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자 주: 미국 연방 차원에서 여성의 낙태에 대한 헌법적 권리를 인정했던 1973년 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이 지난 6월 24일 기각되면서 공화당이 우세한 주들은 낙태금지를 재빨리 재도입하고 있다. 미국의 낙태 반대 운동이 흔히 'pro-choice' 즉, 개인의 사적 선택과 여성의 개인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강조하듯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은 사적 권리 혹은 프라이버시 권리에 입각했다. 이러한 개인적 선택과 프라이버시는 낙태 문제가 실제로 개인의 생식계통과 생물학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조직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저명한 철학자, 퀴어 이론가, 페미니스트인 주디스 버틀러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의 전복은 단순히 일부 교회 세력의 낙태권에 대한 반발이나 후퇴가 아니라 강경 우파들의 가부장제 복원 프로젝트의 하나로 보고 있다. 그는 개인적 프라이버시 권리보다는 평등권을 보아야 하며, 낙태권 운동과 생식 정의 운동을 광범위한 사회정의 운동 내에 위치시키며 차이를 인정하는 광범위한 연합을 형성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 글은 Judith Butler on Roe vs Wade, trans rights and the war on education의 번역으로 뉴 스테이츠먼(New Statesman)의 특별 기획 프로젝트 편집자 Alona Ferber가 주디스 버틀러와 가진 인터뷰의 번역으로 이 인터뷰에서 버틀러는 로 대 웨이드 판결 번복의 진정한 의미와 그 의도, 기존 낙태권 운동의 문제와 새로운 연합의 필요성, 낙태권 운동과 생식권 정의 운동 그리고 사회 정의 운동과의 관계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주디스 버틀러,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트랜스 권리와 교육 전쟁에 대하여
철학자이자 젠더 이론가인 그는 낙태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 가부장제를 복원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부라고 말한다
Alona Ferber
1973년 이래로 미국에서 안전하고 합법적인 낙태를 보장해 온 결정인 로 대 웨이드(Roe vs Wade)를 뒤집은 6월 24일 미국 대법원의 판결의 여파는 여전히 전국적으로 느껴지고 있다. 지난 5월 결정문 초안이 유출돼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충격적이었다. 낙태 조항은 20세기의 위대한 페미니스트 승리 중 하나였으며, 로 대 웨이드는 동성 결혼과 피임에 대한 접근을 포함한 다른 권리를 보장했었다. 조 바이든(Joe Biden) 대통령이 낙태에 대한 접근을 보호하기 위한 행정 명령에 서명한 이후로 의회는 연방 차원에서 동성 결혼을 보호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법안이 상원을 통과할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로(Roe)의 전복은 진보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페미니즘은 다음 어디로 가는가? 뉴 스테이츠먼(New Statesman)은 이에 대해 철학자이자 페미니스트이며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의 맥신 엘리엇(Maxine Elliot) 비교 문학 교수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와 이메일을 교환했다. 교환은 길이와 명확성을 위해 편집되었다.
알로나 페버(Alona Ferber): 로 대 웨이드가 기각된 것을 봤을 때 가장 먼저 마음이 떠오른 것은 무엇입니까?
주디스 버틀러: 미국에서 연방 낙태 권리의 전복이 우리가 충격적이고 완전히 예측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세계적 사건에 속하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우익의 이득, 복음주의 교회의 정치화, 그들의 바티칸과의 새로운 양해와 선출직 및 임명직 관리들에게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또한 온건한 민주당원들이 그들의 표를 잃을까 봐 낙태 권리에 대한 지지를 완화하거나 지지를 철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류 미디어와 대중문화에서 "태어나지 않은 어린이"에 대한 언급을 듣는 것이 점점 더 일반적이 되었기 때문에 보수주의자들은 폐지를 가능하고 심지어 필요한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노력에서 승리했습니다. 나는 폐지의 책임을 페미니스트나 트랜스젠더나 사망한 대법원 판사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에게 돌리는 분석가의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에게 등을 돌리는 그러한 방식은 너무 쉽고 잘못된 것이며, 우리가 가장 필요한 일, 즉 강경 우파를 분석하고 패배시키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극명한 차이를 허용하는 동맹 형태들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싸우면서 전진할 수 있지만 전진해야 합니다.
알로나 페버: 사람들은 이 순간을 이끈 사회적 추세와 힘에 대해 무엇을 이해해야 하며, 페미니즘이 힘들게 얻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주디스 버틀러: 로 대 웨이드는 프라이버시 권리(privacy rights)에 기초하여 결정되었는데, 그것은 국가의 개입 없이 낙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여성의 사적인 결정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프라이버시는 생식권*의 복잡한 기반입니다. 그것은 계급보다는 개인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으며 집단적 자유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합니다. 긴즈버그 대법관이 평등하게 대우받을 헌법상 보장된 권리의 침해로 "성"(sex) 차별을 규정했을 때, 그녀는 평등이 페미니스트의 법적 승리의 기초라고 강조했습니다. 낙태를 포함한 특정 종류의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이 평등의 문제라면 어떨까요? 남성은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고 여성은 그렇지 않은 경우 여성이나 임신한 사람들은 차별로 고통받습니다. 트랜스 헬스케어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트랜스가 아닌 사람들이 필요한 의료를 받고 트랜스가 의료 시설에서 차별에 직면하게 되면 그들은 차별로 고통받습니다.
* 역자 주: 생식권은 reproductive rights의 번역이다. Reproduction 혹은 reproductive는 생식 혹은 재생산으로 번역 가능하다. '생식'이라는 용어는 보다 중립적인 인상을 부여하는 대신 임신과 출산, 성에 대한 문제를 단지 신체적인 측면으로 환원하면서 집합적이고 사회적 측면을 배제할 위험이 있다. '재생산'은 성과 임신, 출산에 대한 문제를 사회적 맥락 속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생식'의 협소하고 단절적인 측면을 넘어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재생산은 인간의 성과 임신, 출산을 제조와 생산의 영역의 관점으로 환원하거나 그러한 관점을 내포할 위험이 있으며, 인간의 성과 임신, 출산 등의 문제를 '재-생산'이라는 개념으로 대체할 수 있는가의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 글에서는 reproduction이나 reproductive를 편의상 '생식'으로 통일했다. 이는 어디까지나 편의상의 번역이며 생식과 재생산이 가진 특정 관점 강조와는 무관하다.
그렇다면 낙태 권리를 부정하는 것이 성에 근거한 차별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러한 권리를 부정하는 판단에 성이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불공정하고 부정의 합니다. 우리는 낙태 권리 거부가 성을 바로잡을 것인지(아마도 그렇지 않겠지만) 여부에 대해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따라서 차별이 발생하는 것은 성 때문이 아닙니다. 차별은 불공정하고 차별적인 방식으로 성을 언급하며, 법적으로 중요한 유일한 "성"은 차별 행위에서 나타나고 기능하는 성입니다.
그래서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억압은 우리의 생식 계통(reproductive systems)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다”와 같은 주장을 할 때, 그러한 생식 계통이 억압의 원인인 것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엉뚱한 생각이고 잘못된 것이며 페미니스트 목표를 발전시키지 않습니다. 낙태가 일어나야 하거나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결론으로 이끄는 것은 생식의 사회적 조직(social organisation of reproduction)입니다. 국가는 자궁에 대한 이해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며, 자궁을 실제로 소유한 자의 영역이 아니라 자신의 영역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반대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자궁을 형상화하는 반페미니스트 세력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억압 체계가 생물학적 주장을 그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어떻게 왜곡하는지 물어야 할 때 우리는 억압 체계의 존재를 생물학의 원인으로 돌립니다.
알로나 페버: 로 대 웨이드를 뒤집는 결정에 대해 동의하는 의견에서 클래런스 토마스(Clarence Thomas) 대법관은 동성 결혼에 대한 권리를 포함하여 프라이버시에 의해 지지되는 다른 대법원 결정들도 위험할 수 있다고 암시했습니다. 이 결정은 페미니즘, 성평등, LGBTQIA+** 권리에 대한 진보에 대한 반발(backlash)의 강력한 증거처럼 보입니다. 동의하십니까?
** 역자 주: LGBTQIA+에서 L은 여성 동성애자인 레즈비언(lesbian), G는 남성 동성애자인 게이(gay), B는 양성애자인 바이섹슈얼(bisexual), T는 젠더전환자인 트랜스젠더(transgender), Q는 성소수자 혹은 성 정체성을 명확히 할 수 없는(혹은 하지 않는) 퀴어(queer) 혹은 퀘스처닝(questioning), I는 남성과 여성의 생식기를 다 가진 간성(애자)의 인터섹스(intersex, I), A는 성에 무심한 무성(애자)의 에이섹슈얼(asexual), 에이젠더(agender), 에이로맨틱(aromantic)을 의미한다. 그리고 +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혹은 포함을 거부하는) 플러스(Plus)의 머리글자 혹은 약자로 간성과 무성 외에서 남녀의 젠더 모두의 정체성을 갖고 두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쌍령(雙靈, two-spirit 혹은 2S), 선천적 성과 후천적 젠더 구분 없이 매력을 느끼는 범성(pansexual), 그리고 LGBTQIA 커뮤니티와 연대하는 동맹(ally)까지 포함하기도 한다.
주디스 버틀러: 우리는 반발(backlash)보다 더 심각하고 위험한 것을 목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일부 사람들이 진보적인 입법과 교육 기관 내 새로운 탐구의 형태들에 의해 해체되었다고 생각하는 질서의 재건을 최종 목표로 하는 "복원 프로젝트"(restoration project)입니다. 가부장제뿐만 아니라 백인 우월주의와 오롯이 이성애 결혼이 해체에 반대해 복원되고 보호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토마스가 대법원이 피임법을 사용하고 그에 대해 조언을 하는 것의 범죄화를 금지했고 "소도미"(sodomy) 행위를 범죄화를 금지했거나 동성 결혼을 옹호했던 판결을 이제 재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썼을 때 그 자신의 견해를 말한 것입니다. 그의 견해에서, "적절한 절차의 권리"(due process rights)***는 국가의 침해로부터 자유를 보호하는 것으로 잘못 해석되었습니다.
*** 역자 주: 1973년 미국 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에서 여성의 낙태권 보장은 수정헌법 제14조의 적절한 절차 조항에 기초했다. '공민권' 조항으로 알려진 미국 수정 헌법 제14조는 남북 전쟁 이후 수립된 3개의 수정안으로 구성된 중건 수정안(重建修正案, Reconstruction Amendments, 13조는 노예 금지 그리고 15조는 인종에 따른 참정권 금지의 금지 조항)의 하나이다. 수정 헌법 제14조의 첫 번째 섹션은 시민권 조항, 법 절차 조항 및 평등 보호 조항과 같은 여러 조항을 포함한다. 적절한 절차 조항은 주 및 지방 정부가 공정한 절차 없이 사람의 생명, 자유 또는 재산을 박탈하는 것을 금지한다.
여기서 토마스가 요구하는 것은 이러한 각각의 경우에 더 많은 국가 개입, 자유의 축소 또는 자유 요구의 기각입니다. 그는 또한 이러한 요구를 제한함으로써 질서를 회복할 수 있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소도미는 다시 한번 용납될 수 없게 될 것이고, 누구도 낙태를 시도하지 못할 것이며, 결혼은 다시 한번 오롯이 이성애 기관이 될 것입니다.
알로나 페버: 어쩌면 이것은 완전히 명백하지만, 교회가 이 "복원 프로젝트"의 주요 동인 중 하나라고 생각하십니까? 다른 중요한 동인이 있습니까?
주디스 버틀러: 나는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공화당원들도 좌파가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K-12(초중등)부터 고등교육을 통해 교육기관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종 정의, 낙태 권리, 의료 정의 및 이민자에 대한 법적 보호를 위한 운동에 대한 공격, 총기 로비 및 무기 산업에 대한 지원이 로(Roe)의 폐지와 관련되어 있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일부 동일한 주장들이 분명히 작용하고 있습니다.
알로나 페버: 운동가들은 온라인 활동이 낙태 서비스를 찾는 사람들을 기소의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기술을 고려할 때 자유에 대해, 그리고 실제로 권리에 대해 다르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까?
주디스 버틀러: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한 주들이 다른 곳에서 낙태를 확보하기 위해 주경계를 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경우 감시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감시는 국가와 기업 모두에 의해 주관되며 후자도 똑같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프라이버시 논점은 중요하지만 생식 평등과 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요 방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라틴 아메리카 페미니스트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모든 종류의 의료 문제에서 여성과 LGBTQIA+ 사람들에 대한 차별 사이의 연관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법이 항상 사회 이론과 같은 유연함으로 작동할 수는 없지만 낙태권을 사회 및 경제 정의를 위한 강력한 운동 내에서 다시 위치 지워야 할 때임이 분명합니다.
알로나 페버: 다음을 생각할 때 당신은 어디에서 희망을 보나요?
주디스 버틀러: 아마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연합을 만드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이 쉬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은 교육 기관에서 페미니즘과 LGBTQIA+의 관점이 모두 검열되고, 어렵게 얻은 권리가 철회되고, 의료가 사회 정책과 경제적 비용 모두에 의해 제한되거나 거부되는 시대입니다. 전 세계의 "젠더 이데올로기"에 대한 공격은 낙태 클리닉을 폐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페미니스트를 "살인자"라고 부르며, 학교에서 게이와 레즈비언의 삶에 대해 가르치는 것에 대한 공격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트랜스 건강에 대한 공격이 있습니다. 비판적 인종 연구(critical race studies)에 대한 공격은 역사가와 비평가를 위험한 방법과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비난하면서 추한 머리를 쳐드는 백인 우월주의의 한 예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잘 조직된 우익의 표적으로 모였으므로 아마도 우리가 어떻게 모이고 어떤 목적을 위해 모이고 싶은지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낙태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하지만, 그것이 생식 정의(reproductive justice)에 속하는 많은 권리 중 하나이고 생식 정의는 정의를 위한 복잡하고 역동적인 투쟁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고 나면 우리는 평등하고 증오와 불평등을 조장하는 사람들을 극복할 변혁적인 역량을 상상하는 길로 나아갑니다.
https://zigzagworld.tistory.com/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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