MC를 맡았다. 그는 또한 후에 공전의 히트작 '영자의 전성시대'(1975년)에서 주연을 맡은 염복순 씨의 매니저로 계약을 할 정도로 활동적이고 발이 넓었다.
그러나 그는 1974년 11월 18일 이종환이 운영하던 음악다방 쉘브루에서 노래를 부르던 모 가수에게 건넨 말로 비극을 겪게 된다. 그는 그 가수에게 같은 해 8월에 발생한 이수미 씨의 '자해' 사건에 이종환이 관련되어 있으며, 이수미 씨의 인기는 이종환이 배후에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발언을 전해 들은 이종환은 박성원을 자신의 음악다방으로 끌고 와 6시간 동안 감금한 채 집단 구타해 신체적 상해를 입혔다. 박성원은 이 사건으로 신체적 상해보다 더 큰 사회적,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
박성원은 이 폭행 사건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앓게 되고, 자신이 MC로 출연하던 프로그램 '오라 오라'에서 물러나고, 사실상 연예계에서 강제 퇴출당한다. 당시 기사는 박성원이 물의를 일으켜 '오라 오라' MC 자리에서 쫓겨난 것으로 보도했지만, 정확히 그가 어떤 물의를 일으켰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박성원은 이듬해인 1975년 3월 26일 이 폭력의 후유증을 끝내 이기지 못한 채 자신의 집에서 자살한다. 하지만 이종환은 같은 해 7월 11일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유유히 풀려난다.
박성원이 자살한지 한 달 후 검찰은 연예계 비리를 수사하면서 무명 가수들이 '인기 유지료'라는 명목으로 PD들에게 3백만 원에서 4백만 원(당시 1백만 원은 2020년 물가로 환산했을 경우 1천만 원)을 제공해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자금은 매월 '월급'의 형식으로 정기적으로 PD들에게 제공됐으며, 가수들은 음악을 틀어주는 대가로 회당 약 1만 원씩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박성원이 말한 PD 권력이 인기 가수의 배후에 있다는 발언은 팩트에 가까웠다. 물론 가수가 부담하는 비용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가수가 앨범 1장을 발매하기 위해 제작사에 지불하는 비용이 당시 20만 원(2020년 물가로 2백만 원), 그리고 작곡 및 작사비를 포함에 약 50만 원에서 1백만 원을 별도로 부담해야 했다.
이수미와 이종환: PD 권력과의 갈등과 결과
이수미는 1972년 '여고시절'의 인기는 영화화가 될 정도로 선풍적이었다. '여고시절'에 이어 발표한 '내 곁에 있어 주'는 그를 탑가수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는 여러 차례 10대 가수에 드는 등 당시 정상급 가수였다. 그러나 그의 인기는 이종환과의 갈등 이후 추락하고 만다.
1973년 7월 이수미는 대천 해수욕장에서 사고를 당한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그는 가족과 함께 대천 해수욕장에 내려와 있던 이종환과 서로의 관계 문제로 말다툼을 한 직후 해수욕장에서 상해를 입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수미는 경찰 진술에서 자해와 제3 자에 의한 가해 사이에서 진술이 오락가락했다. 이수미는 초기에 자해라고 밝혔지만, 당시 경찰 조사는 사람들이 많은 해수욕장에서 상해가 이루어진 점, 상해 부위가 급소가 아니며 상해 형태가 자해와 다르다는 점 등 여러 측면에서 자해가 아닐 것으로 의심했다. 이수미는 나중에 자해가 아닌 가해였다고 본인의 발언을 번복했지만, 가해자가 이종환이라는 점은 부인했다. 피습을 당할 당시 정신을 잃었기 때문에 가해자를 제대로 목격할 수 없었다고 그는 진술했다. 결국 이 사건은 범인이 붙잡히지 않은 제3 자에 의한 가해로 종결되고 말았다.
이 사건이 발생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수미는 모호한 이유로 가수협회에서 제명되고, 넉 달 뒤인 11월이 되어서야 다시 가수협회 회원으로 승인된다. 하지만 그것도 기존 회원이 아닌 신규회원으로서의 입회라는 단서 조항이 달린 승인이었다. 이수미의 시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수미는 1975년 대마 가수라는 명목 아래 연예협회에서 제명된다. 이수미는 복권이 된 이후 군부대 공연 등 위문 공연으로 재기를 위해 몸부림쳤지만 과거의 인기를 되찾지는 못했다.
반복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비리
연예계 비리는 거의 10년 주기로 터지곤 한다. 1990년 KBS와 PD들은 검찰의 연예비리 수사에 항의하며 집단 사표를 제출했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조직 폭력배들의 연예인의 업소 출연 강요와 금품갈취 그리고 연예담당 PD들의 가요 인기 순위 조작과 방송 프로그램 출연을 미끼로 노골적으로 금품을 수수했다.
1990년대 초 당시 가수 한 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드는 홍보 비용만 5천만 원~1억 원(2020년 물가로 1억 2천만 원~2억 4천만 원)이 들었다. 그중에는 라디오의 쇼 PD 1명 당 월평균 30만 원의 상납비가 포함됐다. 당시 KBS, MBC, CBS의 라디오 가요 프로그램이 약 60개였으니 한 달 평균 1천800만 원이 필요했다. TV의 경우는 당연히 더 비싸서 인기가요 순위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일시불로 1천만 원, 출연시마다 50~1백만 원을 상납하는 것이 보통이었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인기가요차트 10위권 안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3천만 원이 필요했다고 한다.
이러한 연예계 비리는 2002년에도 발생했다. PD들의 금품 수수 외에도 그들에 대한 주식, 외제차 제공이 폭로되었다. 이 사건은 16명이 구속 기소되고, 12명이 불구속 기소되는 대형사건으로 2002년 그해의 뉴스 1위를 차지했다.
연예계 문제는 기획사들이 등장하고, 종편과 케이블 등 다양한 매체가 등장하면서 기획사와 PD의 결탁에 의한 오디션 프로 점수 조작이나, 대형 기획사와 유명 그룹 멤버의 성상납 연루, 연습생에 대한 착취 그리고 부당계약 등 더 체계적이고 다양화되고 있다. 물론 본질적으로 폭력, 비리, 약물의 문제는 여전히 그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시장의 체계화와 투명성 강화가 병행되지 않으면 자칫 K-pop 등 한류 등 지금 한국의 연성권력은 사상누각처럼 무너질 수 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발전과 문화종사자들의 창의성의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투명성 강화는 시급하다. 이수미 같은 좋은 가수가 특정 권력에 좌우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재능과 시장의 판단으로 경쟁하고, 성장하며, 장수하는 그런 한류는 투명성 속에서만 지속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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