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시사

콜롬비아 첫 흑인 부통령 프란시아 마르케스의 인생 역정: 싱글맘 가사도우미에서 환경운동가 그리고 부통령까지

Zigzag 2022. 6. 21.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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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주: 6월 19일 치러진 콜롬비아 대선 2차 결선투표에서 M-19(Movimiento 19 de Abril, 419 운동)이라는 도시 게릴라 출신의 구스타보 페트로(Gustavo Petro)가 50.4%의 득표율로 콜롬비아 역사상 최초의 좌파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의 기록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 중요할 수도 있는 새로운 정치인이 그의 당선과 함께 등장했다. 바로 페트로의 부통령 러닝 메이트인 프란시아 마르케스다. 마르케스는 가사도우미로 일했던 싱글맘이자 환경운동가 출신으로 콜롬비아 최초의 흑인 부통령이다. 환경운동의 노벨상인 골드만 상을 수상한 그녀는 선거 캠페인 동안 라틴아메리카에서 두 번째로 많은 아프리카계 인구를 가졌지만 빈곤에 시달리는 아프로-콜롬비아 정체성을 확실히 하면서 환경과 평등을 선거의 주요 어젠다로 만들었다. 이제 도전자의 위치에서 권력의 중심에 들어선 만큼 그녀의 도전은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글은 France 24의  6월 20일 자 기사 Francia Marquez: From maid to Colombia’s first Black vice president의 번역으로 마르케스의 고된 인생 역정과 활동 과정 그리고 정치 입문과정과 포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프란시아 마르케스: 가사도우미에서 콜롬비아의 첫 흑인 부통령까지

콜롬비아의 새로운 부통령이자 첫 흑인 부통령인 인권운동가 출신 프란시아 마르케스(2022년 3월 25일). 사진: Juan Barreto, AFP

Cyrielle CABOT

콜롬비아인들이 일요일에 사상 첫 좌파 대통령을 선출했을 때 콜롬비아 최초의 흑인 부통령도 선출했습니다. 프란시아 마르케스(Francia Marquez)는 열렬한 환경 운동가로 국제 광산 이익에 도전하기 전에 가사도우미로 일한 싱글맘이다. 그녀의 승리는 사회적 불평등에 시달리고 역사적으로 보수 엘리트가 지배하는 나라에서 전환점을 표시한다.

캠페인 과정에서 그녀는 활기차고 당차게 눈부셨다. 큰 보석과 함께 밝은 색상의 아프로-콜롬비아(Afro-Colombian) 의상을 입은 프란시아 마르케스는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현상 유지에 도전하며 더 밝은 미래를 제안했다.

40세의 후보자는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들고 "저항에서 권력으로 이동할 때입니다."라고 외쳤다.

일요일, 콜롬비아인들은 전직 게릴라였던 구스타보 페트로(Gustavo Petro)가 보수와 온건파가 장기 집권한 남미에서 결선투표에서 부동산 백만장자를 꺾었을 때 사상 첫 좌파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마르케스를 러닝 메이트로 하여 페트로는 역사적으로 인종차별의 존재를 부정한 국가에서 정치적인 단절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단절을 시사했다.

더욱이 마르케스는 밝게 인쇄된 패브릭과 아프로-콜롬비아의 뿌리를 주장과 함께 압도적으로 혼혈 또는 메스티조로 식별되는 국가에서 인종주의를 숨기려는 콜롬비아의 유럽화 된 엘리트주의를 주목받게 하여  인종주의에 대한 토론의 포문을 열었다.

젊은 흑인 싱글맘(single mother)*에서 국가 부통령이 되기까지 마르케스의 여정은 역경에 맞서는 투지의 특별한 이야기이다.

* 역자 주: 기존에는 single mother를 '미혼모'를 역어로 썼으나 이 언어가 주는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최근에는 '비혼모'를 역어로 쓰곤 한다. 그러나 미혼이든 비혼이든 혼인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대체어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는 부분적인 차이만 존재할 뿐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따라서 여기서는 적절치 않은 역어를 쓰는 대신 차라리 싱글맘이라는 말로 single mother를 번역했다.

아프로-콜롬비아 인권 운동가

마르케스의 과거에는 그녀가 정치 경력을 시작할 것이라고 암시할 만한 것이 없다. 1981년 콜롬비아 남서부 카우카 지역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홀로 성장했다. 16세에 첫 아이를 임신한 그녀는 처음에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집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금광에서 일해야 했고 그다음에는 가사도우미로 고용되었다.

그녀의 환경 운동은 1996년 15세 때 일찍 시작되었다. 마르케스는 한 다국적 기업이 지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이 지역의 주요 강인 오베하(Ovejas)에 댐을 확장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7세기부터 강둑에 살면서 아프리카-콜롬비아 공동체는 몇 세대에 걸쳐 주요 수입원인 농업과 영세 채굴을 해왔다.

환경을 위한 500km 도보

오베하 강 캠페인은 아프로-콜롬비아 공동체의 권리를 보호하고 그들의 땅을 보존하기 위한 마르케스의 오랜 투쟁의 시작을 알렸다. 지난 20년 동안 그녀는 오베하 강 주변 지역을 착취하고 때로는 사람들을 강제로 떠나게 하는 다국적 기업에 맞서 가차 없이 싸워왔다.

마르케스는 2014년이 되어서야 널리 알려졌다. 당시 그녀는 강을 따라 금을 캐고, 무엇보다 금과 물을 분리하는 요소로 물을 오염시키고 생물다양성을 파괴하는 수은을 많이 사용하는 불법 광부들을 표적으로 삼고 있었다. 이에 항의하여 마르케스는 80명의 여성이 카우카(Cauca)에서 보고타까지 10일 동안 500km를 걸어가는 시위 "터번 행진"(turban march)을 조직했다. 이 그룹은 거의 20일 동안 내무부 앞에서 시위를 했다. 정부가 오베하 주변의 모든 불법 농장을 파괴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결국 활동가들이 승리했다.

이후 마르케스는 법학 학위를 취득했으며 수많은 포럼을 개최하고 대학에서 강의했으며 정치인 및 NGO 앞에서 연설을 했다. 그녀는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2018년 환경에 대한 노벨상과 동등한 골드만상을 수상했다. 이듬해 그녀는 BBC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나는 강, 숲, 황야의 파괴를 멈추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입니다. 나는 언젠가 인간이 죽음의 경제 모델을 변화시켜 생명을 보장하는 모델을 만들 것을 꿈꾸는 사람입니다."라고 그녀가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선언했다.

'우리 정부는 국민에게 등을 돌렸다'

마르케스는 마침내 2020년에 정치에 입문하기로 결정했고 그녀의 야망을 숨기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는 이 나라의 후보가 되고 싶습니다. 나는 인구가 자유롭고 존엄하기를 원합니다. 나는 우리 영토가 삶의 장소가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트윗했다. 같은 해 그녀는 "우리가 존재하기에 나는 존재"("Soy porque somos")라는 운동을 시작했다. 2022년 3월에 그녀는 좌익의 "역사적 조약" 연립의 대통령 예비선거에 출마했다. 마르케스는 3위에 올라 모두를 놀라게 했고 페트로는 그녀를 러닝 메이트로 선택했다.

그녀는 아프로-콜롬비아 땅을 보호하기 위한 투쟁을 그녀의 정치 캠페인의 중심 부분으로 삼았고 끊임없이 그녀의 뿌리를 되새겼다. "저는 아프리카계 콜롬비아인 여성으로 16세에 첫 아이를 낳고 집에서 일하며 생활비를 지불하는 두 아이의 싱글맘입니다. 하지만 저는 수상 경력이 있는 환경 운동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콜롬비아 최초의 흑인 부통령이 될 수 있는 변호사"라고 그녀는 수많은 선거 유세에서 선언했다.

그녀는 "우리 정부는 국민과 정의와 평화에 등을 돌렸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들이 일을 제대로 했다면 나는 여기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파리 제7 대학(University of Paris-Diderot)의 콜롬비아 담당 부연구원이자 전문가인 올가 루시아 곤잘레스(Olga Lucia Gonzalez)는 "인구 내에서 특히 코로나19 대유행과 관련된 정치계급에 대한 많은 대중의 분노가 최근 몇 달간 존재해왔습니다"라고 설명했다. "프란시아 마르케스는 전통적인 정치 엘리트가 아니라 시민 사회에서 왔습니다. 이것은 그녀가 계속 활용하고 있는 논점이며, 그녀에게 크게 유리합니다."

곤잘레스에 따르면 마르케스의 가장 큰 공헌은 간과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는 흑인, 아프로-콜롬비아인 여성이며 식민주의, 성차별, 인종차별과의 관계와 같이 지금까지 완전히 잊혀진 문제를 제기합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마르케스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유일한 아프리카계 콜롬비아인 후보가 아니었다. 케터린 이바구앤(Caterine Ibargüen)과 제나이다 마르티네스(Zenaida Martinez)도 2022년 대선에 출마했다. 그들은 모두 흑인 여성이 직면한 이중 차별에 맞서 싸우고 싶다고 말했다. 이러한 차별은 콜롬비아의 정치 생활에 반영된다. 퇴임하는 정부에는 흑인 여성이 한 명, 의회에는 두 명밖에 없었다.

이것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두 번째로 많은 아프리카계 인구를 가진 국가에서 일어나는 문제이다. 공식 인구 조사 데이터에 따르면 아프리카계 콜롬비아인은 콜롬비아 인구의 6.2% 이상을 차지한다고 하지만 인구학자들은 이것이 극도로 낮게 평가된 수치라고 말한다. 아프리카계 콜롬비아인과 원주민 공동체는 불균형적인 수준의 빈곤, 폭력 및 토지 몰수에 계속해서 직면하고 있다. 정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인구의 20퍼센트 빈곤층에 비해, 아프로-콜롬비아 인구의 약 31퍼센트가 빈곤하게 살고 있다. 

2022년 대선에서 페트로의 승리는 마르케스를 상징적 부통령 후보에서 실제 정치권력의 최고 권력자로 급부상시켰다. 그녀의 가장 큰 도전은 아직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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