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미국 어떻게 코로나 19 대응에 실패했나?: 실패의 결정적 세 순간

Zigzag 2021. 2. 1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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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 검사 경쟁에서 한국은 미국을 어떻게 완파했나'는 로이터의 2020년 3월 18일 자 특별 리포트는 K-방역을 전 세계에 알리는 첫 신호였지만, 동시에 미국의 방역 참담한 실패를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특히 이 보고서의 "한국과 같은 날 첫 사례가 발견된 미국은"이란 구절은 미국의 코로나 19 대응 실패를 비판하는 미국 언론과 정치인들이 즐겨 인용하는 문구가 되었다.

로이터 특별 리포트 '코로나바이러스 검사 경쟁에서 한국은 미국을 어떻게 완파했나', 지금까지 이 기사 구독은 2,000만회가 넘었다.

미국의 코로나 19 대응 실패를 지금까지 가장 포괄적이면서도 세심하게 분석한 로렌스 라이트(Lawrence Wright)의 글 '역병의 해: 미국 코로나바이러스 비극 배후의 실수와 투쟁'에 따르면 미국은 로이터 특별 리포트가 발간된 3월 중순 이미 실패의 두 번째 지점을 통과했고, 치명적인 세 번째 실패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라이트에 따르면 미국의 코로나 19 대응의 첫 번째 실패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2020년 1월 초 중국 우한에 미국 조사팀 파견에 실패했을 때다. 두 번째 실패는 코로나 19 지역감염이 본격화되었던 2월 말까지 코로나19 테스트 키트 제작에 실패했던 때다. 세 번째는 뉴욕 등지에서 코로나 19 감염이 폭증하던 3월 마스크 착용 의무화에 실패했을 때다.

로렌스 라이트의 <뉴요커> 기사 '역병의 해'

로렌스 라이트의 기사 '역병의 해'는 무려 3만 자가 넘는 장문의 글로 이미 지난해 12월 28일 <뉴요커(New Yorker)>에 게재됐다. 하지만 백악관 관료와 보건 당국자, 백신 개발자, 현장 의료노동자에 이르기까지 코로나 19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 워싱턴포스트 등 주류언론들이 지금까지 그와의 인터뷰 혹은 그의 글의 요약본을 실을 정도로 중요한 글로 여겨지고 있다. 그는 2008년에 출판된 《최후의 탑: 알카에다와 911로의 길》이란 논픽션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바 있다. 2020년 4월에 발표된 그의 소설 <10월의 종말>은 아시아에서 시작된 글로벌 대역병이 어떻게 세계를 공포에 빠뜨렸는가를 다루었는데 그 과정이 거의 코로나 19 대역병과 유사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이 책의 집필을 위해 그는 3년 이상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취재를 했고 그 과정에서 취합된 정보의 심층분석이 <뉴요커> '역병의 해' 작성에도 큰 도움이 됐다. 그가 지적한 미국이 코로나 19 대응에서 실패한 세 순간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 번째 순간은 중국 우한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폐렴 유사 증상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진상파악을 위해 미국이 2020년 1월 초 조사팀을 파견을 요청했지만 중국 당국이 거부했을 때다. 이로 인해 미국은 코로나 19의 정체, 특히 코로나 19의 무증상 감염 특징을 파악할 수 없었다. 당시 미국 과학자들은 코로나 19가 기껏해야 사스 바이러스 정도의 감염력일 것이라고 추정했지만 코로나 19의 감염력은 사스보다 훨씬 강력했다. 당시 CDC 소장 레드필드는 이 무증상 감염이란 코로나 19의 특징으로 "전체 사례의 50% 이상을 놓치게 될 것임을 우리는 2월 말이 되어서야 깨달았다”고 뒤늦게 토로했다. 코로나 19 유증상자에만 테스트를 허락하는 미국의 초기 전략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

두 번째 순간은 미국 CDC가 지역감염이 본격화된 2월 말까지 테스트 키트 생산에 실패했을 때다. 당시 한국과 비교를 하면, 2월 25일에 한국이 3만5천 명이 코로나 19 검사를 받을 동안 미국은 단지 426명 검사에 그쳤다. K-방역을 전 세계에 알린 BBC 한국 특파원 로라 비커는 그 특징을 테스트-추적-치료(testing-tracing-treatment)의 3T로 요약했다. 테스트를 할 수 없다면 감염자들을 추적할 수 없고, 추적과 격리를 통해 감염 사슬을 끊을 수 없다. 따라서 테스트를 진행할 수 있는 키트의 생산은 감염병 확산 저지의 첫걸음이자 가장 핵심적인 조치지만 미국은 그 첫걸음을 떼기도 전에 실패했다. CDC 테스트 키트는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 키트 프라이머・프로브 그리고 바이러스를 나타내는 RNA 조각으로 구성됐다. 보통 이 두 제품은 별도의 공간에서 제작하지만, CDC는 이들을 한 실험실에서 제작해 오염이 발생했고 이 오염된 키트를 전국의 공공실험실에 배포했다. 또한 코로나바이러스와 기타 바이러스를 감지하는 요소들로 구성된 프라이머・프로브에서 기타 바이러스를 감지하는 요소에 오류가 있었지만, FDA는 개선을 요청하는 일선 공공실험실의 요구를 묵살했다. CDC와 FDA의 관료주의는 공공실험실과 민간기업의 테스트 키트 생산을 막았다. 2월 말, 미국의 1백여 개 공공실험실 중 오직 3곳에서만 테스트 키트가 제대로 작동했을 뿐이다. 결국 코로나 19 확산 저지에 결정적이었던 2월 한 달은 완전히 "잃어버린 2월"이 되고 말았다. 그 와중에 백악관에서는 코로나 19의 영향을 과소평가하며 감염을 방치하면 집단면역이 형성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집단이 우위를 차지했고, "무계획이 계획"이란 정책이 암묵적으로 지지되었다.

세 번째 순간은 코로나 19로 워싱턴주, 캘리포니아주, 뉴욕주들이 비상사태에 돌입한 2020년 3월, 그 확산을 손쉽고 저렴하게 막을 수 있는 마스크 착용 의무화에 실패했을 때다. 감염병 관련 미국 최고 권위자 중 하나인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 소장조차 2020년 2월 17일 USA Today와의 인터뷰에서 "상황이 변할 수도 있지만"이란 전제를 붙였지만 "지금은 코로나 19보다 인플루엔자를 더 걱정할 시점이며, 마스크 착용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3월 초 의회 증언에서도 "마스크를 써야 하나?"란 질문에 명백하게 "NO"라고 응답했다.

USA Today와 인터뷰하는 파우치 박사

미국 CDC는 2020년 4월 3일이 되어서야 마스크의 코로나 19 감염방지 효과를 인정하고 권고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마스크 착용이 필요 없다던 보건 당국이 입장을 바꿔 마스크 착용이 도움이 된다고 했을 때, CDC 소장도 인정한 바와 같이 그 "두 번째 메시지는 효력이 없다." 더구나 보건 당국을 더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대통령 트럼프였다. 그는 CDC 방침이 발표되자마자 "이 조치는 자발적이며, 내가 마스크를 착용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보건 당국의 방침을 무효로 만들었다. 나아가 트럼프는 공개 활동에서 거의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마스크 등 보호장비를 생산하는 공장을 방문하면서도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음으로써 마스크와 코로나 19를 정략화했다. 2020년 10월의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착용여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민주당 지지자들의 63%가 상시 착용해야 한다고 응답한 데 비해 공화당 지지자들은 29%만이 상시 착용에 동의했다. 위스콘신처럼 민주당과 공화당의 세력이 비슷한 지역에서는 해시태그 "제기랄 마스크 좀 쓰란 말이야"가 민주당 구호가 될 정도로 마스크는 보건과 과학이 아닌 정파적 문제가 되어 버렸다. 코로나 19와 마스크의 정략화는 결국 거대한 참극이 되었다. 미국은 6년간 2차 세계대전으로 잃은 42만 명의 목숨을 단 1년 만에 코로나 19로 잃었다.

마스크 착용에 대한 민주/공화 지지자들의 태도에 대한 Pew Research Center의 2020년 10월 설문조사

로렌스 라이트가 언급한 미국 코로나 19 대응 실패의 세 순간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실패는 코로나 19의 정체 파악의 실패다. 코로나 19가 무증상 감염 특성과 사스나 메르스 등 기존 코로나바이러스보다 훨씬 빠른 감염력을 가지고 있음을 파악하는 데 실패했기에 미국은 초기에 제대로 된 전략을 짤 수 없었다. 두 번째 실패는 코로나 19 테스트 키트 생산 지연으로 두 눈을 뜬 채 지역감염을 방치하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세 번째 실패는 마스크 착용 의무화에 실패함으로써 코로나 19를 공공보건과 정책의 문제가 아닌 정략과 정파적 문제로 만들었다. 라이트는 이 실패를 "정보 실패"(intelligence failure)에서 찾았다. 코로나 19에 대한 정보 수집 실패, 수집된 정보의 분석과 공유를 방해하는 관료기관들의 실패, 제공된 정보를 효과적 정책과 공공 정치로 바꾸지 못하고 정략화한 리더십의 실패가 모두 이 정보실패에 기인한다.


라이트 기사는 코로나 19 사망자의 40% 이상이 발생한 요양원을 둘러싼 민영화와 거대 로비, 백인과 비백인 간 감염자 및 사망자 수 차이를 발생시킨 인종 및 계급 불평등, 공공의료보험의 부재, 배려와 연대보다 자유와 개인을 우선하는 신자유주의와 같은 코로나 19 이면과 기저에 깔린 원인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의 전작 《최후의 탑: 알카에다와 911로의 길》이 911이 왜 발생했는가를 묻지 않았던 것처럼 '역병의 해"는 '어떻게' 실패했는가만을 다루지 "왜" 실패했는가를 파고들지 않았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 미국 사회의 관성은 환경파괴로 인수공통감염병이 증가하는 지금 상황에서 자칫 또 다른 글로벌 대역병에 대한 대응 실패를 예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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