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3일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가 향년 88세로 생을 마쳤다. 2차 대전의 경험, 장애아를 둔 아버지의 육아, 일본왕을 중심으로 한 일본 체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작품에 담았던 그는 일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였던 '설국'의 저자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 康成)의 노벨상 수상 연설 '아름다운 일본의 나'(美しい日本の私)를 부정하는 '모호한 일본의 나'(あいまいな日本の私)라는 제목으로 일본을 비판했다. 반전평화운동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참여했던 그는 일본 평화헌법 9조 수정을 반대했으며, 독재정권의 탄압을 받았던 한국의 작가와 지식인들을 지지하기도 했다. 이 글은 Le Monde Diplomatique 1998년 12월 호에 게재한 오에의 기고 Thoughts on new technology: The Internet and me의 번역으로 오에의 서거와 함께 그를 기리기 위해 Le Monde Diplomatique 인터넷 영문판 2023년 3월호에 다시 게재되었다. 이 글에서 겐자부로는 신구미디어 사이의 피드백 루프를 구축과 신구 미디어의 문체 혹은 스타일의 상호침투에 대해 논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언어의 스타일은 정신세계의 변화를 나타내는 가장 확실한 지표인데, 구어체와 문어체의 교류를 넘어 일상의 언어와 문학의 언어가 소통하는 새로운 미디어의 시대는 저항과 소통 그리고 동시에 포섭의 가능성을 모두 안고 있는 지대이다.
3월 3일 일본의 위대한 작가 오에 겐자부로(Ōe Kenzaburō, 일본어 명은 大江健三郎 - 역자 주)가 세상을 떠났다. 1935년에 태어난 그는 6세에서 10세 사이의 어린 시절 전쟁을 경험했고, 성인이 되어 장애가 있는 아들을 키우며 이러한 경험을 '히로시마 노트'(Hiroshima Notes, 1963, 일본어 원제는 'ヒロシマ・ノート' - 역자 주)부터 '우리들의 광기를 참고 견딜 길을 가르쳐 달라'(Teach Us to Outgrow Our Madness, 1982, 일본어 원제는 'われらの狂気を生き延びる道を教えよ' - 역자 주), 'M/T와 숲의 기적에 대한 이야기'(M/T and the Narrative About the Marvels of the Forest, 1986, 일본어 원제는 'M/Tと森のフシギの物語' - 역자 주)에 이르기까지 그의 소설에 담았다. 1994년, 오에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을 때, 그는 '모호한 일본의 나'(Japan, the Ambiguous, and Mysel, 일본어 원제는 'あいまいな日本の私' - 역자 주)라는 제목의 도발적인 연설을 했다. 그는 진보적인 투쟁에 동참했고, 국가 민족주의에 반대하는 선언문을 발표했으며, 소비주의와 신기술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1998년 오에는 텍스트와 언어를 이해하는 우리의 방식을 바꿀 새로운 매체인 인터넷에 대한 그의 기대, 인상, 질문을 분명히 밝혔다.
신기술에 대한 생각
인터넷과 나
최근 몇 년 동안 이메일 사용이 경이적으로 증가했다. 이것은 편지의 형태로 짧은 교류와 대화를 장려한다. 그리고 그것은 이용 가능한 정보의 양을 엄청나게 증가시킨다. 그것은 매혹적이면서도 불안하다. 매혹적인 것은 교육과 훈련을 위한 위대한 변화가 손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불안한 것은 비인간화되고 조작에 노출될 수 있는 세상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두 명의 작가(겐자부로와 함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기고한 또 다른 노벨 문학상 작가는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José Saramago)이다. 그는 1998년 12월 호에 '의사소통에 대하여'[On Communication]라는 주제로 기고했다 - 역자 주)는 새로운 기술과 그것의 문제점을 성찰하고 어떻게 하면 너무 구식이 되지 않으면서 버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Kenzaburo Oe
일본의 새로운 지식인, 특히 젊은 엘리트들은 새로운 기술에 매우 잘 적응하고 있다. 이 집단에서 내 이름은 종종 새로운 통신 기술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일부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후진성을 보여주는 예로 인용된다.(비록 그들은 일부 사람들이 나보다 더 나쁘다는 것을 인정할 정도로 친절하다)
내가 4년 전에 노벨 문학상을 받기 전에, 내가 가진 것은 구식 전화기뿐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접근"(access)에 대한 요청의 유입을 처리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팩스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매우 매료되었다. 특히 그것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외국인 작가들과 팩스를 주고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팩스를 주고받을 수 있고, 원하는 때에 응답할 수 있는 자유로운 능력은 저에게 예상치 못한 스릴을 주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소련이 붕괴된 후 나는 하루에 러시아 작가와 네다섯 개의 팩스를 주고받았다. 우리는 일본과 러시아의 문화적 맥락의 차이에 대해 일련의 신랄한 관찰을 서로에게 보냈다(그것은 우리가 편지에서 꺼낸 적이 없었던 주제였다). 그리고 비록 우리의 대화가 약간 가열되고 불쾌하게 변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몇 가지 프로젝트를 함께 인내하고 심지어 시작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팩스로 이루어졌다.
여기 두 번째 예가 있다. 어느 날 저녁 팔레스타인 작가 에드워드 W. 사이드(Edward W. Said, '오리엔탈리즘'의 저자 - 역자 주)(1)로부터 뉴욕에서 팩스를 받았다. 그 당시 나는 영화 제작자이자 지적이고 예술적인 문제에 대해 가장 좋아하고 완벽하고 상호 이해하는 사람인 처남(1997년 자살한 일본 코미디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이타미 주조[伊丹 十三]를 가리킨다 - 역자 주)의 자살로 인해에 화가 나 있었다. 나는 그날 밤의 구원의 감각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생명의 안전벨트를 찾는 것처럼 느꼈다.
이러한 경험들로 인해 나는 이 기술적인 돌파구를 통해 모든 국적의 작가들이 팩스를 통해 참여할 수 있는 국제 원탁회의를 설립하기를 희망한다고 공개적으로 진술하게 되었다. 물론, 나는 젊은 지식인들의 웃음거리였다. 이메일과 인터넷의 시대에 어떻게 그런 구식 생각을 가질 수 있었을까? 그것은 나 같은 소설가의 전형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지금 나를 비웃는 사람들에게 답장하고 있다. 나는 팩스로 두 명 이상의 사람들 사이의 대화가 책 형태로 출판된 적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서점에서 많은 검색을 해왔다. 헛수고였다. 일본인들은 편집된 외국 서신들을 번역할 준비가 기꺼이 되어 있다. 그러나 두 유명 인사 사이의 팩스 교환은 출판되지 않았다. 게르솜 숄렘(Gershom Scholem, 독일 태생 이스라엘 철학자이며 유대인 신비주의인 카발라 현대 연구 창시자이다 - 역자 주)(2)과 발터 벤자민(Walter Benjamin, 유대계 독일 문학평론가이자 철학자로 현대 문화비평의 많은 필독서를 남겼으며 나치를 피해 망명 중 자살했다 - 역자 주)(3)의 서신에서처럼, 한 사람은 해외에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이스라엘에 있는 두 명의 유대인 지식인 사이에 그 나라의 위기에 대해 팩스 교환이 있었다고 가정해 보자. 나는 그런 교류를 책 형태로 읽고 싶다.
그러한 책이 팩스 시대에 출판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메일/인터넷 시대에 출판될 가능성이 훨씬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실현하기 쉬운 이니셔티브로 시작할 수 있으며 두 명 또는 여러 명의 지식인 간의 팩스 교환으로 책을 만드는 아이디어는 여전히 가치 있는 사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그런 책이 실제로 출판되었다고 상상해 보자. 이전 미디어 형식을 더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만족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인터넷에 뛰어든 사람들은 그러한 프로젝트에서 어떤 건설적인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 "아니요!"라고 말하기 전에 소설가로서의 경험에서 나온 몇 가지 아이디어를 들어보시기 바란다.
첫째, 뉴미디어의 적절한 발전을 위해서는 그들과 구형 미디어 사이에 일종의 피드백 루프를 구축하는 것이 유용할 것으로 생각한다. 즉, 부분적일지라도 인터넷상의 인간의 표현과 책으로 대표되는 구 미디어 형태와의 연계를 확립하기 위해 인터넷상의 이메일로 이루어지는 교류를 도서 형태로 함께 모아 그 결과를 관찰하는 것이다. 이것은 시작할 가치가 있는 사업이 아닐까?
그런 다음, 이메일 메시지를 책의 형태로 모으면, 이 새로운 유형의 의사소통의 "스타일"을 정확하게 조사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스타일(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의)의 개념이 뉴미디어의 세계에서 진정한 의미를 잃었는가? 새로운 미디어가 21세기를 살아갈 인간의 스타일을 창조하는 힘이 될 것인가?
많은 최근의 연구 프로젝트들은 세계의 소수 언어들 중 일부가 인터넷에 있는 것처럼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은 기뻐할 몇 가지 이유이다. 한국어가 정확히 소수 언어는 아니지만 한국어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다. 한글이 한반도의 두 국가, 일본, 미국, 그리고 심지어 유럽 사이 인터넷에서 널리 유포될 수 있었다고 상상해 보자. 그것은 분명 동아시아의 국제 관계에서 긍정적인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현재, 인터넷을 통한 세계와의 교류에서, 일본인들은 종종 영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나는 특히 일본인들이 이메일을 통해 영어로 자신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스타일에 관심을 가져왔다. 현재, 이것은 일본어를 간단한 번역 프로그램으로 통과하는 것과 같은 다소 거친 일본어에서 영어로의 변환을 포함할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 덕분에 일본인들이 영어의 언어 세계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할 때, 그리고 이 참여의 규모가 증가할 때, 일본인들에게 맞는 영어 스타일이 빛을 보게 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다른 면에서, 이 스타일이 구 미디어에서 표현될 때 일본어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책에 나오는 일본어의 스타일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는가? 이것은 소설가로서 나의 흥미를 끌었다. 언어 스타일의 급격한 변화는 일본인들의 정신세계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지표가 되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 현대 언어학 연구에서(이 분야에 대한 나의 다소 전문화된 지식은 1960년대에 끝났기 때문에 "현대"는 아마도 적절한 단어가 아닌 것 같다) "스타일"에 대한 질문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거의 없다. 문학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특정 저자의 스타일에 대한 단행본에 만족하지만 스타일 문제에 대한 보편적인 규칙을 확립하는 데는 어느 정도 포기했다는 느낌이 더 크다. 따라서 우리는 일본인들이 영어로 글을 쓸 때 그들의 스타일의 특수성에 대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연구자가 없다. 만약 그것이 내 동포들이 사용하는 영어의 음성학적 특성에 대한 질문이라면, 상당한 수의 매개변수가 즉시 명확해지기 위해 영어로 몇 개의 단어를 발음하기만 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인터넷의 결과로 일본인들이 사용하는 영어의 스타일이 풍부해진다면, 문학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텍스트에도 흥미로운 스타일의 발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문학은 이미 구어와 문어의 통일과 함께 근대 초기에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나는 인터넷에서 영어 "스타일리스트"의 궁극적인 발견이 우리가 좋든 싫든 간에 문학이 일본어로 쓰여진 스타일을 수정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 언어는 빠른 속도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주된 천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자 정보의 언어와 소설가들이 그들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 사이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나 자신도 과거에 문학에서 나타나는 단어들과 일상 언어에서 나타나는 단어들 사이의 언어적 표현의 차이에 대해 말하지 않았는가? 그 당시에 나는 러시아 형식주의(formalism, 1910년대에서 30년대 사이에 러시아에서 성행했던 한 문예평론 유파로 문학작품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언어표현의 방법과 구조면에서의 작품해명을 목표로 하였다. 후에 많은 브레히트와 같은 작가, 바흐친과 같은 문예비평가 그리고 구조주의 및 포스트구조주의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 역자 주)의 언어학적 이론을 사용했다. 그리고 소련은 사라졌지만, 1920년대와 1930년대의 뛰어난 지적 운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적으로 관련이 있으며 20세기의 살아있는 유산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확실히 러시아 형식주의에 해당한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오스트라니니(ostraninie, "타자를 과장하기"[rendering other], '오스트라니니'는 비친숙화 혹은 소외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 역자 주)라고 부르는 과정을 통해 문학적 글쓰기에서 사용되는 단어들이 의미의 전달을 늦추고 지속 시간을 더 길게 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 과정은 여러분이 그것들을 만졌을 때 물체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저항을 단어들에게 주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분명히, 나는 인터넷상의 단어들이 의미와 정보의 전달을 늦추거나 복잡하게 만드는 이런 종류의 기능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소설이나 문학에 대한 나의 비전은 일반적으로 이 오스트라니니 이론에 기초하고 있으며, 의도적으로 의미 전달을 복잡하게 한다는 것은 인정한다. 이것이 많은 젊은 지식인들이 아마도 내가 새로운 인터넷 세대에 의해 쓰레기통에 버려진 소설가들 중 첫 번째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나는 구 미디어의 신봉자이고 이메일로 전달되는 메시지조차도 문학에서 전달되는 단어와 같은 방식으로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관찰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칠 수 없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이브마리 베르세 (Yves Marie Bercé)는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났으며, 내가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면 꼭 연락하고 싶은 사람들 중 한 명이다. 그는 1798년 여름 영국인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가 천연두 치료법을 발견하고 어떻게 유럽으로 퍼졌는지를 이야기하는 르 쇼드롱 엘 라 랑세(Le chaudron et la lancette, 원제는 'Le chaudron et la lancette: Croyances populaires et medecine preventive, 1798-1830'[솥과 란세트: 대중적인 믿음과 예방 의학, 1798-1830년] - 역자 주) (4)라는 제목의 책의 저자이다.
이 책은 나베 트 란세토(Nabe to ransetto, 일본어 전체 책 제목은 '鍋とランセット : 民間信仰と予防医学 : 1798-1830' - 역자 주)라는 제목으로 일본어로 번역되어 신효론(Shinhyôron, 일본어로 新評論 출판사 - 역자 주)에서 출판되었다. 인용하자면, "그 뉴스는 들불처럼 유럽 전역에 퍼졌다. 그러나, 이 때는 대륙이 전쟁 상태에 있었던 때였다. 바다는 해적들의 손에 있었고, 도로는 군대에 의해 차단되었다. 이 모든 장애에도 불구하고, 천연두 백신은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몇 년 안에, 그리고 모든 나라에서, 대학의 교수들은 그 발견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적 아이디어의 주요 흐름에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개업의 일반 의사들도 알게 되었다. 백신은 해당 지역에서 사용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높은 효율성을 제공했다.”
나는 이브 마리 베르세의 글의 마지막 문장을 가지고 일본에서 일어난 일과 비교하고 싶다. 오타마가이케(Otamagaike)에 천연두 치료를 위한 진료소가 에도시대에 서양 의학을 시술하는 의사에 의해 개설되었다. 그 날짜는 안세이(Ansei, 일본어로는 安政이며 일본왕 고메이 통치 치하의 1854년 ~ 1859년을 지칭한다 - 역자 주) 5년, 다시 말해 1858년이다. 천연두에 대한 몇 가지 언급이 바로 그 전후에 있다. 따라서 천연두 백신에 대한 정보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유럽에서 외부 세계에 폐쇄된 일본에 도착하는 데 60년이 걸렸다. 이 일이 일어나려면 얼마나 많은 인적 노력이 필요했을까? 이것을 좀 더 일반적인 용어로 생각해 보면, 정보가 표현의 수단으로 매우 많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스타일"은 명백하다. 이것은 이브 마리 베르세가 수행한 프로젝트이다. 내가 "스타일"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양한 각도에서 정의될 수 있다. 관련 당사자는 누구인가? 그들의 활동은 무엇인가? 그들은 우리에게 그들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뉴미디어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연구자들에게 묻고 싶다. 나는 그들이 새로운 미디어 덕분에(인터넷과 이메일의 사용 덕분에) 전쟁의 비극에 인간적인 반응을 불러오기 위해 연대의 새로운 네트워크를 개발한 사람들을 인터뷰하기를 바란다. 예를 들어, 지뢰 반대 운동 동안 인터넷을 통해 전달된 정보의 "스타일"은 무엇이었는가? 내가 이 캠페인에 의해 달성된 인상적인 결과를 생각할 때, 이 정보의 전송(전 세계 구석구석에 도달하는 데 1초 이상 걸리지 않음)을 일본에 도달하는 데 60년이 걸린 것과 비교하는 것은 전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은 소설가로서 내가 천직을 걸고 전하고 싶은 메시지이다.
마리우마 마사오(Maryuma Masao, 일본한자로는 丸山眞男로 표기되며 일본 정치사상사의 권위자이다 - 역자 주)는 소설가는 아주 작은 것부터 많은 것을 말하는 사람이라고 어딘가에 썼다. 그러므로 나는 내 주장의 핵심에 도달하고자 한다.
인터넷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국가, 국제 관계, 심지어 지구 자체가 한 나라의 언어에 의해 짓밟히는 시대에 인터넷은 사람들의 저항을 위한 통로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말들은 종종 지배적인 집단화에서 파생된다. 그것들은 그 지배의 의미와 일치한다. 그리고 그 수용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전체주의적 언어에 대한 선견지명을 가졌던 '1984'의 작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을 떠올리게 한다. 영국 방송에 대한 경험의 결과로, 그는 초급 영어를 사용하여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니다. 그래서 나도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일본인들이 인터넷에서 쓰는 영어의 "스타일"로 말이다. 왜냐하면 내 동포들은 종종 기본적인 영어에 가까운 문구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그들만의 영어 브랜드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그것을 "일본화"함으로써, 그들은 다른 스타일을 강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새로운 지배에 저항할 것이다.
(1) See, for example, Edward W. Said, “Israel-Palestine: a third way”, Le Monde diplomatique English Internet edition and Guardian Weekly supplement, September 1998.
(2) Gershom Scholem (Berlin 1897-Jerusalem 1982) was an Israeli philologist, historian and theologian. Among other things he wrote Les Grands courants de la mystique Juive (1941), Les Origines de la Kabbale (1966) and Le Messianisme juif (1974).
(3) Walter Benjamin (1892-1940), German essayist and member of the Frankfurt School. Author of, among other things, The Work of Art in the Age of Mechanical reproduction (1936) and Paris, Capital of the Nineteenth Century (1939). Their correspondance is published by Harvard University Press, 1992.
(4) Yves-Marie Bercé, Le Chaudron et la Lancette. Croyances populaires et médecine préventive, 1798-1830, Presses de la Renaissance, Paris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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