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 말과 2000년 대 초, 영미권을 중심으로 인정(recognition) 투쟁과 재분배(redistribution) 투쟁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성과 인종 등을 둘러싼 정체성의 정치(identity politics)는 억압받는 사람들을 단결시키는 조건이 되기도 하지만 제 각각의 정체성을 관통하는 보편적 요구에 대한 투쟁을 방해하는 요인도 된다는 비판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이 글은 국제 인권단체인 Human Rights Watch의 LGBT연구자인 Rasha Younes가 7월 28일자 The Nation에 쓴 The Trouble With ‘the LGBT Community’의 번역으로 '성소수자 커뮤니티'(LGBT community)란 용어와 그 정체성 주장이 광범위한 억압이 존재하는 곳에서 다른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억압의 요인을 가리고, 자칫 지배권력의 분열 전략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이 LGBT란 약어는 필요한 것이지만 자칫 신자유주의의 도구가 되어 내부와 바깥 그룹의 잘못된 이분법이 될 위험이 있다. - 역자 주
내가 레바논의 전 무소속 의원을 만났을 때 그는(she) “레바논에서 성소수자(LGBT, lesbian, gay, bisexual, and transgendered) 투표를 어떻게 동원할 수 있을까?”라고 나에게 물었다. 그는 레바논의 "LGBT 커뮤니티"가 2018년 총선에서 종파 정당에 반대하는 하나의 집단으로서 투표(voted as a block) 하지 않은 이유를 이해하고 싶어 했다.
그의 질문은 공통적이지만 잘못된 가정을 했다. 그것은 정체성의 한 측면이 계급 및 종파적 충성, 가부장적 지배, 사회적 불평등을 포함한 다른 모든 요인보다 우선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레바논에서 가난한 퀴어 여성은 가장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을 바탕으로 투표할 것이다. 그것은 그녀가 종파의 리더를 선택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왜냐하면 후원(patronage) 네트워크는 종종 기본 서비스를 얻기 위해 자신의 종파를 이용하는 것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생계보다 퀴어를 선택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
이 의원의 질문은 'LGBT 커뮤니티' 문구의 문제(trouble)라는 보다 광범위한 문제를 제기한다. 이 용어는 공유된 성적 지향 또는 젠더 정체성에만 기초한 일관된 그룹 정체성을 의미한다.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동질성을 암시한다.
이것은 특히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포함하여 극심한 경제 및 권력 격차가 있는 세계의 지역에서 분명합니다. 예를 들어, 젠더 표현(gender expression) 때문에 직장을 찾기 위해 평생을 고생한 이집트의 트랜스젠더 여성에게 그녀가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는 재력이 있는 부유한 이집트 게이 남성과 "동일한"(identify)지 물어보라. 그들의 삶은 거의 교차하지 않는다.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y)는 정치적 도구로서 복무하는 것을 포함하여 유용하지만, 성적 지향이나 젠더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획일적인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주장은 비정치적(depoliticizing)이다. "LGBT 커뮤니티" 내에서도 계층화로 이어지는 다른 상호 교차적 요소들(intersecting factors)을 가릴 위험이 있다. 확실히, 차별적 법률 및 정책과 같이 정체성을 기반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차별의 상대적인 영향을 볼 때 다른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거의 예외 없이 사회적, 경제적 주변부의 사람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약칭이 필요하며 "LGBT"는 국제 인권 프레임워크에 대한 접근을 논의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망명 허가를 받으려면 퀴어 또는 트랜스젠더가 자기주장 근거가 자신의 LGBT 정체성으로 인한 폭력이나 차별 경험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LGBT 커뮤니티"라는 용어는 정치적 연대를 나타내는 활동가 기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LGBT 커뮤니티"가 신자유주의 경제에서 하나의 편리한 약어가 되었는데, 이 신자유주의 경제에서 이 용어는 무지개 깃발을 팔든 정치 후보를 팔든 필수 불가결한 틈새시장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것은 "내부"(in)와 "바깥"(out) 그룹 사이에 잘못된 이분법을 만든다.
이것은 성적 또는 젠더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일부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의도하지 않은 효과를 가질 수 있다. 그들은 그 카테고리를 거부함으로써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배신하고 기본적으로 자신의 본질적인 정체성을 배반하고 있다고 느끼게 할 수 있다. 고정된 카테고리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불균형적인 초점은 항상 구조적 장벽과 정치적 맥락을 경시한다.
정체성 기반 접근법의 한계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예가 팔레스타인인데, 여기서 퀴어 운동가들은 팔레스타인인으로서의 공유된 경험을 퀴어인으로서의 연대 위에 놓고 그것의 초월을 주장하고 있다. 다양한 경험을 가진 퀴어 및 트랜스 팔레스타인인들은 유대인 이스라엘인에게 특권을 주기 위해 고안된 차별적인 이스라엘 통치 아래 살고 있다. 인종 차별 정책 그리고 병행된 박해는 퀴어이든 아니든 팔레스타인 점령지역에 있는 수백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현실이 되었다.
팔레스타인의 "LGBT 공동체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현실의 한 측면을 더 넓은 맥락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이며, 팔레스타인의 일상의 삶을 지배하는 역사적, 주기적 폭력을 지울 위험이 있다.
정체성은 구성되는 동안 개인에게 중요하며 가시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인식된 혹은 실제적 성적 지향이나 젠더 정체성에 근거한 차별과 폭력은 인권 침해이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모든 종류의 비규범성(non-normativity)에 대한 만연한 치안(policing)은 가장 강력한 자들의 경제적, 정치적 이익에 봉사하는 현상 유지를 위해 정부가 배치하는 조정된 정치 전략의 산물이다. 이러한 조건은 공유된 경험과 연합과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그러나 이러한 궤적들은 맥락적, 상황적, 기능적,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의 정치적 운동은 지배적인 시선에 인정되고 가시화되기 위하여 네이밍을 하거나 정체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정치 운동은 주로 신체의 자율성, 재생산 정의(reproductive justice), 사회경제적 권력에 대한 접근, 자유로운 이동성을 위한 투쟁이다. 우리가 커뮤니티를 형성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우리는 행위자이자 영향을 받는 자(the affected)들이다.
'해외 시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직 끝날 수 없는 나치 전범 재판: 독일 검찰, 100세 노인을 나치 강제수용소 살인 방조 혐의로 법정에 세우다 (0) | 2021.08.03 |
---|---|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 정부의 내러티브 전쟁 (0) | 2021.08.01 |
[번역] 중국 없이 글로벌 위기의 해법은 없다 (0) | 2021.07.27 |
부정부패의 낙수효과: 정치 부패는 일반인의 일상 부정행위 가능성을 높인다. (0) | 2021.07.25 |
억만장자들의 우주 경쟁과 부활한 식민지 판타지 (0) | 2021.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