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사

이재영·이다영 자매 학교폭력을 계기로 본 학생선수에 대한 폭력

Zigzag 2021. 2. 15.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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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선수에 의한 폭력(Violence by Athletes), 초·중·고 올라갈수록 동료폭력 증가

최근 배구선수 이재영·이다영 자매의 과거 학교폭력 논란은 운동선수에 의한 폭력(Violence by Athletes), 특히 동료에 대한 폭력이라는 점에서 흔히 접하던 스포츠 폭력(Violence in Sports)과 구별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19년 전국의 초중고 5,000여 개 학교 학생선수 6만3천 명을 대상으로(약 55,557명 설문 참가) 한 조사에 따르면 초중고선수의 신체폭력 경험은 일반 학생의 1.7배에 달한다. 언어폭력을 경험한 학생 선수들은 전체의 15.7%, 신체폭력은 14.7%, 성폭력도 3.8%에 달했다. 이재영·이다영 선수의 학교 폭력과 관련해 주목할만한 점은 학생선수에 대한 폭력 가해자로서 지도자는 초·중·고를 거치며 75%→65.3%→46.7%로 점점 줄어든 반면, 선배 선수의 가해자 비율은 초·중·고를 거치면서 7%(여성)~17%(남성)→29.3%→36.8%로 증가했다. 성별로 보면 남성 선배 학생선수들의 가해자 비율은 여성보다 2~3배 정도 높았다. 또래 선수의 폭력은 초등의 경우 남녀 각각 4.9%와 4.4%, 중등에서는 각각 2.7%와 1.6%, 고등에서는 1.3%와 0.5%로 감소했다. 이재영·이다영 선수 학교폭력을 고발내용을 고려할 때 피해자들은 초등과 중등의 또래 집단으로 여겨지며, 이들 자매는 이 극히 낮은 비율의 또래 폭력의 가해자였던 셈이다.

중·고 학생선수 신체폭력 가해자, 출전: 국가인권위원회 2019년 '학생선수 인권의 현주소_인권실태 전수조사와 (성)폭력 판례분석 결과 발표 및 토론회' 자료집

학생선수, 폭력 피해의 내면화와 폭력의 사회화

이재영·이다영 자매 학교폭력 피해자 학생 선수들이 오랜 시간이 지나 진실을 밝히게 된 데에는 학교 체육 환경을 둘러싼 고질적인 폭력의 사회화와 피해의 내면화 과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 학생선수들의 폭력 피해의 내면화는 중등과 고등의 경우 71.2%와 69.5%로 남성 학생선수의 56.2%와 53.6%보다 약 25% 정도 높았다. 이 내면화는 폭력에 대한 학생선수들의 소극적 대응과 무관하지 않다. 중등 선수의 경우 78.6%, 고등 선수의 80.8%가 신체폭력에 아무런 대응을 못 하거나, 괜찮은 척 웃어넘기거나, 소심하게 불만을 표시하는 소극적인 방식으로 대응했다. 특히 여성 학생선수들의 경우는 중등 82.6%, 고등 81.5%로 남성 학생 선수들보다 2~5% 정도 소극 대응 비율이 높았다.

중고등 학생선수들의 신체폭력시 대처, 출전: 국가인권위원회 2019년 '학생선수 인권의 현주소_인권실태 전수조사와 (성)폭력 판례분석 결과 발표 및 토론회' 자료집

이러한 학생 선수들의 소극적 대응과 폭력피해의 내면화는 폭력을 용인하는 학교체육의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위의 도표에서 보듯이 중등과 고등의 신체폭력 사례 수는 약 3,000건에 달하지만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155건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상담으로 종결되거나,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거나, 혹은 간단한 조치나 역효과가 난 경우 중등은 43.4%, 고등은 50%에 이른다. 가해자에 대한 징계 또는 형사처벌의 비율이 극단적으로 낮은 환경에서 가해자의 사과나 폭력행위의 중단은 사태의 일시적 해결로 그칠 가능성이 높으며, 학생 선수에 대한 지도자 혹은 선배나 또래집단의 폭력은 집단 내에서 끊임없이 사회화되고 재생산될 수 있다.

중고등 학생선수들 신체폭력시 도움요청 결과, 출전: 국가인권위원회 2019년 '학생선수 인권의 현주소_인권실태 전수조사와 (성)폭력 판례분석 결과 발표 및 토론회' 자료집

신체폭력에도 불구하고 소극적 대응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는 그 정도가 경미하다고 생각되는 경우도 있지만 적지 않은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거나, 보복이 두렵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 학생 선수들의 경우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남성보다 6~8% 정도 높았으며, 남성 학생 선수들은 보복이 무섭기 때문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비율이 여성보다 4% 정도 높았다.

중고등 학생선수들 신체폭력 피해시 대처 이유, 출전: 국가인권위원회 2019년 '학생선수 인권의 현주소_인권실태 전수조사와 (성)폭력 판례분석 결과 발표 및 토론회' 자료집

학생 선수 학교 폭력의 원인

언어나 신체폭력에 대한 직접적 원인은 경기력 향상, 개인감정, 운동부 기강 확립 등이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첫째로 한국 스포츠는 일본의 근대화와 군국주의화의 병진 과정에서 군대의 정신력 강화를 위한 체벌, 학교의 병영화와 폭력의 용인, 그리고 전후 1964년 도쿄 올림픽 개최를 전후한 엘리트 체육을 고스란히 전수 받았다. 둘째로 고도성장을 추구하며 성과 중심주의를 내세운 개발독재의 성장주의가 엘리트 중심의 체육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정통성이 결여된 군부독재 정권의 스포츠의 정치화, 가령 전두환 정권의 소위 3S(sports-screen-sex)는 이런 엘리트주의를 더욱 강화했다. 이 엘리트 중심의 체육 시스템은 생활체육 대신 엘리트 체육 육성 예산의 편중은 물론 체육 특기자 제도, 학교 운동부 지원, 병역 특례, 연금 제도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병영식 문화, 성과주의, 그리고 엘리트 중심주의의 결합은 각각 학교 운동에서 위계와 순응의 내면화, 체육의 교육적 가치의 희생에 기초한 성과, 일부 선수 중심의 팀 운영으로 이어졌다. 운동부 코치와 감독을 중심으로 한 절대적 권력 관계는 운동부 내에서 주요 핵심 선수들에게로의 권력의 내리 물림을 재생산한다. 주요 선수들을 중심으로 운동부가 돌아가고 나머지 선수들은 들러리가 되며, 심지어 또래 집단 내에서도 상하 관계를 형성한다. 폭력을 용인하는 병영화된 운동부 내에서 권력의 내리 물림은 폭력의 내리 물림으로 이어져, 폭력의 직접적 가해자가 아닌 경우도 소극적 동조자가 되며, 폭력의 피해자조차 자신이 당한 폭력을 미래에 후배나 더 약한 동료에게 가할 수 있는 위험을 잠재적으로 재생산한다. 더욱이 엘리트 선수 이외의 선수들에 대한 이러한 학생 선수 시절의 경험은 이후 사회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최근 대한체육회의 조사에 따르면 은퇴 체육인에 대한 생활실태를 조사한 결과 41.9%가 무직 상태며, 취업자의 55.7%가 비정규직, 월수입 200만 원 미만도 46.8%였다. 엘리트 이외의 학생 선수들이 겪는 고통은 사회생활까지 연장된다.

철인 3종 최숙현 선수의 사망, 조재범의 성폭행 그리고 이재영·이다영 자매의 폭행은 별개의 사건이 아니다. 한국 스포츠 생태계가 안고 있는 고질적 문제다. 스포츠가 지도자나 선수 모두에게서 메달과 성과를 위한 엘리트 선수들의 의무가 된 상황에서 개인과 집단의 건강한 심신 발달과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실종된다. 대부분의 선수는 자율적 인격을 가진 주체가 되기보다는 성과의 시녀와 그 시녀의 들러리로 전락하고 만다. 이제 우리에게 스포츠란 무엇인가라는 오랫동안 미루어 두었던 질문을 던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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