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 31일, 죽은 자들에게 영혼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산 자들이 죽은 자들의 복장을 한다는 영미권의 오랜 전통인 할로윈(Halloween)은 기독교 이전의 켈트족의 삼하인(Samhain)) 축제에서 유래했다. 켈트인의 한 해의 끝은 10월 31일로, 이 밤은 가을의 끝을 의미하며 겨울의 시작이기도 하여 죽은 자의 영혼이 가족을 찾아온다고 믿어졌다. 이 날은 죽은 자들이 가장 강력하고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날로 알려져 있다. 10월 29일 밤 이태원은 그 사자와 산자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진 날이었다. 일각에서는 잘못된 외래 전통과 유흥문화, 대중의 공포와 공황,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무책임한 행위를 참사의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군중 재앙에 의한 대규모 압사사건은 잘못된 공간 설계와 이벤트에 대한 안전한 환경제공 실패, 안전 통제 오류에 의해 발생했다. 대부분의 군중 재앙에 발생하는 군중들의 공포와 공황에 의한 행동은 사고의 원인이 아니라 이처럼 안전한 환경과 통제 제공의 실패의 결과이며 이태원 참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대규모 압사를 야기하는 군중 재앙의 종류 그리고 언론과 당국의 원인과 결과의 전도
큰 콘서트, 집회, 스포츠 행사 또는 축제는 눈을 볼 수 있는 혹은 그 이상의 군중으로 가득 차있다. 이러한 대규모 모임은 흔하며, 보통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군중이 공간의 수용 능력을 넘어서 급증하거나 군중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때, 어떤 사람들은 서로 충돌하거나 서로 위에 포개질 수 있으며 순식간에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여 대규모 압사 사건으로 이어지는 군중 재앙(crowd disaster)이 발생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한 압사사건을 광분(狂奔) 혹은 우르르 몰림으로 불리는 스탬피드(stampede, 원래 목동과 카우보이들이 동물들에게 공포를 주어 한 곳으로 모는 행위에서 나온 말), 군중 급증(crowd surge), 군중 충돌(crowd crush)으로 분류한다. 군중 재앙은 언론에 의해 흔히군중의 집단적 공포와 공황이 원인으로 설명되지만 실은 군중의 공포와 공황은 공공 집회 장소에 안전한 환경 제공 실패와 안전 통제 오류의 결과이다.
군중 재앙에 의한 압사는 대부분의 언론이 보도하는 트램플링(trampling), 즉 일군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짖밟혀 죽는 경우가 아니라 압축성 질식(compressive asphyxia)에 의한 것이다. 몇몇 치명적인 군중 사건에서 보여진 경기장이나 행사장의 구부러진 강철 난간은 1,000 파운드 이상의 압력에 의해 발생한 것이며 이는 압축된 군중의 힘이 얼마나 거대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힘은 미는 것에 의해 그리고 군중이 밀집된 상황에서 사람들이 서로에게 기대는 도미노 효과에 의해 발생한다. 압축성 질식은 사람들이 수직으로 쌓이거나, 한 사람이 다른 사람 위에 쌓이거나, 수평으로 밀거나 기울이는 힘 때문에 발생한다. 1903년에 발생한 미국 역사상 최악의 극장 화재인 이로쿼이 극장(Iroquois Theatre) 화재에서 출구에 약 10피트의 사람들이 쌓였는데 이 경우 하단의 사람들은 800-900 파운드의 가슴 압력을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이태원 압사 사건은 군중의 충돌이나 군중 급증으로 설명될 수 있지만 우르르 몰림 혹은 스탬피드는 아니다. 이태원 군중 재앙은 일종의 군중 충돌과 군중 급증로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고 밀치락하는 등의 움직임이 있을 때 일어나는 일종의 도미노 효과에 의해 발생했다. 우르르 몰림 혹은 스탬피드는 사람들이 달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이태원은 그렇지 않았다. 군중 속에 있는 사람이 많을수록 군중 충돌의 힘은 더 커진다. 군중 급증은 예를 들어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밀거나 누군가가 넘어지는 경우와 같이 많은 빡빡한 상황에 의해 촉발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사건들은 보통 고통에 처해 있거나, 공황에 빠지거나, 군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밀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야기되지 않는다. 그러한 반응은 일반적으로 군중이 붕괴하기 시작한 후에 나오는 것으로 안전한 공간적 환경 제공과 안전 통제의 결과이지 그 원인이 아니다.
인간 압사 사건은 전 세계의 다양한 유형의 모임에서 발생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1980년과 2007년 사이에 약 215건의 압사 사고가 있었고, 이로 인해 7,000명 이상의 사망자와 14,000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대규모 압사 사건의 원인
대규모 압사 사건은 위험한 행동과 통제 실패라는 인간적 요인, 잘못된 공간 설계와 공간 용적과 수용력의 불일치, 시설 불안정성 등 다양한 요인들과 그 요인들의 상호 결합에 의해 발생한다. 군중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위험은 다음과 같다.
● 구조물 및 장비에 올라타거나 파괴하는 등의 위험한 행위
● 공간 수용력을 넘는 과잉 인원
● 잘못된 군중 제어와 안전 조치 미비
● 명확한 출구 부재와 같은 계획되지 않은 이벤트 공간
● 좁은 공간
● 출구를 막거나 혼잡을 일으키는 물리적 장벽 또는 매점
● 보행자와 공간을 공유하는 이동 차량
● 느슨하거나 위험한 구조물
● 조리 장비 또는 가연성 구조물 등의 화재 위험
그러한 사고에서 대부분의 부상과 사망은 짓밟힘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산소 부족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군중의 충돌은 가슴을 압박하고 숨쉬기 어렵게 만들어 이른바 압박성 질식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또한 머리와 목 부상을 일으킬 수 있다.
압사 사고는 어떻게 시작될까?
군중이 보통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서로 얽힌 사람들이 흔들리는 군중 대열 안에서 서로 밀치락달치락하기 시작한다. 뒤에 있는 사람들은 앞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밀고 나가는 경향이 있다. 관중들이 같은 방향으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앞에 있는 사람들이 뒤에서 밀어내는 속도를 맞춰야 한다.
그러나 공간의 수용력이 한계를 넘어서거나, 패닉을 발생시키는 요인이 발생하거나, 길을 가로막는 무언가에 의해 발생하는 속도의 불일치가 있다면, 이것은 일종의 도미노 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 뒤에 있는 사람들은 앞에 있는 사람들이 따라갈 수 있는 것보다 더 빨리 앞으로 나아간다.
사람들이 넘어지거나 산소 부족으로 의식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종종, 그러한 무리들의 힘은 사람들이 서 있는 동안 그들을 질식시킬 수 있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심지어 작은 군중 충돌의 힘조차도 견고한 강철 난간을 구부릴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
역사의 최악의 10대 압사 사건
서기 80년, 로마-유대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제1차 유대-로마 전쟁이 시작될 무렵인 서기 66년에 한 로마 병사가 유월절을 맞아 모인 유대인 신전에서 유대인 순례자들을 향해 자신의 가운을 걷어 엉덩이를 보이며 입으로 이상한 소리를 내며 조롱하자 성난 유대인들은 로마 군인들에게 돌을 던지며 항의했다. 유대인들을 진정하는데 실패한 로마 군인들은 군대를 소집했고 공포에 질린 유대인 순례자들은 좁은 통로로 도망치려다 압사로 약 1만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1. 공식적으로 기록된 최악의 압사 사건은 1809년 포르투갈에서 발생했다. 수천 명의 포르투갈 민간인들이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오르포르토를 공격하던 장드디외 술트(Jean-de-Dieu Soult) 원수의 부대를 탈출하기 위해 폰테다스 바르카스 다리(Ponte das Barcas)를 건너려다 사망했다. 20척의 바지선이 있는 다리는 많은 사람들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이 사고로 5,000명이 사망했다.
2. 2015년 9월 24일, 메카 인근 미나(Mina)에서 발생한 마귀 돌기둥에 돌 던지기' 사건은 약 2,300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고, 이는 하지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재앙이다. 사건은 예언자 아브라함이 마귀에게 돌을 던져 유혹을 이겨냈다는 이슬람 경전 쿠란의 구절을 재현한 성지순례 행사의 하나인 ‘마귀 돌기둥’에 돌을 던지는 의식을 치르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순례자 중 이란인 464명이 사망했다고 밝힌 이란 당국은 사우디가 행사를 제대로 조직하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일부 순례자들은 보안군이 신도들의 흐름을 잘못 관리했다고 주장하며 돌을 던지기가 일어난 원인을 돌을 던지기 장소 근처의 도로 폐쇄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3. 2015년 압사 참사 이전에도 메카의 성지 순례는 빈번한 압사 사고의 현장이었다. 1990년 7월 3일에 1,426명이 사망한 메카 인근의 참사도 그 중 하나였다. 이 사고는 메카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미나, 아라파트 평야로 이어지는 보행자 터널인 알마아이심 터널(Al-Ma'aisim tunnel)에서 많은 종교 순례자들이 하지 의식 동안 '마귀 돌기둥에 돌 던지기' 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돌기둥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몸싸움을 벌이며 좁은 터널로 몰려들면서 대규모 참사로 이어졌다. 1998년과 2006년, 2003년에는 같은 행사 과정에서 각각 118명, 364명과 251명이 압사했다.
4. 19세기 초 포르투갈의 압사에 이어 19세기 말에 의 또 다른 대규모 압사 사건이 러시아에서 발생했다. 호딘카 비극(Khodynka Tragedy)은 1896년 5월 30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호딘카 필드에서 일어난 군중 충돌 사건이다. 이 충돌은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스 2세의 대관식 이후 축제 기간 동안 일어났다. 경축일 아침 6시쯤 이미 수만 명이 운동장에 모여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맥주나 프레첼이 충분하지 않다는 소문이 퍼졌고, 에나멜 컵에는 금화가 들어있었다. 니콜라스 2세의 대관식 기간 동안 선물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1800명의 경찰력이 시민 질서를 유지하는데 실패했고, 치명적인 군중 충돌이 일어났다. 현장에서 1,282구의 시신이 수습되었지만, 부상자는 1,200명에서 20,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5. 2005년 알아임마 다리(Al-Aimmah Bridge) 참사는 2005년 8월 31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티그리스 강을 가로지르는 알아임마 다리에서 953명이 공황 상태에 빠지면서 군중 충돌로 사망한 사건이다. 압사 사고가 일어났을 때, 약 100만 명의 순례자들이 주위에 모였거나 시아파 이맘 무사 알 카짐(Musa al-Kazim)의 성지인 알 카디미야 모스크( Al Kadhimiya Mosque)를 향해 행진하고 있었다. 군중들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어 있었다. 앞서 알카에다와 연계된 세력이 군중들을 박격포로 공격해 7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했다. 신사 근처에서 자살폭탄 공격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나면서 많은 순례자들이 공포에 떨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향해 폭발물을 소지하고 있다고 손가락질한 것이 사고의 발단이 되어 대중적 공황 상태로 이어졌다. 공포에 질린 군중은 폐쇄된 다리로 몰려들었다. 어쩐지 다리 끝에 있던 문이 열리고 순례자들이 몰려들었다. 일부 사람들은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져 즉시 사망했다. 이어진 사람들의 쇄도는 많은 사람들을 질식하게 만들었다. 군중의 압력으로 인해 다리의 철제 난간이 무너져 수백 명의 사람들이 9m(30피트)의 티그리스 강으로 추락했다.
6. 1903년 12월 30일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발생한 이로쿼이 극장(Iroquois Theatre) 화재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극장 화재이며, 단일 건물로서도 최악의 화재이다. 적어도 602명이 사망했다. 1,602석 규모의 극장에는 입구가 하나밖에 없었으며, 층별 출구 또한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으며, 스프링클러, 경보장치, 수도도 없었다. 화재가 발생한 12월 30일 좌석은 원래 수용 규모를 훨씬 초과하는 2,000명 이상의 인원으로 들어찼다. 좌석에 앉지 못한 관객들은 통로에 앉아 출구를 막았다. 전기 누전으로 커튼에 불이 붙었고 공황 상태에 빠진 관객들이 좁은 출구로 몰려들며 압사해 시신이 10피트 높이로 쌓일 정도였다.
7. 1954년 2월 3일, 인도 최대 힌두교 순례 축제인 쿰브멜라(Kumbh Mela) 압사 사고는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알라하바드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사건이 일어난 날은 마우니 아마바시야(Mauni Amavasya, 뉴문)의 주요 목욕날이었다. 축제 기간 동안 4-5백만 명의 순례자들이 그 해에 참가했는데, 이는 인도 독립 이후 최초의 쿰브 멜라이기도 했다. 그 비극에 대한 수치는 출처에 따라 달랐다. 가디언지는 800명 이상의 사망자와 100명 이상의 부상자를 보도했지만, 타임지는 "350명 이상이 밟혀 죽고 익사했으며, 200명이 실종되었으며, 2,0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라고 보도했다. 인도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500명 이상이 사망했다.
8.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 공군 폭격기 부대의 공격 동안 방공호로 사용되는 철도 터널 갤러리아 델레 그라치에(Galleria delle Grazie)에 진입하던 도중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면서 압사로 사망했다. 지하로 이어지는 150개의 계단을 따라 대피소로 돌진하면서 사람들은 압도된 상태로 서로의 위에 깔려 넘어지면서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었다.
9. 2010년 11월 22일에 발생한 프놈펜 압사 사고(Phnom Penh stampede)로 캄보디아 프놈펜 왕궁 인근에서 물 축제 도중 인파가 몰리면서 최소 347명이 숨졌다. 3일간의 물축제가 끝나고 반년에 한 번꼴로 톤레 삽(Tonlé Sap) 강의 흐름이 반기별로 역전되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 약 4백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 이 사고는 2010년 11월 22일 캄보디아 코픽 섬에서 크메르 물 축제의 마지막인 보트 경주가 끝나고 사람들이 섬 북쪽 코픽 다리로 몰려들어 약 1000여명이 연쇄적으로 넘어지면서 서로 깔리면서 일어난 사고이다. 목격자들은 사람들이 몇 시간 전부터 "다리에 갇혔다"라고 말했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몰려든 지 몇 시간이 지나도록 구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압사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동안 사람들이 전선을 뽑았고, 이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감전사로 사망했다.
10. 에스타디오 나시오날의 비극(Tragedia del Estadio Nacional)은 1964년 5월 24일 페루 의 수도 리마에 있는 에스타디오 나시오날에서 열린 도쿄 올림픽 남미 예선 페루 대표 대 아르헨티나 대표 전에서 발생한 사고이다. 이 사고로 328명의 관객이 사망했다. 축구 역사상 최악의 재난으로 심판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홈 팬들이 경기장에 뛰어들기 시작했고 페루 경찰이 관중석 중 한 곳에 최루탄을 발사해 더 이상의 팬들이 경기장을 침범하는 것을 막았다. 공포에 질린 관중들은 경기장 출구로 향했고 가스 연기에 휩싸여 정신을 잃는 관중과 이를 밀어내고 출구로 향하려는 관객이 뒤섞인 공황상태에 빠져 다수의 사상자를 내게 됐다. 사망한 모든 사람들은 꽉 막힌 계단에서 사망했으며, 대부분은 압착압에 의한 내부 출혈이나 질식사 등으로 사망했다. 또한 500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중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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