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영화

영화 《어나더 라운드》, 모조(mojo)를 상실한 소시민들의 순응을 위한 저항기와 혈중알코올농도 체험기

Zigzag 2021. 4. 22.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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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주: 이 글은 영화의 줄거리와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금기에 대한 금기, 일탈의 저항 대신 순응의 저항

모든 금기에 대한 금기는 저항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정체된 일상 속에서 위기에 빠진 중년 남성들이 술을 통해 일상 회복을 그린 영화 《어나더 라운드》(Another Round, 덴마크 원제는 Druk)는 금기를 금기하는 저항의 영화다. 하지만 그 저항은 일상의 회복을 위한 것이기에 일탈을 소망하기보다는 순응을 소망한다. 같은 학교의 역사 교사 마틴(Mads Mikkelsen 분), 체육 교사 토미(Thomas Bo Larsen 분), 음악 교사 피터(Lars Ranthe 분)는 심리 교사 니콜라이(Magnus Millang 분)의 4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다. 지겨운 일상 잡담이 오가는 와중에 니콜라이는 인간의 혈중알코올농도(BAC)가 0.05%(음주운전 위반은 0.03% 이상이다)를 넘으면 억압의 긴장이 풀리고 인간은 더 창의적이 된다는 노르웨이 정신과 의사 핀 스카더루드(Finn Skårderud)의 주장을 소개한다. 영화는 일상의 지겨운 늪에 빠진 이들이 그 일상의 활력을 회복하기 위한 음주의 모험을 따라간다.

학교라는 공간, 대낮이라는 시간, 근무시간이라는 자본주의의 규칙, 그리고 근대들어 사적 영역과 엄격하게 분리된 공공 영역에서 음주는 금기다. 17세기 커피가 아랍에서 유럽으로 들어온 이후 술은 점차 사적 영역으로 추방되었고, 노동의 근무시간에서 배제되었다. 근대의 시공간과 생활영역에서 술은 제조부터 유통과 소비까지 엄격한 통제 혹은 제한을 받는 음료다. 그러나 영화 《어나더 라운드》는 그 술을 통제와 제한의 벽을 넘어 반입한다. 마틴과 그의 친구들은 교육의 공간인 학교에서 벌건 대낮에 근무시간 중에 술을 마시며 공적 생활을 영위한다. 그러나 그들이 금기에 반기를 들며 술을 마시는 이유는 일상의 전복이 아니라 "최적의 직업적 사회적 성과를 획득하기 위한 것", 즉 일상에 제대로 적응하기 위한 것이다.

근무시간 중에 낮술을 마시는 것이 "최적의 직업적, 사회적 성과를 위한 것"이란 실험가설을 친구들과 공유하는 심리교사 니콜라이

이성의 도구로서 술과 이성적 행위로서 음주

2018년 덴마크의 평균수명은 80.95세다. 영화에서 니콜라이의 4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친구들은 그러니까 40대로 인생의 절반을 산 세대다. 그들은 모두 고등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다. 그들의 학생들은 대학입시와 진급을 앞두고 고민하며 동시에 술을 마시고 축제를 벌이고 활력에 넘치는 질풍노도의 시대를 지나고 있지만 그들을 가르치는 마틴과 그 동료들은 중년의 정체된 늪에 빠져있다. 역사 교사 마틴은 학생들과 아내 애니카(Maria Bonnevie 분)로부터 지루하고 젊은 시절과 다르다는 소리를 듣고, 체육 교사 토미는 체육관을 뛰어다니는 학생들에게 벽에 기댄 채 주저앉아서 손가락만 까딱할 정도로 활력이 없고, 음악 교사 피터는 학생들의 엉망인 화음에 넋이 빠져 있고, 심리 교사 니콜라이는 "심리학은 인간이 왜 행동하고, 경험하고, 반응하는가에 대한 과학적 연구"라는 설명에 학생들이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아 좌절한다. 그들에게는 이 일상의 탈출이 아니라 이 일상에 뿌리박기 위한 돌파구가 필요했고 술은 일단 그 수단이고 방법이었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역사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올려야 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은 마틴의 무관심에 항의하며 그의 교사로서 능력과 자질에 의문을 던진다. 학생들의 주의력 부재에 책임을 돌리던 마틴은 대책을 세우겠다며 한 발 물러 선다. 집으로 돌아온 그에게 아내는 관심을 표시하지 않고, 아이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는 니콜라이의 40세 생일 축하 자리에서 술을 마시는 친구들 속에서 조용히 탄산음료만 입에 댄다. 일상에 대해 투덜거리던 니콜라이에게 친구들은 "너무 이성적이라서 안됐다"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자 니콜라이는 "사실 그렇지. 그런데 이성적이라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라고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와 동시에 스카더루드의 혈중알코올농도 0.05% 주장을 꺼낸다. 여기서 니콜라이가 말한 "이성적"이란 표현은 영어로는 sensible이라고 번역됐지만 덴마크어로는 fornuftig다. fornuftig는 칸트나 헤겔이 말한 이성 Vernunft, 즉 세상을 합리적으로 인식하고 설명하는 방식이지, sensible처럼 세상을 감각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이 아니다. 니콜라이는 "스카더루드에 따르면 술을 마시는 건 이성적이야...혈중알코올농도를 0.05%로 유지하면 좀 더 편안해지고, 준비가 된 상태가 되며, 음악적이고, 더 개방적으로 되며, 간단히 말해 더 용감해지지"라고 말한다. 술은 비이성적 도구로서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더 나은 상태로 만들기 때문에 음주는 이성적인 행위로 포용된다.

술을 마시는 것이 이성적이라는 스카더루드의 주장을 펼치기 전에 "무엇이 이성적인 것인가?"를 친구들에게 묻는 니콜라이

마틴은 다음 날 학교 화장실에서 몰래 술병을 꺼내 술을 마시고 수업에 들어가 "입에 모터를 단 것처럼" 청산유수로 수업을 진행한다. 그의 변화를 본 친구들은 함께 혈중알코올농도를 0.05로 유지하는 '실험'을 진행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학교에서의 근무시간 중 낮술 생활에 '가설 시험'의 명분을 붙이고, 혈중알코올농도 0.05% 유지와 헤밍웨이처럼 저녁 8시 이후에는 음주 금지를 조건으로 정하고, 실험보고서를 작성하기로 한다. 

이들의 '실험'은 니콜라이의 생일 축하 만찬에서 레스토랑이 제공한 잘 짜여인 음주코스, 내러티브를 가진 만찬코스와 유사하다. 그 실험은 가설을 세우고, 실험의 통제 조건을 정하고, 실천적인 실험을 하고, 실험보고서를 작성하는 이성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18세기 이래 유럽의 중산층들은 계몽의 이름 아래 종교에서 신의 껍데기를 벗기고 대신 이성의 외투를 입혔고, 일상은 그 이성이란 종교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 21세기 덴마크의 중산층은 그 지루한 일상에 술을 도구로 반기를 들지만, 그들의 반기는 과학적 가설과 실험이라는 이성의 흉내를 내고 있기에 처음부터 실패를 예정하고 있었다.

목적으로서 술: 비틀거리는 이성의 역사, 감성의 음악, 몸의 체육, 마음의 심리

영화에서 마틴과 그의 동료들이 가르치는 과목이 역사, 음악, 체육, 심리학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간의 이성적 활동으로서 역사, 감성의 표현으로서 음악, 몸과 마음을 다루는 체육과 심리는 그 자체로서 인간을 구성하는 전부다. 그들의 실험은 인간 자체에 대한 실험인 것이다. '실험'을 가장한 그들의 음주는 처음엔 꽤 성공적이었다. 역사 교사 마틴은 상식과 합리적 역사를 전복해 수업을 장악한다. 음악 교사 피터는 교실의 창을 가려 빛을 차단한 상태에서 학생들이 눈을 감고 손을 잡은 채 노래를 부르게 함으로써 보이는 세상과 음표 대신 마음과 감정으로 노래를 부르게 한다. 체육교사 토미는 운동장에 서서 학생들의 연습을 지휘한다. 심리학 교사 니콜라이는 학생들과의 서먹한 관계를 극복하고 실험이 그들에게 미친 심리적 변화를 꼼꼼하게 정리한다. 실험이 성과를 보이자 이들은 혈중알코올농도를 0.05%에서 0.1%로 높이기로 한다. 

혈중알코올농도를 두배로 높이는 음주'실험'은 이들을 새로운 경험으로 인도한다. 역사 교사 마틴은 비틀거리다 문에 부딪혀 코가 깨졌지만 그가 학생들에게 예로 들었던 루스벨트나 처칠과 같은 위기의 지도자처럼 시험 걱정에 초조한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고, 부자간의 신뢰를 회복하고, 아내와의 성생활도 성공적으로 이끌며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난다. 체육 교사 마틴은 경기에서 뒤처진 아이를 팀 내의 스타로 만들어 내며 완벽한 지도자가 된다. 음악 교사 피터는 유급 걱정에 절망에 빠진 학생에 용기를 북돋고 심지어 시험 전에 술을 마시고 들어가라며 소통하는 교사가 된다. 하지만 심리 교사 니콜라이가 교실에서 학생에게 낭독시키는 키에르케고르의 "감히 도전하는 것은 잠시 자신이 발디딘 곳을 잃는 것이지만, 감히 도전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을 잃는 것이다."란 인용구는 이들의 도전이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심리교사 니콜라이는 학생에게 "감히 도전하는 것은 잠시 자신이 발디딘 곳을 잃는 것이다. 감히 도전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을 잃는 것이다."는 키에르케고르의 인용구를 낭독시킨다.

이들은 닥치는 대로 술을 마셔 불이 타오르는 발화(ignition, 덴마크어로 tænding)와 그 발화지점을 넘어선 총체적 정화(total catharsis, 덴마크어로 total renselse)와 근본적 망각(fundamental oblivion, 덴마크어로 fuldstændig glemsel)으로 나아가는 음주'실험'을 단행해 혈중알코올농도가 0.18에 이를 때까지 술을 들이켠다. 일상의 활력은 더이상 목적이 아니다. 수단이었던 술과 음주는 저항과 일상의 활력이라는 목적이 실종되자 대신 그 목적의 자리를 꿰찬다.

마틴과 친구들은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마저 잘라버리는 도전으로 돌격했다. 그 돌격의 결과는 물론 총체적 파국이다. 이성의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 마틴은 길거리에 쓰러져 결혼과 가정의 역사를 파탄내고, 아내와 자식은 그를 떠난다. 감성의 음악을 가르치는 교사 피터는 혀가 꼬이고 리듬을 잃은 채 슈퍼마켓 바닥에 나동그라진다. 몸 쓰는 법을 가르치는 체육 교사 토미는 몸뚱이를 주체하지 못한 채 교사모임에서 비틀거리다 경력을 망친다. 마음의 학문을 가르치는 니콜라이는 정신줄을 놓고 침대에 오줌을 갈긴다.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술에 취헤 슈퍼에 고꾸라진 음악 교사 피터, 침대에 오줌을 갈긴 심리 교사 니콜라이, 길거리에 피흘리며 쓰러진 역사 교사 마틴, 교사모임에서 몸도 못가누는 체육 교사 토미

그들의 개인적 실험은 "부정적 사회적 여파와 알코올 중독"으로 중단된다. 그들의 파국은 기존 체제가 지배하는 일상으로 겸손한 순응의 복귀를 그들에게 강제했다. 그 복귀는 음악 교사 피터가 낙제의 두려움에서 구하려고 애쓴 학생의 시험 답변에서 잘 드러난다. 시험관 앞에서 두려움에 제대로 입을 떼지 못하는 학생에게 피터는 술이 담긴 물통을 내밀며 목을 축이며 숙고하라고 충고한다. 술 한 모금을 들이켠 학생은 시험관이 낸 키에르케고르의 불안 개념을 술술 풀어낸다. "키에르케고르의 불안 개념은 인간이 실패의 개념을 어떻게 다루는지 보여줍니다. 실패했을 때, 사람들은 다른 이들과 삶을 사랑하기 위해 자신이 잘못을 저지를 수 있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들의 일상으로 겸허한 순응의 복귀는 실패할 수 있음에 대한 인정의 형식으로 실현됐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실패할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

피터가 권한 물병에 담긴 술을 마시고 키에르케고르의 불안과 실패에 대해 청산유수로 설명하는

끝나지 않은 저항과 방향을 잃은 영화

학생들의 시험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기쁨에 서로를 끌어안을 때, 마틴과 친구들은 알코올 중독이 된 체육 교사 토미가 그의 애견과 함께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는다. 친구의 장례식 참석 후 세 친구는 3인으로 예약된 부두 변의 레스토랑에 앉아 조심스럽게 스파클링 와인을 마시며 조금은 달라진 서로의 일상을 나눈다. 독신인 피터는 연인을 사귀고, 어린아이들로 골치를 앓았던 니콜라이의 가정은 평온을 되찾고, 그런 와중에 마틴은 별거 중인 아내로부터 보고 싶다는 문자를 받는다. 그리고 바깥에는 자신들의 학생들이 탄 졸업 축하 버스가 멈추면서 각자 한 손에 술병을 든 학생들이 내리며 부둣가는 축제의 장이 된다. 

마틴은 졸업생들 틈에서 함께 술병을 들고 축제를 즐긴다. 젊은 시절 재즈발레 댄서였던 마틴은 그동안 친구들의 권유에도 추지 않았던 재즈발레를 춘다. 아내 애니카로부터 "젊은 시절과 달라졌다"며 힐난을 들었었던 마틴이 이 졸업생들의 축제 속에서 마신 술은 그의 청년시절을 소환했다. 젊은 시절의 발레를 추던 마틴이 부둣가에서 바다로 도약하는 마지막 장면은 그들의 끝나지 않은 저항을 여운으로 남긴다. 다만 그 저항은 방향을 잃었기에 그 여운은 길지 않다.

마틴과 동료들의 음주는 모조(mojo)를 잃은 중년 남성들의 모조를 되찾기 위한 알코올 의존기다. 그들의 중년은 마모된 나사처럼 시스템 안에서 삐걱거린다. 보이지 않는 존재, 무관심한 삶, 지루한 일상의 문제점을 그들은 낮은 혈중알코올농도에서 찾는다. 이성적 과학의 탈을 쓴 혈중알코올농도 가설과 음주'실험'은 그들의 억지를 가리기 위한 마지막 이성의 합리화 놀음에 불과하다. 술에 취한 역사 교사 마틴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선거에서 다음 후보 중 누구를 뽑을 것인가를 묻는다. 1번은 소아마비에 고혈압 등 각종 질병을 앓으면서 정치적 목적을 위해 거짓말을 하며 자신의 정치에 대해 점성가와 상의하곤 했던 골초 애주가, 2번은 비만에 선거에 3번이나 패배하고 우울증과 두 번의 심근경색을 가진 골초 알코올 중독자, 마지막 3번은 전쟁영웅에 여성에게 예의 바르고 동물을 사랑하며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사람이다. 학생들이 입을 모아 3번을 뽑을 것이라고 대답하자, 그는 1번 루스벨트, 2번 처칠, 3번 히틀러의 사진을 보여준다. 세 명 모두 공황과 전쟁이라는 위기의 시기에 등장한 정치인이다. 1번과 2번 후보의 단점과 3번 후보의 장점만을 선별한 그의 편향성과 술이라는 우연적 연관성(correlation)을 필연적 인과(cause)로 바꿔치는 그의 논리는 그와 친구들의 문제를 혈중알코올농도에서 찾는 궤변을 닮았다..

《어나더 라운드》는 알코올을 일방적으로 찬양하며 술을 권장하거나, 일방적으로 비방하며 교훈을 찾는 영화가 아니다. 영화 《어나더 라운드》가 술과 취함을 매개로 중년과 일상, 가정과 우정에 접근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접근의 목적은 불분명하다. 영화가 꼭 분명한 메시지를 던져야 하는 것도 던져야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성격이 다른 메시지들을 버무려 던지면 메시지와 의미들은 복선을 형성하는 대신 혼선을 유포할 뿐이다. 영화에는 학생들이 덴마크의 준 애국가인 <In Denmark I was born>을 합창으로 배우고, 토미의 장례식장에서 덴마크 애국가가 울려퍼지고,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철학은 맥락이 단절된 채 남용되고, 마틴의 아내는 남편과 논쟁 중에 느닷없이 "이 나라 전체가 매니악처럼 술을 들이켜고 있다"며 불평한다. 덴마크에 대한 애국심과 덴마크 사회의 문제를 논하지만 혈중알코올농도에 대한 개인적 보고서인 《어나더 라운드》에서 이러한 메시지들은 불필요한 사족처럼 따로 놀뿐이다. 

할리우드식 장르영화를 거부한 <도그마 95>의 주도자답게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그(Thomas Vinterberg)의 《어나더 라운드》는 희극인지 비극인지 장르 구분이 모호하다. 문제는 장르의 모호성보다 이 영화에는 희극적인 것도 비극적인 것도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양극단의 경계 사이에서 벌어지는 소시민들의 반듯함과 절제 그리고 적당한 가식이 음주와 탐닉을 통해 동요하는 과정이 흥미롭기는 하지만 매력적이지도, 사실적이지도, 설득력이 있지도 않다. 영화가 마틴과 친구들이 "총체적 정화"와 "근본적 망각"으로 자신들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다고 주장할때도 관객들은 중산층으로 끊임없이 회귀하려는 중산층 요요현상만을 목격할 뿐이다.

빈터베르그의 《어나더 라운드》에는 아직도 핸드 헬드 카메라, 자연조명과 같은 <도그마 95> '순결' 선언의 잔영이 남아 있다. 영화 종료와 함께 첫 크레디트로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그'가 올라오면서 "감독은 크레디트에 올라가지 않는다"는 '순결' 선언 10조를 빈터베르그 그 자신이 훼손했다 해도 관객의 입장에서는 실망할 이유가 없다. 다만 빈터베르그의 혈중알코올농도 체험 로드무비인 《어나더 라운드》가 소시민의 대리체험 동화로 끝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빈터베르그와의 여정은 《더 헌트》와 《어나더 라운드》까지로 충분해 보인다. 그와 또 다른 3차를 가게되지는 않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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