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과 브란덴부르크주를 기반으로 하는 공영방송 베를린-브란덴부르크 방송(Rundfunk Berlin-Brandenburg, RBB)의 패트리샤 슐레진저(Patricia Schlesinger) 이사장은 8월 15일 부패와 경영 부실 혐의로 RBB 이사회에서 거의 만장일치로 해임됐다. 그녀는 RBB의 이사장이자 9개의 지역 방송 연합으로 구성된 독일 제1방송인 독일 공공방송연맹(Arbeitsgemeinschaft der öffentlich-rechtlichen Rundfunkanstalten der Bundesrepublik Deutschland, ARD)과 독일 해외방송인 독일의 소리(Deutsche Welle)의 순환 의장직을 역임했다. 그녀는 지난 1월 ARD 의장으로 취임했으나 임기 2년 중 8개월도 채우지 못한 채 불명예 퇴임했다.

슐레진저는 의심스러운 자금 사용과 논란의 여지가 있는 컨설팅 계약 할당을 포함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독일어 뉴스 포털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는 슐레진저와 그녀의 남편 게르하르트 스푀를(Gerhard Spörl)의 부패 의혹을 제기했다. 다수의 독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전직 탐사 전문 기자가 연봉 30만 유로 이상의 급여 외에도 불투명한 조건 속에서 "목표에 근거한 호화로운 보너스 상여금"을 받았다고 알려졌다. 그녀는 회사 공금으로 마사지 좌석과 운전기사가 딸린 약 15만 유로 상당의 리무진 차 서비스를 이용하고, 멀쩡한 자신의 사무실을 65만 유로를 들여 사치스럽게 개조하고, 개인 아파트에서 즐기는 호화로운 만찬을 회사의 비용으로 지불했다. 전직 언론인이었던 그녀의 남편은 중재를 통해 지역 텔레비전 방송국 RBB 감독 위원회 울프-디터 볼프(Wolf-Dieter Wolf) 의장이 공동 관리하는 공기업인 베를린 의회 센터(Berlin Congress Center)에 대한 컨설팅 업무로 10만 유로 상당의 계약을 획득했다고 한다. 재정적으로 궁핍한 RBB에서 그녀가 받은 30만 유로의 급여, 16%의 급여 인상, ARD의 다른 지역 방송국 이사장들에게는 지급되지 않은 2만 유로 상당의 추가 보너스, 그리고 개인 유흥을 위한 회사 돈 유용, 가족의 이익을 위해 공권력을 사용과 같은 이러한 부패 스캔들은 독일 공영 방송에서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독일 공영방송의 기원: 패전과 지역방송시스템의 정착
이 스캔들은 독일인들에게 높은 신뢰를 받고 있는 공영방송의 이미지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고 독일 포퓰리즘 정치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문제 중 하나인 공영 방송의 과잉 지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되살릴 수 있는 좋은 먹이 거리가 되었다. 극우 포퓰리스트 독일을 위한 대안(Alternative für Deutschland, AfD)은 즉시 이 스캔들이 공영 방송이 "개혁이 더 이상 불가능"(nicht mehr reformierbar)하며 완전히 폐지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비난했다. 문제는 공영방송에 대한 비판이 극우 포퓰리스트를 넘어 제1야당인 기독민주연합(CDU)의 프리드리히 메르츠(Friedrich Merz) 총재가 이번 스캔들로 드러난 공영방송의 오작동을 공개적으로 비난할 정도로 파장이 커졌다는 것이다. 그는 13일 발표한 의견서에서 "슐레징거 사건은 공영방송의 정통성과 대중적 수용성을 영구히 박탈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경고했다.
독일에는 21개의 TV 채널과 83개의 라디오 방송국을 포함하여 상대적으로 많은 수의 공영 방송사가 있으며 주로 '방송 기부금'이라는 의미의 강제 수신료(Rundfunkbeitrag) 부과금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 현재 월 18.36 유로(18.83 달러)로 설정되어 있는 수신료를 독일의 각 가구는 지불해야 하며, 공영방송사들은 이를 통해 연간 80억 유로 이상을 벌어들인다.

독일 공영방송 특히 제1방송 ARD가 복잡하고 다양한 이유는 독일이 2차 대전 패전국이며 다양한 연합국에 의해 점령된 것과 관련이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서독 연합군은 각각의 점령 지역에서 서독 시스템을 재구성하여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영국 지역)에 북서독 방송(Nordwestdeutscher Rundfunk, NWDR)을, 영국 지역에 남서 라디오(Südwestfunk, SWF)를 만들었다. 독일 남서부(프랑스 지역) 및 미국이 점령한 4개 지역에 바이에른 방송(Bayerischer Rundfunk, BR), 남부독일 방송(Süddeutscher Rundfunk, SDR), 헤센 방송(Hessischer Rundfunk, HR) 및 라디오 브레멘(Radio Bremen, RB) 방송국을 만들었다.
1946년과 1950년 사이에 연합군은 이 신생 지역 방송사에 대한 통제권을 독일인들에게 점차적으로 넘겼고 이 6개 방송사는 "독일 연방 공화국 공법 방송 기관 작업 그룹"(Arbeitsgemeinschaft der öffentlich-rechtlichen Rundfunkanstalten der Bundesrepublik Deutschland)인 ARD를 1950년 6월에 결성했다.
ARD를 구성하는 독일 각 지역 방송

이 6개의 방송사는 영국 방송공사(BBC)를 모델로 삼았다. 즉, 그들은 국가와 민간 시장 모두에서 독립적으로 설계되었으며 민주적 가치에서 독일 대중을 재교육하는 것을 돕기 위해 연합국에 의해 특별히 설립되었다.
연합군은 또한 독일의 방송사들이 독일 정부로부터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의 초대 수상인 콘라드 아데나워(Konrad Adenauer)는 자신의 정부에 대한 ARD의 비판적 태도에 대해 참을성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심지어 1950년에는 영국인이 ARD를 그의 라이벌 정당인 중도좌파 사회민주당(SPD)의 영향 아래 두려 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아데나워는 1959년에 ARD처럼 지역 시스템에 기반한 것이 아닌 전체 연방 차원에서 운영되는 두 번째 공영 방송사의 창설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아데나워의 계획은 위헌으로 간주되었지만 결국 1961년 제2 독일 텔레비전(Zweites Deutsches Fernsehen, ZDF)의 창설로 이어졌다.
1950년 이후에도 6개의 ARD 방송사를 중앙에서 조직하지 않았고, ARD의 의장직을 6개월마다 순환시켜 아무도 독점하지 못하게 했다. 현재 '제1 방송'(das Erste)으로 불리는 ARD의 TV 채널은 1952년에 방송을 시작했지만 프로그램은 6개의 지역 방송사에 의해 편성된다.

공영방송의 확장과 다각화
ARD는 부분적으로 분할을 통해 수년에 걸쳐 꾸준히 확장되었다. NWDR은 1955년에 북부독일 방송(Norddeutscher Rundfunk, NDR)과 서부독일 방송(Westdeutscher Rundfunk, WDR)으로 분리되었다. 1959년에는 자를란트 방송(Saarländische Rundfunk)이 추가되었고 1962년에는 독일의 소리(Deutsche Welle)와 독일 전역의 라디오 방송인 도이칠란트풍크(Deutschlandfunk)가 새로운 회원으로 합류했다.
1990년 독일의 통일은 새로운 독일 지역을 대표하는 동독일 방송 브란덴부르크 (Ostdeutscher Rundfunk Brandenburg)와 1992년 중부독일 방송(Mitteldeutscher Rundfunk)을 각각 창설하면서 새로운 회원이 추가되었다.
1998년에 두 개의 남부 독일 방송사가 합병하여 남서독일 방송(Südwestrundfunk, SWR)을 형성한 반면, 2003년에는 별도의 베를린 방송사와 브란덴부르크 방송사가 합병하여 슐레진저가 이사장으로 재직했던 RBB가 되었다.

최근 전반적인 경향은 각 방송사 내에서 틈새 채널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지면서 다양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뉴스 채널과 4개의 표준 라디오 방송국 외에도, NDR은 팝, 클래식, 청소년 및 대체 시청자를 위한 별도의 라디오 방송국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심지어 많은 사랑을 받는 감성적인 독일 대중음악을 틀어주는 "슐라거"(Schlager) 채널을 가지고 있다. 1998년 3개의 지역 공영 방송국인 WDR, RBB, 라디오 브레멘이 연합하여 독일의 이주자 공동체에 호소하기 위한 다문화 라디오 방송인 코스모(COSMO)를 제작하였다.
공영방송에 대한 높아지는 비판
동시에 독일 공영방송의 역할과 자금 조달은 수십 년 동안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영국의 'You Bet!' 미국의 'Wanna Bet?' 그리고 한국의 '무한 도전'의 원조가 된 '베텐 다스(Wetten das, '내기할까'라는 의미)…?'를 진행했던 스타 진행자 토마스 고트샬크(Thomas Gottschalk)가 회당 10만 유로를 받는다는 소문이 돌았던 값비싼 프레스티지 게임 쇼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최근 독일 공영방송의 수신료를 통한 자금 조달은 더 이상 당연시되지 않고 있다. 동독의 작센-안할트 주의회는 2021년 수신료 증액(월 86센트)을 막겠다고 위협하면서 위기를 초래했다. 이는 독일 16개 주의회 모두가 인상을 승인해야 하기 때문에 분쟁을 야기했고, 이는 독일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결되어야 했다. 슐레진저 스캔들이 대중의 분노를 사는 것은 그녀가 ARD 대표에 취임하기 몇 주 전인 2021년 8월 독일의 권위 있는 주간지 슈피겔(Der Spiegel)과의 인터뷰에서 "저축은 우리의 일상"이라고 설명하며 공영방송 출연료 인상을 정당화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사치와 공영방송의 방만한 운영이 독일인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이번 스캔들을 슐레진저 개인의 부패가 아닌 공영방송 자체에 대한 문제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독일 공영방송의 가치
독일인의 공영매체에 대한 신뢰는 비교적 높은 편이다. 2020년 조사에 따르면 독일인의 공영방송에 대한 신뢰도는 70%에 이르며, 지난 5년간 65-72% 사이의 신뢰도를 유지했다. 지역적 특성이 잘 드러나면서 자유분방한 제1 방송 ARD에 대한 독일인의 시각은 비교적 보수적이고 중앙통제에 의한 제2 방송 ZDF보다 조금 더 우호적이다. 특히 ARD의 뉴스 보도는 독일인이 가장 애용하고 신뢰하는 정보 소스이다.
독일 기자연맹(DJV) 대변인 헨드릭 조르너(Hendrik Zörner)는 이러한 상황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분명한 것은 독일의 공영 방송 자금 조달이 더 이상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덧붙여서 그는 공영방송이 사회적 위기의 시대에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정보를 제공하고, 설명하고, 배경 정보를 제공하는 훌륭한 독립 언론인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공영 방송이 하는 일이며 우리의 의견으로는 그것이 그 어느 때보다 공영방송을 중요하게 만듭니다."
독일에서 민영방송사는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며 민영화의 바람이 불던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독일 정치인들, 특히 극우와 보수 측의 정치인들은 신문과 같은 민영 언론이 살아남기 힘든 상황에서 공영방송에 대한 예산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의 공영방송 시스템은 나치 독일의 폐허에서 지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시도 속에서 탄생했으며 독일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공영방송의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극우 쪽에서 세차게 나오는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닌 셈이다. 슐레진저 스캔들은 공영방송의 투명성 개혁의 목소리를 높일 수는 있으나 독일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훼손하는 개악으로 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 역사는 앞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지만 중심을 유지하는 원칙과 앞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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