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1 테러 20주년, 이교도인 서방세계를 몰아내고 글로벌 칼리파 체제를 건설하려는 호전적 살라피 지하드주의에 입각한 알카에다 조직은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서 궤멸적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알카에다의 지역 조직 이라크 알카에다 지부(AQI)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이슬람 국가(IS)는 세력은 많이 약화되었지만 여전히 도처에서 극단적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이 글은 The Conversation 9월 10일 자 기사 9/11 twenty years on: al-Qaida is defeated – but jihadism is here to stay의 번역으로, 알카에다의 약화에도 불구하고 지하드주의는 여전히 존속할 것이며 그것이 여전히 테러의 위협이 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 역자 주
9/11 20년 후: 알카에다는 패배했지만 지하드주의는 지속될 것이다.
20년 전, 테러리스트 그룹 알카에다(Al-Qaida)는 세계가 본 적이 없는 미국 영토에 대한 가장 치명적인 공격을 자행했다. 하룻밤 사이에 알카에다 창시자인 오사마 빈 라덴은 지금까지 가장 악명 높은 테러리스트가 되었다.
범이슬람주의 야망에 고무되고 미국의 해외 주둔과 중동 개입에 격분한 이 테러는 미국의 패권과 불가침의 개념을 무너뜨리려는 알카에다 캠페인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때 정치적 권위에 의해 연합되었던 모든 이슬람교도들의 공동체인 움마(umma)를 되살리는 것이었다.
알카에다 테러리즘 레이더에 처음 나타난 것은 1998년으로 그들은 케냐와 탄자니아 주재 미국 대사관에 동시 폭격을 감행해 224명이 숨지고 4000명 이상이 부상했다. 2000년 10월, 알카에다는 폭발물을 가득 실은 작은 배로 예멘의 아덴항에 있는 USS 콜(USS Cole)함을 들이받아 17명의 미 해군 병사를 죽였다.
9/11 테러 이후, 그들은 미국이 이슬람 영토에서 군대를 철수시키고 독재 통치자들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것이며, 이것이 현대의 칼리파 제도를 도입으로 안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공격의 여파 속에서 빈 라덴은 "미국과 그 국민들에게 몇 마디 할 말이 있을 뿐이다"라고 선언했다. "미국이나 미국에 사는 사람은 팔레스타인에서 안전이 현실이 되고 모든 이교도 군대가 무함마드 땅을 떠나기 전에는 안전을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빈 라덴의 예상은 심각한 계산 착오로 드러났다.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군사력을 철수하는 대신 세계 지도자들에게 미국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며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기 위해 신속히 움직였다.
2001년 10월, 미국 주도의 연합군이 알카에다를 추적하고 1996년 이후 알카에다가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도록 허용한 탈레반을 축출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갔을 때, 빈 라덴은 허를 찔렸다. 알카에다의 생존을 보장할 전략은 없었다.
알카에다의 진화
9/11 공격은 알카에다의 짧은 승리로 판명되었다. 탈레반이 붕괴된 지 몇 주 만에 탈레반의 지도자와 전사의 대다수가 생포되거나 살해되었다. 빈 라덴을 포함해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 사람들은 아프가니스탄과 접경한 자치지역인 파키스탄 연방관리 부족 지역(Federally Administered Tribal Areas of Pakistan)으로 숨어들었다.
2011년 5월 2일 미국 특수부대에 의해 살해될 때까지 10년 동안 빈 라덴은 알카에다를 되살리고 그 유산에 영향을 미치려 했지만 실패했다.
"테러와의 전쟁"의 다음 단계(그리고 틀림없이 가장 큰 실수)는 2003년 이라크 침공이었다. 지하디스트 활동을 경멸하는 태도로 바라보던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의 축출은 정치적 공백을 초래하여 테러리스트 지도자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Abu Musab al-Zarqawi) 아래서 알카에다가 부상할 수 있게 했다. 2006년 6월 미국의 폭탄 공격으로 그가 사망하자 이라크의 알카에다는 이라크 이슬람 국가(Islamic State of Iraq, ISI)가 되었고 궁극적으로 이슬람 국가(Islamic State, IS)로 통합되었다.
이라크와 이집트, 북아프리카, 예멘을 비롯한 다른 곳에서 널리 알려진 알카에다 "프랜차이즈"의 창설은 알카에다의 부활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였다.
각각의 지역 분쟁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이 프랜차이즈 리더들은 악명 높은 알카에다 브랜드를 인수함으로써 많은 것을 얻었다. 세계 곳곳에 검은색 알카에다 깃발이 등장하자 워싱턴은 충격을 받았다. 서방의 테러 전문가들은 그들 내부에 거의 합의하지 못한 채 이 그룹의 재등장과 그 위협의 심각성에 대해 추측했다.
숨어있던 빈 라덴과 알카에다의 고위 지도자들은 새로운 프랜차이즈 운영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는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 있는 빈 라덴의 영내를 급습하는 동안 미 특수작전부대에 의해 복구된 알카에다 내부 통신 파일인 "아보타바드 편지"(Abottabad letters)를 주의 깊게 읽은 테러리즘 연구자 넬리 라후드(Nelly Lahoud)의 분석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편지에서 빈 라덴은 그의 "형제들"이 그의 생애 마지막 해 동안 세계 지하드에 대한 "골칫거리"가 된 것을 한탄했다. 그는 지하드 전사들의 새로운 세대가 길을 잃었다고 결론지었다.
2011년 빈 라덴이 사망하자 알카에다의 고위 간부들은 세계가 본 것 중 최악의 공격을 약속하며 세계 지하드를 계속하겠다고 맹세했다.
소리 높은 위협이 국제 테러리즘의 레이더에 알카에다를 다시 올려놓았지만, 행동은 결코 뒤따르지 않았다. 이 단체는 공식적으로 새로운 지도자인 아이만 알 자와히리(Ayman al-Zawahiri)의 지휘 하에 계속 활동했다. 그러나 이라크와 시리아 전역에서 활보하며 활동하고 유럽에서 자살 공격을 조직하기 시작했던 IS에 대해서는 영향력이 없었다.
2014년까지 IS는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Abu Bakr al-Baghdadi)가 이끄는 테러조직으로 알카에다를 대체했다. 5년 후, 2019년 10월 27일, 알 바그다디도 미군의 군사 작전으로 사망했다. IS는 적어도 일시적으로 패배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IS는 2021년 8월 26일, 아프가니스탄에서 10년 만에 미군에게 가장 치명적인 사건인 13명의 미군 병사들을 포함한 17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카불 공항 공격의 책임을 지역 지부인 IS-K(Islamic State in Khorasan Province, 이슬람 국가 호라산)가 주장함으로써 극적으로 다시 나타났다.
미국은 2021년 8월 30일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을 완료하여 미국의 가장 긴 전쟁이 종식되었다.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탈레반은 새 정부를 발표했고 "이슬람 토후국"(Islamic emirate)이라고 선언했다. 미국의 "제1 순위 지명수배 테러리스트"인 사라주딘 하카니(Sarajuddin Haqqani)가 신임 내무장관 대행이다.
9/11 테러 20주년, 알 카에다는 패배할 수도 있지만 지하드주의와 칼리프를 (재)창조하려는 야망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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