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과 음식

도넛의 역사: 네덜란드의 빈곤의 음식에서 미국 현대사와 함께한 간식으로의 변신

Zigzag 2021. 12. 24.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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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자 주: 재래시장의 한 귀퉁이는 늘 "도나스"라 불리는 설탕 범벅의 튀김 간식을 파는 가게들이 차지하곤 했다. 온갖 체인점과 갖은 기교를 부린 현대식 도넛들 사이에서도 이런 전통적인 도나스들은 아직도 생존하고 있다. 네덜란드인들이 곤궁한 시기에 허기를 없애기 위해 만들었던 기름 케이크라는 의미의 올리쾨켄(Oliekoecken)은 미국으로 건너가 제국의 건설과 함께 민족주의적 신화에 의해 포장된 도넛으로 바뀌었다. 도넛은 험난한 파도 속에서 고래를 잡던 포경선 선원들이 남는 기름으로 튀기던 반죽, 1차 대전의 끔찍한 전쟁의 와중 참호 속에서 손발을 떨던 병사들에게 나누어지던 튀김 반죽이라는 미국 근현대사와 함께 하면서 미국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튀긴 반죽은 그러나 네덜란드에서의 탄생이 그렇듯 늘 곤궁 그리고 역경과 뗄 수 없다. 미국 원주민 나바호족은 1864년 자신들이 살던 애리조나에서 쫓겨나 300마일의 '대장정'(Long Walk) 끝에 뉴멕시코주 보스케 레돈도 (Bosque Redondo)에 도착했지만 이 황량한 땅은 자신들이 기존에 먹던 콩과 야채 등의 경작을 허용하지 못했다. 원주민의 전통음식으로 알려진 튀김빵(frybread)은 백인 정부가 나눠주던 밀가루를 이들이 재탄생시킨 것이다. 이 튀김빵은 원주민들에게 허기를 해소해주었지만 동시에 비만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것은 미국 원조 물자였던 밀가루 덕에 한 때 웬만한 학교 앞 골목길을 차지하던 도나스가 "불량식품"의 명단에 올랐던 우리네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글은 BBC Veronique Greenwood의 12월 20일 자 기사 Doughnuts: The fried treat that conquered the modern world의 번역으로 도넛의 역사뿐만 아니라 이 빈곤의 음식이 어떻게 미국 현대사와 어떻게 어떤 내러티브로 연결되어 있는가를 분석하고 있다.

설탕을 묻힌 도넛들. 사진: Lauri patterson

도넛: 현대 세계를 정복한 튀긴 간식

도넛은 네덜란드 정착민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고 굶주림을 없애는 긴축 식품으로 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랑을 받는 국민 간식이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에는 도넛(doughnut)을 위한 사랑스러운 장소가 있다. 푹신한 질감, 바삭바삭한 유리 같은 표면, 도넛을 끊을 수 있을 정도로 달콤하지만 결코 그렇지 못하거나 적어도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달콤함. 빵집에서 도넛 쟁반 위의 따뜻한 노란색 빛은 많은 아침 고객을 맞이하고 많은 짐을 가볍게 했다. 나는 내 고향 가게를 장식했던 메이플 시럽으로 덮인 페이스트리를 사랑스럽게 기억한다. 그리고 튀긴 마들렌과 같은 도넛과 같은 여러분 자신의 추억을 떠올릴 것이다.

튀긴 반죽은 오래되고 오래된 악습이다. 밀가루를 제분하고 다량의 동물성 지방이나 기름을 손에 넣었을 때만큼 오랫동안 메뉴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도넛은 비교적 젊은 음식이다. 전 세계 상점에서 그 이름으로 알려진 북미 버전은 네덜란드 음식이 새로운 정체성을 취한 미국 독립 혁명 이후 수십 년에 그 기원을 둔 것으로 보인다.

도넛의 역사를 읽다 보면 그 과자가 오랫동안 민족주의로 물든 것을 발견하고 놀랄 것이다. 미국이라는 새로운 국가가 세계에서 발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그 주민들은 문학, 민족적 성격, 음식 등 미국에 필수적인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이것은 작가와 평론가들이 허세가 섞인 일종의 향수로 그 나라의 (다소 짧은) 역사를 되돌아보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뉴욕이 뉴욕이 되기 전에 그곳은 뉴암스테르담이었고, 작가들은 종종 그 이전 시대의 네덜란드 풍습을 달콤한 사랑과 함께 되돌아보았다. 이러한 관습 중 하나는 올리쾨켄(Oliekoecken) 또는 기름 케이크로 알려진 튀긴 반죽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 간식의 조리법은 17세기 네덜란드 요리책에 나와 있는데 효모로 발효시키고 말린 과일을 박아 넣는다.

미국 저술에서 도넛에 대한 최초의 언급 중 하나는 '슬리피 할로의 전설' (The Legend of Sleepy Hollow)과 립 밴 윙클 (Rip Van Winkle)로 가장 잘 알려진 작가이자 외교관인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이다. 그의 1809년 닉커보커(Knickerbocker, 어빙의 가명 - 역자 주)의 '뉴욕 역사'(History of New York)에서 그는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원시적인 다과회"를 설명하면서 기이한 아메로-더치(Amero-Dutch) 민속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이 유행하는 파티는 일반적으로 상류 계급, 즉 귀족에게만 국한되었습니다. 즉, 즉 자신의 소를 기르고 마차를 몰았던 이들, "이라며 감상과 우월감 섞인 글을 썼다. "그것은 항상 돼지기름에 튀긴 도넛 또는 올리쾨크라고 불리는 달게 한 반죽으로 만든 거대한 접시를 자랑할 것이 확실했습니다. 이것은 진정한 네덜란드 가정을 제외하고는 현재 이 도시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맛있는 종류의 케이크입니다."

비록 도넛이 미국 요리에 스며들었지만, 그것들은 유럽 정착자들이 그곳에 가져온 것이다. 사진: Piotr Malcyk/Getty Images

도넛을 가정적이, 서민적인 음식으로서 정체화하는 것은 그것을 단순한 디저트 이상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도넛에 진정한 미국식 간식의 색을 부여했다. (참고로 유튜브 채널 '18세기 요리'(18th Century Cooking)의 존 타운센드(Jon Townsend)는 이 이름이 호두 크기의 작은 둥근 쿠키인 진저 넛(ginger nut)이라고 불리는 이미 널리 퍼진 과자로부터 유래된 것일 수 있다고 가정한다. 도넛은 작고 동그란 반죽(dough) 덩어리이며, 그래서 "넛"(nuts)이라는 것이다.)

도넛을 둘러싼 가정식 영양식에 대한 환상은 계속되었다. 어빙이 그들에 대해 쓴 후 50여 년 동안 도넛은 그들의 현대적인 둥근 형태를 이루었지만, 뉴잉글랜드 선원과 그의 어머니가 얽힌 그저 그런 이야기에 묻혀 이 진정한 변혁의 방법과 이유는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졌다. 이 전설의 한 가지 버전은 핸슨 그레고리(Hanson Gregory)의 어머니가 여행을 떠날 때 가져갈 도넛을 만들고 그가 폭풍우가 치는 동안 먹기 위해 배의 핸들에 있는 손잡이에 도넛을 걸었다는 것이지만, 거의 무수히 다른 버전들이 있다. 아마도 도넛의 구멍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재료 과학 이상의 것을 볼 필요가 없을 것이다. 두껍고 젖은 반죽 한 뭉치를 뜨거운 기름에 던지면 겉이 익은 후에도 가운데는 여전히 날것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초대형 페이스트리를 고집한다면 중앙에 구멍을 뚫어 주면 고르게 익을 수 있다.

뉴잉글랜드 포경선의 문화에는 약간 비릿한 도넛이 포함되어 있다. 포획 후 선상의 엄청난 양의 고래 지방과 지방을 녹이는 통이 있기에, 튀기는 것은 논리적인 일이었다고 마이클 크론들(Michael Krondl)은 그의 책 '도넛: 보스턴에서 베를린까지의 역사, 조리법 및 전승'(The Donut: History, Recipes, and Lore from Boston to Berlin)에서 적고 있다. 1845년 고래잡이 배에 타고 있던 메리 브루스터(Mary Brewster)는 ""남자들은 모두 도넛을 부르고 외칩니다"라고 썼다. 다음날, 그녀는 이렇게 썼다.  "오늘 오후 남자들은 도넛을 튀기고 있고… 그리고 즐겁게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도넛의 서민적 평판은 1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군을 위해 도넛을 튀긴 구세군 자원 봉사자 도넛 소녀들과 함께 정점에 도달했을 수 있다. 수십만 개가 참호 근처에서 나눠졌으며 병사들에게 고향의 맛을 가져다준 이 여성들의 헌신에 대한 포스터와 헌사가 넘쳐났다. 구세군의 위상도 마찬가지로 높아졌다. 전쟁이 끝날 무렵, 존 T 엣지(John T Edge)는 그의 책 '도넛: 미국의 열정'(Donuts: An American Passion)에서 "그들이 선택한 토템인 도넛 [원문 그대로임]은 고향의 뿌리 깊은 상징이었습니다."라고 썼다.

현대의 도넛은 디저트로 여겨지지만, 이전의 도넛은 훨씬 더 촌스러웠으며, 일부는 심지어 선원들이 고래 기름에 튀기기도 했다. 사진: Christine von Diepenbrouk/Getty Images

그러나 적어도 한 명의 도넛 소녀에게는 그 간식의 즐거움이 사라졌다. 전쟁 중 100만 개의 도넛을 튀긴 것으로 알려진 헬렌 퍼비앙스(Helen Purviance)는 이후 구세군 기금 모금 행사에서 사보이에서 도넛을 만들 때 뉴욕타임스와 인터뷰를 했다. "퍼비앙스 양은 도넛을 요리하는 일을 즐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그녀는 도넛 튀김을 '전쟁의 공포'와 연관 짓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기자에게 "전쟁에는 영광이 없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도넛이 가져다주는 모든 즐거움에도 불구하고 튀긴 반죽은 여러분이 포경선이나 진흙투성이의 참호 속에서처럼 더 나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만드는 것이다.(가장 유명한 것은, 미국 원주민 튀김빵[frybread]은 역경의 음식으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것은 미국의 재정착 정책으로 인해 집에서 끔찍하게 쫓겨난 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현대식 가게의 도넛은 미국 가정식의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될 수 있다. 그러나 튀긴 반죽은 곤경에 처하거나 혹은 다른 상황에서 전 세계적으로 영혼의 위안이 된다. 일반적인 옵션을 넘어서면 여러분은 도넛을 대부분의 문화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각각의 문화에는 그들 자신의 이야기, 그들 자신의 로맨스, 무엇이 좋은 도넛을 만드는지 정확히 알려줄 그들 자신의 애호가들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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