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자 주: 인간의 '생명'이 언제부터 시작되는 가에 대한 과학적 답은 없다. 그 답은 종종 정치와 법에 의해 결정된다. 낙태권을 지지하거나 혹은 반대하는 측은 그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간(person)을 일종의 고정된 상태 그리고 인간성(personhood)을 각각의 개인이 소유하는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사고는 인간을 영혼을 가진 개인으로 보는 서구 기독교적 전통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기독교적 전통이 지배적이지 않거나, 다른 전통이 살아있는 곳에서 인간은 형성된 상태가 아니라 형성 중인 과정이며,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심지어 환생의 개념을 포함하여 당대를 넘어서는 세대적 존재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기독교적 전통을 가진 사회에서 인간은 반드시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씨족과 관련된 동식물까지 확대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낙태권을 둘러싼 미국의 찬반 논란은 인간을 고정불변의 개체이자 개인에 의해 소유된 것으로 보는 기독교적 신학을 법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 온 것이다. 노스웨스턴 대학교 인류학 교수 Robert Launay의 Conversation 7월 12일 자 기고 What does it mean to be a ‘person’? Different cultures have different answers의 번역으로 서구 기독교 전통 그리고 다른 전통에서의 인간과 인간성 개념의 차이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특히 이 글은 인간을 영혼을 가진 개인으로 보는 고정된 개인주의적 서구 기독교 전통을 형성되는 과정으로서의 점진적 인간 그리고 광범위한 사회와 자연과 관계를 맺는 관계적 인간이라는 비 기독교 전통과 대비하며 그것의 낙태를 둘러싼 논쟁에서의 함의를 다루고 있다.
'인간'(person)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문화마다 답이 다르다
Robert Launay
낙태 권리의 반대자와 지지자는 종종 "생명" 또는 "선택"이라는 두 가지 기본 가치 측면에서 자신의 입장을 구성한다.*
* 역자 주: 낙태 지지자 운동은 보통 'pro-choice' 운동, 낙태 반대자 운동은 'pro-life' 운동으로 불린다. Pro-choice 운동은 여성의 주체성과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강조하지만 그 결정은 '선택'이라는 개인적 측면에 맞추어져 있다. Pro-life 운동은 생명을 강조하는 것 같지만 생명 자체를 고정된 것으로 간주하며, 임신과 출산의 사회적 배경과 맥락, 영향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많은 "생명" 수호자들은 전쟁이나 사형과 같은 상황에서 인명을 빼앗는 것을 수월하게 생각한다. "선택"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은 정부의 총기 규제 또는 마스킹 및 백신 의무화를 지지한다.
내가 보기에, "삶"과 "선택"은 그 자체로 진정한 문제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이 사람을 구성하느냐, 혹은 누가 인간(person)**을 구성하느냐이다.
** 역자 주: person은 개인, 사람, 인간 여러 가지로 번역이 가능하지만 이 글에서는 '인간'으로 번역하였다. '인간'으로 번역된 글의 원문이 person이 아닌 다른 용어를 사용하였을 경우 예를 들어 '인간(human)'처럼 괄호로 원문을 표기하였다. Personhood는 보통 인격으로 번역되지만 이 글에서는 인간 자체의 성질과 특성을 표현하는 '인간성'으로 번역했다.
이 질문은 인류학자, 특히 나와 같이 비유럽 종교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인류학자들을 오랫동안 사로잡아 왔다.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미국과 유럽에서 일반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부 아이디어는 아주 간단히 말해서 다른 종교 전통과 문화의 추종자들과 공유되지 않는다.
미국 문화에서 인간성(personhood)에 대한 생각은 대체로 기독교의 산물이며, 인간성은 영혼의 개념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영혼을 소유한 존재만이 인간이고 인간성은 흑백 문제로 취급된다. 존재는 영혼이 있거나 혹은 없다.
아프리카의 종교 전문가로서 나는 인격을 매우 다양하고 미묘한 방식으로 취급하는 종교 전통을 알게 되었다. 아프리카에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을 이슬람교도나 기독교인으로 인식하지만 토착 종교는 여전히 널리 퍼져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인간성을 일회성 현상이 아닌 과정으로 본다.
점진적인 인간성
이것은 코트디부아르의 벵(Beng) 문화에서 아기에 대한 믿음으로 잘 설명되어 있다. 인류학자 알마 고트립(Alma Gottlieb)은 2004년 그녀의 놀라운 민족지 'The Afterlife Is Where We Come From'(내세가 우리가 온 곳이다)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벵에게 모든 아기는 최근에 죽은 사람들의 환생이다. 그들은 내세인 동시에 일종의 전생인 "wrugbe"라는 장소에서 나온다.
아기들이 환생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특히 조상들의 환생이라는 생각은, 벵인 또는 아프리카 종교에 거의 구체적이지 않다. 사실, 신생아는 잘린 탯줄이 마르고 떨어져서야 정말로 "wrugbe"를 떠난다. 그때 비로소 유아는 어떤 의미에서든 인간으로 간주된다. 그녀가 미리 죽으면, 그녀는 어떤 종류의 장례도 받지 않는다. 그 후에도 아이들이 몇 살이 될 때까지 사람들은 자신이 "wrugbe"와 평범한 인간(humans)의 세계 사이에 놓여 있다고 믿습니다.
벵과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의식은 인간성의 발전을 의미한다. 일부 문화권에서는 아이들이 입문(initiation, 성년식 - 역자 주)을 거치기 전까지는 성별을 완전히 갖지 못한다고 믿는다. 입문 과정 자체가 마치 입문자가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처럼 상징적인 죽음과 부활이다. 가나 북부의 탈렌시(Tallensi)와 같은 일부 사회에서는 개인이 완전한 인간성을 성취하게 되면, 죽은 후에야 조상이 되어 후손들의 삶에 온전히 관여하게 된다.
인간뿐만 아니라
"인간들"은 반드시 사람(human)일 필요도 없다. 내가 조사한 디울라(Dyula) 공동체와 같은 서아프리카의 만데(Mande) 문화에서 모든 씨족은 사자, 표범, 코끼리, 악어 또는 비단뱀과 같은 크고 위험한 야생 동물인 "ntana"와 관련이 있다. 이 종들의 구성원은 인간들로 간주되지만 관련 씨족 중의 개인만을 가리킨다.
각각은 자신의 ntana와의 관계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전형적으로 종의 조상이 자신이 빠진 구덩이에서 그를 끌어올린 것과 같이 일족의 조상을 구출한 방법에 대한 이야기이다. 씨족의 구성원은 자신의 ntana를 죽이거나 먹어서는 안 되며, 죽은 동물의 유해를 만지거나 보는 것조차 위험한 것으로 간주된다.
패러다임이 문화마다 어떻게 다른지 비교할 때 인간성의 두 가지 측면이 특히 두드러집니다.
첫째, 인간성은 때때로 일정한 상태가 아니라 과정으로 간주되며, 각 개인이 자동으로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둘째, 인간성은 순전히 개인적인 현상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사회적 관계, 특히 부모, 형제자매, 자녀 사이, 배우자와 상대 배우자 집안 사이; 그리고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관계와 얽혀있다. 반면에 기독교는 영혼과 개인의 구원을 강조한다. 존재는 영혼을 소유하거나 그렇지 않으며, 이 영혼의 구원이나 저주는 개인의 책임이다.
기독교인이 다수인 사회에서는 다른 종교 전통과 비교할 때까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인간성 개념이 기독교 토대에서 어느 정도까지 파생되는지 항상 명확하지 않을 수 있다. 내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생각들을 법에 포함시키는 것 특히 낙태를 금지하거나 심지어 금지를 허용함으로써 법에 포함시키는 것은 신학을 법적 원칙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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