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시사/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

[슬라보예 지젝] 우크라이나 전쟁의 묵시록, 자유 자본주의와 권위주의, 무조건적 평화주의를 넘어 전시 공산주의로

Zigzag 2022. 5. 17.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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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자 주: 서방의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자신의 군비를 서방의 석유와 가스 자금으로부터 충당하고 있다. 러시아의 손쉽고 빠른 승리를 예견하고 바란 것은 러시아만이 아니었다. 내심 우크라이나의 손쉽고 빠른 항복을 예견했던 서방은 우크라이나의 영웅적 항전과 전쟁의 장기화와 그 후과로 당황하고 있다. 암묵적으로 "가벼운 침공"(minor incursion)은 용인할 준비가 되었던 미국과 러시아에 높은 에너지 의존도를 보이고 있는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의 영웅적 항전에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철학자이자 정치(철)학자인 슬라보예 지젝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기존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나, 자신을 서구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러시아식 권위주의, 그리고 2차 대전 후 형성된 무조건적 평화주의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면화된 묵시록적 위기의 대안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시장보다 국가가 보다 적극적으로 재난과 경제, 생태에 개입하는 전시 공산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왜냐하면 묵시록의 네 명의 기사가 상징하는 전염병, 전쟁, 기아, 죽음을 넘어 지금의 위기는 우리 자신이 인류 멸망의 아포칼립스의 5번째 기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의 Project Syndicate의 5월 11일 자 기고 Heroes of the Apocalypse의 번역이다.

아포칼립스의 영웅들

전염병, 전쟁, 기아, 죽음을 상징하는 묵시록의 네 명의 기사. 이미지: Project Syndicate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대해 매달 수십억 달러를 계속 지불함으로써 유럽은 크렘린궁의 손에 놀아나고 있으며, 자만심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조만간 유럽은 우크라이나 위기에 대한 대응이 앞으로 더 큰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대용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겨우 2개월이 지난 2022년 4월 말, 세계는 전쟁이 미래에 의미하는 바가 크게 바뀌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빠른 해결에 대한 꿈은 사라졌다. 전쟁은 이미 이상하게도 "정상화"되었으며, 무기한 계속될 과정으로 받아들여졌다. 갑작스럽고 극적인 확대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의 일상을 괴롭힐 것이다. 스웨덴과 다른 지역의 당국은 보아하니 대중에게 전시 상황을 견딜 수 있는 식량을 비축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갈등의 양측 모두에 반영된다. 러시아에서는 글로벌 분쟁에 대한 이야기가 커지고 있다. 아르티(RT, 러시아 국제보도 전문 채널 - 역자 주) 책임자인 마르가리타 시몬얀(Margarita Simonya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크라이나에서 우리가 지거나 아니면 3차 세계 대전이 시작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제3차 세계대전 시나리오가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편집증은 러시아를 파괴하려는 자유주의-전체주의적 나치-유대인의 연합 계락에 대한 미친 음모 이론에 의해 뒷받침된다. 세르게이 라브로프(Sergei Lavrov) 러시아 외무장관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유태인인데 어떻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비 나치화"(denazifying)한다고 주장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틀릴 수도 있지만 히틀러도 유태인 혈통을 갖고 있었습니다"라고 답했다. [젤렌스키가 유대인이라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현명한 유대인들은 가장 열렬한 반유대주의자들이 대개 유대인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한편, 특히 독일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평화주의가 형성되고 있다. 만약 우리가 모든 고상한 수사를 무시하고 독일이 실제로 하고 있는 일에 초점을 맞춘다면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의 경제적 이익과 군사적 충돌에 휘말릴 위험을 고려할 때, 비록 그것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의해 삼켜지는 것을 의미하더라도,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너무 많이 지지해서는 안 된다." 독일은 러시아가 진정으로 분노할 선을 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나 오직 블라디미르 푸틴만이 그 선이 어디에 놓일지를 특정일에 결정한다. 서구 평화주의자들의 두려움을 이용하는 것이 그의 전략의 주요 부분이다.

안주에 대한 베팅

분명히 모든 사람들은 새로운 세계 대전의 발발을 막고 싶어 한다. 그러나 너무 조심스러워 보이는 것이 단지 공격자를 조장할 뿐일 때가 있다. 괴롭히는 자들은 본질적으로 항상 희생자가 반격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더 큰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즉 어떤 종류의 억지력을 확립하기 위해 우리도 명확한 선을 그려야 한다.

지금까지 서구는 그 반대였다. 푸틴이 아직 우크라이나에서 '특수 작전'을 개시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크렘린궁이 "가벼운 침공"(minor incursion)을 추구할지 아니면 완전한 점령을 추구할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그 의미는 "가벼운" 공격 행위가 용인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최근의 전망 변화는 서구 입장에 대한 깊고 어두운 진실을 드러낸다. 우리는 이전에 우크라이나가 순식간에 무너질 것이라는 두려움을 표명했지만, 우리의 진정한 두려움은 정반대였다. 즉, 침공이 끝없는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우크라이나가 즉시 무너져 우리가 분노를 표출하고 손실을 애도하고 평소처럼 업무에 복귀할 수 있었다면 훨씬 더 편리했을 것이다. 좋은 소식이었어야 하는 것, 즉 작은 나라가 예기치 않게 그리고 영웅적으로 강대국의 잔혹한 침략에 저항하는 것이 수치의 원인이 되었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는 문제가 되었다.

유럽의 평화주의자 좌파는 이전 세대를 사로잡았던 영웅적-군사적 정신을 다시 받아들이지 말라고 경고한다.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는 우크라이나가 유럽에 대한 도덕적 공갈을 저질렀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그의 입장에는 깊은 우울함이 있다. 하버마스가 잘 알고 있듯이 전후 유럽은 미국의 핵우산 아래 안전하게 있었기 때문에 군국주의를 포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륙으로의 전쟁의 귀환은 이 기간이 끝났을 수 있고 무조건적인 평화주의가 더 깊고 더 깊은 도덕적 타협을 요구할 것임을 시사한다. 불행히도 "영웅적인" 행동은 침략에 저항하고 억제하기 위해 다시  필요할 뿐만 아니라 생태 재앙 및 기아와 같은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다시 필요할 것이다.

대홍수 이후(Après le Déluge)*

* 역자 주: '대홍수 이후'는 1886년에 출판된 아르튀르 랭보(Arthur Rimbaud)의 시집 '일뤼미나시옹'(Les Illuminations)에 수록된 시의 제목이기도 하다. 성경의 대홍수에서 모티브를 따 온 이 시는 대홍수가 쓸어버린 구시대의 잔재들이 대홍수의 관념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다시 움트며 세상을 타락시키는 모습과 이 타락한 세상을 다시 정화할 새로운 대홍수의 염원을 담고 있다.

프랑스어에서 우리가 공식적으로 두려워하는 것과 실제로 두려워하는 것 사이의 간극은 구문이나 발음의 이유로만 사용되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는 "아니오"인 소위 허사(虛辭, ne explétif)로 멋지게 표현된다. 그것은 주로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동사(두려워하다, 피하다, 의심하다) 뒤에 오는 가정 종속절에서 발생한다. 그 기능은 "Elle doute qu'il ne vienne"(“그녀는 그가 올지 의심한다”[She doubts he’s /not/ coming], 여기서 허사는 공식적으로는 오는 것을 의심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오지 않는 것을 의심하는 것 사이의 간극 표현 - 역자 주) 또는 “Je te fais confiance à moins que tu ne me mentes.” (“당신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 한 나는 당신을 믿는다 [I trust you unless you /don’t/ lie to me], 여기서 허사는 공식적으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을 믿지만 실질적으로는 거짓말 안 하지 않을 것을 믿는 것 사이의 간극 표현- 역자 주)에서와 같이 앞에 나온 것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다.

자크 라캉(Jacques Lacan)은 허사를 사용하여 소원과 욕망의 차이를 설명했다. 내가 “나는 두렵다 폭풍이 /안/올까 봐"(I am afraid the storm will /not/ come)라고 말할 때, 나의 의식적인 바람은 그것이 오지 않는 것이지만, 나의 진정한 욕망은 추가된 “아니오”에 새겨져 있다. 즉, 나는 폭풍이 오지 않을까 봐 두려운데 왜냐하면 나는 비밀리에 그 폭력성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허사와 같은 것은 러시아 가스 공급 중단에 대한 유럽의 두려움에도 적용된다. 우리는 “가스 공급 중단이 경제적 재앙을 초래할까 두렵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가 진술한 두려움이 거짓이라면 어떻게 되는가? 가스 공급 중단이 재앙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 정말 두렵다면? 시카고 대학의 에릭 샌트너(Eric Santner)가 최근 나에게 말했듯이, 우리가 빨리 적응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러시아의 가스 수입을 중단한다고 해서 자본주의의 종말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유럽적' 삶의 방식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러시아와 상관없이 가장 환영할 만한 변화이다.

허사를 문자 그대로 읽으면 "아니오"에 따른 행동은 아마도 오늘날 가장 진정한 자유의 정치적 행동일 것이다. 러시아 가스를 중단하는 것은 경제적 자살에 해당할 것이라는 크렘린궁이 퍼뜨린 주장을 생각해 보하. 우리 사회를 보다 지속 가능한 길로 인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감안할 때, 그것은 해방적이지 않은가? 커트 보네거트(Kurt Vonnegut)의 말을 빌어 표현하자면, 우리는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 비용 효율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을 구원하지 않은 최초의 사회로 역사에 기록되는 것을 피할 것이다.

누구의 세계화인가?

서방 언론은 우크라이나로 보내진 수십억 달러에 대한 보도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유럽에 공급하는 가스에 대해 여전히 수백억 달러를 받고 있다. 유럽이 고려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그것이 지구를 위해 많은 일을 하는 동시에 러시아에 매우 강력한 형태의 비군사적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러시아 가스를 포기하는 것은 다른 종류의 세계화를 허용할 것이다. 이는 서구의 자유주의-자본주의 다양성과 러시아-중국 권위주의 브랜드 모두에 대해 절실히 필요한 대안이다.

러시아가 원하는 것은 단지 유럽의 해체만이 아니다. 러시아는 또한 서구의 신식민주의에 반대하는 개발도상국의 동맹국임을 자처하고 있다. 러시아의 선전은 서구의 학대에 대한 많은 개발 도상국 및 중산층 국가의 쓰라린 기억을 능숙하게 이용한다. 이라크 폭격이 키이우 폭격보다 나쁘지 않았나? 모술은 마리우폴처럼 무자비하게 파괴되지 않았는가? 물론 크렘린은 러시아를 탈식민지화의 주체(agent)로 제시하지만 시리아,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및 기타 지역의 독재자들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아낌없이 제공한다.

전 세계의 권위주의 정권을 대신하여 배치된 크렘린의 용병 조직인 바그너 집단(Wagner Group, 러시아의 준군사조직으로 시리아 내전과 돈바스 전쟁 등에 비공식 군사활동을 전개 - 역자 주) 활동은 러시아식 세계화가 어떤 모습일지 엿볼 수 있다. 이 단체의 배후에 있는 푸틴 대통령의 측근인 예브게니 프리고진(Yevgeny Prigozhin)은 최근 서방 저널리스트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러시아인, 말리인, 중앙 아프리카인, 쿠바인, 니카라과인, 그리고 다른 많은 민족과 국가들을 제3세계의 쓰레기처럼 여기는 죽어가는 서구 문명이며 우리에게는 수많은, 수십억 명이 있다. 그리고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유럽을 방어한다고 당당히 선언하자 러시아는 유럽의 과거와 현재의 희생자들을 모두 방어하겠다고 응답한다.

우리는 이 선전의 효과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세르비아에서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처음으로 대다수의 유권자가 이제 유럽 연합 가입에 반대한다. 유럽이 새로운 이데올로기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자유 자본주의 세계화 모델을 변경해야 한다. 급진적인 변화가 없다면 어떤 것도 실패할 것이고, 이는 유럽연합을 침투하여 파괴하기로 결심한 적들에 의해 둘러싸인 요새로 변하게 될 것이다.

나는 러시아 가스 보이콧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내가 "전시 공산주의"(war communism)라고 반복해서 언급한 것을 수반할 것이다. 전면전이나 이와 유사한 대규모 재난의 경우와 같이 우리 경제 전체가 재편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보이는 것만큼 멀리 있지 않다. 식용유는 전쟁으로 인해 영국의 상점에서 이미 비공식적으로 배급되고 있다. 유럽이 러시아 가스를 포기한다면 생존을 위해 비슷한 개입이 필요할 것이다. 러시아는 유럽이 "영웅적인" 일을 할 수 없다고 믿고 있다.

그러한 변화가 부패의 위험을 높이고 군산복합체에 추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다. 사실, 그러한 변화는 부패의 위험을 높이고 군 산업 단지가 추가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은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을 훨씬 뛰어넘는 더 큰 위험과 비교되어야 한다.

다섯 기사

세계는 전염병, 전쟁, 기아, 죽음이라는 묵시론의 네 기사를 불러일으키는 다중적 동시 위기를 겪고 있다. 이 기사들은 단순히 악의 형상이라고 무시할 수 없다. 캐나다 녹색당의 초대 당수인 트레버 핸콕(Trevor Hancock)이 말했듯이, 그들은 "자연의 인구 규모를 조절하는 생태학의 4명의 기사라고 부를 수 있는 것과 매우 유사합니다." 생태학적 측면에서 "4명의 기사"는 인구 과잉을 방지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 이 규제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 왔다.

“인구는 1950년 25억에서 오늘날 78억으로 지난 70년 동안 3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왜 우리는 통제되지 않습니까? 레밍처럼 언젠가는 인구를 몰살시킬 다섯 번째 기병이 있습니까?”

최근까지 핸콕은 인류가 의학, 과학, 기술을 통해 4명의 기사를 견제할 수 있었다고 관찰한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촉발한 거대하고 빠른 지구 생태학적 변화"가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고 있다. "그래서 물론 소행성 충돌이나 슈퍼 화산 폭발이 우리를 쓸어 버릴 수도 있지만 인류에게 가장 큰 위협인 그  '다섯 번째 기사'는 우리입니다."

우리가 멸망할지 구원받을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협에 대한 글로벌 인식이 높아지고 있지만 의미 있는 조치로 전환되지 않았기 때문에 4명의 기사는 점점 더 빠르게 질주하고 있다. 코로나19 역병과 대규모 전쟁의 귀환 이후 기아 위기가 도래하고 있다. 기후 변화와 생물 다양성 손실로 인해 점점 더 심각해지는 자연재해와 마찬가지로 모두가 대량 사망을 초래했거나 초래할 것이다.

물론 우리는 안일한 소비주의적 쾌락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쟁을 진정한 경험으로 미화하려는 유혹에 저항해야 한다. 대안은 단순히 그럭저럭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동원하는 것이다. 우리가 직면한 위험을 감안할 때, 군사적 열정은 비겁한 현실 도피이다. 그러나 편안하고 영웅적이지 않은 안주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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