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주: 앞으로 3회에 걸쳐 체중계에 대한 역사를 다룰 예정이다. 이번 글에서는 르네상스 시대 인간의 발견과 체중계와의 관계, 산업혁명 등의 시대적 변화와 체중계 그리고 정상 체중의 관계, 풍만이 비만으로 낙인찍히는 과정, 공공 체중계의 등장과 체중의 민주화를 다룬다. 그리고 다음 2부에서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체중 도덕'의 등장, 체중계와 체중의 사유화, 그리고 체중계와 칼로리의 관계를 살피면서 체중계가 어떻게 우리의 몸을 사적으로 길들이는 도구가 되었는가를 살펴볼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제3부에서는 한국의 근대 체중과 체중계의 역사 다룰 것이다.
사적이고 은밀한 체중계
매일 수억의 인구가 체중계 위에 올라선다. 체중의 측정은 이제 일상의 의례가 되었지만, 매번 각별한 의례다. 이 행위는 단순하지만 그 체중계가 나타내는 기호는 단순히 우리 몸의 무게를 나타내는 양적 숫자 이상의 의미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안고 사는 이 숫자에 누구는 눈을 가리고, 누구는 좌절하고, 누구는 또 안도의 한숨을 쉬고, 누구는 또 좌절한다. 그 미세한 숫자의 오르내림에 우리는 한껏 긴장하며, 때론 그 객관적인 숫자를 감추고, 때론 그 숫자를 속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체중계는 건강을 지키기 위한 동반자이기도 하지만 화장실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악당이기도 하다. 체중계는 그냥 우두커니 놓여 있는 기계가 아니라 우리 몸을 길들이기 위한 근대적 신념, 과학, 신앙, 상술이 어우러진 일종의 훈육 기계다.
무게를 재는 저울의 역사는 저 멀리 기원전 2400년~1800년경 이집트와 인더스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몸무게를 재는 체중계, 특히 그 체중계가 사적인 것이 된 것은 근대의 이야기다. 체중계는 영어에서 간단히 scale이지만 가정에서 몸무게를 재는 체중계는 보통 bathroom scale이라 한다. 직역하면 '화장실 저울'이다. 다시 말해 체중계는 집에서 가장 내밀한 활동이 벌어지고 때론 침실보다 더 사적인 공간에서 사용되는 기계이다. 독일어에서는 가정용 체중계를 '개인 저울' Personenwaage로 부른다.
르네상스, 체중과 체중계의 발명
체중계가 등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체중의 중요성이 대두되어야 한다. 근대 이전에 체중의 중요성은 신보다는 인간과 인체에 대한 관심이 본격화된 르네상스 시대다. 16세기 말 의사들은 건강과 장수가 단순, 소식이 직결되어있다는 데 의견의 일치가 있었다. 베네치아의 신사 루이지 코나로는 검소한 식단을 유지하는 것은 내면의 태도 변화와 직결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루에 350g의 식사와 414 ml의 와인만을 마셨으며 98세까지 살았다.
그의 계승자인 산토리오 산토리오는 체온계와 맥박계를 만들었고, 거대한 체중계를 만들어 그 위에서 식사를 하면서 섭취와 배설량의 차이를 30년간 측정하였다. 그는 자신이 섭취량이 배설량보다 많은 것은 땀이나 호흡 때문이며 이것이 건강의 징조라고 주장했다. 그는 건강을 위해서는 규칙적으로 체중을 잴 것을 권고했다. 그는 "자신이 더 가볍다고 느끼는 것이 바로 건강의 정확한 기준"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양적으로 측정되는 인체를 건강한 삶의 기준을 만들었고, 마른 체형이 이상적인 체형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정상체중과 이상체격의 '발명'과 공공 체중계의 등장
경제적으로는 산업혁명, 정치적으로는 선거권 개혁, 국제적으로는 국가들 간의 전쟁이 빈번했던 18~19세기는 체중계가 본격적으로 사용되던 시기다. 프랑스에서 대저울의 형태로 몸무게를 재는 체중계가 18세기 개발되기 시작했으며, 기록에 따르면 공공 체중계의 최초 등장은 상업이 성행하던 1760년 영국 런던이다. 당시 이러한 거대한 체중계의 사용은 산업혁명과 함께 농산물과 공산품의 무게를 재는 것으로 주로 사용되었지만, 그것에만 제한되지 않았다.
프랑스 혁명과 함께 국민 징병제가 유럽에서 확대되면서 19세기 들어 이 거대한 저울은 병사들의 몸무게 측정에 사용됐다. 한쪽에 표준 무게 추를 올리고 다른 쪽에 병사가 올라가 양쪽이 균형을 이룰 때까지 추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군인들을 징병에 모집했다. 오늘날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브로카 표준체중 공식은 프랑스 군 의사 브로카가 1871년에 이상적, 정상적 신체를 비이상적, 비정상적 체중과 구별하기 위해 개발했다. 비슷한 시기에 통계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돌프 케틀레는 체질량지수를 개발했는데 이 계산법은 건강한 신체나 비만의 측정보다는 원래 군인들의 최적의 전투 체격 유지를 위한 최적의 군수품 물량 계산을 위해 고안된 것이다.
체중계, 풍만을 비만으로 낙인찍다
체중계는 '정상' 체중의 '발명'과 동시에 비만의 '낙인'을 수반했다. 윌리엄 밴팅은 1864년에 다이어트에 관한 근대 최초의 베스트셀러라 불릴만한 「비만에 대해 시민에게 알리는 서한」을 발간했다. 이 서한에서 그는 탄수화물을 줄이고 단백질과 지방의 섭취를 늘리는 식이요법을 제안해 소위 황제 다이어트라 불리는 앳킨스 다이어트를 이미 한 세기나 앞질렀다. 그는 한편으로 비만한 이들은 대중교통이나 공공 집회에서 조롱을 면치 못할 것이라며 비만을 비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본인은 자신의 방법으로 "날씬해졌고 인생을 바꿨다!"며 다이어트를 찬양했다. 체중의 측정과 기록을 강조한 그의 책은 사람들에게 체중계에 대한 문화적 강박을 불러일으켰다. 빅토리아 시대는 대식가 빅토리아 여왕이 지배하는 시대였던만큼 이상적인 체형은 풍만형이었고, 빼빼한 체형은 산업노동자의 빈곤함을 드러내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군대의 정상 체중의 확립과 함께 밴팅의 책은 점차 풍만을 비만으로 낙인찍었다. 이러한 섭생과 체중, 체격, 건강의 연관성은 19세기 중엽 영국과 미국에서 최초의 채식주의자 협회가 만들어진 것으로부터도 알 수 있다.
밴팅의 집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세인트 제임스 거리에는 Berry Bros. & Rudd 상점이 있었다 이 상점은 원래는 당시 유행하던 커피를 팔던 상점이었으나 점차 와인으로 업종을 바꿨다. 그 가게는 커피 무게를 달던 18세기의 거대한 천칭을 유행에 맞게 재빨리 고객들의 몸무게를 재는 저울로 사용했다. 바이런 경 등 당대의 유명인사들이 이곳에 와서 몸무게를 재고 장부에 기록을 남겼다. 아직도 고객들의 몸무게를 기록한 수십 권의 장부가 남아있다. 이러한 당시의 관행은 체중이 자신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요소지만 공공의 관심으로부터 감추기 위한 사적이고 은밀한 것은 아니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체중의 민주화, 공공 체중계
정상 신체와 표준 몸무게의 '발명'은 체중계에 대한 대중의 집착을 더 부추겼지만 19세기 중엽 거대한 체중계를 가정에 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18세기와 19세기 말 이전까지 체중을 잴 수 있는 커피숍과 와인 샵 등 공공영역은 주로 귀족과 부르주아들의 영역이었고, 일반 서민들에게 체중은 여전히 신비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노동계급의 성장과 선거권의 개혁으로 공공영역이 확대되면서 체중은 귀족과 부르주아의 영역을 넘어 민주화되기 시작했다. 19세기 말엽 공공 체중계 보급 확산은 체중에 대한 이러한 대중의 호기심과 관심을 충족시켰다.
독일에서는 19세기 중후반에 동전을 집어넣고 몸무게를 잴 수 있는 공공 체중계가 도입됐다. 미국도 1885년 이 체중계를 수입했으며, 동전을 넣고 체중을 잴 수 있는 이 페니 체중계가 약국, 기차역, 상점, 시장과 은행 등에서 빠르게 확산됐다. 시장에 설치된 공공 체중계 위에 사람들이 초콜릿을 입에 물고 올라서는 장면들은 아주 드문 풍경이 아니었다. 아래 1905년 미국의 엽서는 일반 가게에서 여성의 몸무게를 맞추는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20세기 초까지 일반 대중에게 체중은 호기심과 관심의 영역이었고, 여전히 사적인 것은 아니었다. 일반인들에게 체중을 재는 것은 일종의 오락과도 같았다. 1927년 뉴욕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이 페니 체중계들의 연간 수입은 총 5백만 달러에 달했다.
"정상' 신체 사이와 표준 몸무게는 20세기 전후 군대 외에도 보험정책, 학생들의 신체검사 등 군대 외의 경제와 사회적 영역에도 확대되었다. 19세기 중후반부터 체중계는 병원과 개원 의사들에게 보급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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