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자 주: 오늘날 미국에서 낙태 반대에 가장 적극적으로 앞장서는 세력은 공화당과 남부 개신교 복음주의 세력이다. 서유럽의 보수 정당과 개신교가 낙태에 대해 우호적인 것을 고려한다면 미국의 이러한 정치·종교적 특징은 매우 예외적이다. 하지만 1973년 대법원이 획기적인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내릴 당시만 하더라도 미국의 가장 열렬한 낙태 반대 운동의 주도권은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가톨릭 세력이었고 이들의 대부분은 북동부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민주당원들이었다. 이들은 낙태가 빈곤의 연관성을 파악하고 의료보험과 탁아 서비스 확대 등 사회복지 확대를 통해 낙태율을 낮추려 했다. 하지만 1960년대 민권운동과 학생운동, 반전시위의 확산과 함께 성혁명, 페미니즘 등의 자유주의적 가치가 확산되는 것에 불안을 느낀 남부 성경 벨트 주들의 개신교 복음주의 세력들은 1970년대 들어 낙태를 그 세속적 운동의 핵심 가치로 보고 이에 대한 반대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본격적으로 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남부의 개신교 복음주의 세력들은 공화당이 그들이 덜 우호적이었던 경제적 자유주의를 내세우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화당과 본격적으로 연대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들은 원래 낙태 반대 운동이 지향했던 사회복지형 낙태 반대운동에는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 이들 남부 복음주의 세력들의 지원이 공화당의 상하 양원 선거 승리에서 결정적임이 증명되면서 미국의 낙태 반대 운동의 주도권은 이들이 장악하게 되었다. 이러한 낙태 반대 운동의 정치·종교적 변화는 미국 대법원이 최근 유출된 초안 의견에서 밝힌대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고 낙태권을 후퇴시킨다 하더라고 실질적인 낙태율 감소로 이어지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낙태율의 감소는 실질적으로 빈곤층에 대한 사회복지의 강화를 통해 실현될 수 있는데 현재의 낙태 반대 운동 주도 세력들은 초기 주도권자들과 달리 그 문제에 적대적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웨스트조지아 대학의 역사 교수 Daniel K. Williams의 The Atlantic 5월 9일 자 기고 This Really Is a Different Pro-Life Movement의 번역으로 1970년대 초반까지 가톨릭 사회복지 활동가들의 낙태 반대 운동 주도권이 바이블 벨트라 불리는 남부의 우익 개신교로 넘어가면서 발생한 운동의 성격 변화와 변질 그리고 그것의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이것은 진정 다른 낙태 반대(Pro-Life) 운동이다
북부 가톨릭이 주도한 캠페인이 남부 복음주의자들에게 포획됐을 때 일어난 일
대법원이 1973년에 획기적인 낙태 권리 결정을 발표했을 때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에 대해 가장 비타협적인 반대자는 미시시피와 오클라호마와 같은 남부 바이블 벨트(Bible Belt, 미국 동남부와 중남부의 개신교 영향이 강한 주들 - 역자 주) 주의 입법부가 아니었다. 실제로, 아칸소,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버지니아를 포함한 많은 남부 주에서 의사들은 로 이전 몇 년 동안 조심스럽게 정의된 "치료적" 이유로 합법적인 병원 낙태를 시행해 왔다. 낙태 합법화에 가장 강한 반항을 보인 주 입법부는 북동부의 가톨릭 주들이었다. 미국 시민 자유 연합(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아카이브 문서에 따르면 1973년에 매사추세츠 주 의원의 겨우 10%만이 낙태 합법화를 지지했다. 매사추세츠 주 입법부는 대법원이 명령한 대로 생존 가능성(당시 약 28주)까지 시술을 허용하는 대신 임신 20주 이후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로에 대응했다. 로드 아일랜드의 주 의회는 훨씬 더 강력한 반대를 표명했다. 로드 아일랜드는 주의 낙태 금지법이 연방 법원에 의해 뒤집힌 1975년까지 낙태 클리닉을 주에서 배제했다.
물론 오늘날 매사추세츠와 나머지 뉴잉글랜드는 로 대 웨이드가 폐지된다면 낙태 접근을 보호할 주들의 선봉에 서 있다. 그리고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에 낙태법을 자유화한 많은 남부 주들이 현재 낙태를 제한하는 운동의 최전선에 서 있다.
이것은 단순히 한 지역을 다른 지역으로 바꾸는 지리적 이동이 아니라 낙태 반대 운동의 정치적 이념의 보다 근본적인 변화였다. 1973년에 낙태를 가장 강력하게 반대한 사람들은 사회 복지 국가의 확대를 믿고 산전 보험과 연방 정부가 지원하는 탁아 서비스를 통해 낙태율을 낮추기를 원하는 북부 민주당원이었다. 2022년에 대부분의 낙태 반대 정치인은 그러한 조치에 회의적인 보수 공화당원이다. 일어난 일은 다른 어떤 서구 국가에서도 일어나지 않은 낙태에 반대하는 엄청난 종교적, 정치적 변화였다.
1970년대 중반 이전에 미국의 적극적인 낙태 반대는 영국, 서유럽, 호주의 낙태 반대와 거의 흡사했다. 주로 가톨릭에 집중되어 있었다. 1980년까지만 해도 미국 최대의 낙태 반대 단체인 전국생명권리위원회(National Right to Life Committee) 위원 중 70퍼센트가 가톨릭 신자였다. 그 결과 낙태 합법화에 가장 반대했던 주는 대부분의 경우 가톨릭교도가 가장 많이 집중된 주로 북부에 있었고 민주당 성향이 강한 주였다.
이것은 서구 세계 전체의 패턴에 맞는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많은 국가에서는 낙태를 제한했지만 개신교 신자가 많은 국가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가톨릭 신자가 인구의 1% 미만인 스웨덴은 이미 1930년대에 일부 낙태를 합법화했다. 아일랜드는 2018년까지 이를 따르지 않았다.
만약 미국이 이 대본을 따랐다면, 낙태에 대한 반대는 아마도 가톨릭 교회 출석률의 감소와 함께 약해졌을 것이다. 주요 보수 정당들이 낙태 권리를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캐나다와 영국처럼, 미국의 공화당도 1970년대 대부분 존재했던 것으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낙태 반대 운동은 주로 가톨릭으로 남아 있지 않았다. 낙태 반대 운동을 가톨릭 종파 운동이라고 믿고 주저하던 남부 복음주의 개신교도들이 70~80년대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로 대 웨이드가 세속화, 성 혁명, 2세대 페미니즘, 헌법에 대한 권리 의식적 해석을 포함하여 그들이 반대한 자유주의적 사회 변화의 산물이라는 확신에 자극받아 그 판결에 대한 반대를 새로운 기독교 우파의 중심 부분으로 만들었다.
20세기 후반에 공화당을 장악했을 때 그들은 공화당(GOP)을 낙태권에 대해 적당히 우호적인 북부 중심의 주류 개신교 정당에서 경제적 자유지상주의와 성경 벨트 도덕 규제를 혼합한 남부 포퓰리즘의 온상으로 변모시켰다.
변화는 즉각적이지 않았다. 비록 공화당이 부분적으로는 북부 가톨릭 신자들을 획득하려는 열망 때문에 1976년 당 강령에서 낙태 반대 헌법 개정을 지지했지만, 이 당은 처음에는 이 아이디어에 대해 립 서비스 이상을 제공하지 않았으며 낙태 찬성 보수주의자들은 몇 년 동안 계속해서 공화당에서 지도적 지위를 유지했다. 1983년,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은 낙태 반대 헌법 개정을 고려했지만, 공화당 상원의원의 3분의 1이 반대표를 던져서 패배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남부의 복음주의 개신교도들이 공화당에 대한 더 큰 통제권을 획득함에 따라 공화당원들은 낙태를 제한하려는 그들의 욕구를 무시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결정적인 변화는 1994년 중간 선거에서 나타났다. 남부 보수파는 공화당에 40년 만에 처음으로 양원을 접수하는 데 필요한 표를 주었다. 뉴트 깅그리치(Newt Gingrich)의 '미국과의 계약'에는 낙태에 대한 언급이 없었지만 남부 복음주의자들은 공화당이 이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6년 공화당 대선 후보인 밥 돌(Bob Dole)이 낙태에 대한 당의 강령 성명을 완화하려 했을 때, 우익 기독교 활동가들이 그 변경을 막았다.
그러나 낙태 반대 운동가들이 공화당에 계속 충성하도록 동기를 부여한 것은 단순한 강령 성명서가 아니라 대법원의 약속이었다. 그들은 공화당이 로 대 웨이드를 뒤집을 보수적인 사법부에 대한 유일한 길을 그들에게 제공했다고 믿었다. 이 목표를 위해 운동의 많은 사람들이 로 이전에 가지고 있던 견해와 상반되는 보수적 경제 강령을 받아들여야 했다면, 글쎄, 그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많은 복음주의-개신교적 낙태 반대 지지자들은 어쨌든 정치적 보수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금세기 초까지만 해도 텍사스에는 여전히 낙태를 찬성하는(프로테스탄트) 공화당 상원의원이 있었고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미네소타는 여전히 가톨릭 신자인 낙태 반대 민주당원이 의회에서 대표를 맡고 있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북부의 가톨릭 신자들이 덜 독실해지고 따라서 낙태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는 경향이 줄어들면서, 진보적인 민주당원들의 젊은 세대들이 생식권을 민주당 강령의 협상 불가능한 부분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낙태 반대 영향력은 북동부의 정치적 자유주의 주에서 줄어들고 남부에서는 팽창했다.
그 결과 낙태 반대 운동의 정치적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70년대 초반에 베트남 전쟁과 사형에 반대하는 일부 정치적 진보주의자들을 끌어들였던 운동은 80년대와 90년대에 복음주의에서 영감을 받은 보수-기독교 민족주의와 연관되었다. 초기 활동가들은 포괄적인 “생활 문화”를 만들고 싶었지만 20세기 후반에 이 운동에 합류한 많은 복음주의자들은 세속주의에서 미국을 구하고 하나님을 위해 국가를 되찾기를 원했다.
소수의 백인 복음주의 개신교도만이 정치적으로 진보적이었다. 대다수(특히 남부)는 보수적이었고 그들은 도덕 규제에 대한 헌신과 자유 시장 경제에 대한 믿음, 사회 복지 지출에 대한 반대를 결합했다. 미국 복음주의는 오랫동안 미국 기독교 전통 중 가장 개인주의적이었고, 죄와 구원의 개인주의 신학에 따라 대부분의 백인 복음주의자들은 도덕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빈곤 감소가 아니라 개인의 악덕에 대한 처벌에만 국한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낙태 반대 운동의 정치적 영향력이 가톨릭 주에서 복음주의-개신교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그것은 연방 빈곤 반대 프로그램, 확대된 모성 건강 보험, 연방 자금 지원을 받는 탁아소에 대한 이전의 요구를 포기하고 대신 로 대 웨이드의 전복과 낙태를 불법화 하하는 좁은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몇몇 활동가(북부 가톨릭 베테랑을 포함)는 빈곤 구제와 포괄적인 생명 문화* 윤리에 헌신했지만, 현재 민주당이 낙태 권리를 명백히 지지하면서 일부는 정치적으로 실향민처럼 느껴졌다. 그 활동가들은 사회 복지 문제에 대한 당의 입장에 대한 유보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에 투표하기 시작했으며, 이로 인해 이제 해당 지역에서 낙태를 제한할 수 있는 정치적 권한을 가진 남부 복음주의 보수파와 동맹을 맺었다.
* 역자 주: 가톨릭 교회의 도덕 신학에서 유래한 생명 문화는 수태부터 자연사까지 모든 단계에서 인간의 삶이 신성하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삶의 방식을 설명한다. 따라서 낙태, 안락사, 사형 등에 반대하며, 학문적 연구에서의 배아 줄기 세포 연구와 의약품, 그리고 피임 등 모든 단계에서 인간의 생명이 파괴되는 것을 반대한다.
그 결과는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도이다. 대법원이 로를 뒤집는 경우 낙태를 제한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주는 또한 의료 정책이 가장 관대하지 않은 주이기도 하다. 반세기 전에 많은 자유주의, 북부, 낙태 반대 민주당원들은 빈곤 감소와 낙태 예방 사이의 연관성을 보았지만 오늘날 낙태를 반대하는 남부 바이블 벨트(Bible Belt)의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낙태율은 빈곤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시술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메디케이드(Medicaid, 미국 연방과 주가 공동으로 65세 미만의 저소득층과 장애인을 위해 운영하는 의료 보조제도 - 역자 주)를 확대하거나 다른 빈곤 퇴치 조치를 시행하지 않고는 낙태율을 줄이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바이블 벨트에서 백인 복음주의자들이 이 운동을 열광적으로 수용한 것이 이 운동의 정치적 성공의 열쇠였다. 그러나 이 운동이 빈곤 퇴치 조치에 반대하는 남부 복음주의-보수주의 정치 브랜드와 연관되는 것은 또한 로 대 웨이드의 폐지가 이 운동이 기대하는 것만큼 낙태율을 줄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 운동가들이 정말로 태중의 생명을 구하고 싶다면, 그들은 현재 이 운동을 이끄는 남부 보수주의자들뿐만 아니라 한때 이 운동에 있어서 지배적이었지만 초기 영향력이 오랫동안 잊혀졌던 북부 사회 복지 옹호자들에게도 지도를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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