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사

가짜뉴스 시대의 미디어 해독력(Media Literacy) 1: 정보와 지식의 인식론적 위기

Zigzag 2021. 3. 1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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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주: 가짜 뉴스 혹은 포스트 진리 시대의 진정한 위기는 지식과 정보의 위기, 즉 인식론적 위기(epistemic security)다. 정보 역병이란 인포데믹(infodemic)의 일상 속에서 인간의 미디어 해독력은 급격히 해체되고 있다. 이 글은 잘못된 정보와 한국의 낮은 미디어 해독력을 분석한다. 첫 번째 글에서는 잘못된 정보의 문제와 종류, 그리고 그 기원을 다루며, 두 번째 글에서는 한국의 미디어 해독력 수준과 대응을 다룬다.

가짜뉴스 시대의 '인식론적 안보'(epistemic security) 위기

객관적 팩트와 고의적 허위 정보(disinformation)/잘못된 정보(misinformation)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진 소위 포스트 진리 시대의 진정한 위기는 '국가 안보'나 '사이버 안보' 위기보다 '인식론적 안보'(epistemic security) 위기다. 그리스어로 '안다'라는 뜻의 Episteme는 인식 혹은 지식을 의미한다. 국가안보는 나라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며, 사이버 안보는 사이버 망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라면, 인식론적 안보는 우리의 지식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다. 케임브리지대학 산하 미래지능센터 엘리자베스 제거(Elizabeth Seger)에 따르면 "인식론적 안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실제로 알고 있는지, 근거가 없거나 사실이 아닌 주장을 식별할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의 정보 시스템이 가짜 뉴스와 같은 "인식론적 위협"에 대해 견고한지 여부를 보장하는 것을 포함한다."

코로나 19를 특정 국가의 생화학전의 음모론으로 몰거나, 독감 수준으로 취급하거나, 마스크가 도움이 안 된다거나 하는 잘못된 지식은 지난 1년 세계를 공황에 빠뜨렸다. 코로나 19와 달리 잘못된 정보의 위협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백신은 없다. 대역병(pandemic)은 불시에 우리를 습격해 어느 날 사라지는 간헐적 질병이지만, 정보 역병(infodemic)은 일상적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만성 질병이 되었다.

하나의 중심에서 다수로 퍼져나가는 기존 정보 전달방식과 달리 각자가 잘못된 정보의 슈퍼전파자가 될 수 있는 지금의 언론과 지식 환경은 인식론적 안보 위기를 방어하기 더욱더 힘들게 만들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정보과잉 시대에 주의력 경제(attention economy)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주의력은 관리가 필요하며, 그 주의력을 얻기 위해 수많은 정보제공자가 경쟁하는 희소성이 높은 자원이 되었으며, 동시에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점차 주의력을 갖기 힘들어졌다.

잘못된 정보(misinformation)와 허위 정보(disinformation)의 종류와 미디어 해독력(media literacy)

'가짜 뉴스'는 정확하지도 유용하지 않은 용어다. 정치인이나 공인들은 종종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보나 뉴스를 '가짜 뉴스'로 낙인찍기도 하기에 부정확한 용어다. 나아가 오늘날 잘못된 정보의 대부분은 명확한 허위 정보보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넘나들거나, 둘 사이에 발을 걸치거나, 둘을 교묘히 섞은 경우가 많기에 '가짜'라는 용어는 이들 정보를 식별하는 데 도움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혼란만 가중한다. "온라인의 잘못된 정보와 허위 정보에 맞서기 위해" 구글 뉴스랩이 주도해 만든 First Draft의 클레어 워들(Claire Wardle)은 잘못된 정보와 허위 정보를 아래의 7가지로 분류한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제목의 클릭 장사(clickbait)는 물론 사설을 통한 여론 유도에서부터 최악의 허구적 내용(fabricated content)까지 이러한 정보들은 단지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뿐만 아니라 전통 매체들에 의해서도 재생산된다. 인식론적 안보 위기는 팩트와 페이크를 구별할 수 있는 미디어 해독력(media literacy)의 저하로 이어진다. 미디어 해독력은 다양한 환경에서 미디어에 접근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미디어 정보의 창조를 가능케 하는 능력과 실천을 포함한다. 미디어 해독력은 어찌 보면 진실 추구와 보도, 진실 보도 시 개인에 대한 피해의 회피, 독립성, 책임성과 투명성이라는 저널리즘의 원칙을 개인적으로 체화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우리는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특정 뉴스에 반응하고, 이를 공유하고, 때론 의견을 표명하는 1인 저널리스트와 같은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글이나, 포털 사이트, 소셜 미디어들의 알고리즘으로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뉴스들을 주로 접하는 정보 고립 혹은 필터 버블(filter bubble)에 갇혀 자신이 접하는 뉴스가 팩트인지 아니면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의 공유된 신념인지 점점 구별하기 힘들게 된다.

잘못된 정보와 가짜 뉴스의 생산과 유통, 소비

잘못된 정보는 그 생산과 배포, 소비의 측면을 함께 고려해야 전체적인 그림을 얻을 수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실존위험연구센터(Centre for the Study of Existential Risk, CSER)가 발간한 '민주 사회에서 현명한 의사 결정 위협에 대한 대처'는 미디어 해독력과 현명한 결정을 방해하는 제삼자를 적대자(Adversaries)와 실수자(Blunderers)로 나누었다. 적대자는 정보이용자를 속이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하거나, 혹은 교란할 악의를 가지고 정보 습득과 배포과정에 개입하는 자를 의미한다. 실수자는 정보 수신자에게 잘못되거나 부실한 믿음을 줄 수 있는 좋은 의도 혹은 우발적 행동을 하는 자이다. 예컨대 부작용과 의료 당국의 권위를 경계하는 어떤 의료 전문가의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발언이 특정 집단에 의해 부풀려질 수 있다. 이러한 우발적 혹은 좋은 의도를 가진 간섭의 선동자(instigators)들이 실수자에 속한다.

클레어 워들의 7가지 잘못된 정보는 편협한 신념에 입각해 특정 집단을 배제하기 위한 '혐오 연설'(hate speech)과 주관적 신념 혹은 선택적 정보의 강조로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선전(propaganda)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다. 이 둘은 특정 집단 혹은 신념을 강조하는 정파적(partisan)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CSER의 적대자와 실수자 외에도 정보와 뉴스의 선전자(Propagators)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적지 않은 매체들은 사설, 칼럼 등을 통해 자신들의 특정 신념과 의견을 강조하기 위해 팩트를 섞고 이용한다. 독점적 편집권에 기초한 기사와 사진 배치, 심지어 기사를 통해서도 팩트는 정파적 신념의 하인 역할을 한다.

정보와 뉴스의 이러한 공급자 외에도 오늘날 유통방식의 다양화, 다중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일 대다수, 혹은 방송사나 신문사 같은 콘텐츠 생산자는 오늘날 포털이나 뉴스 유통망, 소셜 미디어, 봇(bot) 등에 의존하거나, 이들과 경쟁하거나 혹은 압도되기도 한다. 배포자와 유통망의 다양화와 다중화는 잘못된 정보의 개입 가능성을 더 높였다. 포털과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은 잘못된 정보의 확산과 신념화를 촉진한다. 사람들이 좋아하고 논평하고 공유한 내용을 기반으로 사람들의 피드에 나타나는 내용을 결정하는 코드로서 알고리즘은 의식적으로 알고리즘을 속이거나 저항하지 않는 한 사람들을 자신과 유사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좁은 공동체 안에 가두어 놓는다. 따라서 잘못된 정보는 그 공동체 안에서 확대 재생산되고 사회의 민주적 토론과 의사결정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공급과 유통망/유통방식과 함께 인간은 기본적으로 정보 과잉으로 주의력이 희소가치가 된 시대에 잘못된 정보에 빠지기 쉬운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서사 혹은 내러티브로 세상을 이해한다. 인간은 무작위적인 정보와 정보 사이의 틈을 인과관계로 구성하며, 그 정보들 간의 틈을 내러티브로 채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들을 중심으로 취합하며, 그렇지 않은 정보들은 누락시키는 편향이 있으며, 이러한 인지론적 편향은 자신의 신념을 공고히 하는 정보만을 인식하는 확증편향으로 이어진다. 나아가 인간의 주의력은 이성보다 감정과 친근감에 더 쉽게 소비될 수 있기에 팩트보다는 선정적 기사, 낚시성 기사, 감정적 기사에 더 쉽게 끌린다.

미 의회 의사당 폭력 점거 와중에 의사당 앞에서 셀피를 찍으며 소셜 미디어로 퍼나르는 트럼프 지지자들. 출처: AP News

지난 1월 미 의사당 폭력점거는 잘못된 정보가 단지 배포와 공유에서 끝나지 않고 민주주의의 기본을 파괴하는 폭력이란 행동으로 귀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 비극적 사례다. 각종 소셜미디어로 음모론 등의 잘못된 정보가 공유·확대되고, 나아가 실시간으로 수백 명의 개인에 의해 전 세계로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장면은 잘못된 뉴스와 미디어 문맹력의 종합적 결과물이다. 가짜 뉴스 시대의 인식론적 안보 위기는 개인의 가짜 뉴스 오염으로 끝나지 않으며, 건강한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잘못된 정보에 빠지지 않고 미디어 해독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뉴스 공급자, 배급자와 배급방식, 뉴스 소비자의 정보와 뉴스 생산과 유통, 소비를 모두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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