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쌀 한가마 가격 변화: 1920년~1964년까지 쌀값 변화표

Zigzag 2021. 5. 1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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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과 정치의 장으로서 쌀값

가끔 옛날 어떤 물건의 가격을 책이나 자료에서 보거나 들을 때 그 물건의 가치가 궁금한 사람들은 당시 쌀값을 찾아보곤 한다. 금이라는 좀 더 안정된 가치의 대상이 존재함에도 사람들이 쌀값을 찾는 이유는 쌀이 삼시 세끼와 일상을 지탱하는 삶의 먹거리며, 금이 가진 그 어떤 추상의 건조한 냄새를 거두어 낸 생생한 생활의 곡물이기 때문이다.

쌀, 특히 백미 혹은 흰쌀은 단순한 곡물이 아니라 하나의 끈적한 이념이며, 치열한 정치의 장이었다. "흰 쌀밥에 고깃국"은 남북한을 통틀어 일종의 이상적인 삶의 지표였다. 또한, 잡곡 등의 혼식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쌀은 주식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쌀값은 언론의 물가표에서 계속 제일 앞자리를 차지해왔다. 나아가 '쌀값'은 식민당국은 물론 해방 이후 당국자들에게도 민심의 풍향계와 같았으며, 산업화가 본격화되어 이촌 향도 현상이 가속화된 1960년대 중반 이전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농민의 삶과 직결된 것이었다. 1970년대 이전까지 쌀값은 마치 21세기의 부동산 가격과 같은 위치를 차지했다. 너무 높아도 안 되고, 지나치게 안정시켜도 안 되는 매우 조심스레 다루어야 하는 살아있는 생명체이자, 끊임없는 투쟁의 장이었다. 따라서 어떤 해의 쌀값이 그 시대의 물가를 가늠하는 표준은 될 수 없을지 몰라도 그 시대를 읽는 아마도 가장 중요한 코드임은 분명하다. 역사의 쌀값을 읽는 일은 당대의 구체적인 물건들의 어림 대중을 짚어내는 일이며, 농민과 기후, 농업과 정치, 노동력의 재생산을 둘러싼 노동과 자본, 국가, 민생안정을 둘러싼 정치 세력들 간의 협상과 투쟁의 흔적을 찾는 일이다.

식민과 제국, 자본과 무역, 보관과 물류의 단위 가마(叺, かま)와 쌀값 읽어 들이기

쌀에 끈적한 이념 묻어나고, 쌀값에 치열한 정치의 김이 뿜어져 나오기에 쌀값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듯 고정된 가격이 아니다. 때론 하루 이틀 만에 가격이 순식간에 치솟거나 곤두박질 치곤 한다. 그럴 때는 금값이 오르내릴 때 들리는 한가로운 한숨이나 탄성 대신 아우성이 들린다. 하지만 쌀값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비교할 수 있는 비교 자료 자체가 흔치 않아 끊임없이 살아 있으면서도 동시에 시대와 삶을 읽는 안정된 코드로서 쌀값을 제시하는 자료는 별로 없었다.

당대의 물가를 추론할 수 있는 쌀값을 찾기는 쉽지 않다. 우선 쌀은 경기미, 영남미, 호남미 등 산지와 품종, 그리고 특등품, 일등품, 합격품 등 등급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수확량의 차이, 즉 풍작이냐 흉작이냐에 따라 쌀값은 요동친다. 서울과 지방의 물가 또한 달라서 쌀값은 당대의 가치를 짐작하기 위한 표준으로 쓰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도 1905년 도량형법이 도입되어 길이, 무게, 부피의 도량이 통일되었지만, 킬로(kg)에서는 여전히 압제와 강압의 냄새가 풍겼고, 지방은 같은 단위라도 거기에 서로 다른 무게를 담았다. 되/승, 말/두 등의 단위는 지방마다 다른 방식을 사용했고, 식민지와 함께 일본이 들어온 ‘가마’라는 단위는 애매하기 짝이 없었다.

한 가마는 보통 80kg으로 환산되지만, 곡물에 따라 다르며, 일상생활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추상의 단위다. 하지만 그 추상의 단위는 일상의 관념을 지배하여, 사람들은 일상과 거리가 먼 가마라는 추상에 구체적인 쌀을 담아 당대의 삶을 읽어 내려 한다. 한 가마는 보통 1입(叺)이라 불리는데, 얼핏 우리 말처럼 들리는 가마니는 이 叺의 일본어 가마서かます에서 온 것이다. 양곡을 담아 보관하고, 일본으로 수출하고, 만주로 내가기 좋은 가마니라는 말은 식민과 제국, 자본과 무역, 보관과 물류를 모두 안고 있는 볏짚으로 만든 구체적인 물건이자, 추상적인 단위이며, 삶에 직결되어 있지만, 일상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이상한 단위이다.

쌀의 출산지와 품종, 그리고 쌀의 단위를 측정하는 내생적 어려움 외에도, 쌀값을 표준으로 삼기에 어려운 외적이 요인들도 존재한다. 가장 전형적인 것이 춘궁기나 추수철과 같은 계절적 요인, 추석과 설 등 명절에 따른 가격 변화다. 이러한 변화는 쌀값을 그 당대 물가의 기준으로 삼는 것에 주의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쌀값을 보면서 식민지 시대의 쌀수출과 공출, 산미증산계획과 같은 역사적 요인에 따른 가격변화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연도별, 분기별로 요동치는 가격의 맥락을 잡기보다는 그 맥락 속에 파묻힐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했듯이 그것이 가진 이념과 정치로 인해 쌀값은 중요한 지표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쌀값에 대한 그간 정리는 간헐적이었다. 그나마 식민시대의 경성상업회의소와 조선은행의 쌀값에 대한 자료가 일관성이 있지만, 기록연도가 1935년부터 출발해 그 이전 시점은 알 수 없다. 또한 이 물가수집기관들 간의 수집 방법과 시기 또한 달라 별도의 보충자료가 필요하다. 흔히들 당대 소설이나 수필, 회상에서 드러난 쌀값으로 당대의 물가를 측정하기도 하지만 이 자료들은 최소한의 일반화도 하기 힘든 개인적이고 지엽적인 자료들이 대부분이다. 아래의 자료는 위의 경성상업회의소와 조선은행, 그리고 한국은행의 자료와 함께 신문 기사들을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다.

도표 읽기에 앞서, 주의 사항

이 도표는 그 한계를 인식하면 오히려 더 유용할 수 있고, 그 한계를 망각하면 자칫 오용될 수 있다. 신문 기사들은 소매 물가에 민감하기에 어용 쌀값보다 일상 쌀값에 가깝다. 그렇기에 변동 폭이 크며, 서울을 중심으로 한 쌀값의 지역적 편향을 안고 있을 수 있다. 그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자료를 찾을 수 있는 한 가급적 복수의 소스와 비교할 수 있는 물품의 가격을 함께 제시하려고 하였지만, 여전히 편향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러한 편향을 줄이기 위해 가능한 한 비교 가능한 물품들, 예컨대 계란, 배추, 무, 멸치, 광목, 김, 금 등의 가격을 비고에 넣었다.

이 도표는 1920년부터 1964년까지 쌀값 자료이다. 1920년을 시점으로 잡은 것은 1934년까지 계속된 산미증식계획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또한 1920년은 신문자료가 디지털화된 조선과 동아가 창간된 시점이라 자료검색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1964년을 마지막 연도를 잡은 이유는 1965년부터는 한국은행의 화폐가치 계산기를 통해 물가지수를 알 수 있기 때문에 그 이전 연도까지로 데이터를 한정했다. 문제는 1940년 8월부터 1945년 말까지 조선과 동아가 폐간되었기 때문에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많지 않다. 경성상업회의소 자료도 1943년과 1944년 자료가 없기 때문에 다른 신문자료나 보도를 통해 추론할 수밖에 없었다.

이 도표에서 기본 단위가 되는 쌀 1가마 혹은 1입은 80kg, 1석/섬은 2가마, 1두/말은 16kg으로 5두/말은 1가마, 소두 1말은 8kg으로 소두 10말이 1가마, 1되/승은 5되/승으로 소두 1말 그리고 50되/승으로 1가마가 된다. 식민치하에서 언론은 1두를 16kg의 대두 혹은 소 1두 8kg로 쓰곤 했는데, 1두가 대두인지 소두인지 불분명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 경우는 이전 연도나 주변 시기에 대두 혹은 소두 가격을 참조하여 1두의 단위를 특정하였다. 신문 기사는 가마로 쌀값을 표시한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괄호 안에 원래 기사의 단위를 적시하였다. 가령 기사에 쌀 1승의 가격을 50전으로 표시했을 경우 50을 곱하여 1가마에 25환으로 표시하고 그 옆에 괄호로 '(1승 50전)'의 원래 기사 가격을 적시하였다. 쌀의 가격은 백미 소매가이며, 특등이나 일등 혹은 3등이나 합격등과 같이 등급이 있는 경우는 가격 옆의 괄호에 등급을 표시했다. 해당 가격에 경성/서울, 인천과 같이 지역을 특정하지 않은 경우는 경성을 표준으로 삼는 전국 물가일 가능성이 있다. 식민시대의 언론은 일본 중심의 세계(관) 속에 존재하는 생태계이기 때문에 쌀값의 경우도 동경, 봉천, 경성, 대만으로 따로 적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식민지 시대 쌀값에서 지역을 언급하지 않는 경우는 경성 백미 가격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1950년~1953년 한국전쟁 당시 쌀값은 서울보다는 부산 중심의 가격을 사용했다는 것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 각 열의 번호들은 같은 행의 동일한 번호와 같은 소스에서 나온 것들이다. 가령 '쌀 1가마(80kg) 가격' 열의 1번 쌀값, 그 옆 행들의 1번 출처 언론사, 1번 날짜, 1번 비고는 모두 같은 소스의 자료들이다.

* 아래 도표는 계속 업데이트가 될 예정이다. 특히 쌀값과 비교 가능한 다른 물품들의 가격을 추가할 예정이며, 시간이 나면 1920년 이전의 쌀값들도 추가하게 될 것이다.

1920년~1939년 쌀값
1931년~1940년 쌀값
1941년~1950년 쌀값
1951년~1960년 쌀값
1961년~1964년 쌀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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