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영화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맥락의 거세로 소극(Farce)이 되어 버린 역사

Zigzag 2021. 3. 28.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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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주: 이 글은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의 줄거리와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반전(反戰)의 가면을 쓴 애국과 찬미(<讚美) 영화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1960년대 말 베트남 개입과 확전을 결정한 당시 대통령 린든 존슨이 징집을 두 배로 늘리겠다는 대국민 선언의 발표로 시작된다. 무작위 제비뽑기로 고른 출생일로 징집 대상을 선발하는 장면은 베트남전에 무수한, 무고한 청년들이 징집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시작 장면은 짐짓 이 영화의 반전(反戰) 분위기를 풍기지만, 영화의 본 무대는 베트남도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시위대의 미국 거리도 아닌 미국의 사법 정의를 다루는 시카고 법정 안이다.

이 영화에는 베트남전의 원인이나 베트남인들이 얼마나 죽었는지 나오지 않는다. 1968년 민주당 전당대회를 둘러싸고 일주일 넘게 집회를 조직하며 반전과 평화를 외쳤던 시위대의 8인은 영화에서 애국심을 고취하는 7인의 백인 영웅이 된다. 드라마 《웨스트 윙》과 영화 《소셜 네트워크》의 작가 아론 소킨(Aaron Sorkin) 감독의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반전을 애국으로 바꿔치기하며, 그 애국 아래 인종과 계급 등의 차이를 묵살한다.

영화에서 흑표당의 바비 실(Yahya Abdul-Mateen II 분)은 자신의 변호권을 주장하다 법정 모독죄로 수갑과 방성구가 채워진 채 침묵한다. 하지만 영화에서와 달리 역사적 바비 실은 실제로 수갑과 방성구가 채워가 채워졌음에도 침묵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역사의 바비 실은 반전평화운동을 불법화하기 위해 흑표당을 이용하고 들러리 세우는 것에 저항했고, 자신이 재판정에 있는 내내 끊임없이 자기 목소리를 내려고 반항했기에 하루에만 두 번이나 방성구가 채워졌다. 결국 그의 저항으로 시카고 8 법정은 시카고 7 법정이 될 수 있었다.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이 반전과 평화에 관한 영화가 아님은 데이비드 델린저(John Carroll Lynch 분)에 대한 조롱과 그의 역할에 대한 왜곡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영화에서는 피고인 측 변호사 쿤스틀러(Mark Rylance)마저도 델린저의 양심적 병역거부(그는 2차례의 병역 거부로 총 3년간 복역했다)를 비웃으며, 2차 대전에 참전을 거부한 그에게 "심지어 나라도 주먹을 먹일 거야"라며 조롱한다. 그 조롱은 단지 일회적이거나 우연한 장치가 아니다. 영화는 평화주의자를 자처했던 델린저가 법정에서 자신의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흥분해서 법정의 경비원에게 폭력을 가하고, 그 스스로 당황해 아들을 향해 돌아보면 "미안하다"며 법정에서 끌려나가는 장면을 보여준다. 델린저는 실제로 생활에서나, 법정에서 폭력을 행사한 적이 없는 평화주의자였지만, 그러한 사실과 달리 영화는 그와 그의 종교적, 양심적 신념에 이중성과 기만성을 끼얹음으로써 애국과 미국을 찬양하는 영화임을 드러낸다.

2차 대전에 참전하기를 거부했던 델린저에게 변호사 쿤스틀러가 자기라고 그런 사람에게는 주먹을 날릴 거라며 비웃는다.

영화는 영화 내내 가장 지적이고, 이성적이며 백인 남성의 이상형인 톰 헤이든(Eddie Redmayne 분)이 최후진술에서 베트남전의 사망 미군 장병들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하지만 실제 재판에서 사망한 미군 장병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른 것은 델린저였다. 그는 사망한 미군 장병뿐만 아니라 죽은 베트남인의 이름도 함께 불렀지만, 영화는 그 역할을 종교적 신념과 양심을 가진 델린저 보다는 백인 남성을 대표하는 이성적인 헤이든에게 주며 동시에 베트남인들의 이름은 빼버린다.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히어로 영화다. 그것도 철저한 백인 남성 영웅물이다. 원래의 재판이 흑표당의 바비 실을 끼워 넣음으로써 시카고 시위를 극단주의자들의 폭동으로 그리려 했다면, 영화는 바비 실을 백인 인텔리들의 수다 향연에 양념으로 끼워 넣는다. 영화 첫 장면에 징집되었던 병사들은 마지막 장면에서 애국적 영웅으로 헤이든의 입을 통해 대부분의 히어로 영화들이 그렇듯 원래의 자기 자리로 돌아 온다. 비록 망자 몸이 되었지만 말이다.

영화의 서두, 합법 대 불법의 대결: 램지 클라크(Ramsey Clark) 대 존 미첼(John N. Mitchell)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캐릭터들 간의 대립으로 긴장을 유지하며, 그 대립은 진영 간의 커다란 대립과 진영 내의 작은 대립으로 구성된다. 영화 내의 커다란 대립은 의외로 영화에서는 잠깐 등장하는 전직 법무부 장관 램지 클라크(Ramsey Clark)와 현직 법무부 장관 존 미첼(John N. Mitchell)에 의해 대표된다.

젊은 검사 리처드 슐츠(Joseph Gordon-Levitt 분)는 이제 막 취임한 닉슨 행정부의 신임 법무부 장관 존 미첼의 사무실에 불려간다. 신임 법무부 장관 미첼은 전 존슨 행정부의 법무부 장관 램지 클라크가 닉슨 정부가 등장했음에도 사퇴하지 않고 자신의 법무부 장관 청문회 1시간 전에야 사표를 냈다고 분노한다. 그는 클라크가 비애국적이며, 예의가 없으며(impolite), 매너를 모른다고 비난한다. 미첼은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 기간 시카고에서 발생한 대규모 전국 집회를 '폭동'으로 규정하며 그 핵심 인물들을 연방정부에 대한 공모죄, 반폭동법으로 구속하라고 슐츠에게 지시한다. 슐츠는 조심스럽게 미첼이 제시한 명단에는 서로 처음 보는 사이도 있어서 조직으로 엮기 곤란하며, 반폭동법은 남부 백인 의원들이 주도해 만든 인종차별적 법이며, 클라크 전 법무부 장관은 그러한 시도를 하지 않았다고 자기 의견을 표명한다. 신임 법무부 장관 미첼은 철없는 아이들의 폭동을 눈감아 주는 시대는 끝났으며, 어른들(grown-ups)이 돌아왔으니 질서를 바로잡겠다고 슐츠를 윽박지른다. 여기서 전임 법무부 장관 램지 클라크와 시위대는 똑같이 성숙하지 못하고 예의가 없는 자들로 동일시된다.

램지 클라크(Michael Keaton 분)는 영화 중반에 잠깐 등장하지만, 미첼이 그를 자신의 적대자로 지목한 영화의 첫 장면은 영화 전체를 일관되게 관통하는 메인 플롯의 배경이다. 재임 시절 램지 클라크는 불법 도청에 제한을 가했으며 1968년 민권법 통과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미첼은 불법 도청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민권운동을 탄압했다. 감독 아론 소킨은 클라크를 호기 있는 전직 관료 정도로 다루었지만, 영화가 배경으로 하는 69년 시키고 7인 재판 이전에 클라크는 법무부 장관 퇴임 후 곧바로 반전운동가들을 법정에서 변호했다. 그는 또한 영화에서 변호사의 와병으로 자신을 변호할 수 없었던 흑표당의 공동 당수 바비 실(Yahya Abdul-Mateen II 분)을 법정에서 지원하던 프레드 햄프턴(Kelvin Harrison Jr. 분)이 총에 맞아 죽자 그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위원회의 책임을 맡아 경찰의 무방비 상태의 햄프턴에 대한 총격을 폭로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벌인 인권운동가이기도 했다. 반대로 신임 법무장관 미첼은 닉슨 재선을 위해 불법 정치활동과 정치자금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워터게이트 사건의 주모자와 은폐자의 일원으로 결국 1975년 구속되었다.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의 첫 대립 구도로서 존 미첼과 램지 클라크와 존 미첼의 대립은 시카고 7인에 대한 재판이 형사 재판이 아니라 정치 재판이며, 법과 질서를 지키려는 세력과 법과 질서의 이름으로 그 법과 질서를 파괴하려는 세력, 애국과 애국을 가장한 매국 세력 간의 대결을 상징하는 것이다.

문화 대 정치, 혁명 대 개혁의 대립

진영 내의 대립은 문화혁명을 꿈꾸는 에비 호프만(Sacha Baron Cohen 분)과 정치개혁을 실현하려는 톰 헤이든의 갈등으로 표현된다. 1960년대 전 세계를 휩쓴 학생운동은 중국의 문화혁명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자본주의 경제를 전복하려던 노동운동과 기성 정치 체제를 바꾸려던 혁신 정당들로 대표되는 기존의 운동들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시대에 이골이 난 새로운 세대에 의해 또 다른 기성세대로 낙인찍힌다. 이 새로운 세대는 경제와 정치 대신 문화의 혁명을 원했다. 에비 호프만은 문화혁명을 꿈꾼다. 그에게는 엄숙한 정치보다는 자유분방한 섹스, 아름다운 꽃이 더 중요하다. 반대로 호프만은 바나나 껍질을 길거리에 깔아 체제를 동요시킬 수 있다는 호프만이나 불에 물로 맞서는 대신 불로 맞서자는 그의 동료 제리 루빈(Jeremy Strong)은 공상가일 뿐이다.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이 그린 것처럼 호프만과 헤이든이 실제로 대립 관계였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자살로 끝난 호프만과 성공한 정치인이 된 헤이든의 재판 이후의 삶이 소킨 감독으로 하여금 그들을 영화 속의 대립시킬 동기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호프만과 헤이든의 대립, 그들이 대표하는 문화 대 정치, 혁명 대 개혁은 진영 간 대립을 극대화하기 위한 일시적 긴장일 뿐이다. 마치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사자,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이 용기와 이성, 감정의 분리물인 것처럼 그 둘은 실제로는 동일한 존재를 둘로 나눈 것일 뿐이다. 둘의 장점이자 단점은 감성과 이성이다. 헤이든은 이성적이지만 때론 그 이성은 기능을 상실한다. 법정의 폭군 판사 줄리어스 호프만(Frank Langella 분)에 저항하기 위해 그의 퇴정 시 기립하지 않기로 결의하지만 그의 반사신경을 그의 이성을 패배시키며 그를 자동으로 일으켜 세운다. 동료에 대한 폭행으로 그는 다른 동료들과 자기 이성의 만류를 뿌리치고 대중들 앞에서 "만약 피가 흐른다면 도시 전체에 피가 흐르도록 하자! (If blood is going to flow, let it flow all over the city!)"며 이폭력을 선동한다. 그와는 달리 감성을 대표하는 호프만은 처음부터 재판이 정치 재판임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보여준다. 특히 영화의 가장 중요한 법정 장면, 실은 헤이든을 증인석에 세워야 할지를 결정하는 피고인 측 내부의 모의 법정 장면에서 호프만은 헤이든의 문제점을 그의 언어분석을 통해 명확하게 드러낸다. 변호사 쿤스틀러가 헤이든에게 녹음된 그의 "누가 폭동을 시작했지?"라고 폭동의 주체를 묻자 헤이든은 머뭇거리더니 주격 대신 "우리의(Our)"라는 소유격 대명사로 대답한다. 그가 말한 피는 '우리의' 피였다는 것이다. 그러자 호프만은 헤이든의 "우리의 피가 흐르도록"하자는 말은 "만약 '우리의' 피가 흐른다면, 그 피가 전 도시 위로 흐르도록 하자."는 말이었고, "만약 경찰이 우리를 구타하면, 모든 이들이 그 장면을 보도록 하자는 말"이었다고 해설한다. 호프만은 헤이든이 초안을 작성했고, 미국 신좌파의 출생증명이자 출사표가 된 포트 휴턴 성명서(Port Huron Statement)에서도 헤이든은 소유격 대명사(possessive pronouns)와 모호한 명사 수식어(vague noun modifiers)를 사용하는 패턴이 있다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소킨 감독이 《웨스트 윙》에서 언어의 정확성을 드러내기 위한 문법에 기댄 수사적 대화가 호프만의 입을 통해 드러난 것은 그가 단지 감성을 대표하지만은 않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에서 이성적인 답변을 해야 할 증인석에는 헤이든 대신 호프만이 올라 헤이든을 "애국자"라고 차분하게 설명하고, 감성적 연설을 해야 할 최후진술석에는 호프만 대신 헤이든이 서서 애국을 위해 숨진 병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힘주어 외친다.

헤이든의 시위중 발언 "피가 흐르도록 하자"는 말이 "우리의 피"였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경찰이 시위대를 구타하는 장면을 보여주자는 의미였음을 간파한 호프만

역사의 반복, 소극이 되어버린 소킨식 말장난

보수적인 오스카의 백인 남성 취향과 미국식 애국주의를 고취하면서도 적당히 반전(反戰)평화와 표현의 자유를 언급하며 최근의 리버럴한 할리우드 흐름에 호소하는 소킨 감독의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는 영리하게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본상에 접근하고 있다. 하지만 오스카 레이스에서는 아직 《노매드랜드》에 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적 정권 이양을 거부한 트럼프와 의사당 폭력점거라는 역사적, 정치적 사건이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에게 아직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웨스트 윙》과 《소셜 네트워크》에서 보여준 소킨식의 수다와 수사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에서도 계속된다. 하지만 60년대 말 세계를 뒤흔든 반전 평화운동이란 역사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에서 정치 진영 간 대립으로 《웨스트 윙》의 정치 공학이 되고, 그 역사는 다시 《소셜 네트워크》의 법적 공방이 된다.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고뇌하는 검사, 개인감정에 정치보복을 하려 드는 신임 법무부 장관, 독단적인 판사의 개인만 드러날 뿐, 베트남전과 냉전으로 자신의 세계체제를 유지하려는 미국은 감추어져 있다. 시카고 7 재판이 한창이던 1969년 9월 이후 베트남 민간인 500여 명의 잔혹한 미라이 학살과 진상 은폐 시도가 11월에 폭로된 것도,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과 확전을 기록한 '펜타곤 문서'가 1971년 폭로된 것도, 워터게이트 사건이 1972년 폭로된 것도, 그리하여 마침내 이들 시카고 7인에 대한 항소를 미국 연방정부와 검찰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도 영화는 다루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은 이 모든 맥락을 잘라먹은 채 이들의 미래만 짤막하게 언급될 뿐이다. "내가 온 것은 아들은 아비에게 딸은 어미에게 맞서게 하기 위해서다"라는 마태복음 10장 35절의 예수의 말을 맥락을 떼어 놓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던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당대의 수많은 노력과 두툼한 맥락을 제거하여 부당한 일부 개인을 제외하면 미국 그 자체는 정의로웠음을 역설한다.

마르크스는 《루이 나폴레옹의 브뤼메르의 18일》에서 "모든 위대한 세계 역사적 사변과 인물은 첫 번째는 희극으로, 두 번째는 소극(farce)으로 반복된다"고 말했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은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는 BLM운동을 미국 전역으로 확산시켰다. 그러자 당시 법무부 장관 윌리엄 바(William Barr)는 주의 경계를 넘는 연방 차원의 폭동 선동을 처벌하는 랩 브라운 법(Rap Brown Law) 혹은 반폭동법(Title X: Anti-Riot Ac)을 발동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The Trial of the Chicago 7)은 미국의 베트남 개입과 확전이 한창이던 1968년 8월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를 둘러싸고 반전평화를 외치던 여러 집단의 지도부를 반폭동법으로 구속하려는 새로운 닉슨 행정부의 법무부와 검찰의 시도로 시작된다. 미국에서 1968년의 역사는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드라마 《웨스트 윙》의 작가 아론 소킨이 각본과 감독을 맡은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트럼프 집권과 현직 대통령의 재집권을 위한 폭동 선동이라는 2021년 1월 미 의사당 폭력점거로 더 극적인 영화가 되었다. 하지만 방성구에도 저항했던 역사적 바비 실은 방성구가 채워지자마자 저항을 포기한 영화적 바비 실이 되었고, 역사의 조지 플로이드는 아직도 입이 틀어 막힌 채 "숨을 쉴 수 없다." 미국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한 베트남 확전과 폭격은 "정상의 재건"을 외치며 트럼프가 팽개친 미국의 헤게모니를 다시 주섬주섬 주어들며 대통령에 취임한 바이든의 의회 동의절차를 생략한 시리아에 폭격으로 재현됐다. 냉전의 미국 헤게모니를 실현하려 했던 베트남전과 그 전쟁을 반대했던 반전운동의 비극은 바이든의 새로운 미국 헤게모니 재건과 소킨의 애국주의의 소극으로 반복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스카 작품상과 각본상을 노리며 노골적인 정치드라마, 다큐드라마를 표방한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역사왜곡으로 탈정치적이고 몰 정치적인, 다큐를 코스프레하는 드라마가 되었다. 바로 그 이유로 똑같이 역사를 왜곡한 《그린 북》처럼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아카데미 작품상에 만만치 않은 경쟁자가 될 수도 있다. 미국과 할리우드는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영화적 내러티브로 미화하는데 인색하지 않은 전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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