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영화

영화 《사운드 오브 메탈》, 청점(聽點, point of hearing)을 통한 '정상'(normal)의 탈신화화와 재정의

Zigzag 2021. 4. 10.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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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주: 이 글은 영화의 줄거리와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시점(點, point of view)에서 청점(聽點, point of hearing)으로

아무것도 없는 검은 스크린 속에서 전자 기타의 무거운 금속성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조명이 켜지고, 그 조명 아래 주인공 루벤(Ruben, Riz Ahmed 분)이 드럼을 앞에 놓고 메탈 소리를 온몸으로 느끼며 영화 《사운드 오브 메탈》은 시작된다. 영화 《사운드 오브 메탈》은 드러머인 루벤이 청각장애인이 되어가는 과정, 아니 침묵과 공동체의 의미를 깨달음으로써 스스로 청각장애인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모든 영화에는 시점(視點, point of view, POV)이 있다. 글쓰기의 전지적 혹은 제한적, 1인칭 혹은 3인칭 시점처럼 영화는 공간 내에서 캐릭터의 동선 장소와 시간을 제한하는 블로킹과 그 블로킹 된 공간을 카메라로 포착하는 프레임 등을 통해 영화의 시점을 드러내고, 관객의 정보를 통제한다. 이러한 시점은 주로 시각적인 장치를 통해 드러난다. 하지만 《사운드 오브 메탈》은 시점 외에 청점(聽點, point of hearing)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사운드 오브 메탈》은 3개의 각기 다른 청점을 제공한다. 그 청점은 모두 주인공 루벤의 시점에서 전개되지만, 루벤 자신의 정체성은 청점에 따라 달라진다. 첫째, 영화 초입의 루벤은 소리로 살아가는 존재다. 공연장에서 애인 루(Olivia Cooke 분)가 내는 날카로운 금속성 기타 소리와 거칠고 외설적인 노래, 그리고 루벤 자신이 두드리는 드럼 소리는 물론 텅 빈 교외 슈퍼 앞에 주차된 그들의 캠핑카 안에서 조금씩 떨어지는 커피 내리는 소리까지 루벤은 공연소음과 생활 소음의 삶을 산다. 그러나 그의 청력이 급속히 떨어지는 두 번째 청점의 루벤은 소음과 정적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하는 존재다. 이때의 그에게 세상의 소리는 거의 묵음이다. 모든 소리는 둔탁하고, 희미하며, 점점 소멸한다. 루벤에게 소음과 소리는 세상과의 끈이었다. 소리가 떠나면서 그의 공연도, 그의 연인 루도 모두 떠나고 만다. 새로운 세상에 첫발을 내민 루벤은 끊임없이 소음과 정적, 소리와 침묵 사이에서 동요한다. 농인 마을의 지도자 조(Paul Raci 분)는 정적의 삶을 못 견디며 지붕 수리를 하는 루벤을 저지하며 그에게 정적을 배울 것을 권유한다. 그러나 결국 소음과 소리의 유혹을 견디지 못한 루벤은 임플란트 수술로 청력을 회복하려 한다. 동시에 그는 소음과 소리 없는 삶을 무위도식의 삶으로 비난한다. 소음과 소리는 그에게 세상과의 끈 이상이며, 인생 그 자체다. 소음과 소리가 없는 삶은 "빌어먹을 인생"일 뿐이다. 소음과 소리가 없어진 세상에 첫발을 내민 루벤은 끊임없이 소음과 정적, 소리와 침묵 사이에서 동요한다.

정적을 견딜 수 없는 루벤이 지붕을 고치자, 농인 마을으 리더인 조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한다(상단 좌우). 임플란트 수술 후 루벤은 소음없는 삶을 무위도식으로 평가한다.

세 번째 청점은 정적이다. 농인 마을의 지도자 조는 루벤에게 정적을 신의 왕국이라 설명한다. 소음과 소리의 세계를 동경하던 루벤은 영화의 마지막 순간 그 신의 왕국에 들어선다. 임플란트 기기를 벗어 던진 루벤에게 세상은 정적이다. 아무 소리도, 심지어 일상의 모든 곳을 채우는 그 어떤 생활소음도 없는 진공의 정적이란 청점을 통해 관객들은 루빈의 시점을 본다. 소음과 소리를 내던진 루벤의 주변 모든 것들이 움직이지만 영화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루벤은 마지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상의 근원이라 설명했던 부동의 동자(unmoved mover, ho ou kinoúmenon kineî,)가 된듯하다. 정적이 내는 소리의 죽음을 들은 그는 부동이지만 영화 전체에서 가장 살아 있는 모습이다.

정적의 순간이 신의 왕국이라고 말하는 조와 임플란트를 벗어던지고 정적의 왕국에 들어선 루벤

배우기(learning)와 잊어-버리기(unlearning)의 실패: '정상'과 '비정상'의 탈신화화와 '정상' 재정의의 실패

청점(聽點, point of hearing)을 통해 영화 《사운드 오브 메탈》은 '정상'이란 신화의 껍질을 벗긴다. 소음과 소리의 세계는 여러 세계의 하나일 뿐 결코 '정상'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정상'이라 여겼던 소음과 소리에서 소외됐다고 생각하는 루벤은 끊임없이 '정상'으로의 복귀를 꿈꾼다.

우선 그 복귀의 몸부림은 말 대신 글의 사용으로 나타난다. 소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한 루벤은 화가 나 있다. 그래서 목의 소리라는 기능 자체를 꺼야 하는 농인 학교에서 화가 난 루벤은 칠판에 이름을 써달라는 교사의 요청에 칠판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거대한 글씨로 자신의 이름을 휘갈긴다. 그는 글씨로 고함을 지른 것이다. '정상'의 세계에서 글씨는 소리가 나지 않지만, 농인의 세계에서는 소리가 난다. 그의 그 글씨의 고함을 농인 학생들이 듣고 얼굴을 찡그린다.

칠판에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휘갈기는 루벤과 그걸 보고 인상을 찡그리는 농아학교 학생

'정상'에 대한 그의 갈구는 두 번째로 정상과의 연결고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농인 공동체에 들어가게 된 루벤은 차 열쇠와 휴대폰을 달라는 조의 요구에 저항한다. 농인의 마을은 무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며, 자동차와 휴대폰은 그를 유의 세상과 연결하는 유일한 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예비용 차 열쇠를 캠핑카 한켠에 숨김으로써 '정상'으로 언제든 복귀할 보험을 들어 놓는다. 또한 빼앗긴 휴대폰을 대신에 조의 사무실에 몰래 잠입해 자신의 이메일을 보고, 청력을 회복하기 위한 수술 날짜를 예약하기도 한다.

세 번째로 루벤은 자신의 새로운 정상을 거부한다. 조는 농인 마을은 소리를 찾는 공동체가 아니라 정상을 재정의하는 공동체임을 루벤에게 강조한다. 그래서 조는 루벤에게 농인 혹은 청각장애인이 되는 법을 배우게 한다. 소리 대신 수화를 배우고, 검지와 중지를 꼰 것이 루벤이라는 이름의 R임을 배우고, 루벤이라는 소리 이름 대신 한 손을 둥그렇게 모아 눈에 가져다 대며 부엉이와 비슷한 모양을 한 수화 이름을 얻는다. 이 배우기(learning) 과정은 너무나 순탄해 보이지만, 그 다른 면의 잊어-버리기(unlearning)는 좀처럼 성공하지 못한다. 그는 그가 생각했던 '정상'을 잊었지만 버리지 못했거나, 버렸지만 잊지 못해서 결국 새로운 정상의 자리를 만드는 데 실패한다. 그는 청각장애를 고쳐야 할 병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금속판 혹은 메탈을 머리에 심어 뇌에 허상의 소리를 만들어 내는 임플란트 수술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캠핑카 안에 있던 음향 장비들을 처분하고, 그의 캠핑카마저도 처분한다. 하지만 8주 이내에 자신이 판 가격보다 10%를 더 주면 되살 수 있다는 조건을 붙인다. 잊어-버리기를 못했기에 그의 배우기 과정은 완전할 수 없었다.

조는 청각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루벤에게 청각 장애인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허상으로서의 '정상'

루벤이 새로운 상황을 자신의 정상으로 받아들이는 계기는 그의 애인 루를 통해서다.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와 함께 살 게 된 루는 엄마의 자살로 방황했고, 그 방황의 시절에 루벤을 만나 함께 밴드를 구성하고 공연을 하면서 안정을 찾게 됐다. 루벤을 떠나 부유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간 루는 루빈과 동거 시절에 있었던 팔을 긁는 습관이 사라졌다. 하지만 루벤이 그를 찾아와 다시 옛날 혹은 예전의 '정상'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하자 다시 팔을 긁는다. 그 순간 루벤은 자신이 몸부림치며 돌아가려던 소음과 소리의 세계가 더 이상 '정상'이 아님을 깨닫는다.

루벤을 떠나기 전 루는 팔을 긁는 습관이 있었으나 아버지 집으로 돌가간 후 그 습관으로 인한 상처는 사라졌다. 하지만 루벤이 다시 옛날로 돌아가자고 청하자 루는 다시 팔을 긁는다.

마리우스 마더(Darius Marder)는 감독과 각본가로서 《사운드 오브 메탈》을 통해 '정상'과 '정상으로의 복귀'가 얼마나 허상인지를 드러냈다. 코로나 19시대에 '정상으로의 복귀'를 간절히 원하는 이들에게 《사운드 오브 메탈》은 그 '정상'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제기했다. 물론 그의 문제 제기가 다 매끄러운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물질문화=중독=소음=소리라는 영화의 이면에 깔린 그의 등식은 때론 너무 도식적이다. 아무런 설명 없이 약물중독이 청각장애를 불러일으켰다는 설정은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다. 또한, 그가 농인 공동체에 순탄하게 동화해 청각장애 아동들과 순식간에 어울리고, 농인들과 끈끈한 신뢰를 쌓는 과정은 너무 동화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소리를 통한 주인공의 변화를 드러내는 청점의 도입은 관객들에게 소음과 정적, 소리와 침묵에 대한 고민을 던져준다. 루벤이 마지막에 '들은' 아니 걸어 들어간 정적은 소음과 소리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새로운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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