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사멸과 재생의 공존 속의 미국 쇼핑몰: 자본주의의 성지와 공동체 향수 사이에서

Zigzag 2022. 11. 2.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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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쇼핑몰의 이야기는 이제 잘 알려져 있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건축가 빅터 그루엔(Victor Gruen)은 1938년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후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1954년에 그는 디트로이트 근처에 있는 최초의 야외 교외 쇼핑 플라자를 디자인했다. 2년 후인 1956년 그루엔이 디자인한 사우스데일 센터(Southdale Center)가 미네소타주 에디나에 문을 열었다. 그것은 미국 최초의 폐쇄형 쇼핑몰이었다. 쇼핑몰의 전성시대였던 1990년대 중반 전형적인 대형 쇼핑몰의 규모는 평균 120만 평방피트며, 그 안에는 142개의 상점이 있었다. 최초의 쇼핑몰 이후 60여 년 동안 전국에 최대 1,500개의 쇼핑몰이 세워졌다. 그러고 나서 사람들은 쇼핑몰 건설을 중지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 극소수의 쇼핑몰만이 건설되었고, 많은 것이 폐쇄되었고, 남은 것의 절반도 향후 10년 이내에 문을 닫을 수 있다. 

사진작가 필립 뷸러(Phillip Buehler)의 사진전 '미국의 쇼핑몰' 중에서. 사진: Phillip Buehler via Guardian

실제로 언론은 21세기와 함께 미국 쇼핑몰은 지난 동안 죽어가고 있다고 매년 쇼핑몰에 대한 부고를 써왔다. 가디언은 2014년 버려진 쇼핑몰 사진을 특집으로 다룬 "미국 몰의 사망"(The death of the American mall) 기사에서 한때 활기가 넘쳤던 쇼핑몰의 시들어진 아트리움을 전면에 실었다. 그리고 8년 뒤인 2022년 10월 21일 "미국 쇼핑 몰의 사망"(The death of the American shopping mall)이라는 비슷한 제목의 기사를 다시 게재했다. 2015년, 뉴욕 타임스는 오하이오주와 메릴랜드주에 있는 기이하게 비어있는 건물들의 자체 사진을 게재했다. 그 후 2017년과 2018년에 타임, 월스트리트 저널, CNN이 쇼핑몰의 종말을 새롭게 선언하면서, 모두 크레디트 스위스 보고서를 인용해 2022년까지 약 4개 중 1개의 쇼핑 몰이 문을 닫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현재 미국에는 약 1,000개의 쇼핑몰이 있으며 팬데믹, 경기 침체 및 온라인 쇼핑 증가로 공실률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쇼핑몰이 죽어가고 있다는 2014년 가디언의 기사

쇼핑몰 사망 원인은 전자 상거래의 성장, 백화점의 소멸, 그리고 개발업자들이 교외를 포화상태로 만든 1990년대 이후 낡은 쇼핑 메카에서 불과 몇 마일 떨어진 곳에 새로운 쇼핑 메카를 건설하면서 미국에서 쇼핑몰이 범람하게 되어 왔다는 사실 등으로 다양하게 분석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이 강타한 이후, 예측은 더욱 심각해졌다. 2020년 6월, 한 전 백화점 임원은 내년까지 쇼핑몰의 3분의 1이 문을 닫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자동차 축출을 위한 쇼핑몰이 자동차의 성지가 되다: 그루엔 효과의 아이러니

쇼핑몰의 역사는 모순 그 자체였다. 그 모순은 쇼핑몰을 설계했던 그루엔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상업 디자인의 대가였다. 쇼핑몰 이전에, 그루엔은 뉴욕의 소매점과 상점을 디자인했다. 그의 화려하고, 밝은, 유리 전면의 상점 정면은 이전의 장식적이고 복잡한 외양과 단절했다. 소매 판매가 쉽지 않은 대공황 동안 디자인된 이 상점은 고객에 대한 유인력을 높였다.

그는 비엔나와 파리와 같은 모더니스트 유럽 도시의 보행자 경험을 자동차가 왕이었던 미국으로 수입하고자 했다. 그의 쇼핑몰 디자인은 이러한 선의에서 출발했다. 그는 비엔나에서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걷고, 다양하고, 살기 좋은 도심을 소우주에서 재창조하고 싶었다. 그의 고전적 저서인 '미국의 쇼핑타운'(Shopping Towns USA)에서 그루엔은 지나가는 자동차 운전자에게 초점을 맞춘 드라이브 바이 쇼핑센터의 개발에 반대했다. 그는 "교외 비즈니스 부동산은 종종 자동차 통행량을 기준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이 평가는 자동차가 상품을 구매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그는 1964년 미국 건축가 협회(American Institute of Architects)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자동차에 대한 혐오감을 돌려서 표현하지 않았다.

하나의 기술적인 사건이 우리를 휩쓸었습니다. 바로 고무바퀴 차량의 등장입니다. 자가용, 트럭, 트레일러는 대중교통 수단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생명과 건강에 대한 위협은 노출된 하수구의 위협만큼이나 큽니다.

바퀴와 도보에서 사람들을 구출하려는 그의 첫 번째 큰 시도는 보행자 중심의 살기 좋은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한 야망의 일부인 세계 최초의 실내 쇼핑몰로 환영받는 미네소타의 사우스데일 센터였다.

교외의 사막에 공동체를 위한 장소를 만들면서, 그는 사람들을 차에서 끌어내어 서로 접촉하기를 희망했다. 쇼핑몰은 쇼핑을 위한 것이겠지만, 음식, 휴식, 녹지 공간도 제공한다. 그루엔의 원래 계획은 새장, 분수 및 예술 작품과 같은 수많은 명소로 상업을 분할하는 것이었으며 쇼핑몰 자체는 주거지, 사무실, 의료 시설, 학교 및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모든 것으로 둘러싸여 연결된다. 쇼핑몰은 사람들이 지출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보행자를 자동차로부터 보호하고 매연과 소음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내향적이었다. 그의 이 아이디어는 자동차의 지배로 해체된 도시에서 더 밀도 있고, 더 걸을 수 있는 혼합 개발을 옹호하는 오늘날의 뉴어바니스트(New Urbanist)들의 비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을 차에서 내리게 하기 위해 그루엔의 계획은 의도치 않게 차를 몰고 갈 곳을 제공했다. 사진: Getty Images

하지만 아니러니 하게도 미국에 건설된 쇼핑몰은 그루엔 구상했던 새로운 복합 센터가 아니라 쇼핑몰과 주차장만으로 구성됐다. 원대한 비전은 자동차로만 접근할 수 있는 거대한 주차장으로 둘러싸인 대형 쇼핑 브랜드의 단일 문화로 축소되었다. 빠르게 지배하는 자동차 문화로부터의 피난처로 의미되었던 것은 대신 자동차의 성지가 되었다.

새로운 복합센터로서 그루엔의 아이디어가 더 많은 상점과 상품을 위한 공간을 마련에 자리를 내어주고 순수 쇼핑몰로 축소되면서 또 다른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원래 평면도가 더 혼란스러워지고 구매할 상품으로 가득 차면서 쇼핑객은 혼란스러워지며 본래의 의도를 잊어버리고 지출 억제를 포기했다. 쇼핑몰 개발자들과 경제학자들은 쇼핑객의 방향을 잃고 구매할 물건을 많이 제시하면 훨씬 더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루엔은 효율적인 쇼핑몰 경험을 계획하고 노골적으로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터는 것을 경멸했지만, 오늘날 고객을 공간에 유인하여 머물게 한 다음 의도적으로 혼란스러운 레이아웃에 둘러싸여 원래 의도를 잊어버려 충동구매에 더 취약해지게 만드는 것을 사람들은 얄궂게도 그의 이름을 따서 그루엔 전이(Gruen transfer) 혹은 그루엔 효과(Gruen effect)라고 부른다.

그루엔은 결국 자신의 창조물을 부인했고, 쇼핑몰이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 현상을 개선시키기보다는 어떻게 악화되었는지에 대해 혐오감을 표시했다. 그의 쇼핑몰은 심지어 세계적으로 수출되었으며, 이 신세계의 기묘한 공간 사용은 유럽과 같은 구세계를 전염시켰다. 비엔나를 재건하려는 그의 희망은 무산되었고, 그래서 그는 인생의 마지막 10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고향으로 돌아온 때는 는 오스트리아 최초이자 가장 큰 쇼핑몰인 쇼핑 시티 쥐트(Shopping City Süd)가 비엔나 구시가지 바로 외곽에서 이미 공사 중이었다.

그루엔은 상업 자체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쇼핑몰은 나쁜 도시 계획으로 판명되었을지 모르지만, 결코 나쁜 중상주의는 아니었다. 그가 1930년대 뉴욕에서 시작했던 쇼핑몰의 마법은 1956년 미네소타주 에디나에서 실현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수십 년 동안 오하이오주 데이턴과 캘리포니아주 샌버너디노, 플로리다주 포트로더데일 등 모든 곳에서 쇼핑몰이 생겨났다. 이 쇼핑몰들은 쇼핑을 위한 것이다. 동어반복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 쇼핑몰들은 상거래 자체를 사적 은신처로 분리하여 쇼핑이라는 행위만을 위한 장소를 제공했다. 20세기 중반 상업주의가 만연하고 진보를 부채질한 세기 중반에 통제 불능이 되었을 때 쇼핑몰은 단순한 상거래의 공간적 중심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공간적, 이념적, 행위적 성지가 되었다. 

긴장의 공간으로서 쇼핑몰

쇼핑몰은 연방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한 전후 교외의 확장과 함께 성장하였다. 디자인 평론가 알렉산드라 랑게(Alexandra Lange)는 그녀의 최근 저작 '분수 옆에서 만나자: 쇼핑몰의 내부 역사'(Meet Me by the Fountain: An Inside History of the Mal)에서 "20세기 후반 미국은 쇼핑몰 없이는 말이 안 된다"라고 썼다. 아메리칸드림이 핵가족을 위한 단독주택을 소유하는 것이라면 쇼핑몰은 그 드림으로써 집을 채우고 그 드림 속에 사는 아이들에게 옷을 입히기 위해 물건을 구입한 곳이었다.

도심의 쇼핑 지구에 상응하는 공간으로서 교외의 쇼핑몰에는 도심의 쇼핑지구 마찬가지로 항상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긴장이 존재했다. 도심의 쇼핑지구처럼 교외의 쇼핑몰은 공공 공간의 역할을 하지만 사적으로 소유되고 관리되며, 쇼핑몰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얻는 공동체 의식은 항상 주요 소비 추구에 부차적이다. 이러한 공사 간의 긴장은 그루엔이 디자인한 최초의 쇼핑몰인 1956년 미니애폴리스 교외에 사우스데일 센터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그루엔은 쇼핑몰의 인구학적 타깃인 중산층 백인 주부들이 한 번 주차하고 하루 종일 쇼핑을 할 수 있고, "그루엔 전이"를 경험할 수 있기를 원했다. 그루엔 전이는 한편으로는 소비자의 원래 의도에 상실에 따른 충동구매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의미로 본다면 쇼핑을 일종의 하찮은 잡일에서 기쁨을 주는 활동으로 전환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루엔과 그 뒤를 이은 개발자들은 아트 큐레이션, 조경 디자인, 매장 선택, 보안 및 교통에 주의를 기울였으며, 그들은 이 모든 덕분에 쇼핑 경험을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지에 대해 이르기까지 더 많은 통제권을 갖게 되었다.

공공 서비스 공간에 대한 민간 자금의 이러한 감시는 향후 수십 년 동안 일정하게 유지되었다. 1960년대에, 건축가들과 디자이너들은 식물들로 가득하고 햇빛이 내리쬐는 아트리움이 있는 가든 몰을 완성하여 쇼핑객들을 머물게 했다. 1970년대에 개발자들은 도시 몰에 "축제 마켓플레이스"를 개척하여 유럽 스타일의 갤러리를 통해 중산층 쇼핑객들을 유인했다. 하지만 이후 20년 동안, 쇼핑몰을 체류자라기보다는 배회자로 여겨지는 어슬렁거리는 10대 그리고 쇼핑몰 아케이드에서 비디오 게임을 하기 위해 큰 그룹으로 모인 십대들로부터 쇼핑몰을 되찾고자 하는 열망 속에서 쇼핑몰에 대한 보안을 강화해왔다. 이는 실제로 1969년부터 1988년까지 300% 성장한 민간 보안 경비 대열의 확장을 촉발시켰다. 이 쇼핑몰 경찰의 확대는 쇼핑몰 시작부터 쇼핑몰 건축물에 담긴 통제와 배제를 더욱 심화시켰다.

쇼핑몰의 이면: 산책자와 소비자에 새로운 경험 제공

2002년 미네소타 블루밍턴의 몰 오브 아메리카(Mall of Americ). 사진: Mark Erickson / Getty

하지만 쇼핑몰 전성시대였던 1980~90년대, 쇼핑몰은 정말로 그루엔이 상상했던 사회적 혜택 중 일부를 제공했다. 미국 교외는 유럽의 근대 도시들을 특징짓는 일상적 만남의 밀도가 부족했고, 쇼핑몰은 사람들이 촘촘한 근접 속에서 어슬렁거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미국의 쇼핑몰들은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와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 그리고 건축가 그루엔이 보았던 유럽 도시의 근대적 현상으로서 한가로이 도시를 어슬렁거리는 산책자로서 플라뇌르(flâneurs)의 맛보기를 제공했다. 하지만 그들이 유럽의 근대 도시에서 보았던 사람들의 밀도와 보행성 모델 역시 상업성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파리의 상가나 비엔나의 샛길에는 수많은 상업적 유혹이 있었으며, 벤야민이 수많은 물건들의 광적인 수집가였던 것은 그의 플라뇌르 혹은 여유로운 산책자 역시 상업적 충동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광대함은 상품의 유통과 접근을 더 어렵게 만들었고, 대량 생산과 소비자의 비필수적 것에 대한 재량 지출(discretionary spending)이 동시에 증가하고 있었다. 시내 백화점과 지역 일반 및 전문점은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주요 접근을 제공했다. 1962년에 월마트의 첫 번째 매장이 아칸소에, 타겟이 같은 해 미네소타에 열렸지만 1990년대까지 전국적 할인점은 없었다. 타겟은 백화점에서, 월마트는 지역 잡화점에서 성장했다. 그런 점에서 쇼핑몰은 시대를 훨씬 앞서 있었다. 그들은 다른 방법으로는 접근할 수 없었을 수 있는 국내 또는 국제 제품과 트렌드에 대한 현지 접근을 제공했다.

비록 그들의 현실이 불가피하게 자본주의와 연관되더라도, 쇼핑몰은 사물을 현실로 만들었다. 그 유대감은 모든 자유 기업처럼 비극적이면서도 해방적이다. 상품들은 어떤 면에서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면서도 그들을 속박한다. 쇼핑몰은 또한 사람들을 상업주의와 소비주의에 속박시켰지만, 그로부터 사람들의 분리를 허용하기도 했다. 아스팔트의 주차장으로 둘러싸인 기괴한 디자인은 사람들을 소비의 유혹으로 유인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그 공간에서 탈출함으로써 그 유혹과 단절할 수 있었다. 쇼핑몰은 상업의 감옥이지만, 적어도 상업은 그 안에 머물러 있다. 카지노가 위험을 억제하고 집중하도록 설계되었듯이, 쇼핑몰은 지출을 위해 그렇게 하도록 설계되었다.

미국 쇼핑몰에 대한 성급한 조기 사망 선고는 이 공간이 미국인들의 삶에서 생각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아마도 언론은 정기적으로 미국 쇼핑몰의 부고장을 내고 매년 사망 선언을 내릴 것이다. 하지만 미국 쇼핑몰의 사망을 선고했던 월스트리트 저널의 2017년 기사조차도 그 마지막은 미국의 쇼핑몰의 변신에 바쳤다. 과거 쇼핑몰 면적의 50% 이상을 차지했던 의류 매장은 30%로 줄어들었지만 신발가게와 보석상, 여성과 아동 의류, 레스토랑, 전자제품과 사진 관련 매장들이 1995년에 비해 급격하게 증가했다는 본문과는 반대되는 결론으로 월스트리트 저널 기사는 마무리되었다.

랑게에 따르면 언론은 이 가장 미국적인 형태의 건축인 쇼핑몰을 "종말론적 규모, 문명 붕괴의 언어와 이미지"를 사용하여 묘사해 왔다. 그녀는 "그래도 쇼핑몰의 대다수는 살아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계속 쇼핑을 한다."(2021년 연구는 작년 6월 현재 전국의 쇼핑몰 방문객 수가 실제로 팬데믹 이전보다 5% 증가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쇼핑몰은 항상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와 여가의 장소 이상의 것이었지만, 지역사회가 모여 보고 볼 수 있는 장소로서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왔다.

1956년 뉴욕 가든 시티의 루즈벨트 필드(Roosevelt Field)에서 열린 메이시(Macy) 개장 모습. 사진: Ike Eichorn/Newsday RM/Getty

쇼핑몰에 대한 정기적인 사망선고는 그것에 대한 우리들의 경멸과 동시에 향수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쇼핑몰이 주는 건축적 기괴함과 상업주의적 탐욕은 늘 경멸의 대상이었지만 푸드 코트부터 쇼핑몰에 빼곡히 들어 차있는 가게들과 중앙의 분수대가 있는 광장은 동시에 만남과 공동체에 대한 향수의 원천이다. 한국의 재래시장의 왁짜함이나 요란한 흥정, 유럽 도시들의 빽빽한 도로와 샛길의 여유를 기대할 수 없는 미국의 지리적 공간적 환경에서 쇼핑몰은 그 대체제적 경험을 제공해왔다. 소비자들의 소비를 자극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계한 복잡함에서 비롯된 방황조차도 미국에서는 쇼핑몰 이외의 장소에서 경험하기 힘든 소중한 것이다. 

아무리 부차적이었다 하더라도 전자 상거래가 쇼핑몰이 주었던 공동체의 감정과 보행, 사람들의 접촉을 제공하지 못하는 한 그리고 쇼핑몰이 생존을 위한 변신을 계속하는 한 미국 사회에는 여전히 쇼핑몰을 위한 장소가 있을 것이다.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란 용어를 유행시켰던 로버트 퍼트남(Robert Putnam)은 그의 유명한 저서 '나 홀로 볼링'(Bowling Alone)에서 혼자서 볼링 하는 이들 속에서 미국의 공동체 붕괴를 찾았다. 거대한 창고 속으로 동네와 도시의 쇼핑몰과 상점들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아마존과 같은 공룡 속에서의 나 홀로 쇼핑(shopping alone)의 대체제로서 자신을 홍보하느라 분주한 작금의 미국 쇼핑몰은 언론의 부고에도 불구하고 아직 죽을 준비가 되어있지는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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