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적으로는 4억 4천만 달러를 가진 갑부였지만 정치적으로 무명이었던 공화당의 글렌 영킨(Glenn Youngkin)이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승리했다. 민주당의 승리를 낙관했던 바이든과 민주당은 영킨의 승리로 큰 타격을 입었다. 영킨은 공화당 예비경선에서 트럼프를 옹호하는듯했지만, 공화당 후보로 지명되자 그와 거리를 두면서 트럼프 지지자와 트럼프 때문에 공화당을 떠났던 온건한 공화당 지지자, 그리고 무당파 중도층을 흡수했다. 특히 학교에서 미국 사회에서 인종은 사회적 구조이고 인종차별주의는 개인의 편견이나 편견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법 체계와 정책에 내재되어 있다는 비판적 인종 이론(critical race theory, CRT)을 추방하겠다는 그의 공약은 BLM(Black Lives Matter,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에 두려움을 느낀 백인 중산층, 트럼프 주의자, 백인 우월주의자 등 백인들의 "백색 반동"(white backlash)에서 활력을 얻었다. 버지니아 주지사 당선으로 그는 일약 전국적인 스타가 되었으며, 심지어 유력한 차기 공화당 대선 주자의 반열에 올랐다. 이 글은 뉴욕타임스의 11월 3일 자 기사 Who is Glenn Youngkin and How Did He Win the Virginia Governor's Race?의 번역으로, 영킨의 경력과 선거 전략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 역자 주
글렌 영킨, 금융의 정상에서 공화당 정치의 최고위층으로의 여정
자신의 개인적인 재산에 힘입은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의 승자는 트럼프주의에 정나미가 떨어졌지만, 사실 또 다른 공화당원을 세우는 것에 전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았던 유권자들을 끌어당겼다.
1년 전, 글렌 영킨은 금융계에서는 잘 알려졌지만, 정계에서는 거의 완전히 하찮은 존재였다.
버지니아 주지사 경선에서 주목할만한 예상 밖의 승리를 거둔 후 영킨 씨는 공화당의 새로운 스타가 되었다. 그의 캠페인은 교훈을 얻고자 하는 양당에 의해 복기될 것이며, 그의 정치적 미래는 리치먼드의 크림색 주지사 관저의 4년에 거의 제한되지 않을 것이다.
첫 번째 경선을 뛴 타고난 운동가인 영킨 씨는 도날드 트럼프에게 여전히 속박되어 있는 공화당 기반과 트럼프 시대의 당을 거부한 덜 이념적인 공화당원 모두를 끌어들이는 방법을 찾았다. 그는 교외 아빠(suburban-dad, 얌전한 범생이 이미지 - 역자 주) 가죽을 뒤집어쓴 트럼프 늑대였다는 분노한 민주당의 공격에도 전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영킨 씨는 전기(biography)와 매너 모두에서 전 대통령의 약자 괴롭히기, 자기 과시적 프로필과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익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공화당 기반에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는 그의 능력과 학교에 대한 부모의 개입(학교 수업에서 CRT를 배제하는 것과 같은 영향력 등 - 역자 주)을 포함한 부동층 유권자들(swing voters)을 덜 분열시키는 그의 능력은 중간 선거 때 그의 당을 위한 청사진으로 작용할 것이다.
포브스에 의해 개인 재산이 4억 4천만 달러로 추산된 영킨 씨는 자신의 선거에 2천만 달러를 부어 넣었다. 그 엄청난 액수는 고위 공화당 컨설턴트들과 대대적인 TV 광고를 위해 쓰였고, 영킨 씨의 목표는 버지니아 주 너머를 향하고 있다는 추측을 불러 일으켰는데, 이를 위해서 그는 단임 후 사임해야 한다.
민주당의 아성으로 보이는 곳에서(12년 동안 버지니아 주 전체에서 공화당원이 한 번도 승리한 적이 없음) 보수 후보로 출마한 그의 승리는 유권자들이 트럼프와 트럼프주의에서 벗어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결정한다면 54세의 영킨을 그의 정당 내에서 전국적 경쟁자로 만들 수 있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 영킨 씨는 자신의 민주당 상대인 전 주지사 테리 맥컬리프(Terry McAuliffe)를 공격하는 광고로 공중파를 뒤덮었다. 그러나 처음에 광고는 이 정치적 무명을 부친의 실직으로 십 대에 설거지 일을 찾아야 했던 가난한 가정 출신으로 소개했다. 가족은 버지니아 비치(Virginia Beach)로 이사하여 사립 주간 학교인 노퍽 아카데미(Norfolk Academy)에 다녔다.
농구 장학금으로 그는 휴스턴에 있는 라이스 대학교(Rice University)의 디비전 I(Division I) 프로그램에 갈 수 있었다. 거기서 그는 주로 벤치를 지켰으며, 키는 6피트 7인치(그는 지금 키를 6피트 5인치로 소개한다)로 기록되었다. 그는 나중에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 다녔다. 그의 경력은 금융 분야로 향하는 명문 사립대 출신 전 대학 운동선수들의 잘 알려진 길을 따랐다.
그는 기업 컨설팅 대기업인 McKinsey & Company에서 근무했으며 1995년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사모펀드 회사인 Carlyle Group에 합류했다. 워싱턴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군사 및 에너지 산업을 포함하여 기득권층과 깊은 연계를 가지고 있으며 전직 정부 관리들이 부를 쌓는 연착륙의 역할을 해왔다.
영킨 씨는 아내 Suzanne과 함께 4명의 자녀를 키우는 동안 칼라일에서 승진을 했다. 영국에서의 인수계약 거래를 주도하고, 워싱턴에서 글로벌 산업 그룹의 수장이 되고, 2012년 회사의 기업 공모를 주도하는 데 도움을 주고, 2018년에는 공동 최고 경영자로 임명되었다.
영킨 씨는 워싱턴 교외의 그레이트 폴스(Great Falls)에 있는 자신의 집 주변에 31.5 에이커의 재산을 모았고 그와 그의 아내가 이를 말 농장과 승마장으로 발전시켰다. (그들은 그 재산을 농업 보호 구역으로 지정하도록 청원한 후 2020년에 95% 세금 감면을 받았다.)
영킨 부부가 설립한 민간 재단은 영킨 씨가 지하에 처음 설립한 독립 복음주의 교회인 맥린(McLean)에 있는 성 트리니티 교회(Holy Trinity Church)를 소유하고 있으며, "기독교 수련 사역지" 역할을 하는 미들버그에 있는 358 에이커 규모의 농장을 소유하고 있다.
인터뷰에서 영킨 씨는 믿음이 그들의 결혼 생활의 중심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을 일반 교회 신자로 만든 사람이 수잔이라고 설명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영킨은 칼라일의 "멋진 남자이자 문화 전달자"로 알려져 있는데, 칼라일을 창업한 억만장자들은 영킨을 회사의 얼굴로 가꾸어 주었다. 그러나 그의 공동 경영자와의 권력 다툼에서 패배한 후, 그는 2020년 9월에 회사를 떠났다.
10년 이상 영킨은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린지 그레이엄(Lindsey Graham) 상원의원과 폴 라이언(Paul Ryan) 전 의회 의장, 그리고 영킨 현금의 75,000달러 혜택을 받은 2012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미트 롬니(Mitt Romney)를 포함한 공화당 지배층에 후한 기부자였다.
그가 칼라일을 떠날 때, 그는 동료들에게 자신은 정치를 탐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는 오랫동안 봉사에 대한 소명을 느꼈고, 코로나바이러스의 대규모 혼란과 극심한 사회적, 경제적 도전은 그 확신을 강화시켰을 뿐입니다”라고 썼다.
2020년 선거가 사기로 인해 도난당했다는 거짓을 크게 믿는 트럼프 기반을 놓고 대부분의 후보자가 경쟁하는 혼잡한 공화당 예비 선거에서 영킨 씨는 "선거 청렴성"을 자신의 최고 문제로 삼았다.
그는 5월에 후보로 지명된 후에야 바이든 대통령이 승리했음을 인정했다. 곧이어 나온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는 "영광"이었다고 영킨은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때 그를 "훌륭한 신사"라고 부르며 함께 선거운동을 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영킨 씨는 트럼프가 자신을 지지하기 위해 전화한 집회를 피했고, 전 대통령은 선거 음모론을 계속 부채질했다.
영킨은 선거 초반 자신의 정책 우선순위를 가볍게 얼버무리며 총기권리나 낙태와 같은 전통적인 보수적 이슈를 덜 중요하게 다루었다. 한 번은 무소속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낙태를 경시해야 한다며 숨겨진 마이크를 가진 한 진보주의 운동가에게 털어놓았다. 전미총기협회는 영킨 씨가 그의 견해에 대한 질문지를 작성하지 못하자 지난 7월 지지를 건너뛰었다.
대신, 영킨은 일부 학부모들이 공립학교에 대해 불만을 품은 데서 그 자신의 활력 있는 이슈를 발견했는데, 이는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휴교로 시작되었고, 학급 활동이 인종적 차이를 지나치게 의식하게 되었다는 보수주의자들의 믿음으로 확대되었다.
그가 식료품 판매세를 폐지하고 신규 사업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규제를 줄이겠다고 약속했지만, 영킨의 가장 잘 알려진 공약은 학교 개학 첫날부터 비판적 인종 이론(critical race theory, CRT)을 금지하는 것이다. 교육자들이 인종차별의 역할에 대한 대학원 주제가 유치원에서 12학년까지의 유·초등부 교실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민주당에게 이 문제는 백인 유권자들의 불만을 호소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문화적 문제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에 대한 영킨 씨의 지원 활동이 풀뿌리를 추동한 분노를 체현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아니면 그것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붉은 조끼와 함께 입었던 편리한 옷이었는지는 결국 공화당과 많은 무소속 유권자들에게 거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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