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이 아니라 공포가 사회를 갈가리 찢어 놓을 수 있다"는 <거대한 인플루엔자(The Great Influenza-'스페인 독감'을 의미-필자 주>의 저자 존 베리(John Barry)의 발언은 대역병은 단지 생물학적 사건이 아니라 거대한 사회적 사건임을 암시한다. 그는 당국과 언론의 통제와 거짓말이 사람들로 하여금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가로막았다고 지적한다. 그는 "권위를 가진 위치에 있는 이들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소외시킬 수 있는 패닉을 줄여야 하며, 모두가 각자도생하는 사회는 기능할 수 없고, 문명은 그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며 투명함과 공동의 대응을 1918년 소위 스페인 독감의 마지막 교훈으로 제시했다. 코로나 19가 글로벌 대역병으로 선언된 지 1년이 됐다. 이제 이 사건의 의미와 그 영향을 뒤돌아볼 때가 됐다.
대역병(pandemic), 생물학적 사건을 넘어서 드라마
WHO가 코로나 19를 지역 감염병(epidemic)에서 글로벌 대역병(pandemic)으로 선언한 지 1년이 되었다. WHO의 대역병을 선언 2주 후인 3월 26일 미국 The Atlantic지는 "일상적 삶의 복귀를 위한 4개의 가능한 타임라인"이란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는 1~2달, 3~4달, 4~12달, 12~18달 4개의 타임라인을 제시하면서 1~2달보다 3~4달의 타임라인을 "더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로 묘사했지만 우리는 지금 4번째 타임라인 위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신속하게 백신이 개발되었지만, 아직 종반전(endgame)이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확신할 수 없다.
역사학자 찰스 로젠버그(Charles Rosenberg)는 "감염병은 극적인 형태를 띤다"고 했다. 그는 그 극적 전개를 시작을 1막으로 설명한다. 1막은 카뮈의 <페스트>에서 의사 베르나르 리외가 계단에 피를 토하며 쓰러진 쥐를 보면서 느꼈던 불길함이 점점 커지는 것처럼 감염병의 위험을 깨닫는 점진적 계시의 단계다. 2단계는 그 감염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한 프레임을 발견하는 단계다. 고대 그리스의 오이디푸스의 테바 시가 역병의 원인을 신의 저주에서 찾거나, 폐결핵의 원인을 성직자들이 알코올중독이나 난교 같은 하층의 도덕적 타락에서 찾거나, 아니면 1918년 소위 스페인 독감의 원인을 독일군의 의도적 감염 살포에서 찾는 것처럼 공통의 설명 프레임을 통해 무작위를 관리하는 단계다. 그리고 3단계는 기도, 단식, 격리 등 감염에 대한 사회적, 집단적 대응 방식을 결정하는 공공 대응의 협상 단계다. 코로나 19를 겪으며 우리는 로젠버그의 설명이 단지 현대 이전의 대역병에만 통용되는 것이 아님을 목격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초기 집단면역에 대한 환상에 따란 대응 부재, 마스크에 대한 문화적 편견, 코로나 19를 독감으로 취급하는 정치적 태도 등등에서 보듯 모든 대역병은 생물학적 사건일 뿐만 아니라 시공간적 세팅, 자기만의 주제와 플롯, 각각의 개성과 스타일을 가진 사회적 사건이다. 이 대역병의 생물학적, 사회적 측면은 이 두 사건이 서로 얽혀 있으며, 동시에 그 시작과 끝이 다를 수 있음을 의미한다.
글로벌 대역병 발생 선언과 종식 선언: 생물학적·사회적 선언
과거와 현대에는 글로벌 대역병에 생물학적 시작과 종말을 알리는 주체가 있다. 현재 글로벌 대역병을 선언하고 종결할 권한은 세계보건기구(WHO)에 있다. 2002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에 대한 대응 실패로 WHO는 감염병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국제보건규칙(IHR)을 개정했다. 이 개정은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그전까지 글로벌 감염에 대한 대책이 황열병, 콜레라, 천연두에 주로 제한됐던 수동적인 글로벌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중보건 모든 사건의 리포트, 수동적 리포트로부터 위기 분석과 관리를 통한 적극적인 감시와 추적체제의 도입, 단순한 국경 통제로부터 감염원의 발견과 봉쇄로 전환되었다. 이에 따라 긴급위원회가 설립되어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ublic Health Emergency of International Concern, PHEIC)를 선언한다.
대역병 선언에는 여러 기준이 있지만, 단순화하면, 첫째 세균이 질병이나 사망을 초래하고, 둘째 그 세균이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감염되며, 셋째 감염이 지역을 넘어 글로벌 확산의 증거가 있을 때다. WHO의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 선언은 단지 생물학적 사건의 선언이 아니다. WHO가 H1N1의 대역병 선언은 감염자 수는 3만 명에 불과했던 시기인 발발 3개월 만에 조기 선언됐다. 이 선언은 바이러스에 대한 데이터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선언되어 일각에서는 가짜 팬더믹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또한 당시 '스페인 독감'과 같이 특정국에 대한 낙인이 될 수 있는 명칭을 피하고자 WHO는 '돼지 독감'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으나 이는 특정한 인과관계가 없는 네이밍으로 결과적으로 전 세계 돼지 축산농가에 커다란 피해만 안겼다. WHO는 에볼라 바이러스와 관련해서는 반대로 너무 늦은 선언으로 비판받았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2013년 말부터 아프리카 중부지역을 중심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으며, WHO가 2014년 8월 8일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하기 직전인 8월 6일 감염자는 28,000 명이었지만 사망자는 이미 11,000 명을 넘었고, 미국과 유럽 등 각지로 퍼져나갔다. WHO는 대역병 선언과 함께 에볼라 발생 국가들이 입을 경제적 손실과 압력으로 대역병 선언에 주저했다.
WHO는 2010년 8월 10일 H1N1 대역병 종료를 선언했다. 물론 H1N1 감염자는 계속 있었지만, 대역병으로서 H1N1의 수명은 다한 것이다. WHO는 2016년 3월 19일 에볼라에 대한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 종식을 선언했다. 아프리카 국가들 속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나온 이 조급한 종료선언은 백신 개발, 의료 및 방역시스템 개선과 같이 에볼라 재발 방지를 위한 국제적 펀딩과 연구, 인력의 감소와 중단을 의미했다. 너무 이른 종료선언은 같은 대역병의 재현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19 대역병의 정치
WHO가 3월 11일 코로나 19를 글로벌 대역병으로 선언한 당시 감염자는 약 15만 명, 사망자는 약 4,500명이었다. 감염자는 이미 하루 1만 명, 사망자는 3백 명씩 발생하고 있었으며, 감염속도는 나날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WHO의 코로나 19 대역병 선언은 H1N1 때 보다 많이 늦었다. WHO가 H1N1의 대역병 선언은 감염자 수는 3만 명에 불과했던 시기인 발발 3개월 만에 조기 선언됐다. 하지만 코로나 19 대역병 규정은 발발 4개월 뒤에, 확진자 수가 15만 명에 육박했을 때 이루어진 것이다. 감염국 수도 H1N1을 대역병으로 선언한 당시의 70여 개국보다 훨씬 많은 110개국을 넘었다. WHO의 이 늑장 대응을 기다리다 못한 독일은 WHO보다 앞서 대역병 선언을 했다. WHO는 공식적으로 대역병 선언의 여파 때문에 신중히 처리했다고 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중국의 WHO에 대한 무시 못 할 영향과 지원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분명한 것은 WHO가 H1N1보다 대역병 선언이 늦었을 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한 달 뒤에나 마스크 착용을 권고함으로써 안이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대역병의 생물학적·사회적 사건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으며 생물학적·사회적 시간은 서로 다르게 흐른다. WHO의 생물학적 대역병 개시 선언과 무관하게 사회적 대역병은 시작되지 않았다. 영국을 예로 살펴보자. 영국은 WHO의 대역병 선언 이틀 후에 정부 보건 자문위원장 패트릭 발랜스(Patrick Valiance)가 인구 60%의 감염을 통한 집단면역을 주장했으며, 많은 전문가가 이탈리아의 봉쇄조치를 거의 미신 수준으로 취급했다. 문제는 정부의 공공보건과 방역 책임을 개인에게 방임하는 검증되지 않은 집단면역론을 서유럽 정부 대부분이 암묵적으로 지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영국은 이로부터 열흘 뒤인 3월 23일 전국 봉쇄를 선언했다. 미국 또한 대통령 트럼프부터 코로나 19를 "중국 독감" "중국 바이러스"라고 부르며 정부의 신속 대응 보다는 바이러스 공격과 같은 음모론을 공공연히 설파했다. 대역병의 생물학적 선언 이후 대역병의 사회적 시계는 이후 WHO의 우유부단한 대응과 각국의 혼란스러운 대응에서 보듯 천천히 그리고 불규칙적으로 흘렀다. 로젠버그의 분류로 본다면 세계는 대역병의 징후를 감지하는 1막에서 실패했고, 대역병을 설명하기 위한 과학적 프레임을 합의하는 2막에서 굼떴고, 공동의 대책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혼란에 빠졌다.
lt;거대한 인플루엔자>의 저자 존 배리는 2010년 H1N1 대역병을 평가하면서 만약 새로운 대역병의 "심각한 발발이 다시 도래할 때 그 대응 개선의 실패는 혼돈을 초래할 것이며, [역병의] 테러와 경제적 충격, 사망자 수를 확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의 경고는 반향을 얻지 못했고, 2019년 징후를 보였던 코로나 19 대역병은 2020년 거침없이 세계를 쑥대밭으로 초토화했다. 그 여파는 감염자 1억2천만 명, 사망자 266만 명이란 생물학적 피해를 넘어 거대한 사회적 충격의 쓰나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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