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항의food protests)와 항의 음식(protest foods)의 차이: 목적과 수단
얼마 전 민주당 이낙연 당대표가 춘천을 방문했다 계란 투척을 당했다. 먹을 것으로 항의를 표시하는 행위는 현대에 들어와 자주 목격되는 장면들이다. 이 글에서는 항의 음식(protest foods)을 다룬다. 항의 음식은 음식 항의(food protests)와 구별된다. 항의 음식은 수중의 먹는 음식물을 내 던지는 시위며, 음식 항의(food protests) 혹은 식량 반란(food riots)은 반대로 수중에 먹을 식량과 음식이 없을 때 이를 쟁취하기 위한 시위 행동이다. 음식 항의의 목적과 내용은 식량과 음식이지만, 항의 음식의 목적과 내용은 음식이 아니다. 항의 음식에서 음식은 수단이며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 물론 음식 항의와 항의 음식의 경계는 완벽하지 않다. 고대 식량 부족과 현대 식량 과잉의 상태에서 극단적 항의의 수단으로 이 둘 사이의 경계는 허물어진다(공급과잉에 따른 가격폭락으로 배추를 폐기하는 농민시위를 보라.).
사람들은 언제부터 음식을 항의의 수단으로 투척하기 시작했을까? 그들은 왜 항의와 시위의 수단으로 음식물을 던질까? 우선 투척이란 행동과 음식이란 물건부터 살펴보자.
항의 투척의 논리적 전제와 물리적 전제: 목표물과 쓸모의 폐기
항의의 표시로 무언가를 수중에 쥐고 있지 않고 손아귀를 벗어나게 던지는 것은 두 가지 논리적 전제가 필요하다. 하나는 목표물이다. 항의 표시로 투척되는 물건은 목표물 없이 던져지는 쓰레기와 구별된다. 또 다른 하나는 그 물건의 목적과 쓸모 자체가 투척이며, 투척과 동시에 그 쓸모는 폐기된다. 칼이나 연필처럼 수중에 쥐고 쓰는 것들은 계속 쓸모가 있지만, 화살, 돌멩이처럼 던져지는 것들은 투척과 동시에 쓸모가 폐기된다. 물론 칼이나 연필들도 던져질 때는 손안에 쥐고 있을 때와 다른 용도며, 목표물을 향해 던져졌을 때 그 쓸모 또한 폐기된다. 항의의 투척물은 이 두 전제를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일회용 쓰레기나 항구적 무기가 되기 쉽다.
음식물 투척에는 또한 물리적 전제가 있다. 우선 음식물 투척은 돌아오거나 회수를 전제하지 않기에 음식물의 잉여를 전제한다. 던질 음식이 존재해야 항의 음식은 가능하다. 배를 곯는 사람이 항의 음식 행위를 할 수는 없다. 이는 다시 항의의 음식이 음식을 충분히 가진 풍족한 자나, 던져도 투척자 자신에겐 커다란 재산상의 손해가 있지 않은 경우, 그리고 음식이 그 본연의 목적인 섭취에 적당하지 않은 상태임을 전제한다. 이 중 모든 조건이 충족될 수도 혹은 셋 중의 한두 개만 충족해도 항의 음식은 가능하다. 첫 번째 조건은 역사적 제약이 따른다. 음식이 현대처럼 풍부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항의 보다는 재미나 조롱의 의미가 더 강했으며, 현대에 들어와서는 항의의 의미가 더 강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조건은 역사적 제약 없이 보편적으로 음식물을 항의의 수단으로 쓰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캐비어나 멀쩡한 송로버섯을 던지는 사람은 없어도, (상한) 토마토와 달걀 던지는 이가 많은 이유다. 또 다른 물리적 전제는 타격 대상에 쉽게 정치적 타격감을 줄 수 있는 음식이어야 한다. 달걀과 토마토가 항의의 음식으로 자주 애용되는 이유는 타격과 동시에 대상에 흡착되어 불쾌감과 당황감을 잘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항의 음식: 실용성과 상징성
항의의 표시로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향해 음식을 투척하는 이유는 실용성과 상징성 때문이다. 항의 음식은 투척, 목표물 타격, 반격의 측면에서 실용적이다. 예컨대 계란이나 토마토 같은 음식들은 상대적으로 가벼울 뿐만 아니라 상대에게 생명의 위협 같은 타격을 입히지 않으면서도 적당한 위협을 제공한다. 또한 음식은 투척 표적과 충돌하면서 불쾌감과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음식물의 투척은 화살이나 창, 돌멩이와 같은 물건을 던질 때와 달리 투척자가 경찰이나 투척 대상으로부터 치명적인 보복을 받을 위험이 적다.
항의 음식의 상징성은 그 실용성에서 비롯된다. 항의 음식의 목적은 대상의 육체나 물질에 직접적 물리적 해를 가하는 것도 있지만 보다 중요한 목적은 대상에 우회적 혹은 비물질적 혹은 상징적 해를 가하는 것이다. 토마토를 맞아 붉게 물든 정치인이나 건물, 계란 혹은 썩은 계란을 맞아 끈적한 해진 대상들은 물리적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상징적 타격은 적지 않다.
음식 항의와 항의 음식 사이의 경계가 때론 허물어지는 것처럼 항의 음식의 물리적 타격과 상징적 타격의 경계는 절대적이지 않다. 계란이나 오렌지 같은 물건의 투척 충격은 생각보다 강해서 대상에 상징적 타격보다 물리적 타격을 더 심하게 가할 수 있다. 그럴 경우 투척대상보다 투척자가 더 큰 물리적 구속과 상징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항의 음식의 시작: 고대 로마와 중세
동양에서는 가끔 TV 드라마를 통해 범죄인들에게 채소를 던지는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실제 고대 역사에서 죄인이나 정치인을 향해 음식물을 던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는 무엇보다도 범죄의 처벌이나 단죄가 사유화되었을 때, 즉 백성들이 자기 손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공화정과 같은 공간이 열려 있을 때 가능하지만, 중앙집권이 발전한 고대 중국이나 고대 한반도 역사에서 이러한 단죄의 사유화는 좀처럼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대 서양 세계에서 간음이나 도둑질, 살인한 범죄자에게 돌을 던지거나, 정치인에게 항의 음식을 투척한 사례들은 종종 발견된다.
식량부족 사태로 분노한 군중들은 칼리굴라의 뒤를 이은 로마의 4대 황제 클라디우스에게 그 책임을 물으며 빵 조각들을 투척했다. 그는 다행히 항의 음식들을 피해 왕궁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발효 빵을 먹었던 로마인들의 빵은 유대인식의 발효하지 않은 빵처럼 마르면 돌덩이처럼 단단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정통으로 맞았다면 적지 않은 타격을 주었을 것이다. 로마 시대의 또 다른 기록에 따르면 9대 황제 베스파시아누스가 아프리카 총독 시절, 그의 세제와 긴축정책에 화난 군중들로부터 순무(turnip)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토마토나 계란과 같은 음식들은 중세시대 범죄자들을 향해 모욕의 수단으로 사용되었지만, 대부분 카니발과 같은 축제 때를 제외하면 항의 음식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로마 시대에는 이미 기원전에 계란을 이용한 커스터드 크림이 개발되고, 닭에게 곡물을 먹여 체중을 불리는 양계 방법이 널리 퍼졌다. 로마 시대에는 닭을 1일 1끼로 제한하는 포고령이 나올 정도로 양계가 발전했지만, 로마의 쇠망과 함께 양계도 축소됐다. 더욱이 중세시대 계란은 생명이란 상징적 의미로 인해 사순절에는 섭취가 금지되었다. 그리고 포장도 예수의 십이사도처럼 12개의 꾸러미로 묶일 정도로 종교적 의미가 강했기에 정치인을 향한 항의의 음식으로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계란은 항의의 수단보다 생명의 상징성으로 인해 의식의 수단이었다. 프랑스에서 계란은 신부의 임신을 알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었고, 독일 농부들은 봄이면 쟁기에 계란을 발라 풍년을 기원하기도 했다. 이런 중세의 삶에서 계란을 항의의 음식으로 사용하는 것 상상하기 어려웠다.
중세의 몰락과 신대륙의 발견: 계란과 토마토 항의의 음식으로 등장
중세가 저물고 신의 천상보다 인간의 지상이 생활의 중심이 됐다. '시녀들'을 그린 스페인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리얼리즘적인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그의 1618년 작품 '계란 후라이를 하는 노파'를 보면 계란은 17세기 유럽의 일반 가정의 식탁에서 볼 수 있는 음식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17세기와 18세기 영국에서는 계란이 종교분쟁 시 타 교파의 성직자에게 투척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귀족들에게만 주어졌던 선거권을 일정한 재산을 가진 자산가층으로 확대하는 1832년 선거법 개혁 전후의 영국 지방 도시의 상황을 다루었던 조지 엘리엇의 <미들 마치>에는 연설을 하는 정치인을 향해 계란을 투척하는 장면들이 묘사되고 있다. 19세기 미국에서는 노예해방론자 존 그린리프 휘티어(John Greenleaf Whittier)와 조지 톰슨(George Thompson)이 노예해방 연설을 마친 후 군중들로부터 계란과 돌을 맞았다는 기록이 있다.
토마토는 16세기 남미에서 유럽으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관상용으로만 재배되던 토마토는 17세기 후반 이탈리아에서 음식 재료로 사용되었다. 토마토가 시장에서 판매되고 유럽에서 수프와 소스 등 일상 음식으로 된 것은 18세기 중엽부터이다. 따라서 토마토는 적어도 18세기 중엽 이전까지 항의의 음식이 될 만큼 대중화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북미에서 토마토는 17세기에 들어와 재배되기 시작했으며 상업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엽부터 상업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토마토가 항의의 음식으로 등장한 건 특히 19세기 노예페지운동과 19세기 말~ 20세기 초 여성 참정권 운동에 대한 박해를 통해서다. 1830년대 흑인 여성 마리아 스튜어트(Maria Stewart)가 연설 도중 흑인 남성들로부터 토마토 세례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1912년 런던의 여성 참정권자들에게 경찰과 군중들이 토마토와 자두, 사과를 던지며 야유했다.
산업화와 항의의 음식
이미 19세기 전후로 산란을 위한 닭이 본격적으로 유럽에서 신대륙으로 넘어가면서 계란은 19세기 미국과 캐나다의 정치적 소란 때마다 자주 항의의 음식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2차 대전 전후 항생제의 개발과 함께 양계산업에 항생제가 대거 투입되고 계란의 산업적 생산이 본격화되면서 계란은 가장 애용되는 항의의 음식이 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토마토가 관상용에서 식용으로 전환되고, 사용 범위가 확대되고, 대량생산에 맞는 품종개량이 이루어지면서 토마토 역시 항의의 음식이 될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 계란과 토마토는 빈번하게 함께 사용되기도 한다.
냉전의 막이 오르던 1948년 미국 진보당 후보로 나선 헨리 월리스는 순회 유세 도중 여러 곳에서 계란과 토마토 세례를 받았다. 1955년 정치인 프랑수아 미테랑 역시 반대파들로부터 토마토와 계란을 투척 당했다(그는 1981년 프랑스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1962년 프랑스를 방문한 독일 아데나워 수상을 향해 아직 2차대전의 악몽을 잊지 못한 프랑스 시민들이 계란과 토마토를 던지기도 했다. 영국의 대처 총리는 1981년 반노동자 정책, 민영화 정책으로 시위 군중들로부터 계란과 토마토 세례를 받았으며, 1991년 헬무트 콜 독일 총리는 자신에게 계란을 투척한 시위대와 멱살을 잡고 함께 주먹질하기도 했다. 2003년엔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시위대로부터 계란을 맞았으며, 2016년에는 트럼프가 대통령 선거 유세 도중 그의 인종주의적 태도를 히틀러로 비유한 한 청년이 그에게 토마토를 던졌다.
계란과 토마토가 가장 애용되는 항의의 음식이지만 다른 음식들도 항의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썩은 물고기는 냄새로 인해 좋은 투척재료지만 오히려 그 냄새로 인해 시위장소까지 은밀하게 운반하거나 이동하기 적절치 못하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러시아가 자국에 대한 가짜 뉴스를 내보낸다며 스파게티를 러시아 대사관에 던졌는데, 우크라이나에서 스파게티는 속임수, 사기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2011년에는 언론재벌 머독을 향해 그의 탐욕을 비난하며 크림 파이를 던지기도 했다.
한국 정치사에서 항의의 음식
한국 정치사에서 항의의 음식이 처음 등장한 건 1957년 4월 15일 진보당 결성대회에 등장한 정체 모를 집단이 날린 계란과 사과다. 이들은 곤봉까지 들고 있었던 것으로 나중에 확인됐으며, 진보당 결성을 방해하기 위한 우파들의 조직적 방해 책동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965년 야당 의원들은 일본과 수교 협상을 하려 출국하는 이동원 외무장관을 제2의 이완용이라 부르며 그의 차를 향해 계란을 투척하였다. 박정희 정권의 독재가 삼선개헌 이후 본격화되던 1960년대 말부터 유신독재를 거쳐 1979년 그의 피살로 막을 내리기 전까지 항의의 음식은 한국 정치사에서 거의 볼 수 없었다. 그리고 1980년 광주학살로 전두환 신군부가 집권한 이후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가 되자 본격적으로 항의의 음식이 등장한다. 당시 여당 후보였던 노태우는 1987년 10월 광주방문 당시 광주항쟁 유가족들로부터 계란 세례를 받았다.
1991년 외대 학생들은 정원식 총리에게 전교조 교사 해직에 대한 항의로 계란과 밀가루를 투척했다. 이 항의의 음식은 계란과 밀가루를 뒤집어쓴 총리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신문들을 도배했다. 당시 강경대 학생 치사사건 등으로 수세에 몰리고 있던 노태우 정권은 이 정원식 총리 밀가루 사건을 통해 투척 학생들을 단죄하며 단숨에 정국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뒤바꿨다. 항의의 음식이 결국 투척 대상에게 상징적 피해를 주는 대신 투척자들과 그 진영 전체에 거대한 물리적, 상징적 피해의 부메랑으로 돌아온 사건이다.
단식, 항의 음식의 역설
가장 강한 항의 음식은 역설적으로 음식을 끊는 단식이다. 항의의 단식(hunger strike)은 음식을 끊는다는 점에서 금식(fasting)과 같지만 명백한 차이가 있다. 금식은 종교적 이유나 수양, 건강처럼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것이며 비정치적이지만, 항의의 단식은 현존하는 것을 깨기 위한 것이며 정치적이다.
간디는 수십 년간 감옥의 안팎을 드나들며 인도의 독립을 위해 수십차례의 항의의 단식을 했다. 1981년 북아일랜드 감옥에 수감된 아일랜드 공화군 출신들은 양심수 인정을 요구하며 연대 단식투쟁을 하다 10여 명이 숨지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1980년 광주항쟁으로 구속된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 씨가 교도소 내 처우 개선을 주장하며 단식하다 1982년 사망했다. 그리고 2014년에는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 씨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46일간 단식을 하기도 했다. 항의의 단식은 항의의 음식보다 강력한 효과가 있지만, 그 실행과정이 상당한 육체적, 심리적 고통을 수반하기에 항의의 음식보다 어렵다. 그리고 목표물을 타격하는 항의의 음식은 일단 던져지는 것으로 행위가 종결되지만, 항의의 단식은 목적달성의 시점까지 종결되지 않으며 심지어 대부분의 경우 목적이 실현되지 않는다. 따라서 행위의 종결 혹은 출구전략의 명분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항의 음식은 지금까지 계란과 토마토가 주로 애용되고 있으며, 당분간 계란과 토마토의 타격감, 물리적-상징적 효과, 경제성을 넘는 음식은 쉽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 물론 시기와 사건에 따라 우크라이나의 스파게티처럼 음식 그 자체가 문화적 상징의 코드와 엮여 있거나, 파이처럼 또 다른 비주얼 효과가 있는 음식이 애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항의 음식의 사전 준비는 저렴한 대신 사후 결과는 파급력이 있어 경제적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매우 비경제적인 결과를 빚어낼 수도 있다. 항의 음식을 잘 못 사용하면 자칫 자신을 향한 공격 무기가 될 수 있음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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