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사

가짜뉴스 시대의 미디어 해독력(Media Literacy) 2: 대한민국의 낮은 미디어 해독력

Zigzag 2021. 3. 20.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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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주: 가짜 뉴스 혹은 포스트 진리 시대의 진정한 위기는 지식과 정보의 위기, 즉 인식론적 위기(epistemic security)다. 정보 역병이란 인포데믹(infodemic)의 일상 속에서 인간의 미디어 해독력은 급격히 해체되고 있다. 이 글은 잘못된 정보와 한국의 낮은 미디어 해독력을 분석한다. 첫 번째 글에서는 잘못된 정보의 문제와 종류, 그리고 그 기원을 다루며, 두 번째 글에서는 한국의 미디어 해독력 수준과 대응을 다룬다. 필자 주: 가짜 뉴스 혹은 포스트 진리 시대의 진정한 위기는 지식과 정보의 위기, 즉 인식론적 위기(epistemic security)다. 정보 역병이란 인포데믹(infodemic)의 일상 속에서 인간의 미디어 해독력은 급격히 해체되고 있다. 이 글은 잘못된 정보와 한국의 낮은 미디어 해독력을 분석한다. 첫 번째 글에서는 잘못된 정보의 문제와 종류, 그리고 그 기원을 다루며, 두 번째 글에서는 한국의 미디어 해독력 수준과 대응을 다룬다.

유럽은 미디어 해독력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그러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에 여러 자료를 통해 추정할 수밖에 없다. 앞선 글에서 살펴보았듯이 미디어 해독력의 제고는 정보와 뉴스 생산자, 유통망과 유통방식, 그리고 정보 이용자의 세 측면의 개혁이 필요하다. 이 글은 우선 뉴스 생산자로서 한국 언론의 낮은 신뢰도와 잘못된 정보의 주요 진원지, 최근 소셜미디어의 부상과 잘못된 정보, 그리고 한국 뉴스의 주요 유통자로서 포털과 그 유통방식으로서 알고리즘의 문제점, 마지막으로 뉴스 소비자 측면에서 미디어 해독력 강화 교육의 필요성을 다룬다.

대한민국 언론 신뢰도 세계 최하위

미디어 해독력이 높기 위해서는 정보를 생산하는 미디어 자체에 대한 신뢰도와 미디어의 건강한 기능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옥스퍼드대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디지털 뉴스 리포트>를 보면 한국은 조사대상 약 40개국 중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이는 언론 신뢰도 4년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핀란드와 비교해 약 1/3 수준이며, 조사대상국 평균 38%보다도 훨씬 낮은 수준이다.

뉴스에 대한 신뢰도 2017~2020. 출처: Reuters Institute, Oxford University, Reuters Institute Digital News Report 2017-2020

한국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이유는 뉴스가 권력을 감시하고 조사하는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아래 그래프가 보여주듯 한국인의 21%만이 언론이 권력 감시 기능에 대해 동의를 표시했으며, 이는 일본과 헝가리에 이어 끝에서 3번째 수준이다.

출처: Reuters Institute, Oxford University, Reuters Institute Digital News Report 2019

국민과 언론 사이의 언론의 와치독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인식차는 크다. 2019년 <디지털 뉴스 리포트>에 따르면 언론의 권력 감시와 견제 역할에 대한 질문에 기자들의 86%가 동의했지만, 일반인들은 단지 21%만 동의했을 뿐이다.

언론의 권력감시와 견제 역할에 대한 기자와 일반인들의 동의 비교. 출처: Reuters Institute, Oxford University, Reuters Institute Digital News Report 2019

언론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언론 자신도 인식하고 있다. 한국기자협회의 2020년 조사에 따르면 기자들은 ‘국민이 언론에 대해 얼마나 신뢰한다고 생각하느냐’라는 항목에 72.2%가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 국민적 불신의 가장 커다란 원인을 기자들은 검증 없는 받아쓰기(47%), 언론 정파성(46.2%), 자극적 선정적인 보도(31%)로 꼽았다.

한국 언론은 허위정보의 진원지

한국의 미디어 해독력이 낮으리라 예상되는 지점은 언론이 팩트를 전달하는 매체라기보다는 허위정보의 주요 진원지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0 한국>에 따르면 한국의 대중은 정치인에 이어 언론을 두 번째로 높은 허위정보 출처로 지목했다. 세계 각국의 평균을 볼 때, 허위정보 소스로서 언론의 비중이 정치행동가나 일반 대중과 비슷했지만, 한국은 언론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또한 한국에서는 언론이 허위정보 소스로 1, 2위를 다투고 있다.

출처: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0 한국 출처: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0 한국

하지만 위의 조사는 인식 조사이기 때문에 실제로 언론이 허위정보를 어느 정도 유포하는지에 대한 척도가 될 수는 없다. 충분치는 않지만,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신청과 그 구제율, 그리고 정정 보도 내용을 통해 한국 언론이 어느 정도, 어느 수준의 허위정보를 유포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언론중재위원회에 따르면 2019년 조정신청은 모두 3,544건이며, 이 중 정정 보도 청구가 45.8%, 손해배상 청구 35.6%, 반론 보도 청구가 14.3% 순이었다. 이 중 계류 중이 사건을 제외한 나머지 사건 중 피해가 구제된 사례가 69.2%로 10건 중 7건이었다. 이는 언론의 오보 혹은 허위 정보 책임이 작지 않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정정 보도가 이루어진 경우를 살펴보면, 2019년 주요 중앙일간지들은 총 69건의 정정보도를 했다. 그중 단순표기 실수가 55%로 1위였으며, 엄중한 오류로 볼 수 있는 사실확인, 즉 잘못된 팩트가 전체 38%를 차지했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 허위 정보의 주요 경로

지난 몇 년만 살펴보더라도 세계는 물론 한국의 언론 환경은 급속하게 변하고 있다. <디지털 뉴스 리포트>에 따르면 2016년 뉴스 소스로서 71%를 차지했던 TV의 비중은 2020년 63%, 인쇄 매체는 28%에서 18%로 급속하게 하락했으며, 소셜미디어의 비중은 같은 기간 32%에서 44%로 신장했다.

2016년과 2020년 한국인의뉴스 소스. 출처: Reuters Institute, Oxford University, Reuters Institute Digital News Report 2016, 2020

온라인이 뉴스 소스로,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접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지면서, 각종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허위 정보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이미 2016년 대선과 올해 초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사당 폭력점거에서 드러나듯 미국 페이스북은 가짜 뉴스 전파의 진원지이다. 트위터가 허위 정보의 주요 진원지로 지목된 일본과 반대로 트위터는 한국에서 허위정보가 가장 낮은 플랫폼으로 인식되고 있다. 전 세계의 흐름과 달리 한국은 특이하게 유튜브가 주요 허위 정보의 진원지로 주목받고 있다.

출처: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0 한국

이건호 대구가톨리대 교수 연구팀의 유튜브 코로나 19 관련 인기 동영상 연구에 따르면, 37.1%가 잘못된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개인 이용자가 제작한 동영상의 68.1%가 오해의 소지가 있는 내용이 들어갔으며, 언론사가 제공하는 동영상도 10%가 잘못된 정보를 담고 있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백신에 마이크로 칩이 담겨 있다거나 음모론과 같은 잘못된 정보를 담은 동영상일수록 인기가 높았으며, 유용한 정보를 담은 동영상의 약 1.47배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lt;디지털 뉴스 리포트 2019>에 따르면 외국의 유튜브 이용률은 높은 연령층일수록 낮아져 55세 이상 연령대에서 22%에 불과했다. 하지만 한국은 55세 이상에서 유튜브 이용률은 42%로 유튜브가 중장년층의 뉴스매체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20년 유튜브는 한국인이 가장 애용하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으로 2019년에 비해 7%의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유튜브가 이렇게 한국에서 뉴스 소스로 애용되는 이유는 유튜브 특유의 강력한 알고리즘과 한국의 고유한 뉴스 소비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2020년 한국 소셜 미디어 플랫폼 순위. 출처: Reuters Institute, Oxford University, Reuters Institute Digital News Report 2020

낮은 미디어 해독력 환경과 알고리즘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핀란드 등의 국가와 한국을 비교할 때 큰 차이점 중의 하나는 뉴스 소비 환경, 특히 뉴스 소비경로의 차이다. 아래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0>에 따르면 한국은 뉴스 사이트에 직접 접속하는 비율이 4%로 가장 낮지만, 핀란드는 63%로 가장 높았다. 반대로 뉴스를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과 검색엔진이나 뉴스 유통 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율은 한국이 73%로 가장 높았고, 반대로 핀란드는 16%로 가장 낮았다.

이러한 차이는 단지 뉴스를 찾는 시발점의 차이 이상을 의미한다. 주지하다시피 포털 사이트나 뉴스 유통 서비스는 알고리즘을 이용한다. 이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뉴스는 뉴스 이용자의 기존 검색과 구독, 열독 등 패턴과 경향을 읽어 관련 뉴스를 중심으로 추천하거나 보여준다. 이 경우 이용자는 자신의 관점과 다른 뉴스들로부터 스스로 필터 버블의 차단막을 만듦으로써 팩트의 확인보다는 기존 신념의 확인만 할 가능성이 크다. 이 알고리즘은 전통 매체가 독점한 우선순위의 편집권을 약화하지만 대신 팩트 보다는 자신의 주관적 신념과 생각이 비슷한 집단의 진영 의식을 강화할 위험이 크다. 실제로 한국에서 '나와 같은 관점의 뉴스' 선호는 44%로 <디지털 뉴스 리포트> 조사 대상 40개국 중 3위로 각국 평균 28%보다 16%나 높았으며, 나와 반대되는 관점의 뉴스에 대한 선호는 4%로 다른 나라들에 비해 극히 낮았다.

출처: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0

포털이나 뉴스유통업체의 알고리즘은 정보홍수 시대 희소자원이 된 주의력(attention)을 손쉽게 흡수하는 주의력 경제에 따라 설계되며, 그 설계는 편향적인 필터 버블을 만들고, 그 필터 버블은 다시 합리적 판단을 제한하며 확증편향을 강화한다. 이 필터 버블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주관적 신념에 부합하는 뉴스와 유사한 생각을 가진 집단의 의견을 많이 노출시킴으로서 다수의견으로 보이게 하는 속임수를 내장하고 있다. 나아가 알고리즘은 음모론, 진영에 입각한 혐오 연설과 같은 극단적 의견을 자칫 주류 의견으로 보이게할 수 있다.

이상에서 보듯 우선 한국의 경우 언론의 신뢰도가 낮고, 그 언론이 만들어 내는 뉴스 신뢰성 또한 낮다. 뉴스를 전달하는 플랫폼이나 뉴스 접근의 시발점과 뉴스의 접근과 보급 경로 또한 주관적 편향을 강화하는 환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디어 해독력은 상당이 낮을 수밖에 없다.

미디어 해독력과 민주주의

유럽국가들을 상대로한 미디어 해독력 지수(MLI) 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언론에 대한 신뢰가 낮은 국가일수록 미디어 해독력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MLI에서 상위에 랭크된 핀란드, 덴마르크, 스웨덴은 뉴스접근의 시발점으로 뉴스 사이트 직접 접속율이 높으며, 포털이나 뉴스유통매체 접근이 낮으며, '나와 같은 의견의 뉴스'에 대한 선호도가 낮은 나라들이다. 모두 한국과 반대 경향을 가진 나라들이다.

2021년 미디어 해독력 지수. 출처: European Policies Initiative (EuPI) of the Open Society Institute

MLI 조사가 시작된 2017년부터 핀란드는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핀란드의 높은 미디어 해독력은 우연이 아니다. 러시아와 인접한 핀란드는 다른 나라들보다도 외국 정부로부터의 잘못된 정보와 가짜뉴스에 대한 우려가 크다. 특히 2014년 크림반도 합병 이후 러시아의 핀란드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범람하자, 핀란드 정부는 각 부처 간 협력을 통해 미디어 해독력 강화를 위한 다중해독력(multi-literacy) 정책 강화를 발표했다. 교육부를 중심으로 '좋은 미디어 해독력 계획'을 수립하고 발표하였다. 이 계획은 평등과 다원주의, 협력, 투명성을 포함한 좋은 미디어 해독력을 위한 가치를 설정하였다. 핀란드의 미디어 해독력 교육은 교육부는 물론 범부처 차원과 비영리단체와의 협력에 기초하며 다양한 프로그램과 교재를 개발하였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만의 미디어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각종 잘못된 정보들을 구별한다. 예컨대 학생들은 선동에서부터 클릭 낚시, 풍자에서부터 음모론, 의사 과학에서부터 정파적 보도, 허위 기사 작성부터 우발적 오보까지 잘못된 정보들을 구별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미디어 해독력 교육을 시행하고 있는 나라들의 대부분, 이 교육의 뿌리는 시민교육 혹은 민주시민 교육이다. 즉, 미디어 해독력은 건강한 민주주의 실현의 기초이다. 이러한 교육에 근거해 핀란드 정부는 "핀란드는 세계에서 최고의 선거를 가진 나라'라는 선거 캠페인 광고를 내걸기도 했다.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자신이 선호하는 의견이 옳은지 검토하고, 정보의 종류와 질 및 내용을 분류하며, 나아가 건강한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민주주의 가장 기본인 건전한 의사 형성과 의사결정에 필수적인 과정이다. 한국도 미디어 해독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팩트체크 없고 취재 없는 기사와 정파성과 진영을 위한 팩트의 포기 같은 언론의 개혁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와 별도로 뉴스에 대한 접근의 시발점을 알고리즘에 의존하는 포털에서 벗어나야 하며, 동시에 포털의 알고리즘 구성에 민주적 참여가 있어야 하며, 그리고 미디어 해독력 교육을 정식 교과과정에 포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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