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주: 이번 2부에서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체중 도덕'의 등장, 체중계와 체중의 사유화, 그리고 체중계와 칼로리의 관계를 살피면서 체중계가 어떻게 우리의 몸을 사적으로 길들이는 도구가 되었는가를 살펴볼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제3부에서는 한국의 근대 체중과 체중계의 역사 다룰 것이다. 지난 1부에서는 르네상스 시대 인간의 발견과 체중계와의 관계, 산업혁명 등의 시대적 변화와 체중계 그리고 정상 체중의 관계, 풍만이 비만으로 낙인찍히는 과정, 공공 체중계의 등장과 체중의 민주화를 다루었다.
체중 도덕의 탄생과 칼로리 그리고 체중계의 사유화
정상적인 몸과 표준체중이 자리를 잡으면서 지방과 비만에 대한 사회적 단죄가 일어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19세기 말부터 본격화된 지방과 비만에 대한 반감은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일종의 강고한 신념이 되기 시작했다. 반지방(anti-fat)에 대한 신념화는 여러 요인의 복합적 현상이었다. 19세기 중반 미국 채식주의자 협회의 성립에 기여했던 여윈 예수의 형상과 종교적 금욕주의, 몸에 맞추던 옷 스타일에서 옷에 몸을 맞추는 패션의 변화, 화이트칼라 증가와 소비주의에 대한 반발 등의 요인이 일종의 "체중 도덕"(Weight Morality) 혹은 "다이어트 의식"(Diet Consciousness)으로 공고화됐다.
「지방의 역사」를 쓴 피터 스턴은 극적인 소비문화의 성장과 함께 여권신장과 여성의 성과 모성에 대한 역할 변화에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여성들의 자제력, 도덕적 규율을 강조한 다이어트는 소비문화의 탐닉에 대한 완벽한 해독제처럼 보였다. 특히 "독립성을 다른 기준보다 높게 평가하는 여성들에게 체중 도덕은 유난히 높게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체중 도덕이 그렇다고 여성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협상국 군대는 독일군대에 독일 여성을 뚱뚱하게 묘사하며 "근대적 미의 윤리에 위배되는 하나의 용서할 수 없는 범죄는 바로 지방을 키우는 것이다."라는 문구가 담긴 선전물을 뿌리기도 했다." 코넬 대학의 그레이엄 러스크 교수는 1917년 사회복지 전국 회의에서 "모범적인 수백만 미국 시민의 가장 애국적 행위는 여위기"라며 여윔을 애국의 차원으로 승화시켰다.
비만에 대한 반감애 기초한 체중 도덕으로 체중은 사적이고 은밀한 것이 되었다. 체중은 더이상 호기심이나 오락의 대상이 아니었고, 공공 체중계는 점차 가정용 체중계에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모든 것을 양적으로 측정하는데 익숙했던 독일이 최초로 가정용 체중계를 1913년 시장에 내놓았다. 독일 체중계를 수입하던 미국은 1차 대전으로 독일과 적대적 관계가 되면서 체중계 수입경로가 막히자, 1917년 가정용 체중계를 자체 제작해 시장에 내놓으며 체중계의 사유화를 촉진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체중계는 병원 진료실을 넘어 가정 속으로 급속히 그리고 깊숙히 파고 들었다. 체중계 제조업체 데텍토(Detecto)는 1925년에만 약 1백만 대의 체중계를 팔았다.
체중계와 칼로리, 몸을 다스리다
체중계란 양적 측정 장치가 몸을 규율하는 기계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양적으로 계산할 수 없는 '체중 도덕' 외에 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다른 장치가 필요했다. 체중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는 음식을 양적으로 계량 하는 칼로리는 체중계의 통치를 강화할 수 있는 장치였다. 1830년대 프랑스에서 고안된 이 개념은 19세기 중후반 미국에 소개되었다. 미국 최초의 다이어트 책자인 룰루 헌트 피터스 (Lulu Hunt Peters)의 1918년 저작 「칼로리의 열쇠가 되는 다이어트와 건강」은 칼로리의 개념을 대중화시켰다. 칼로리는 음식의 열량을 측정하는 단위로 이해되었고, 체중을 빼고 체격의 외양을 결정하는 다이어트 계획에 사용되기에 궁극적으로 체중계에 대한 집착을 높였다. 눈에 보이는 체격을 결정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칼로리와 지방 같은 것들이며, 칼로리는 이 보이지 않는 것들을 수량화해 몸을 길들이는 장치였다.
표준체중표와 칼로리표는 비만이라는 악마를 추방하고 몸을 규율하는 주술사와 주술의 관계처럼 거룩한 신성동맹을 맺었다. 체중과 칼로리의 관계는 당시 미국의 아동건강운동에서도 드러났다. 공립학교에서는 아동과 청소년에게 무료 우유를 공급하고 다른 한편으로 대규모 체중검사를 진행했다. 비만은 늘 경계대상이었지만 너무 여윈 것은 하류층과 영양결핍을 의미하는 것으로 당시 중산층이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정상 체중'에서 벗어나는 일탈이기 때문이다. 차일즈 레스토랑 체인점과 호텔 레스토랑들은 칼로리에 따른 메뉴를 제공했다. 1930년대는 할리우드 스타의 감귤류 과일, 토스트, 녹색 채소와 계란으로 하는 18일 565칼로리 다이어트가 유행했다. 이러한 유행은 1930년대 등장한 칼로리 차트와 계산표의 보급에 힘입었다. 칼로리와 다이어트는 1948년 '눈에 띄게 살 빼기 클럽'(Take Off Pounds Sensibly Club, TOPS Club)이라는 미국 최초의 다이어트 조직 탄생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체중 도덕에서 피트니스 윤리로
체중과 체격의 수량화에 기여한 체중계와 칼로리의 조합은 정상 체중에 대한 경외심과 신앙을 강화했다. 앞서 언급했던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의 뚱뚱함을 낙인찍는 과정은 체중이라는 숫자보다는 살쪘다는 외형 때문이었다. 그러나 2차대전 후 전성기에 접어든 미국 사회의 대중 소비문화는 체중에 대한 또 다른 패러다임을 만들어 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복지국가, 완전 고용의 풍요와 함께 소위 선진국들은 기존의 감염병이나 영양부족으로 인한 질병보다는 심혈관, 당뇨, 고혈압 같은 라이프스타일 질병이 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다. 살쪘다(fat), 풍만하다(corpulent)는 표현보다 비만(obesity)이란 표현이 더 많이 사용되었다. 비만은 단지 낙인을 넘어 치료의 대상이 되었다. 실제로 생명보험사들의 재정지원을 받는 학자들이 비만을 의학적 치료의 대상으로 삼는 연구논문들을 줄줄이 내놓았다. 이러한 연구의 결과 중 하나가 키-체중표 확산이다. 1959년 메트로폴리탄 생명보험사는 사망률이 가장 낮은 키-체중표를 만들어 널리 보급했다. 정상적인 체격과 체중에서 벗어난 비만은 이제 철저한 치료의 대상이 됐다.
비만의 의학화의 다른 한편에는 '피트니스 윤리'의 형성이 있었다. 기존 소비주의에 대한 반발로서 고급문화, 중산층의 도덕적 엄격성을 표시하던 체중 도덕은 일종의 피트니스 윤리로 전환하게 된다. 피트니스 윤리에는 여윈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며 소식과 채식을 하던 체중 도덕의 어두운 그림자가 없었다. 체중 도덕이 일종의 죄의식을 강요하는 부정적 도덕이라면, 피트니스 윤리는 정신적, 사회적 재생으로서 영양가 있는 음식과 적절한 운동을 권장하는 긍정의 윤리다. 1960년대 세계적인 학생운동과 지배적 대중문화에 대한 저항문화로 탄생한 '피트니스 윤리'는 하지만 점차 소비문화로 흡수되어갔다. 자연을 강조했던 새로운 저항문화는 자연식, 유기농으로 이어졌고, 이와 함께 시장은 다이어트 펩시(1964년 출시) 같은 저칼로리 식품으로 채워졌으며, 1970년대부터 시중에서 구매 가능한 다이어트용 약들은 매년 20%씩 성장했다. 지구를 위해 "작은 것이 아름답다"와 "가볍게 살자"는 저항문화의 구호들은 1970년대 이후 허리라인을 줄이고, 뱃살을 가볍게 하는 것으로 변질하였다.
체중 감시자의 탄생과 체중계의 독재
체중증가를 경계하는 사람이란 뜻의 '체중 감시자' weight-watcher란 어휘가 등장한 것도 이즈음이다. 인간은 스스로 체중의 파수꾼이 되어 매일 화장실 체중계를 경배하게 되었다. 1951년 설문에 따르면 미국 남성과 여성의 각각 21%와 44%는 자신을 과체중이라고 응답했으며, 이 비율은 1973년 각각 39%와 55%로 증가했다. 정상 체중에 대한 신앙은 몸의 훈육 증가로 나타났다. 1951년 다이어트 중이라고 응답한 남성과 여성은 각각 7%에서 14%에 불과했지만, 1973년 이 수치는 각각 34%와 49%로 증가했다. 프랑스 주간지 La Vie는 1980년대가지 프랑스 국민의 90%가 자신의 몸무게에 대해 걱정하고 있으며, 이를 "체중계의 독재"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우리를 자신의 몸 위에 올려놓는 체중계의 독재는 강요에 의한 전제적인 독재라기보다는 자발적 복종을 불러일으키는 계몽적 독재와 주변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사회적 훈육의 독재다.
몸을 체중계에 맡기며 숫자를 기다리는 행위는 현대 사회의 거룩하고, 경건하고, 때론 공포스러운 의식이 되었다. 바늘의 눈금이 좌우로 오갈 때 마다 마음을 졸이던 불안정한 아날로그 체중계는 보다 직관적이고 확실한 숫자를 제시하는 디지털 체중계로 바뀌었다. 그리고 체중을 건강뿐 아니라 체형과 함께 묶어서 보는 우리가 사는 시대에 체중계는 체중, 체지방, 근육량, BMI 등을 함께 보여주는 스마트 체중계로 변화했다. 2020년 현재 전 세계 체중계 시장 규모는 약 24억 불로 체중감량 시장 규모의 약 1%다. 그러나 이 1%는 나머지 99% 시장을 다스리는 독재자다. 체중을 재는 의식이 시작되면 나머지는 모두 체중계를 경배해야 한다. 체중계가 뱉어내는 숫자가 곧 현대인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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