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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TV '최초'의 흑백인종 간 키스의 주인공 니셸 니컬스: 우후라(Uhura)를 넘어선 우주와 포용의 전도사

Zigzag 2022. 8. 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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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자 주: TV 역사상 최초의 흑백 인종 간 키스는 보통 1968년 11월 22일에 방영된 '스타 트렉' 에피소드 플라톤의 사생아들(Plato's Stepchildren)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 이전에도 TV에는 인종간 애정표현의 스킨십이 있었지만, 단순한 키스 흉내나 뽀뽀가 아닌 본격적인 키스는 백인 커크 대위와 흑인 우후라 중위 간의 키스가 최초로 여겨진다. 그 장면이 실질적으로 TV 역사상 최초의 흑백 인종 간 키스였는지와 별개로 이 키스는 연방 대법원이 러빙 대 버지니아(Loving v. Virginia) 판결로 인종 간 결혼을 금지하는 주법을 무효화한 지 1년 그리고 미국 전역이 흑인들의 민권투쟁과 학생들의 시위로 들끓는 와중에서 탄생했기에 더 강력하게 사람들의 뇌리에 남게 됐다. 우후라 역을 맡은 니셸 니컬스(Nichelle Nichols)는 배우였을 뿐만 아니라 나사(NASA)의 우주 프로그램이 더 많은 여성과 소수인종을 수용할 수 있도록 활동한 우주 전도사이며, 이들 소수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운 활동가이기도 했다. 이 글은 셔먼 페어차일드 다트머스 대학 역사학 석좌교수 Matthew Delmont의 The Conversation 8월 1일 자 기고 The story behind ‘Star Trek’ actress Nichelle Nichols’ iconic interracial kiss의 번역으로 TV 역사상 최초의 인종간 키스 장면의 탄생 배경과 역사적 의의, 그 주인공인 우후라 역의 니셸 니컬스의 생애와 활동 여성과 소수자들을 위한 그녀의 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스타 트렉' 여배우 니셸 니컬스의 상징적인 인종 간 키스 비하인드 스토리

이 키스는 미국 대법원이 인종간 결혼을 금지하는 법을 뒤집은 지 1년 만에 방송됐다. 사진: CBS via Getty Images

"스타 트렉"(Star Trek)의 1968년 에피소드에서 우후라(Uhura)* 중위를 연기한 니셸 니컬스(Nichelle Nichols)는 미국 텔레비전에서 흑인 여성과 백인 남성의 첫 키스로 널리 알려진 장면에서 윌리엄 샤트너(William Shatner)의 커크(Kirk) 대위와 입술을 맞췄다.

* 역자 주: 니컬스가 연기한 캐릭터의 전체 이름은 니요타 우후라(Nyota Uhura)이다. 성 우후라는 아프리카 스와힐리어에서 자유를 의미하는 우후루(uhuru)에서 차용했다. 이름 니요타는 스와힐리어에서 '별'(star)를 의미한다.

에피소드의 줄거리는 기괴하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을 숭배하는 외계인이 염력을 사용하여 엔터프라이즈 승무원에게 노래, 춤, 키스를 강요한다. 어느 시점에서 외계인은 우후라 중위와 커크 대위를 포옹하도록 강요한다. 각 캐릭터는 저항하려 하지만 결국 커크는 우후라를 뒤로 기울이고 외계인이 음탕하게 바라보는 가운데 두 사람은 키스한다.

이 키스는 낭만적이지 않다. 그러나 1968년에 흑인 여성이 백인 남성에게 키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과감한 조치였다. 이 에피소드는 미국 대법원의 러빙 대 버지니아(Loving v. Virginia) 판결이 인종 간 결혼을 금지하는 주법을 무효화한 지 1년 만에 방송되었다. 당시 갤럽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20% 미만이 그러한 관계에 찬성했다.

시민권과 미디어 역사가로서 나는 이 획기적인 TV 모멘트의 중심에 있는 여성에 매료되었다. 2022년 7월 30일에 사망한 니컬스의 캐스팅은 보다 창의적이고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스타 트렉" 스토리라인의 가능성을 만들었다.

그러나 니컬스의 화면 밖의 활동도 중요하다. 그녀는 "스타 트렉"에서 자신의 역할을 활용하여 NASA의 모집인이 되었고, 그곳에서 그녀는 우주 프로그램의 변화를 추진했다. 그녀의 경력은 스크린에서의 다양한 캐스팅이 현실 세계에서도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현대 TV의 승리'

1966년, "스타 트렉"의 창시자 진 로덴베리(Gene Rodenberry)는 니콜스를 아프리카 미국의 번역가이자 통신 장교인 우후라 중위로 캐스팅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니콜스를 텔레비전에서 계속해서 공동 주연을 맡은 최초의 흑인 여성으로 만들었다.

블랙 언론은 재빨리 니콜스의 선구적인 역할에 대해 빠르게 칭송했다.

노포크 저널 앤 가이드(Norfolk Journal and Guide)는 그것이 "그녀의 인종이 TV에서 발판을 넓힐 것"이라고 희망했다.

잡지 에보니(Ebony)는 1967년 1월 표지에 니콜스(Nichols)를 소개하고 우후라(Uhura)를 "최초의 흑인(Negro) 우주비행사이자 현대 TV의 현대 NASA에 대한 승리"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우후라와 커크 사이의 유명한 키스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1967년 "스타 트렉"의 첫 번째 시즌이 끝난 후 니컬스는 브로드웨이에서 역할을 제안받은 후 하차를 고려했다. 그녀는 뉴욕에서 가수로 경력을 시작했었으며 항상 빅애플(Big Apple, 뉴욕의 별명 - 역자 주)로 돌아가기를 꿈꿨었다.

그러나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전미 흑인 지위 향상 협회(NAACP) 모금 행사에서 그녀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를 만났다.

니컬스는 나중에 그들의 상호 작용을 자세히 설명한다.

“당신은 떠나면 안 됩니다.”라고 킹이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은 닫으면 안 되는 문을 열었습니다… 당신은 텔레비전의 얼굴을 영원히 바꾸었습니다. … 처음으로 세상은 우리가 마땅히 보여져야 할 대로, 평등하고, 지적인 사람으로 우리를 봅니다.”

킹은 계속해서 그와 그의 가족이 쇼의 팬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의 아이들에게 "영웅"이었다.

킹의 격려로 니컬스는 원래 시리즈의 전체 3년 동안 "스타 트렉"에 머물렀다.

니콜스의 논란이 된 키스는 시즌 3 말미에 벌어졌다. 니컬스는 NBC 경영진이 남부 텔레비전 방송국과 시청자가 어떻게 반응할지 불안했기 때문에 촬영을 면밀히 모니터링했다고 회상했다.

에피소드가 방송된 후 네트워크는 시청자들로부터 쏟아지는 편지를 받았고 대다수는 긍정적이었다.

1982년 니컬스는 볼티모어 아프로아메리칸(Baltimore Afro-American)에 키스가 만들어낸 지대한 관심에 대해 매우 기뻐했다고 말했다. 특히 그녀의 유산()은 "이집트, 에티오피아, 무어, 스페인, 웨일스, 체로키 인디언과 금발의 푸른 눈의 조상을 포함하는 인종들의 혼합"이었기 때문이다.

우주 십자군

그러나 니컬스의 유산(legacy)은 키스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NBC가 1969년 스타트렉을 취소한 후 니컬스는 '인사이트'(Insight)와 '더 디에이'(D.A.)라는 두 개의 TV 시리즈에서 단역으로 출연했다. 그녀는 또한 1974년 블랙스플로이테이션(blaxploitation)** 영화 '트럭 터너'(Truck Turner)에서 마담 역을 맡기도 했다.

** 역자 주: 블랙스플로이테이션(Blaxploitation)은 1970년대 초반 미국에서 태어난 영화 장르이다. 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타깃으로 한 이 장르의 이름은 "black"과 "exploitation"을 결합에서 유래했다.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영화는 흑인 감독에, 캐스트, 음악 담당도 흑인이고 사운드트랙에 R&B, 펑크 및 소울 뮤직을 사용했다. 1970년에는 5편 정도의 블랙 무비가 제작됐지만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1971년 '스위트 스위트백 배드애스스 송'(Sweet Sweetback's Baadasssss Song)은 큰 히트를 쳤다. 전체적으로 B급 영화가 많았으며, 백인들이 악당 캐릭터로 많이 나오지만 등장 흑인들이 마약상과 같은 스테레오 타입 역할을 맡는 경우도 많아 전미 흑인지위향상 협회에서 이들 영화에 대해 반대하기 도 했다.

그녀는 또한 행동주의와 교육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1975년 니컬스는 위민 인 모션사(Women in Motion Inc.)를 설립하고 우주 및 과학과 관련된 교육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한 여러 정부 계약을 수주했다. 1977년까지 그녀는 민간 우주 옹호 단체인 국립 우주 연구소(National Space Institute)의 이사로 임명되었다.

그 해 그녀는 이 연구소의 연례 회의에서 연설을 했다. 그 연설에서 그녀는 우주 비행사에 여성과 소수자가 부족하다고 비판하면서 NASA에 "지적 추구의 상아탑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음 아인슈타인은 검은 얼굴을 가지고 있을 것이며 그리고 그녀는 여성일 것입니다"라고 도전했다.

곧, 그녀는 짐을 싸서 전국을 여행하기 시작했고, 고등학교와 대학을 방문했고, 전문 단체와 입법자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굿모닝 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와 같은 전국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니컬스는 1979년 볼티모어 아프로아메리칸에 이렇게 말했다. "여성들과 소수민족들 사이에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을 찾고, 그들에게 기회가 진짜이며, 이것이 또한 의무라는 것을 납득시키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역사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저도 정말로 이 일에 대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니컬스는 1994년 자서전 '우후라를 넘어'(Beyond Uhura)에서 채용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7개월 전에  "NASA는 1,600명의 지원자만을 받았는데 그중 여성은 100명 미만, 소수자 후보는 35명에 불과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나 1977년 6월 말까지 “임무를 맡은 지 불과 4개월 만에 여성 지원자 1649명(15배 증가)과 소수 민족 지원자 1000명을 포함하여 8400명의 지원서가 접수되었습니다.”

니컬스의 캠페인은 미국 최초의 여성 우주 비행사 샐리 라이드(Sally Ride),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우주 비행사 구이온 블루포드(Guion Bluford),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우주인 매 제미슨(Mae Jemison)을 포함한 여러 선구적인 우주비행사를 모집했다.

2012년 9월 우주왕복선 엔데버(Endeavour)호가 금요일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 착륙한 후 니컬스 씨가 연설하고 있다. 사진: AP Photo/Reed Saxon

포용에 대한 열렬한 옹호

포용과 다양성에 대한 그녀의 옹호는 우주 프로그램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흑인 여성 최초로 TV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사람 중 한 명으로서, 니콜스는 연예계에서 소수자와 여성들을 위한 문을 여는 것의 중요성을 이해했다.

니컬스는 계속해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영화와 텔레비전에서 더 많은 권력을 가질 수 있도록 밀어붙였다.

그녀는 1985년 에보니에 "우리 흑인과 소수 민족이 제작자, 작가, 감독이 될 뿐만 아니라 구매자와 배급자가 될 때까지 우리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산업이 되기 전까지, 우리가 미디어를 통제하거나 최소한 충분한 발언권을 가지기 전까지는,  우리는 항상 운전기사와 탭댄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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