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주: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퇴와 동시에 그의 지지율이 치솟고 있다. 윤석열은 총장직 사퇴를 사직서 제출이 아닌 기자회견의 형태로 함으로써 향후 정치 행보를 노골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과연 그의 지지율은 반짝 현상일지 아니면 지속 가능한 것인지를 과거 한국 대통령 선거사에서 명멸했던 주요 번외 후보들을 통해 분석하고자 한다. 첫 번째 글에서는 조봉암, 김대중, 정주영을 다룰 것이며, 두 번째 글에서는 이인제, 노무현, 정몽준, 문국현을, 그리고 세 번째 글에서는 고건, 반기문, 안철수 그리고 윤석열을 다룬다. 특히 번외 후보가 성공하기 위한 권력의지, 조직 기반, 바람, 비전의 4 조건을 중심으로 각각의 번외 후보 사례들을 분석한다.
고건, 행정의 달인이지만 정치 초보인 안이한 오버독의 퇴장
제17대 대선 2년 전을 돌이켜 보면 고건은 관선과 민선 서울시장, 장관 3회, 국무총리 2회로 누구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대선의 오버독이었다. 참여정부 총리 시절 그는 감염병 사스 방역,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등 굵직한 사안을 안정적으로 처리해 높은 국민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당시 여권에는 정동영이 유력한 후보로 있었지만, 야권 후보들과의 대결에서 승산을 장담할 수 없었기에 고건은 여권 내에서 훌륭한 대안으로 평가되었다. 실제로 그는 2004년부터 2006년 5월까지 여론조사에서 계속 수위를 지켰다.
그의 몰락은 그의 무선택 아니 그의 선택하지 않는 선택의 결과였다. 2004년 탄핵 역풍에 힘입어 신생 정당 열린우리당은 과반을 차지하며 압승했지만, 내분으로 지리 멸멸하며 재보궐 선거에 연이어 패했고, 2006년 5월 지방선거 전망도 밝지 않았다. 열린우리당은 고건에게 지방선거 참여를 기대했지만, 그는 거부했고, 결과적으로 열린우리당은 전북에서만 승리했을 뿐 나머지 전국 광역자치단체장을 모두 다른 당에 넘겨주며 참패했다. 열린우리당의 몰락은 그의 몰락의 서막이었다. 함께 진흙탕에 들어가 전투를 선택하는 대신 그는 참여의 선택을 거부하고 꽃길만을 꿈꿨다.
2005년 11월 리서치앤리서치 조사에서 42%를 넘었던 고건의 여론 지지율은 2005년 6월 갤럽 조사에서 26.7%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24.4%)와 이명박 서울시장(22.8%)을 간신히 따돌릴 정도로 떨어졌다. 그리고 갤럽의 같은 해 10월 조사에서는 이명박 25.1%, 박근혜 20.5%에 이어 고건은 18.9%로 추락했다. 그리고 그가 출마 포기를 선언한 2007년 1월 그의 지지율은 5% 선에 그쳤다.
주어진 행정과제는 달인처럼 처리했던 고건이었지만, 그 과제를 기획하고 던지는 정치인으로서 고건은 초보였다. 선택하지 않고, 모험하지 않고, 결단하지 않는 정치인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없고, 국민들은 그런 정치인과 함께 모험하려 들지 않으며, 그런 정치인의 결단을 신뢰하지 않는다. 또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등 범여권과 연대를 통해 조직기반을 확대할 수 있었음에도 그는 스스로 그 기회를 걷어찼다. 준비된 행정가는 정책을 주워 삼킬 수는 있지만, 준비 안 된 정치인은 정치의 비전을 제시할 수 없다. 그는 새 정치만을 입에서 우물거렸을 뿐 그것이 무엇인지 보여주지 못했다. 오버독의 위치에서 최종적 승리를 거머쥐는 대신 그는 링밖에서 주어진 그 오버독의 위치를 링 안에서도 고스란히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오류를 범했다. 그는 2년간 여론조사의 수위를 차지하다 쓸쓸히 퇴장한 최초의 정치인이었다. 그에겐 권력의지도, 조직기반도, 바람도, 비전도 없었다. 결국 그는 문국현처럼 현상도 만들어내지 못했으며, 그가 누린 여론조사 우위는 사상누각에 불과했다.
반기문, 얻어 걸린 오버독의 거품
노무현 정부는 지속해서 유엔사무총장에 한국인을 앉히기 위해 많은 외교적 노력을 벌였다. 홍석현 전 중앙일보 사장, 당시 주미대사는 노골적으로 최초의 한국인 유엔사무총장에 대한 욕망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는 소위 X파일로 97년 대선 개입 사실이 드러나면서 궁지에 몰리게 됐고, 결국 한국 몫으로 돌아온 유엔사무총장 자리는 뜻하지 않게 외무장관 반기문에게 돌아갔다.
반기문은 퇴임을 앞둔 2016년 본격적인 대선 출마를 고민하며, 이미 2006년 5월부터 반기문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국내 모임들이 비밀리에 만들어졌다. 2016년 5월 여러 여론조사에서 반기문은 최저 19%, 최고 38%로 문재인과 안철수를 압도하고 1위를 차지했다. 그는 2017년 1월 귀국 후 1월 25일 본격적인 대선 행보에 나섰다. 바른정당, 손학규, 박지원 등 그는 대선후보로 자신을 추대할 수 있는 정치 세력들을 거의 무차별적으로 만났다. 그러나 일주일 뒤인 2월 1일 전격적으로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다.
유엔사무총장이란 직함으로 국내 정치권에 연착륙하려 했던 그는 귀국 날 공항에서부터 경착륙했다. 공항철도 표를 끊으면서 만 원짜리 두 장을 한꺼번에 지폐 투입구에 넣는 장면, 국산 생수 대신 에비앙을 사는 장면, 애국가가 울릴 때 가슴에 손을 얹는 대신 묵례를 하는 장면은 사소한 행동 혹은 실수였지만 서민들에게 이질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는 위안부 문제나 사드에 대해서도 모호한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러한 사소한 실수와 '기름 장어'같은 그의 모습은 실망으로 번졌다. 그가 대권을 선언한 1월 25일 그의 지지율은 이미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에 비해 10%나 뒤지고 있었다.
고건처럼 반기문에겐 권력의지도, 조직기반도, 바람도, 비전도 없었다. 고건이 안이했다면, 반기문은 아예 대권을 노릴만한 준비 자체가 되어 있지 않았다.
비정치적 현상으로서 안철수, 모호한 오버독
컴퓨터 백신 V3로 알려진 기업인 안철수는 2009년 무릎팍도사 출현 이후 선풍적인 국민적 인기를 얻게 된다. 정치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어떤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기에 그는 모든 당에 신선한 정치 아이템이었다. 기존의 번외 후보들의 신선함은 새로운 정치에서 오는 것이었지만 안철수의 신선함은 비정치로 정치에 접근하는 것이었다. 그는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시사했지만 불분명한 이유로 출마 선언까지 가진 않았다. 그는 박원순 후보로 단일화를 한 것도, 사퇴한 것도 아니었다. '간철수'라는 그의 별칭처럼 실질적으로는 서울시장 출마를 간만 보며 저울질하다 그만둔 모양새였다.
그가 다시 정치의 문을 두드린 것은 <안철수 생각>이란 책을 출판하면서부터였다. 출판 열흘 만에 30만 부가 팔린 이 책의 판매 부수는 비정치적인 정치인 안철수에 대한 기대의 반영이었다. 그는 2012년 9월 19일 "국민이 선택하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됩니다"란 대선 출마 선언을 발표한다. 그러나 그 제목처럼 그는 새로운 변화를 제기하는 대신 국민에게 변화의 선택을 맡겼다. 그의 출마선언문은 풋풋했지만, 내용은 공허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출마를 선언하기 전인 8월이 그의 지지율이 가장 높았다. 그의 출마 선언, 즉 그가 기존의 비정치적 정치인에서 정치적 정치인 선언을 하는 순간 그의 내리막길은 본격화됐다.
2012년 안철수는 현상이었다. 그 현상은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과 그의 정치적 모호함에서 오는 현상이었다. 그 때문에 기존 정당들이 자신들의 후보를 정하고 대열을 정비하는 순간 그 현상은 풀이 꺾일 수 있었으며, 안철수가 정치를 선언하는 순간 그 현상은 그 자신을 일으켰던 근원을 제거하는 역설적인 현상이었다. 지지율이 떨어지자 안철수는 단일화 협상에 임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 협상은 더더욱 안철수 현상의 기반을 약화했다. 그는 결국 11월 23일 불출마 선언을 한다. 적어도 2012년 안철수에겐 권력의지가 부족했다. 그는 출마 선언 첫날부터 완주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 그 질문에 안철수의 답변은 시간이 지날수록 모호했다. 또한 안철수가 일으킨 바람으로서 안철수 현상은 비정치인 안철수에 대한 정치적 기대였고, 그가 정치참여를 선언하는 순간 그의 발목을 잡을 현상이었다. 그와 부인의 다운계약서 파동은 안철수 현상의 일부였던 깨끗한 이미지에 상처를 냈다. 조직적으로도 그의 진심캠프와 네트워크는 정치선거를 치를 준비가 되지 않은 미흡한 수준이었다. 대선 캠프 자체가 대선 출마 전은 물론 출마 후 1주일 동안 제대로 구성되지 않았을 정도다. 그의 캠프가 발표한 비전선언문이나 안철수의 약속은 종류는 많았지만, 문재인 캠프의 공약과 질적 차이가 없었으며 많은 점에서 모호했다. 그는 노무현의 언더독에 대한 공감과 다른 편의 오버독에 대한 기대를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데 실패했고, 그 실패는 비정치적 안철수 현상의 시작부터 내재한 실패였다.
윤석열, 흥행카드일까 아니면 불쏘시개일까?
윤석열은 3월 1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다른 기관으로 이양하는 구상에 대해 비판했다. 그의 인터뷰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내용상 정치선언이었다. 3월 1일은 휴일로 공직자인 그의 정식 근무일이 아니었고, 통상적으로 검찰총장이 언론과 장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3시간이 넘는 대검찰청 총장실에서의 인터뷰(+ 별도 통화)는 드문 경우며, 그 내용이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과 국민에 대한 호소라는 점에서 그 인터뷰는 명백한 정치선언이다. 그로부터 사흘 뒤인 3월 4일 그는 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하며 "어느 위치에 있던지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보호하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며 실질적 정치선언을 했다.
그의 정치선언이 특정 정당 가입이나, 창당 혹은 연대를 의미할지, 나아가 2022년 5월 대선을 앞두고 직접 선수로 뛰겠다는 것인지 혹은 둘 다인지 아직은 불분명하다. 그간 정치인들을 지속해서 접촉해온 그의 행보로 볼 때 적어도 그의 정치참여는 확실해 보인다. 더구나 총장 사퇴 후 곧바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에 대해 검찰의 직접 수사를 암시한 그의 발언은 다분히 정치적이며, 검경수사권 조정을 통해 경찰 수사 영역이 된 부분에 검찰 직접 수사를 암시한 것은 정치인들의 현안 발언과 다를 바 없다.
윤석열이 직접 대선에 뛰게 된다면 그가 넘어야 할 산은 한둘이 아니다. 그는 검찰총장까지 지냈기에 언더독이 아니며, 따라서 노무현이 성공했던 언더독 전략을 사용할 수 없다. 지금 그가 외치는 국민의 권익보다는 검찰 권력에 대한 견제심리가 아직 더 강한 것이 사실이며, 그가 언더독 전략을 사용할 경우 검사들 룸살롱 사건 불기소처럼 그의 총장 시절 제 식구 감싸기와 같은 역풍을 맞을 수 있다. 그는 정치인으로서는 아직 다크호스지만 오버독의 위치에 있다. 그는 그 이전의 오버독들이 저질렀던 안이함, 준비 부족, 모호함의 오류를 저지르기 매우 쉬운 위치에 있다. 그가 만약 대선 후보로 나선다면 그 역시 권력의지, 조직 기반, 바람, 비전의 4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는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 수사 과정에서 상부와 갈등하고, 이후 보복성 좌천을 당했음에도 퇴직하지 않고 버팀으로써 뚝심을 보여줬다. 그러나 공무원으로서 뚝심이 반드시 권력의지를 표현하는 것은 아니며, 그의 권력의지는 아직 블랙박스 상태다. 조직 기반과 관련해 그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현존하는 거대 여야의 바깥에서 군소 세력들을 규합하는 제삼지대 빅텐트 형성, 제1 야당에 합류, 혹은 서울과 부산 재보선 이후 예상되는 야권 정계개편에 합류하는 것이다. 그 어느 것도 현재로서는 만만치 않다. 야권에 뚜렷한 대권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정치 경험이 없는 윤석열은 다분히 흥행의 메인 카드가 되기보다는 흥행의 불쏘시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조직 기반과 별도로 그가 바람을 일으키거나 바람을 탈 가능성을 현재로서는 배제할 수 없다. 현재 그에 대한 지지는 주로 보수 야당 지지자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며, 이는 현 정부와의 갈등과 빈사 상태의 야권 후보라는 반사이익에 따른 것이다. 그가 지금 타고 있는 바람은 아직은 지속 가능하지 않은 일시적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비전은 아직 헌법 질서 수호, 국민권익 옹호, 자유민주주의 수호 외에는 나온 것이 없다. 이 비전에는 아직 새로운 것도, 구체적인 것도 없다. 더욱이 그가 언급한 이 비전은 그의 재임 시절 검찰 범죄에 대한 그의 태도, 부인과 장모를 둘러싼 의혹 등으로 부정될 수도 있다.
윤석열은 번외 후보가 승리하기 위한 4조건 중 그 어느 것도 '아직' 충족하지 못했다. 그 '아직'이 앞으로도 그럴 것인지는 지금 예단할 수 없다. 다만 그가 지금 누리는 높은 여론지지율은 모든 대선 지지자들이 경험했던 조정국면을 거치 않은 날 것이다. 정치인으로서 그의 미래는 불투명하며, 대선후보로서의 미래는 더더욱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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