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검찰, 100세 노인을 2차 대전 나치 전범으로 법정에 세우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지 76년이 흘렀고, 뉘른베르크 재판(Nürnberger Prozesse)이 마무리된지 72년이 흘렀지만, 인류에 대한 나치 범죄의 단죄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독일 검찰은 8월 2일 나치 강제수용소 가드로 일했던 100세 노인이 3,518건의 살인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독일에서 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의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이 익명의 용의자는 1942년부터 1945년 사이에 베를린 근교의 작센하우젠(Sachsenhausen) 강제수용소에서 죄수들의 살인 방조 혐의를 받고 있다. 그의 혐의 범죄에는 총살형과 유독 가스에 의한 처형 공모가 포함되어 있다.
독일 검찰은 그 남성이 10월에 재판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확인했다. 검찰은 이 남성이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하루 2시간 30분 동안 법정에 출두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건강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다.
작센하우젠 강제 수용소
이 100세 노인이 일했던 작센하우젠 강제 수용소는 외부시설을 포함해 최대 6만 명 가까운 인원을 수감할 수 있는 거대 시설이었다.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는 베를린을 감싸고 있는 브란덴부르크주의 오라니엔부르크에 위치한 수용소로 1936년에 건설되었다. 총면적 190 헥타르 규모의 수용소는 2.7미터 높이의 고압 철조망으로 둘러싸였다. 2차 대전 말까지 약 20만 명이 이곳으로 보내졌으며, 최대 10만 명에서 최소 4~5만 명이 이곳에서 죽거나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는 초기에는 주로 독일 공산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 그리고 나치가 '비사회적'이라고 간주한 동성애자 등 등 독일인의 감금시설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점차 독일인보다 열등하다고 간주되는 신티족이나 로마족, 그리고 나치 돌격대가 조직적으로 주도한 1938년 11월 9일 독일 전역의 반유대 폭동 '수정의 밤'(Kristallnacht) 사건 이후 유대인들의 수용 비율이 급증했다. 또한 2차 세계대전이 본격화된 이후로는 주로 세계 각국의 전쟁포로와 정치범을 감금하는 시설이 되었다. 그중에는 나치가 저항하는 이들을 체포할 때 "나는 침묵했었다"란 유명한 문구를 남긴 마르틴 니뮐러(Martin Niemöller) 목사, 스탈린의 장남 야코브 주가시빌리(Yakov Dzhugashvili), 스페인 제2공화국의 총리를 역임했던 프란시스코 라르고 카바예로(Francisco Largo Caballero), 프랑스 제3공화국 총리 폴 레노(Paul Reynaud) 등이 있었다. 1944년에는 포로의 약 90%가 외국인이었고, 그중 대다수는 소련군과 폴란드 포로였다. 수감자 중 약 2만 명은 여성이었다.
정치범들이 많았기 때문에 수용소에는 비밀 저항조직이 결성되었고, 태업과 수용소 시설 파괴 등 저항활동이 활발했으며, 그로 인해 수백 명의 정치범들이 처형되기도 했다. 1943년 작센 하우젠 수용소에는 '저렴'하게 대량학살이 가능한 가스실이 도입되었으며, 인체에 대한 잔인한 의학실험으로 많은 인원이 사망했다. 작센하우젠에서는 전체적으로 최소 30,000명의 수감자들이 열악한 생활환경의 결과로 피로, 질병, 영양실조 및 폐렴과 같은 원인으로 사망했다. 작센하우젠 기념관 및 박물관(Gedenkstätte und Museum Sachsenhausen) 자료에 따르면 1941년에는 러시아 전쟁 포로들 중 약 1만 3천 명이 처형당했다.
나치 전범 재판이 계속될 수 있는 이유
이미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지 76년이 지났기 때문에 나치 전범에 대한 재판이 최근 들어 다시 활발해지는 것에 사람들은 의아해할 수 있다. 여기에는 생물학적, 사법적 변화 그리고 나치 전범을 끝까지 추적하려는 노력이 반영되어 있다.
첫 번째로 생물학적 변화란 서구 세계의 기대수명 연장과 관련이 있다. 현대 의학의 발전은 남성과 여성이 더 오래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전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건강하게 지낼 수 있게 해 주었다. 특히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처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범죄를 저지른 개인이 가장 많고 자국민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따라서 나치 전쟁 범죄에 참여했던 세대가 90대 이상의 연령층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전범들이 비교적 건강하게 살아 있다.
두 번째 변화는 나치 전범에 대한 독일 공소 정책의 매우 극적인 변화다. 이 정책은 약 10년 전에 우크라이나인 이반 뎀잔주크(Ivan Demjanjuk.) 케이스에서 처음으로 도입됐다. 그는 제2 차 세계 대전 중 나치 독일 이 폴란드 동부의 루벨 스키 의 소비보루(Sobibor) 마을의 유대인 멸종을 목적으로 한 절멸 수용소(Vernichtungslager)에서 친위대(SS) 가드로 복무했다. 이 수용소는 나치가 만든 6대 절멸 수용소 (아우슈비츠, 소비보루, 벨제크, 켐노, 트레블링카, 마이다넥 강제 수용소) 중의 하나였다.
이전에는 홀로코스트 가해자에게 유죄를 선고하기 위해 검사는 용의자가 특정 피해자에 대해 특정 범죄를 저질렀고 인종적 증오에 의해 동기가 부여되었음을 입증해야 했다. 독일에서 채택된 새로운 공소 정책은 요구 증거 측면에서 기준을 대폭 낮췄다. 따라서 오늘날 절멸 수용소(death camp, 가스실 혹은 가스 트럭과 같이 산업화된 대량 살인을 위한 장치가 있는 강제 수용소) 또는 특공대(Einsatzgruppe, 이동 살인 부대)에서 복무한 사람은, 그 복무만으로도 살인 방조 혐의로 5년에서 15년 형의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있다.
세 번째로 나치에 대한 철저한 사냥과 전범에 대한 단죄를 촉진하기 위해 사이먼 비젠탈 센터(Simon Wiesenthal Center)는 "작전: 마지막 찬스"라는 구호 아래 2002년부터 나치 전범 케이스를 신고하는 신고자에게 2만 5천 불의 포상금을 지불하기로 결정했으며, 2011년 뎀잔주크 케이스 이후 이 작전을 연장하였다.
이러한 변화와 노력들은 아래의 도표에 반영되어 있다. 아래 도표에서 유죄는 전범의 국적 박탈, 추방, 범죄인 인도를 모두 포함한다. 사이먼 비젠탈 센터에서 발간하는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2001년 1월부터 2018년 3월까지 북미주와 유럽에서 나치 전범 유죄판결 건수는 105건으로 나타났다. 유죄 판결 건수는 이탈리아(46건), 미국(39건), 독일(8건), 캐나다(8건) 순이었다. 같은 기간 나치 전범에 대한 고소 제기 건수는 105건으로 미국(35건), 이탈리아(33건), 독일(22건)이 가장 많았다.
나치 전범 재판은 여전히 진행형
독일 주간지 슈피겔에 따르면 독일 검찰이 나치 점령 폴란드의 슈투트호프(Stutthof) 강제수용소 소장의 비서로 일했던 96세 여성 임가드 퍼치너(Irmgard Furchner)가 11,000명 이상의 살해에 공모한 혐의로 올해 재판을 받게 된다.
작년에 퍼치너와 같은 수용소에서 가드로 복무한 90대 남성 브루노 데이(Bruno Dey)는 1944년부터 1945년까지 5,200건 이상의 살인에 공모한 혐의로 재판정에 세워졌다. 데이의 재판은 9개월 동안 진행됐으며, 그는 법원에 낸 마지막 진술에서 증인 진술에 의해 "충격을 받았다"며 "이런 광기의 지옥을 겪은 사람들"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그는 강제수용소에서 가드로서의 역할을 강요받았고 살인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데이는 스투트호프 수용소의 가스실에 대해 알고 있었고 "수척한 모습의 고통받은 사람들"을 보았다고 인정했지만, 그의 변호인단은 그가 캠프에서 비교적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며 5,230명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그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었고, 죄수들과 접촉했으며, 그들의 탈출을 적극적으로 막았다고 주장했다. 라스 만케(Lars Mahnke) 검사는 마지막 변론에서 "당신이 대량 살인 기계의 일부일 때 외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는 함부르크 법원에서 집행유예 2년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지난 2월, 독일 시민권을 가진 미국 테네시 주민인 프리드리히 칼 베르거(Friedrich Karl Berger)는 독일-네덜란드 국경 근처의 강제 수용소에서 수감자들을 비인도적으로 대우하는 데 기꺼이 가담한 것이 미국 법무부에 의해 밝혀진 후 독일로 추방되었다.
역사의 심판에는 공소시효가 없다는 말은 멋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힘든 말이다. 만약 역사의 심판에 공소시효가 없다면 그것은 역사가 옳기 때문이 아니라 역사적 해석과 시건에 대한 판단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나치 전범에 대한 단죄는 그러한 상대적 역사관에 기초하지 않는다. 인류에 대한 범죄는 철저히 단죄해야 하며, 그 법적 공소 시효는 범죄자들의 생물학적 수명이다. 그 범죄에 대한 단죄와 공소시효는 100세 이건 그 이상이건 법정에 세울 수 있는 전범들이 1명도 남지 않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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