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시사/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숄츠 총리, 50년 동방정책 폐기로 유럽의 잠자는 거인 독일을 깨우다

Zigzag 2022. 3. 4.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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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자 주: 1972년 동서독 기본 조약을 체결하면서 빌리 브란트 당시 총리는 동독을 승인한 국가들과는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겠다는 할슈타인 독트린을 폐기했다. 전범국 독일은 특히 소련/러시아에 대해 소극적이었다. 소련/러시아가 전승국이자 나치 독일의 최대 피해국 가운데 하나이며, 동서독 통일에서 소련/러시아의 승인이 불가피했기에 독일은 소련/러시아에 목소리를 높일 수 없었다. 그리고 전범국이라는 역사는 독일의 자국 군대 강병화와 살상 무기 수출과 대외 군사원조의 발목을 잡아왔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독일은 연방군을 강화하고 대전차 미사일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등 거대한 외교적 전환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전환은 전범국 독일 내에서 평화세력들의 반발뿐만 아니라 러시아 가스와 중국 교역에 의존하고 있는 자본의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의외이고 또한 쉽지 않은 조치였다. 과연 전범국 과거를 가진 독일이 군사적으로 강대해지고 개입력을 높일 때 프랑스나 영국과 같은 주변국들은 경계를 높일 것이다. 숄츠의 이러한 전환은 어떻게 가능했고, 그 방향은 어디로 진행될 것인가? 이 글은 로디움 그룹(Rhodium Group)의 편집장이자 베를린에 위치한 미국의 독일 마샬 펀드 방문 선임 연구원 노아 바킨(Noah Barkin)의 The Atlantic 3월 1일 자 기고 Europe’s Sleeping Giant Awakens의 번역으로 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시도하고 있다.

유럽의 잠자는 거인이 깨어나다

베를린의 정치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대격변을 겪었다

이미지: Getty; The Atlantic

작년 말,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이 아직 독일 총리였을 때 나는 그녀 정부에서 가장 영리한 외교 정책 사상가 중 한 명에게 독일이 권위주의적 권력에 대한 걱정스러운 의존도와 이러한 관계를 재고하기를 꺼리는 정치 계층에 대해 질문했다.

당시 베를린은 러시아에서 새로운 가스 파이프라인을 개통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고 독일의 대기업들은 중국에 대한 대규모 신규 투자를 발표하고 있었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는 물러나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질문은 리더십 교체가 독일의 접근 방식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여부였다. 이 독일 관리는 회의적이었다.

독일의 정치적 관습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기 위해 익명을 요구한 이 사람은 “독일에서는 자유가 다른 곳만큼 큰 의미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경제적 쇠퇴와 자유의 침식 사이에서 절충해야 한다면 독일은 후자를 선택할 것입니다."

주말 동안 메르켈의 후계자인 올라프 숄츠(Olaf Scholz)는 연방의회에서 연단에 올라서 러시아의 정당하지 않은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자유를 최우선에 두는 놀라운 대응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70여 년 전 독일 연방 공화국 수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독일의 외교 정책 금기를 깨뜨렸다.

숄츠는 독일이 러시아 가스에 대한 의존을 끝내고 군대에 1,000억 유로를 추가로 지출하며 수백 개의 대전차 무기와 스팅어 미사일을 우크라이나에 전달해 압도된 군사력이 러시아의 전면 공격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독일은 또한 러시아 가스 공급 중단으로 인한 에너지 격차를 메우기 위해 원자력 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해야 할 수도 있다.

이러한 각각의 결정은 일종의 지진을 나타낸다. 종합해보면, 그것들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정치적 대격변이다. 이것은 확실히 조심스러움으로 유명한 초보 총리, 평화주의적 뿌리를 가진 독일 정당들의 연정(평화주의가 당의 뿌리 중 하나인 녹색당을 의미 - 역자 주), 그리고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던 사회민주당이 이끄는 정부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진입하고 있습니다."라고 숄츠는 의회에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우리가 전에 알던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워싱턴에서는 우리가 독일에서 목격하고 있는 변화가 얼마나 큰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국가가 어디에서 왔는지 되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독일 외교관 토마스 바거(Thomas Bagger)가 2019년에 능숙하게 설명했듯이 독일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 독일 통일, 소련의 붕괴에서 마침내 역사의 올바른 편에 착륙했다고 확신했다. 장벽이 무너졌을 때 동독의 드레스덴에 살았던 KGB 요원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이 20세기의 "가장 큰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묘사한 것은 독일의 재탄생이었으며, 역사가 자유민주주의라는 브랜드를 향해 굽어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냉전의 종식은 또한 평화를 의미했고, 독일 국방 예산의 급격한 감소가 뒤따랐다.

동시에 독일은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 우산에 의존하면서 러시아 가스를 빨아들이고 떠오르는 중국에 세계 최고의 공작 기계를 판매하는 산업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유럽 재정 위기,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 중동 테러, 난민 유입 등 여러 난관이 있었지만 그 어떤 것도 독일의 모델과 세계관에 대한 신뢰를 흔들지 못했다.

이어 브렉시트와 도널드 트럼프 당선, 그리고 독일의 무역을 통한 변화라는 주문 '반델 두어히 한델'(Wandel Durch Handel, '무역을 통한 전환'이라는 의미 - 역자 주)이 결국 잘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중국은 여전히 ​​독일 자동차와 기술을 흡수하고 있었지만, 강력한 경제적 경쟁자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야망을 가진 권위주의적 감시 국가로 변모했다.

10년이 넘는 긴 집권 기간 동안 메르켈은 모든 것이 옳은 것은 아니라고 암시했다. 트럼프를 처음 만난 후 그녀는 2017년 뮌헨의 맥주 텐트에서 독일이 예전처럼 미국에 의존할 수 없을 수도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독일의 전후 모델의 기둥이 무너지고 있다거나 다가올 격변의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일반 독일인들에게 전달한 적이 없다.

그녀의 마지막 주요 외교 정책 활동 중 하나는 차기 바이든 행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EU) 투자 협정을 중국과 체결한 것이다. 규칙, 자유로운 무역, 아늑한 강대국 관계를 바탕으로 구세계를 온전하게 유지하려는 최후의 시도는 3개월 만에 제재의 광풍 속에서 무너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숄츠는 선거 운동 기간 동안 유권자들에게 크게 변화할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메르켈의 타고난 상속인으로 출마했으며, 독일인에게 "무티"(Mutti, 메르켈의 어머니 같은 별명, 어머니의 친근한 명칭으로 '엄마'정도로 번역될 수 있다 - 역자 주)가 그녀의 당의 라이벌인 대머리이자 부드럽게 말하는 63세 남성의 모습으로 살 것이라고 확신시키기 위해 그녀의 특징인 다이아몬드 모양의 손 모양까지 채택했다. 그는 모스크바와 베이징에 대한 더 많은 지원을 통한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전 사민당 총리의 특징인 "동방 정치"(Ostpolitic) 정책을 다시 시작할 필요성에 대해 말했다.

그러나 해롤드 맥밀런(Harold Macmillan)이 영국 총리로 재임하는 동안 말했듯이 "사건들, 얘들아, 사건들"은 사건들은 그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지도자들에게 도전하는 방식을 가지고 있다. 푸틴의 무력 위협에 대한 숄츠의 초기 반응은 그것을 경시하는 것이었다. 12월 중순에 푸틴이 러시아-우크라이나 국경에 군대를 집결했을 때에도 숄츠는 유럽연합(EU) 파트너와 워싱턴의 격렬한 저항에 오랫동안 직면해 온 러시아의 독일 파이프라인 노르트 스트림 2(Nord Stream 2)는 제재 논의에서 분리되어야 하는 비정치적인 "비즈니스 프로젝트"였다고 말했다(당연히 전 사민당 수상인 게르하르트 슈뢰더[Gerhard Schröder]는 2005년 퇴임 후 푸틴의 가스 로비스트로 변신했다.).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에 진격하자 지난주에 숄츠의 돌변은 부분적으로는 몇 주 동안이나 독일과 베를린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들 사이에서 그의 정부가 당한 압도적인 압력에 대한 반응의 일부였다. 그러나 압력만으로는 숄츠가 발표한 조치를 설명할 수 없으며, 이는 한자 동맹식의 신중함(Hanseatic reserve)*으로 알려진 정치인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것 이상이다.

* 역자 주: 숄츠는 한자동맹의 중심도시였던 함부르크 사회민주당 당대표와 시장을 역임했다. 한자동맹은 여러 특징이 있지만 귀족주의적 신중함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숄츠 역시 튀는 언행보다 신중한 행보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조치들은 세계가 실제로 변했고, 독일이 자국 방위에 막대한 투자를 해야 하며, 독일의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경제적 대가를 치러야 하며, 체제 경쟁의 세계에서 더 큰 스위스 버전(독일의 그동안의 외교 행보가 영세 중립국인 스위스와 유사했다는 의미 - 역자 주)으로 남을 수 없다는 인정이다. 그러한 조치들을 만들 때 숄츠는 자신의 당의 조류, 독일 사업체의 조류와 많은 사람들이 더 넓은 독일 인구의 선호로 가정한 것을 거슬렀다. 그러나 연립정당들은 그를 지지했고 독일 언론은 그의 대담성을 극찬하고 있다. 숄츠가 발표를 한 날,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우크라이나와의 연대를 보여주기 위해 연방의회 옆에 있는 티어 공원(Tiergarten)에 모였다.

순식간에 숄츠는 자신을 선출하게 만든 신중한 메르켈의 틀에서 벗어났다. 메르켈 역시 총리로 재임한 16년 동안 중대한 결정들을 내렸지만, 숄츠는 총리직에 오른 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발표한 이 결정만큼 세계에서 독일의 위상에 큰 영향을 미치거나 잠재적으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는 결정들은 없었다. 이 나라의 부끄러운 2차 세계 대전의 과거로부터 자라난 금기*가 유럽의 심장부에서 또 다른 전쟁에 의해서만 부서질 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 역자 주: 1, 2차 세계대전 전범국으로서 독일은 해외 살상 무기 수출과 군사원조에 대해 매우 소극적인 자세를 유지해왔다. 2차 대전 전승국이자 동서독 통일을 용인한 소련/러시아에 대한 독일의 외교자세는 숄츠 총리 전까지 소극적이었다.

다음에 무엇이 올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숄츠의 조치를 실행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며 깊이 뿌리 박힌 독일 이익 단체의 저항을 예상할 수 있다. 충분한 재정지원을 받지 못했던 독일 연방군(German Bundeswehr)을 교정하는 것은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 가스 공급을 교체하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다.

베를린에 있어서 이것이 푸틴과 "무제한"의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그의 침략을 비난하기를 거부한 베이징과의 관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중국은 러시아보다 독일 경제와 주요 기업에 훨씬 더 중요하다. 그리고 중국의 독일의 안보에 대한 위협은 모스크바처럼 노골적이기보다는 완만하지만 그만큼 결코 덜 현실적이거나 덜 우려스럽지 않다.

그러나 주사위는 던져졌다. 독일 외무장관 안날레나 베어보크(Annalena Baerbock)는 지난주 “유럽의 평화와 자유에는 가격표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번영보다 자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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