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 주: 안네 프랑크와 그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를 포함해 8명의 유대인들은 암스테르담의 운하 옆 창고 위의 비밀 별관에 거의 2년 동안 숨어있다가 그해 8월 4일 밀고로 나치에 의해 발견되었고, 그들은 모두 수용소로 보내졌다. 이들 중 오토만이 유일하게 생존했으며, 안네는 15세로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오토는 전쟁이 끝난 후 딸 안네의 일기를 출판했으며 그 일기는 전 세계 독자의 심금을 울렸다. 그러나 지난 77년 동안 누가 그들을 밀고했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이 의문은 최근 전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과 20여 명의 역사학자, 범죄학자, 데이터 전문가로 구성된 조사단에 의해 최근 실마리가 드러났으며, 이들의 조사 결과는 전 세계 외신을 탔다. 이 새로운 조사는 프랑크 일가의 밀고자가 암스테르담 유대인 평의회 회장인 반 더 버그라고 지목했으며, 안네의 아버지 오토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유대인을 밀고자로 고발하고 반 더 버그의 딸들이 괴로워할까 봐 공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안나 프랑크와 2차 대전, 홀로코스트 전문가들은 이 새로운 조사의 결과에 대해 회의적이다. 이 전문가들은 새로운 조사가 동원했다는 빅데이터와 AI, 유전자 검사의 역할은 미미했으며 조사의 대부분은 추측만 가득하고 비판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법의학적 조사는 당시 암스테르담 유대인 공동체와 시대에 대한 역사적 맥락을 결여했기에 증거는 없고 대신 비난만 가득한 조사라고 비판받고 있다. 이 글은 뉴욕타임스 Nina Siegal의 1월 18일 자 기사 Scholars Doubt New Theory on Anne Frank’s Betrayal의 번역으로 새로운 조사의 문제점과 이를 검증 없이 무비판적으로 보도한 언론, 전문가들이 제기하는 새로운 조사 결과에 대한 의문점, 그리고 이 새로운 조사가 유대인을 밀고자로 지목하는 것의 문제점 등을 분석하고 있다.
학자들, 안네 프랑크의 배신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의심하다
유대인 공증인을 용의자로 지목한 새로운 책이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이제 제2차 세계 대전과 홀로코스트 전문가들은 그 주장을 검토할 시간을 갖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방법과 결론을 의심한다.
"누가 안네 프랑크(Anne Frank)를 배신했습니까?" 10대 일기 작가가 나치로부터 2년 이상 숨어 있었던 비밀 별관 주변에 지어진 박물관인 안네 프랑크의 집에서 방문객들이 흔히 묻는 질문이다.
수십 년 동안 새로운 단서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네덜란드의 미디어 프로듀서인 피터 반 트위스크(Pieter van Twisk)는 인공 지능, 빅 데이터 분석 및 DNA 테스트와 같은 현대 범죄 해결 기술이 이전 조사보다 더 나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6년 전, 반 트위스크는 남부 플로리다 출신의 은퇴한 FBI 형사 빈스 판코크(Vince Pankoke)를 필두로 소위 "미제 사건 팀"(cold case team)을 위해 약 24명의 연구원들을 모았다. 궁극적으로, 최첨단 도구는 그들의 발견에 최소한의 역할을 했고, 조사관들은 오래된 단서들을 재탐색함으로써 이 결과를 얻어냈다. 그들은 캐나다 작가 로즈메리 설리번(Rosemary Sullivan)을 고용하여 이 과정을 다룬 책 '안네 프랑크에 대한 배신'(The Betrayal of Anne Frank)을 썼다. 이 책은 13일 미국과 네덜란드에서 출간됐다.
이 팀은 1950년에 인후암으로 사망한 암스테르담의 유태인 공증인 아놀드 반 덴 버그(Arnold van den Bergh)를 용의자로 결정했다. 안네 프랑크 전문가에게는 그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1945년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아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온 유일한 가족인 안네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Otto Frank)는 반 덴 버그가 나치에게 은신처를 알렸다는 익명의 메모를 받았다.
오토는 가족이 배신당했는지 여부에 대해 1963년 조사를 수행한 네덜란드 형사에게 쪽지를 넘겼지만 형사는 그것을 기각했다. 2003년 책 '누가 안네 프랑크를 배신했는가?'(Who Betrayed Anne Frank?)의 저자 데이비드 바르나우(David Barnouw)는 반 덴 버그도 용의자로 생각했지만 그가 역할을 했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배제했다고 말했다.
바르나우는 반 트위스크 팀의 연구 결과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여러 네덜란드 역사가 중 한 명이었다. 출판사의 미디어 전략의 일환으로 결론은 널리 공유되지 않았다. 조사에 참여한 사람은 누구나 비밀유지 계약서에 서명해야 하며, 이번 주 초 '60분(60 Minutes)' TV 코너로 첫 방송을 시작할 때까지 결과는 대부분 비밀에 부쳐졌다.
많은 언론사들은 전문가의 반응 없이 반 덴 버그를 배신자로 지목하면서 무비판적으로 이 보고서를 받아들였다. 영국 데일리메일(British Daily Mail)의 웹사이트인 메일온라인(MailOnline)은 “안네 프랑크는 유대인 공증인에게 배신당했다”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다.
암스테르담의 유대인 문화 지구(Jewish Cultural Quarter)의 관장인 에밀 슈라이버(Emile Schrijver)는 지난주 말에 이 책의 사전 사본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누군가를 비난하기에는 증거가 너무 얇습니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그들이 많은 가정을 사용하여 만든 엄청난 비난이지만 실제로는 정보 조각에 불과합니다."
화요일까지 안네 프랑크, 제2차 세계 대전 및 홀로코스트에 대한 전문가들이 그 결과를 고려할 기회를 얻은 후 많은 전문가들은 그들이 이 책의 이론에 의문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안네 프랑크 하우스의 로날드 레오폴드(Ronald Leopold) 집행이사는 "추가 조사가 필요한 새로운 정보를 내놓았지만 결론에 대한 근거는 전혀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박물관이 발견을 사실로 제시하지 않고 아마도 수년 동안 고려되어 온 다른 이론을 포함하여 여러 이론 중 하나로 제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네 프랑크에 대한 배신'은 반 덴 버그가 암스테르담 유대인 평의회(Amsterdam Jewish Council)로부터 받은 유대인들의 명단을 숨겨두고 있었다고 말한다. 네덜란드에 있는 나치 행정부는 1941년 유대인 인구를 통제하기 위해 평의회를 설립했고, 그들이 금지한 다른 유대인 단체들의 지도자들을 임명했다. 평의회 직원들은 1943년 조직이 해체되고 직원들이 체포될 때까지 추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신분증에 도장을 받았다.
NIOD 전쟁, 홀로코스트, 대량학살 연구소(NIOD Institute for War, Holocaust and Genocide Studies)의 암스테르담 유대인 평의회의 역사 전문가인 로리엔 바스텐하우트(Laurien Vastenhout) 연구원은 "그러나 평의회가 그러한 목록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왜 숨어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주소를 유대인 평의회에 제공했겠습니까?"라고 바스텐하우트가 말했다.
안네 프랑크 하우스 소장 레오폴드(Leopold)는 평의회가 주소 목록을 보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유대인 평의회는 점령군의 특별한 감시를 받고 있다”며 “그런 명단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매우 위험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 트위스크는 그의 팀이 목록을 찾지 못했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그는 "목록의 존재를 언급하는 여러 출처가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정황 증거도 증거입니다"라고 말했다.
유대인 평의회는 네덜란드에서 대량 학살 프로그램을 시행할 때(네덜란드 유대인 인구의 75%가 살해됨) 나치의 손아귀에서 놀아났기 때문에 오랫동안 의심과 피해자 비난의 대상이 되어 왔다.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유대인 과실 문제는 1960년대까지 미해결 문제로 남아 있었는데,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그녀의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에서 나치의 최종 해결(Final Solution, 나치의 유대인 절멸 계획 - 역자 주)의 실행은 "행정과 경찰 업무에 유대인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썼다.
그녀는 엄청난 비판을 불러일으킨 유명한 구절에서 “유대인에게 자기 민족을 멸망시키는 유대인 지도자의 역할은 의심할 여지없이 전체 암흑사의 가장 어두운 장”이라고 썼다.
거의 15,000명의 네덜란드 시민이 전후 법원에서 어떤 형태로든 협력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그중 약 10%는 숨어 있는 유대인 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중 152건이 사형선고를 받았고 그중 40건이 집행됐다. 유죄 판결을 받은 협력자 중 단 한 명의 유대인인 안스 반 데이크(Ans van Dijk)는 145명의 유대인을 배신한 혐의로 1948년 총살형에 처해졌다.
바스텐하우트는 조사관이 이미 많은 오해가 존재했던 암스테르담 유대인 평의회에 자신들의 주장을 너무 비중 있게 다루었다면 "이 문제를 다루는데 매우 신중했어야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대신, 그녀는 그들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책은 "오류투성이다"라고 말했다.
바스텐하우트는 "문제는 그들이 실제 증거를 제공하지 않고 이러한 혐의를 제기한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을 한 것은 유대인들 자신이며, 다시 유대인 위원회라는 이야기입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 같아요.”
반유대주의적 태도를 탐구한 2021년 책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People Love Dead Jews)의 미국 작가 다라 혼(Dara Horn)은 이 이야기가 유대인에게 등을 돌리는 유대인의 비유에 들어맞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월요일 인터뷰에서 "유대인 연구에는 '홀로코스트 뒤집기'(Holocaust inversion)라는 이름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것이 비유대인 청중에게 어필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에게 당신의 책임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도록 합니다.”
책의 저자인 설리번은 조사팀이 조사를 통해 유대인 범인을 찾았을 때 괴로워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매우 고통스러운 발견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발견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사람이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 공포와 끊임없는 두려움 속에 살 때 바로 그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 트위스크는 팀이 출판을 계속할 수 있도록 축복을 준 랍비와 상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탈무드에는 단 하나의 가치가 있으며 그것은 진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이 프로젝트가 실제로 "진실"로 이어졌는지 여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바스텐하우트는 "이 책은 '가장 그럴듯하다'(most likely), '가장 확실하다'(most certainly)와 같은 용어로 가득 차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슈라이버는 팀의 좋은 의도를 의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책에서 수년간의 작업 끝에 배신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지에 대해 일종의 비판적 반성을 기대했을 것입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거기에는 역사적 사고와 맥락이 완전히 부족하며 그것이 저는 거슬립니다. 그리고 그것이 법의학 연구와 역사 연구의 큰 차이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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