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영화

메타 동화로서 영화 미나리, 그 상징과 의미들

Zigzag 2021. 3. 5.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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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주: 이 포스팅은 영화 미나리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지 않지만 약간의 스토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메타 동화로서 영화 미나리

논밭에서 더이상 일할 수 없어 방구석으로 밀려난 할머니가 그 구석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들에게 잠자리에서 동화를 들려주는 일이다. 그래서 그 할머니들의 동화는 늘 아이들이 접할 수 없는 “옛날 옛적에”(Once upon a time)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그러나 영화 미나리의 할머니 순자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가 아니며, 손주의 말대로 “한국 냄새가 나는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다. 그래서 순자가 손주들에게 들려주는 동화는 “옛날 옛적에”란 동화로 시작하지 않는다. 대신 순자는 발터 벤야민이 꼽은 동화의 또 다른 공통점인 결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Happily ever after)의 동화를 미래형으로 이야기한다.

영화 미나리는 한인들의 어메리칸 드림이라는 동화가 아니라 그 동화에 대한 동화, 즉 일종의 '메타동화'(meta-fairy-tail)다. 메타는 '무엇을 넘어선다'는 의미도 있지만 '…에 대한'이란 뜻도 있다. 메타데이터, 즉 데이터에 대한 데이터 혹은 빅데이터가 세상을 읽은 데 데이터 그 자체보다 더 효과적인 것처럼 메타 동화는 동화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영화 미나리, 출처: Imdb

성경과 신의 땅 미국에

영화 미나리는 성경의 사건을 씨줄로, 영화의 사건들을 날줄로 은밀하게 엮으며 영화의 내러티브를 풀어 나간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에 드리워진 의미의 그림자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영화 미나리가 재현하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티븐 연이 맡은 역의 극 중 이름은 제이콥(Jacob Yi) 혹은 야곱, 한예리가 맡은 모니카(Monica Yi)는 비기독교인 <고백록>의 아우구스티누스를 개종시킨 그의 어머니 이름과 같고, 알란 킴이 맡은 그들의 아들 이름은 데이비드(David Yi) 혹은 다윗이며, 노엘 케이트 초가 맡은 그들의 딸 이름은 앤(Anne Yi) 혹은 안나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 이름이다. 아울러 제이콥의 농장에 고용된 전직 주한미군의 이름은 폴(Paul) 혹은 바울이다.

성경에서 제이콥은 이삭(미나리 감독 정이삭의 이름이기도 하다)의 아들이며, 골칫덩어리지만 후에 ‘축복받은 민족’ 이스라엘의 시조가 된다. 제이콥의 아내 모니카는 영화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어머니처럼 비기독교인 제이콥에게 신앙의 영향을 미치려 노력한다. 그들의 아들이자 정이삭 감독의 어린 시절이기도 한 데이비드는 작고 병들었지만, 장차 미국이란 거대한 골리앗을 상대한다. 그리고 폴 혹은 바울은 비교도인 제이콥에겐 농부로서 일손의 도움을 주고, 십자가 매고 걷고 엑소시즘과 같은 극단적 행태를 보이지만 기독교인 모니카에게 신앙적 위안을 준다.

"God bless you, God bless the United States of America!"로 대통령 취임사들의 대미를 장식하는 나라, 스스로 신의 땅임을 주장하는 나라 미국에서 제이콥과 모니카는 새로운 이스라엘을 만들려 한다. 아직은 작고 약하지만 장차 제이콥이 세운 그 이스라엘을 계승하고 번영시켜 나갈 이는 그의 아들 데이비드다. 모니카는 낯 선 대지와 이윤의 신앙에 빠진 제이콥에게 가족의 신앙이 더 중요함을 일깨우고, 앤은 딸이지만 때론 그런 엄마에게 위안을 주는 존재다.

대지와 집, 희망찬 미래와 차가운 현실

캘리포니아에서 병아리 감별로 얼마간의 돈을 모은 제이콥과 모니카는 가족들과 함께 한인들을 거의 만나기 힘든 더 낯선 땅 아칸소로 이주한다. 양계가 주요 산업인 아칸소에서 제이콥과 모니카는 다시 병아리 감별 공장에 취직한다. 제이콥은 그 성경적 이름처럼 가족을 이끌고 책임져야 한다는 가부장적 사고의 인물이며, 남의 아래 고용돼 임금을 받는 대신 자기만의 농장을 키울 꿈을 품고 약간의 땅을 산다.

한국의 척박한 붉디붉은 황토와 달리 기름진 색깔의 땅, 제이콥은 그 땅의 색깔에 끌려 아칸소로 왔다고 말한다. 그들은 아칸소 대지 위에 정착하지만, 그들이 사는 집은 바퀴가 달린 트레일러다. 약간의 돌풍과 바람에도 흔들리며 언제 무너져 내릴지도 모르는 불안정한 공간이다. 모니카는 교회가 없는 시골 동네, 심장이 약한 데이비드를 진료할 병원이 한 시간이나 떨어진 촌구석, 그리고 안간힘을 써서 다리를 들어올려야 들어갈 수 있는 트레일러 입구부터 비바람에는 이동을 위한 자동차보다도 불안전한 트레일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제이콥에게 기름진 대지는 성공의 기반이자 미래지만, 모니카에게 그 대지 위에 선 불안정한 트레일러는 차가운 현실일 뿐이다.

트레일러 집에 간신히 오르는 모니카, 출처: 영화 Minari official trailer

마녀 할머니의 새로운 동화

독일 동화 라푼젤(Rapunzel)에서 라푼젤은 임신에 좋은 들 상추이자 동화 주인공의 이름이다. 라푼젤을 키우는 이웃의 마녀는 가임 능력이 퇴화한 자며, 어린 라푼젤은 가임 능력이 없으며, 들 상추 라푼젤을 갈구하는 라푼젤의 엄마와 나중에 탑 속에 갇혀 긴 머리를 늘어뜨릴 수 있는 장발의 라푼젤은 가임 능력의 여성이다.

희망을 품은 미래의 대지와 절망뿐인 차가운 현실의 트레일러를 중재할 중재인으로 제이콥과 모니카는 순자를 초청하기로 한다. 윤여정이 연기한 순자는 가임기를 지난 할머니다. 제이콥의 대지는 잉태의 능력이 있지만, 모니카의 반발에 막혀있으며, 모니카는 가임 능력이 있지만, 병아리 감별로 가임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순자는 육체적으로 가임 능력을 상실한 마녀지만, 쿠키도 굽지 못하며 "할머니 같지 않지만", 바쁜 제이콥과 모니카를 대신해 심장이 약한 데이비드를 품는다.

할머니를 "진짜 할머니 같지 않다"고 말하는 손주 데이비드, 출처: 영화 Minari official trailer

제이콥과 모니카는 숲에는 뱀이 나오니 가지 말아야 한다고 데이비드에게 경고하지만, 순자는 숲에 나타난 뱀을 보고 위험하다고 외치는 데이비드에게 보이는 것은 위험하지 않으니 뱀을 쫓지 말고 보이게 놔두라고 말한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위험하다는 새로운 동화를 들려준다. 동화 같은 미국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주인공 포레스트의 주변인들은 그에게 편견과 억압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Run Forrest, run!”을 외친다. 하지만 미나리에서 부모는 데이비드에게 살아남으려면 “Stop running!”, 질주하지 말라고 외친다. 그런 데이비드를 순자는 들로 숲으로 데리고 다니며 달릴 수 있게 만든다. 데이비드의 심장이 살아나고 순자가 풍으로 쓰러지는 장면들은 순자가 제이콥과 모니카를 대신해 그를 잉태했음을 암시한다.

불임의 숫컷이 가진 쓸모, 이성

병아리 감별소 굴뚝 위로 나오는 연기의 정체를 묻는 아들 데이비드에게 제이콥은 암놈은 잉태와 번식의 능력이 있으니 살리고, 수놈은 그런 능력이 없으니 폐기한다고 설명한다. 그 연기는 폐기된 수놈이 태워지면서 나는 연기였다. 제이콥은 데이비드에게 수놈은 쓸모가 없으니, 우리는 꼭 쓸모가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농장은 제이콥에게 그의 쓸모를 보여주는 장치다. 낯선 땅에서 아무것도 잉태하지 못한 채 불에 태워지는 수컷의 운명은 대지의 잉태를 통해 극복될 수 있는 것이다. 동양인 제이콥은 그 쓸모를 입증하기 위해 오랫동안 남성, 특히 백인 남성들에게만 허용했던 '이성'을 사용한다. 수맥을 찾는 미신을 멀리한 채, 그는 비가 내리면 낮은 곳에 물이 고이고 그 낮은 곳을 파면 물을 끌어 올릴 수 있을 것이라며, 사람들은 머리를 써야 한다며 데이비드에게 이성을 강조한다.

물을 찾기 위해 땅을 파는 제이콥, 출처: 영화 Minari official trailer

물과 불, 미나리 그리고 번식

영화 미나리에서 불은 병아리 감별소 수컷 병아리의 처분에서 드러나듯 폐기와 죽음의 상징이다. 반대로 물은 예를 들어 동화 라푼젤의 눈물이 눈먼 왕자의 눈을 치유했듯, 그리고 대부분의 동화에서 그러하듯, 물은 생명과 잉태의 상징이다. 미나리의 '미'는 우리 말로 물을 의미하며, 나리는 나물이다. 미나리는 물과 습지에서 잘 자라고 잘 번식하는 나물이다.

영화 미나리에서 불타는 창고 장면, 출처: 영화 Minari official trailer

제이콥은 이성을 사용하여 지하수를 끌어 올리지만, 곧 지하수는 고갈되자, 그는 가족들 몰래 식수를 밭에 이용한다. 하지만 그 물마저 고갈되면서 밭의 작물들은 말라 죽어간다. 순자는 이성을 사용한 인공적인 물 대신 숲에 흐르는 개울가 주변에 미나리 씨를 뿌린다. 그리고 손주 데이비드에게 미나리를 가르친다. 미나리는 잘 자라는 번영의 식물이며, 미나리는 부자도 빈자도 먹을 수 있는 평등의 먹거리고, 모든 것에 넣어 먹을 수 있는 만능의 음식이고, 치유도 하는 약이라고, 그래서 미나리는 원더풀하다고 말한다.

미나리는 낯선 땅에 뿌려진 한국의 식물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뿌리내려야 하는 한인들이다.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이 있는 곳에서 미나리는 출발하지만, 곧 모든 곳에서 살아 남아 모든 곳으로 퍼지는 1백여 년 한인 이민사의 상징이다. 뙤약볕 하와이의 사탕수수, 캘리포니아의 오렌지처럼 남의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가져와 미국에 씨를 심고 퍼져 번성하고 그리하여 그 사회에도 좋은, 그것이 미나리다.

개울가에서 미나리를 찬양하는 순자, 출처: 영화 Minari official trai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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