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 《인 더 하이츠》(In the Heights) 스토리 일부를 포함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미국 인종과 계급의 렌즈로 재해석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가 뉴욕을 배경으로 하층민들의 삶을 조명한 것처럼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화한 《인 더 하이츠》(In the Heights) 역시 '리틀 도미니카 공화국'이라 불리는 뉴욕 워싱턴 하이츠에서 고된 일상을 살아가는 라틴계 미국 이민자들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2016년 최우수 작품상을 포함해 토니상 11개 부문을 휩쓴 《해밀턴》(Hamilton)의 곡과 가사, 각본을 쓴 린 마누엘 미란다(Lin-Manuel Miranda)의 2008년 작 《인 더 하이츠》(In the Heights)는 《스텝 업 2》와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존 추(Jon M. Chu)가 감독을 맡고, 원래 뮤지컬의 극본을 썼던 퀴아라 알레그리아 휴즈(Quiara Alegr a Hudes)가 각본을 담당했다.
다양한 플롯을 잇는 워싱턴 하이츠라는 장소와 이민자 캐릭터
영화 《인 더 하이츠》는 단일한 메인 플롯이 없다. 여러 개의 메인 플롯과 서브플롯이 얽혀 있기 때문에 단일한 스토리 라인을 찾기보다는 그 다양한 메인과 서브플롯들을 연결하는 매개체로서 그 플롯의 배경이 되는 공간과 그 플롯들을 구성하는 캐릭터들을 이해하면 줄거리 파악에 훨씬 도움이 된다. 영화 《인 더 하이츠》의 무대는 맨해튼 북부의 워싱턴 하이츠이며, 그곳은 라틴계 이민자들이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는 삶의 공간이다.
영화는 워싱턴 하이츠 교차로 한 귀퉁이에서 식품 잡화점을 운영하는 우스나비(Anthony Ramos 분)를 메인 캐릭터로 삼고 있지만 다양한 캐릭터들이 그 주변을 감싼다. 어린 나이에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우스나비는 곧 부모를 여의고, 쿠바에서 이민 온 아부엘라(Olga Merediz 분)는 따뜻하게 그를 보살펴 왔다. 그는 워싱턴 하이츠의 정신적 지주이다. 우스나비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잡화점을 운영하면서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돌아가 아버지가 운영하던 바닷가 술집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꿈을 안고 있다. 그의 잡화점에서는 그의 사촌 동생 쏘니(Gregory Diaz IV 분)가 일하고 있으며 그는 대학에 진학할 꿈을 안고 있지만, '불법 체류자'로 신분상의 문제가 있다. 우스나비가 사랑하는 바네사(Melissa Barrera 분)는 레즈비언 커플인 다니엘라(Daphne Rubin-Vega 분)와 칼라(Stephanie Beatriz 분)가 운영하는 미용실에서 네일 아티스트를 하지만 패션 디자이너를 꿈꾼다. 우스나비 가게의 단골인 케빈(Jimmy Smits 분)은 택시회사를 운영하며, 스탠퍼드에 진학한 그의 딸 니나(Leslie Grace 분)가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하며 헌신적으로 지원한다. 스탠퍼드에서 차별과 소외를 경험한 니나는 학업을 중단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다시 워싱턴 하이츠로 돌아온다. 케빈 회사의 직원 베니(Corey Hawkins 분)는 언젠가 부자가 될 꿈을 안고 살며, 니나와 사랑에 빠진다. 케빈은 딸 니나가 학업을 포기한 것도 베니와 사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인 더 하이츠》는 도미니카 쿠바, 푸에르토리코, 칠레, 멕시코, 콜롬비아 등지에서 라틴계 이민자들이 워싱턴 하이츠를 자신들의 공동체로 만들며 그 속에서의 삶을 통해 스스로 새로운 정체성을 구성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워싱턴 하이츠라는 공간을 살아가는 거주자로서 이민자들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다. 워싱턴 하이츠는 낯선 미국 땅이 아니라 삶이 펼쳐지는 홈(Home)이며, 라틴 이민자들은 이방인과 외부자가 아니라 그 홈에 삶을 사는 거주자이자 내부자이다. 영화 오프닝의 뮤지컬 넘버 'In the Heights'는 워싱턴 하이츠의 하루를 여는 거주자들의 다양한 삶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며, 다니엘라와 출연진들이 함께 부르는 'Carnaval del Barrio'는 라틴 아메리카의 서로 다른 곳에서 워싱턴 하이츠 한 곳으로 모여든 이민자들이 어떻게 다르면서도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는가를 보여준다.
《인 더 하이츠》는 이 공동체와 그 속에서의 삶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stories)을 꿈과 빛이라는 두 소재를 중심으로 관객들에게 들려준다.
꿈과 기억: 현재와 미래 그리고 여기로서의 꿈과 과거와 저기로서의 기억
《인 더 하이츠》는 바닷가에서 수니토(Sue ito)가 무슨 뜻이냐고 묻는 아이들에게 우스나비가 수니토는 "작은 꿈"이라고 설명하는 흑백 자막으로 시작한다. 아이들이 "단지 그것뿐이에요? 아무런 스토리도 없어요?"라고 재차 묻자 우스나비가 뉴욕의 "사라져 가는 구역" 워싱턴 하이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인 더 하이츠》의 본격적인 막이 오른다.
우스나비는 워싱턴 하이츠에서의 하루를 과거에 대한 기억으로 시작한다. 자명종 소리와 함께 침대에서 일어난 그의 벽에는 어린 시절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아버지와 찍은 사진, 아버지의 모자, 그리고 도미니카 공화국 스티커가 걸려있다. 우스나비는 그 벽을 보며 잠에서 덜 깬 몽롱한 눈빛으로 "내 생애 최고의 날들"이라고 중얼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난다. 아직 잠이 덜 깬 그에게 인생 최고의 날은 여기 워싱턴 하이츠가 아닌 저기 도미니카 공화국, 지금 자신의 삶이 아니라 과거의 삶, 꿈이 아닌 기억이다. 그래서 그는 잡화점을 정리하고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는 자기를 키워준 아부엘라에게 잡화점을 정리하고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가자고 말한다. 아부엘라는 과연 그곳이 다를 것 같냐고 묻지만 우스나비는 워싱턴 하이츠에서 자신은 "생존을 위해 노동하지만" 도미니카에서 아버지가 운영했던 "엘 수니토는 사랑의 노동"을 하는 곳이라고 응답한다. 그는 워싱턴 하이츠라는 현재와 현실을 도미니카라는 과거와 기억으로 대체한다.
그는 자신의 가게에서 일하는 사촌 쏘니에게 자기와 함께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가자고 이야기하지만 쏘니는 그에게 기억과 현실의 차이를 상기시킨다. 쏘니는 그에게 "너는 '섬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뉴욕이 내 자리야."라며 기억의 피안(彼岸)성과 꿈의 차안(此岸)성, 즉 여기, 이곳, 살아가는 곳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쏘니는 우스나비에게 그 이름, 그의 아버지가 미국에 입국하면서 뉴욕항에서 본 해군 함정에 U.S. Navy를 보고 지어 준 이름을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 잊지 말라고 상기시킨다. 즉, 우스나비는 처음부터 워싱턴 하이츠를 떠날 수 없는 인물임을 암시한다.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바네사, 대학 진학을 꿈꾸는 쏘니, 열심히 일하며 부자를 꿈꾸는 베니는 모두 워싱턴 하이츠의 삶을 살면서 꿈을 이루려 한다. 이 워싱턴 하이츠의 대모 격인 아부엘라는 이 고된 현실을 살아가는 비결을 가르친다. 그의 비결은 그가 부르는 뮤지컬 넘버 'Paciencia y Fe' 인내와 믿음이다. 아부엘라는 굶주림을 피해 쿠바 하바나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고된 일을 하면서도 늘 "Paciencia y Fe"의 자세로 힘든 이민 생활을 버텨왔다. 그는 심지어 복권을 사며 행운을 빌 때도 "Paciencia y Fe"를 외친다. 현실을 버텨내는 힘도 인내와 믿음에서 오며, 그 인내와 믿음이 복권 당첨이라는 꿈과 미래의 밑거름이 된다고 그는 강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는 방식이 구세대인 아부엘라의 인내와 믿음의 방식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바네사가 부르는 'It Won’t Be Long Now'와 쏘니가 부르는 '96,000' 구절은 젊은 세대들의 새로운 방식을 드러낸다.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바네사는 워싱턴 하이츠라는 홈을 탈주해 멀리 달려 나가고자 하는 욕망을 품고 있다. 쏘니는 96,000달러 복권에 당첨되면 그 돈을 시위대에 투자하고 자본이 워싱턴 하이츠를 망가뜨리지 않도록 투쟁하여 홈을 새롭게 건설하겠다는 의지를 품고 있다. 이 새로운 세대들이 홈으로서 워싱턴 하이츠를 대하는 태도, 꿈을 실현하려는 방식은 구세대와 다를 뿐 아니라, 자신들 내부에서도 다르다. 하지만 스탠퍼드에서 꿈과 길을 잃은 니나가 집으로 돌아와 부르는 'Breathe'가 워싱턴 하이츠를 그를 숨 쉬게 하는 커뮤니티로 묘사한것처럼, 구세대나 신세대 모두 워싱턴 하이츠가 그들을 품는 홈이며, 자신의 정체성과 꿈이 그 홈과 끈끈하게 결합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빛과 힘: 공동체를 유지하는 꿈의 원천
현실을 살아가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힘(power)이 필요하다. 그 힘은 《인 더 하이츠》에서 빛(light)이라는 상징을 통해 드러난다. 워싱턴 하이츠의 하루는 해가 밝고, 전등을 켜고, 빛을 들어 오게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인 더 하이츠》의 뮤지컬 넘버 'Blackout'과 'Carnaval Del Barrio'는 빛이 공동체와 꿈을 이루는 힘의 상징임을 잘 드러내고 있다. 'Blackout'은 정전과 무기력의 다의성을 띤 "powerless"라는 표현을 통해 빛의 상징성을 밝히고 있으며, 'Carnaval Del Barrio'는 정전과 그에 따른 열파와 무기력을 공동체의 축제와 연대로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 보다 영화 《인 더 하이츠》에서 정전, 'Blackout'은 빛과 꿈, 공동체를 더 밀접하게 연관시킨다. 빛이 실종되고, 사람들이 혼란에 빠진 와중에도 쏘니와 우스나비의 골칫거리 그래피티스트 피트(Noah Catala 분)는 거리를 불꽃으로 밝히기 위해 노력하며, 케빈이 회사를 처분하면서 실업자가 된 베니는 교통혼잡 상황을 보고 케빈의 회사로 뛰어가 무선 마이크를 들고, 다니엘라와 칼라, 우스나비는 혼자 있을 아부엘라를 걱정하며 찾아가고, 바네사는 깜깜한 도시 속에서 디자인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 그들의 머리 위로는 정전의 와중에도 하늘을 밝히는 폭죽이 빛을 뿌리고 있다.
'Carnaval Del Barrio'는 비싼 임대료 때문에 브롱크스로 미용실을 이사하려는 다니엘라가 정전과 더위로 풀이 죽은 워싱턴 하이츠의 거주자들에게 "우리는 파워리스 powerless하지 않고 파워풀 powerful 하다"며 연대의 축제로 정전 혹은 파워리스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도미니카, 푸에르토리코, 멕시코, 쿠바 등 각기 다른 중남미 나라들에서 온 이민자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춤과 리듬으로 서로 다르면서도 하나의 마을을 구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스나비는 정전으로 파워리스하다면 촛불을 켜자고 말하며, 전체 군중들은 각자의 깃발을 흔들며 신나게 마을 축제를 벌인다. 그 축제 끝에 파워가 다시 들어와 워싱턴 하이츠는 활기를 찾는다.
현실을 외면한 난삽한 스토리 진부한 클리셰의 향연
영화 《인 더 하이츠》는 아부엘라와 같은 구세대가 부르는 전통 라틴리듬부터 우스나비나 쏘니가 부르는 현대식 힙합까지 꽉찬 미란다의 음악과 맘보, 차차, 매렝게 그리고 브레이크 댄스의 길거리 버전 안무가 귀와 눈을 즐겁게 한다. 하지만 《인 더 하이츠》의 스토리는 뮤지컬보다도 더 형편없어졌다. 우스나비-바네사와 니나-베니 커플의 사랑을 중심으로 한 복수의 메인 플롯 연결은 뮤지컬보다 영화에서 더 불만스럽다. 우스나비와 바네사의 갈등은 이유가 없고, 니나와 베니의 사랑은 맥락이 없다. 더욱이 뮤지컬에서 베니가 라틴계가 아니기 때문에 발생했던 하위 그룹 내에서의 갈등을 영화에서는 제거했기 때문에 관객들은 케빈이 왜 베니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
서브플롯으로 가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불법체류자' 쏘니의 투쟁, 아부엘라의 삶과 복권 당첨, 케빈과 베니 그리고 케빈과 니나의 갈등, 레즈비언 부부인 다니엘라와 칼라의 미용실과 같은 서브플롯은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다양한 특징들을 수렴하려고 하려 했지만, 각 이야기의 의미는 연결되지 못한 채 중심 플롯에서 계속 미끄러져만 간다. 더욱이 뮤지컬에서 워싱턴 하이츠가 직면한 젠트리피케이션이 영화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으면서, 뉴욕의 "사라져 가는 구역"으로서 워싱턴 하이츠라는 영화의 서두는 의미 없는 사족이 되었으며, 영화는 긴장감을 처음부터 상실하게 된다. 사람들이 왜 워싱턴 하이츠를 떠나고 지켜야 하는지 영화는 더 이상 설득력 있는 가설을 제시하지 못한다.
《인 더 하이츠》는 컬러리즘(colorism), 워싱턴 하이츠 거주자들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블랙-라티노들의 캐스팅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미란다 본인이 백인 아이비리그 출신이고, 각본을 쓴 휴즈 역시 백인이라는 점에서 이들이 블랙-라티노들을 배제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더욱이 감독 존 추는 전작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에서 남자 주인공을 중국계가 아닌 말레이시아계를 캐스팅하면서, 정작 싱가포르 거주자들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말레이시아인들을 소외시켰다. 주인공 우스나비는 각본상 도미니카 이민자이지만, 그 역을 맡은 라모스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이다. 한국 캐릭터를 일본인이나, 중국인이 연기해도 된다는, 라틴계는 모두 동일하다는 오리엔탈리즘이 《인 더 하이츠》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다양한 라틴어, 라틴 리듬, 라틴 안무, 라틴 음식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하지만 정작 워싱턴 하이츠의 주요 거주자 블랙-라티노(베니는 블랙-라티노가 아니라 아프리칸-어메리칸이다)의 배제는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특히 라틴계 내부에서 피부색에 따른 위계와 차별이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인 더 하이츠》는 이 위계와 차별을 고스란히 재생산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컬러리즘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가 워싱턴 하이츠를 둘러싼 식민주의와 자본의 침투라는 어두운 현실의 외면을 넘어 왜곡 미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란다 본인이 거주하는 워싱턴 하이츠가 직면한 젠트리피케이션을 빼고 대신 삽입된 소위 불법체류자 쏘니의 투쟁은 트럼프와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는 BLM운동의 유행에 편승한 아주 상업적 트릭이었다. 문제는 쏘니와 공동체가 자신들의 힘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아부엘라의 행운, 외부에서 떨어진 복권이 문제의 해결사로 등장하는 것이다. '96,000'은 《인 더 하이츠》에서 '인 더 하이츠' 못지않은, 아니 그 이상의 뛰어난 뮤지컬 넘버임에도 불구하고, 워싱턴 하이츠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환상의 복권 당첨금에 기대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구나 영화에서 이 넘버는 뮤지컬과 달리 워싱턴 하이츠 거리와 잡화점 앞에서 벌어지지 않고, 화려한 안무를 위해 수영장으로 장소를 옮기면서 서민들의 즐거운 상상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화려한 물욕의 냄새를 풍기는 환상이 되고 말았다.
《인 더 하이츠》 안무를 맡은 크리스토퍼 스콧(Christopher Scott)은 이 안무가 《Footlight Parade》 (1933)의 'Human Waterfall'과 《Singing in the Rain》의 안무를 참조했다고 한다. 그러나 화려함에 치우친 나머지 '96,000'은 맥락을 잃은 넘버가 되어 버렸다.
더 심각한 클리셰는 쏘니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그는 다른 이들에 의해 대변되어야 하며, 그를 대신해 대변하는 것은 스텐포드에 다니는 니나이다. 니나는 영주권 없이 체류하는 쏘니 같은 아이들을 '대변'(represent) 하기 위해 스탠퍼드로 돌아가기로 한다. 원주민을 대변하는 백인, 흑인을 대변하는 백인의 내러티브가 모양만 바뀐 채 다시 등장한 것이다.
《인 더 하이츠》의 가장 큰 미덕 중의 하나는 워싱턴 하이츠에 거주하는 각각의 구성원들이 새롭게 정체성을 형성하면서 워싱턴 하이츠를 홈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케빈이 딸 니나에게 "너는 보리쿠아(Bricua, 푸에르토리코인)이며" 동시에 "뉴요리쿠아(Nuyoricua, 뉴욕인)"이라고 말하는 장면, 미용실의 칼라가 춤을 추면서 자신의 엄마는 도미니카계 쿠바인이며, 아버지는 칠레 출신이니 자신은 "칠레-도미니카-쿠바인"이지만 동시에 뉴욕의 퀸즈인 이라는 장면은 워싱턴 하이츠에 모여 사는 이민자들이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빚어 나가는가를 보여준다. 쏘니를 포함해 불법체류 청소년 추방 유예(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 DACA) 프로그램 폐지 반대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story)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며, 그 이야기들로 워싱턴 하이츠를 홈으로 만들어 간다. 이 미덕을 만들어 가는 영화의 이야기는 하지만 진부한 클리셰 투성이다. 영화의 시작을 수니토란 꿈으로 시작한 것은 아메리칸드림이라는 진부한 클리셰를 재탕한 것에 불과하다. 《인 더 하이츠》는 워싱턴 하이츠를 홈으로 삼으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우스나비와 바네사의 딸과 동네 아이들은 수니토란 스페인어가 꿈이라는 의미도 모른 채 부모에게 물어야 하는 세대가 되었다. 그들의 정체성과 꿈은 진부한 미국 신화 아메리칸드림에 포섭될 운명인 것이다.
《인 더 하이츠》는 뮤지컬의 엉성한 스토리를 더 엉성하게 만들고, 시대의 흐름을 얄팍하게 반영하면서 워싱턴 하이츠를 끌고 가는 굵직한 사람들의 삶을 희화화한다. 《인 더 하이츠》의 노래와 춤이 가진 역동성은 그 장삿속의 한가운데서 영화에 뿌리내리지 못한 채 둥둥 떠다닌다. 거의 두시간 반에 걸친 화려한 상업광고는 워싱턴 하이츠의 삶을 그리기보다는 염가로 팔 뿐이다.
'문화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디언 번역] 오징어 게임(Squid Game), 전 세계를 폭풍으로 몰아넣는 지옥 같은 호러쇼 (0) | 2021.09.29 |
---|---|
누벨바그 주역에서 액션스타, 다시 예술영화로: 향년 88세로 별세한 장폴 벨몽도의 삶과 영화 (0) | 2021.09.07 |
영화 《쿵후 타이거》(The Paper Tigers): 미국으로 건너간 쿵후 디아스포라, 백인의 지배도 원조(元祖) 중국도 거부하다 (0) | 2021.05.30 |
영화 《울프워커스》, 3차원 에니메이션의 메마른 자본의 현실주의를 넘어선 2차원 카툰의 아름다운 저항 판타지 (0) | 2021.04.26 |
영화 《어나더 라운드》, 모조(mojo)를 상실한 소시민들의 순응을 위한 저항기와 혈중알코올농도 체험기 (2) | 2021.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