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 아래 시작됐다. 테러리스트의 제거라는 목적은 아프가니스탄 국가 재건이란 목적으로 변경되었고, 공식적으로 약 1조 달러가 투여된(비공식 적으로는 약 2.6조 달러) 전쟁에서 미국은 빈손으로 쫓기듯 카불을 떠나야 했다. 포스트 9·11 시대의 종말로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의 재등장으로 종말을 고했고, 미국은 미국적 가치가 도전받고 헤게모니를 놓고 중국과 다투어야 하는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이 글은 여러 신문에 중동과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해 국제관계 글을 써온 Roger Cohen의 8월 18일 자 뉴욕타임스 분석 기사 For US, and Afghanistan, the Post-9/11 Era Ends Painfully을 번역한 것이다. 그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했었고,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군의 대량 증원을 주장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란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라는 포스트 9·11 전쟁의 지지자로서 이번 탈레반의 카불 접수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Cohen은 미국의 오만과 나이브함, 무지가 빚어낸 포스트 9·11 시대의 아프간 전쟁은 미국의 국가적 기억에 악몽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한다. - 역자 주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에게 포스트 9·11 시대는 고통스럽게 종말을 고한다.
카불 공항의 절망적인 장면은 머나먼 땅을 재형성하려는 또 다른 실패한 시도로서 아프가니스탄을 미국의 국가 기억에 자리를 잡게 할 것이다.
20년 전 납치된 비행기들이 미국 고층빌딩으로 날아드는 충격으로 시작된 시대는 이번 주 카불의 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인 아프간인들이 미국 항공기에 매달리면서 막을 내렸다. 몇몇은 떨어졌고, 하나는 랜딩 기어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을 건설하려는 적대적인 이데올로기를 물리치기 위한 미국의 군사력, 재원 및 외교에 대한 초당적 투자는 실패했다. 2명의 공화당과 2명의 민주당을 포함 모두 4명의 대통령 재임 동안, 2,400명 이상의 미국인이 목숨을 잃었고 1조 달러 이상이 아프가니스탄의 목표를 변경하는 데 사용되었지만, 그중 다수는 달성할 수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탈레반이 미국에 대한 공격의 근거지 역할을 했던 이 나라를 다시 장악하면서 포스트 9·11 시대는 막을 내렸고, 이는 아프간을 고통스럽게 국가 기억에 새길 미국의 완전한 재앙이다.
실수와 환상, 세계를 자신의 이미지로 재창조하려는 미국의 특정 나이브함 또는 오만함은 탈레반으로 하여금 패배 후 거의 20년 만에 빠르게 정권을 장악하게 만들었지만, 보다 근본적인 요소도 한몫했다. 중국이 위협적으로 힘을 과시하면서 국가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미국의 상대적인 힘은 20년 전과 다르다.
머나먼 투쟁에 자원을 투입하려는 국가의 능력과 의향은 쇠퇴했다. 냉전이 없었다면 미국인들은 독일, 일본, 한국 등지에서 민주주의를 굳건히 한 개방적인 군사적 헌신에 대한 욕구가 거의 없다.
바이든 대통령은 월요일 신속한 군 철수를 진행하기로 한 자신의 결정을 옹호하며 "대통령으로서 나는 우리가 어제의 위협이 아니라 2021년에 우리가 직면한 위협에 집중한다는 것에 단호합니다."라고 말했다. 바이든은 “미군은 아프가니스탄 군대가 스스로 싸울 의지가 없는 전쟁에서 싸울 수 없고 죽어서도 안 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바이든의 대통령직에 대한 단 하나의 추진력이 있었다면 억압적인 형태의 거버넌스가 확산되는 "변곡점"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미국의 가치를 재천명한 것이었다.
"미국이 돌아왔다"는 게 그 후렴구였지만 이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될 것이다. 무엇을 하기 위하여? 아프가니스탄의 학교들이 다시 문을 닫고 자유를 믿었던 아프간인들은 필사적으로 도피하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계획된 12월의 정상회담은 신뢰도가 훨씬 낮아 보인다.
유엔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특별대표를 역임한 알제리 외교관 라크다르 브라히미(Lakhdar Brahimi)는 “수십 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은 잘하려고 했던 사람들의 희생물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시점에서 떠나기에 적당한 시간은 없었기 때문에 이것은 아주 좋은 시간이었거나 아니면 아주 나쁜 시간이었습니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미국과 동맹국들이 자국민을 대피시키기 위해 분주한 카불의 혼란과 그들을 도왔던 아프간인들은 필연적으로 북베트남군이 도시를 점령한 1975년 4월 사이공의 절망적인 장면에 비유된다. 그때는 지금처럼 자생적 게릴라 반군이 초강대국의 구상을 무산시켰다.
그러나 그러한 비유는 과장되어서는 안 된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놓고 심하게 분열되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빠져나오기를 원한다. 그들의 우선순위는 국내이다.
바이든이 말했듯이, 미국의 최우선 목표는 달성되었다. 알카에다 형태의 이슬람 테러리즘은 지난 20년 동안 크게 패배했다. 그러나 탈레반에 의해 수용된 정치적 이슬람은 세속적인 서구의 통치 모델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유인력을 유지하고 있다.
신학교(seminary, 탈레반의 원래 의미는 이슬람 신학교의 학생 - 역자 주)의 열렬한 열정을 식혔을 수도 있는 외교 경험을 통해 갈고닦아 새롭게 요령을 터득한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이 테러리스트의 피난처가 되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한다.
미국이 탈레반이 권력을 쥐지 못하게 하고 현재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신흥 중산층과 여성의 희망을 지키기 위해 약간의 군사적 주둔을 유지했어야 했는지에 대한 논쟁은 오랫동안 격렬해질 것이다.
20년 안에 이루지 못한 일이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할 이유가 거의 없었다. 한편, 아프가니스탄에서 라디오와 TV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MOBY 그룹의 아프가니스탄 기업가인 사드 모세니(Saad Mohseni)는 “아프가니스탄인들은 가장 불공정하고 무책임한 방식으로 배신당했다(pushed under the bus)”라고 주장했다.
현재로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미국의 급격한 철수가 초래한 재앙이다. 며칠 전 당시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과 통화한 한 인물에 따르면, 이제 도망친 그는 아직 조직적 전환을 협상할 수 있는 2주가 남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사실 미국이 없는 그의 구조물은 사상누각이었다.
가장 긴 미국 전쟁의 목적에 대해 오랫동안 회의적이었던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말에 탈레반이 "모든 것을 압도하고 국가 전체를 소유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확신으로 행동했다. 양당 모두 공유할 만큼 충분히 비난을 받더라도 그 말은 바이든 대통령을 괴롭히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닫힌 미국 대사관과 미국이 건설한 민주주의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부 청사를 총을 멘 탈레반 군대가 인수하는 카불의 이미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카메론 문터(Cameron Munter) 전 파키스탄 주재 미국대사는 올해 미군 철군을 명기한 2020년 트럼프 행정부와 탈레반과의 협정을 언급하며 "트럼프가 그를 옴짝달싹 못하게 해도 이것이 바이든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의심치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바이든에게 물려진 어려운 유산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정부는 가속화된 철수에는 선택권이 없었다.
2011년부터 아프가니스탄 관련 활동을 해온 재단의 스테판 하인츠(Stephen Heintz) 대표는 “정부가 계획이 없었다는 게 끔찍합니다”며 “나토와 협의가 거의 없었고 아프가니스탄 정부와도 협의가 거의 없었습니다. 정보, 계획, 물류의 실패, 그리고 결국에는 정치적 실패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바이든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대통령을 더 지지했다. 매사추세츠 민주당원이자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한 전 해병대원인 제이크 아우친클로스(Jake Auchincloss) 하원의원은 "20년이란 시간은 아프가니스탄 지도자들에게 시민 사회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긴 시간이었지만 그들은 대신 부패와 무능의 씨앗만 뿌렸습니다"라고 뉴욕 타임스에 말했다.
바이든과 그의 전임자 모두 내부 지향적인 미국 분위기에 다른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세계를 치안하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고, 종종 보람 없는 일이며, 국내적으로 산적한 문제를 낳는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철수는 중국과의 첨예한 강대국 경쟁을 포함하여 우선순위의 변화를 정확히 반영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의 미국(America-in-Afghanistan)은 미국 정책 입안자들에게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오류와 오판의 연대기에 해당된다.
미국이 2003년 제2전선을 개방하고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관심과 자원을 빼돌리는 등 결함이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이라크 전쟁을 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아프간 분쟁은 방향을 상실한 부차적 사업이라는 인식이 커졌다.
테러리즘의 퇴치라는 목표가 위험스럽게 국가 건설이라는 목표로 변모했다. 그러나 인구 조사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부족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나라에서 민주주의는 터무니없는 목표였다. 대규모 선거 사기를 막을 수 있거나 수백만 달러의 원조금이 의도한 목표에 도달할 가능성은 항상 낮았다.
믿을 만한 아프간 군대를 건설하려는 시도는 830억 달러의 비용이 투입된 대실패로 변했다. 2009년에서 2011년 사이 아프간 정책에 대한 수석 고문인 발리 나스르(Vali R Nasr)는 ""우리는 우리 없이는 실제로 작전을 수행할 수 없는 펜타곤의 이미지에 따라 아프간 군을 건설하려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우리의 공중 지원이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헬리콥터를 서비스하지 않아도 되는 능력에 의존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이번 미국의 실패에 대한 계산은 고통스러울 것이 분명해 보인다. 아프가니스탄이 필요로 하는 더 단순하고 덜 야심적인 야망에 적응하기보다 미국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경향은 21세기 세계에서 미국에 더 넓은 교훈을 주는 것 같다.
문터 전 파키스탄 주재 미국대사는 2006년 이라크 모술에서 첫 번째 지방재건팀(Provincial Reconstruction Team)을 이끌었다. 그는 그곳에 도착해 "아무 계획도 없었다"는 걸을 알게 됐다고 회상했다. 문터는 구호품을 배급하는 관리들은 그것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보다 얼마나 빨리 그것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더 관심이 있어 보였다. 이는 "그럼으로써 그들이 힐(Hill, 예산을 의결하는 미국 의회[Capitol Hill]를 의미함 - 역자 주)에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우리에게 할당된 돈을 사용하고 있다고 확신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한"것이었다. 그는 모술 경험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훨씬 더 큰 규모로 일어난 일의 축소판처럼 보였다”라고 덧붙였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모두에서 미국 정책에서 종종 누락된 것처럼 보였던 요소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이었다. 우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브라히미는 “미국인들은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모를 수 있으며,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매우 꺼려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의 나이브한 태도는 많은 이점을 가져왔다. 모세니는 지난 20년을 12세기에서 21세기로 아프가니스탄을 안내한 "황금기"에 비교했다. 여성은 다시 교육받을 수 있습니다. 디지털로 연결된 중산층이 등장했다. 인프라와 기술은 사람과 세상을 연결했다. 그는 “아프간인들은 영원히 변했습니다. 우리에게 교착 상태는 달콤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제 문제는 그들이 의존하고 있는 인터넷에 의해 자신을 변화시킨 탈레반이 모든 것 중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되돌리려고 시도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들이 제기하는 가장 즉각적인 위협은 확실히 미국보다는 아프가니스탄인, 특히 아프간 여성에게 있다. 폭력적인 보복과 대규모 난민 탈출을 포함해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다. 하인츠는 “이것은 미국의 신뢰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혀 우리가 인권과 여성을 믿는다고 말할 때 우리가 얼마나 진실한지 의심하게 만듭니다.”라고 말했다.
리처드 홀브룩(Richard C. Holbrooke)은 2009년부터 2010년 사망할 때까지 아프가니스탄 특별대표로 있을 때 그는 그의 모든 팀이 그레이엄 그린(Graham Greene)의 "조용한 미국인"(The Quiet American, 현지 사정을 모르는 미국이 현지 군부를 지원하고 사주하여 베트남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 - 역자 주)을 읽었다고 주장했다.
소설에서 선의의 이상주의적 미국 정보 장교인 앨든 파일(Alden Pyle, 작 중 '조용한 미국인'이자 위장한 CIA 요원 - 역자 주)은 복잡한 사회에 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가져오려고 노력하면서 베트남에서의 프랑스 식민 전쟁의 쓰라린 현실에 직면한다.
그린은 냉소적인 저널리스트 내레이터를 통해 "나는 그가 일으킨 모든 문제(소설에서 CIA 요원 파일은 폭탄테러를 배후에서 조종하고 이를 공산주의자에게 뒤집어 씌운다 - 역자 주)에 대해 더 나은 동기를 가진 사람을 결코 알지 못했다"라고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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