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시사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의 비인간성: 50만 명 이라크 아동의 죽음은 "가치있는 대가"

Zigzag 2022. 3. 27.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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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자 주: 매들린 올브라이트(Madeleine Albright) 사망 이후 미국의 유수 언론들은 그를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으로 유리 천장을 깬 선구적 인물로 묘사하며 그의 업적을 칭송하고 있다. 그러나 올브라이트는 누군가에게는 잔혹한 비인간성의 대명사였다. 특히 10여 년에 걸친 제재 속에서 수많은 피해를 입고 대량살상 무기를 명분으로 후세인 정권을 제거했지만 정작 대량살상 무기를 발견하지 못했던 명분 없는 미국의 침략에 목숨을 잃은 이라크인들에게 올브라이트는 결코 빌 클린턴과 조 바이든이 추모사에서 언급한 “자유, 민주주의, 인권을 위한 열정적인 힘”이나 "선함, 은총, 품위, 그리고 자유를 위한 힘”이 아니었다. 이 글은 미국 정치와 사회정의, 중동 문제 전문가 프리랜서이자 영화제작자인 Ahmed Twaij의 3월 25일 자 Al Jazeera 기고 Let’s remember Madeleine Albright for who she really was의 번역으로 올브라이트 칭송의 이면에 가려진 그의 비인간성, 그 비인간성으로 인해 이라크인들이 겪어야 했던 피해의 참상을 고발하고 있다.

진짜 매들린 올브라이트(Madeleine Albright)가 누구였는지 기억하자

한때 50만 명의 이라크 어린이들의 죽음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라고 공개적으로 인정한 전 미 국무장관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힘이 아니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이 2016년 7월 26일 미국 펜실베니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 Lucy Nicholson/Ruters

흔히 정치인들이 서거한 후 그들의 아픈 역사는 그들의 기억과 가족의 감정을 존중한다는 명목으로 눈가림 되어진다. 수요일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의 서거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방 언론은 그의 사망 소식에 그의 업적을 기리는 수많은 사망 기사로 반응했다. 정부, 기관 및 유명인사들은 "선구적인" 정치인으로서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직을 수행하고 대통령 자유훈장을 받은 것을 축하하는 수많은 성명을 발표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올브라이트를 “자유, 민주주의, 인권을 위한 열정적인 힘”이라고 불렀다. 올브라이트는 빌 클린턴 재임 시절 미국의 최고 외교관으로 재직했었다. 한편, 조 바이든 대통령은 그녀가 “항상 선함, 은총, 품위, 그리고 자유를 위한 힘이었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라크인인 나에게 올브라이트에 대한 기억은 수년간 전쟁으로 이미 황폐해진 우리나라에 가한 엄격한 제재로 인해 영원히 얼룩져있을 것이다. 수백만 명의 무고한 이라크인이 엄청난 고통을 겪었고 수십만 명이 제재로 인해 사망했으며 결국에는 워싱턴은 정책 목표를 거의 달성하지 못했다. 올브라이트의 삶과 업적을 기억하는 것처럼 그녀의 정책 결정으로 인해 희생된 무고한 이라크인들의 삶도 기억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올브라이트에 대한 가장 두드러진 기억은 그녀가 1996년에 가졌던 CBS의 '60 Minutes' 인터뷰이다.

지금은 상징적인 그 인터뷰에서 베테랑 저널리스트인 레슬리 스탈(Lesley Stahl)은 당시 유엔 주재 미국 대사였던 올브라이트에게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이후 부과된 미국의 엄격한 제재가 이라크 인구에 미친 치명적인 영향에 대해 질문했다.

“우리는 [이라크] 어린이 50만 명이 사망했다고 들었습니다. 내 말은, 히로시마에서 죽은 것보다 더 많은 어린이가 있다는 것입니다."라고 스탈이 물었다. "그리고, 알다시피, 그 대가가 가치가 있나요?"

올브라이트는 "매우 어려운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대가는 내 생각으로 그 대가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응답으로 올브라이트는 무고한 이라크 아이들을 미국 행정부와 이라크 지도부 간의 갈등에서 일회용 먹잇감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의심의 여지없이 인간성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결코 "선함, 우아함, 품위를 위한 힘"으로 묘사될 수도, 되어서도 안된다는 것을 입증했다.

나는 제재 시대의 이라크를 아주 잘 기억한다. 전화 서비스가 매우 제한적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 나라에서 가족 및 친구와 연락을 유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내가 이라크를 방문했을 때 놀랍게도 우유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제품조차 현지 시장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굶주렸고 희망이 없었다.

실제로 미국은 사담 후세인 정권을 처벌하기 위해 이라크에 제재를 가했지만, 피해를 입은 것은 정권 관리가 아니라 무고한 민간인이었다. 제재는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중을 더 깊은 빈곤으로 몰아넣었지만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미미한 영향을 미치고 빈부의 격차를 확대했다. 가난한 이라크인들이 식탁에 음식을 차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후세인 대통령과 그의 내부 서클은 호화로운 생활 방식을 유지했다. 심각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안 80~100개의 호화 궁전을 지었다.

2003년까지 거의 150만 명의 이라크인(주로 어린이)이 제재의 직접적인 결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 엄청난 피해는 거의 놀랍거나 예상치 못한 것이 아니다.

1990년 8월 유엔 안보리 결의 661호에 의해 시행된 제재에는 금융 및 무역 금지가 포함되었다. 이라크는 몇 년 동안 세계 시장에서 이라크의 주요 소득원인 석유 수출을 금지당했을 뿐만 아니라 해외 제품 수입도 금지당했다.

이 금지 조치에는 의료 장비와 의약품이 포함되어 일반 이라크인에게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줬지만 후세인 정권에 즉각적인 압박을 가하지는 않았다.

당시 세계보건기구 암 프로그램 책임자인 카롤 시코라(Karol Sikora) 교수는 1999년 영국 의학저널에 게재된 기사에서 "요청된 방사선 치료 장비, 화학요법 약물, 진통제는 [UN 제재 위원회의]의 미국과 영국 고문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차단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물질이 화학 물질이나 다른 무기로 바뀔 수 있다는 다소 터무니없는 생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유엔아동기금 유니세프(UNICEF)에 따르면, 유엔아동기금 유니세프(UNICEF)에 따르면, 제재에 따른 식량과 기초 의약품 부족으로 인해 5세 미만 어린이의 사망률이 한 달에 4,000명을 넘었는데, 이는 매일 최대 200명의 영유아가 피할 수 있는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재에 따른 식량과 기초 의약품 부족으로 인해 5세 미만 어린이의 사망률이 한 달에 4,000명을 넘었는데, 이는& 매일 최대 200명의 영유아가 피할 수 있는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년간 몇몇 유엔 관리들은 이 비참하고 비효율적이며 살인적인 제재 정책에 항의하여 사임했지만 "자유, 민주주의, 인권을 위한 열렬한 힘"인 올브라이트는 이 모든 것이 "할 가치가 있다"라고 생각했다.

설상가상으로 제재가 처음 시행된 지 13년 후, 미국은 후세인이 금수조치에도 불구하고 대량살상 무기를 축적했다는 명목으로 이 석유부국을 침공하기로 결정했다. 수년간의 고통은 헛된 것이었다. 제재는 그들을 지배하는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아무런 발언권도 갖지 않은 수백만의 이라크인들을 파괴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달성하지 못했다.

따라서 올브라이트에 대한 기사를 쓰거나 다시 게시하기 전에 여성들이 정치에서 경계를 허물고 유리천장을 깨는 것이 얼마나 멋진지 알아보기 전에 잠시 시간을 내어 그녀가 가진 힘으로 무엇을 하기로 선택했는지, 즉 그가 우리 국민들의 참상과 고통을 어떻게 지원했는지에 대해 잠시 알아보세요.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로 여전히 수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러시아에 대한 보다 엄격한 제재 요구가 고조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올브라이트의 실수를 눈감아줄 여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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