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왜곡과 역사의 왜곡
인간의 기억은 과거 사건을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저장하지 않는다. 대신 인간의 기억은 사건을 내러티브와 패턴에 따라 짜 맞추고 필요에 따라 불러낸다. 따라서 기억은 완벽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신도 모르게 재구성되고 왜곡된다. 기억의 왜곡과 재구성에 관한 연구들은 기억이 결코 단단한 구조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킴벌리 웨이드(Kimberley Wade) 등의 연구는 이미지를 통한 기억조작이 얼마나 수월한가를 보여준다. 그들은 피설험자들에게 그들의 어린 시절 실제 사진에 가족과 함께 열기구를 타는 조작된 사진을 함께 보여주었는데, 그들의 절반은 열기구 타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소환하려고 노력했다. 기억 왜곡 연구의 선구자 중 한명인 엘리자베스 로프트우스(Elizabeth F. Loftus)의 연구에 따르면, 피실험자들에게 벅스 버니가 방문객들과 악수를 하는 디즈니랜드 사진을 보여준 후, 나중에 그들과 인터뷰한 결과 그들 중 1/3은 디즈니랜드를 방문해 벅스 버니를 만나거나 악수한 기억이 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벅스 버니는 워너 브라더스의 캐릭터로 디즈니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 다리오 싸치(Dario L. M. Sa cchi) 등의 실험은 역사에 대한 기억의 왜곡 가능성을 잘 보여준다. 그들의 실험에서 이라크전 반대 시위에 관해 조작된 폭력적 사진을 본 실험 참가자들을 평화적인 시위를 폭력적인 시위로 기억했다. 킴벌리 웨이드의 실험은 기억이 단지 조작될 뿐만 아니라 그 왜곡된 기억이 적극적인 행동에 이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첫 번째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파트너들과 함께 포커 게임에 참여한다. 그런 다음 연구자들은 이 참가자들에게 실험에 함께 참여했던 파트너들이 게임에서 속임수를 쓰는 장면이 보여준다. 이 참가자들은 파트너들이 속임수를 쓰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지 못했음에도 그들 중 20%는 파트너들이 속임수를 썼음을 직접 목격했다는 증언에 서명했다. 심지어 속임수 장면이 조작된 것이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파트너들이 속임수를 쓰는 것을 보았다고 기억했다. 언론과 정치인, 그리고 미국의 프라우드 보이즈나 한국의 일베 같은 집단이 사진을 조작하거나 옛날 사건의 이미지를 지금 사건에 가져다 쓰는 등의 이미지 조작을 하는 이유는 이미지가 가지는 기억조작의 힘 때문이다.
텍스트를 압도하는 이미지의 기억력
앤드류 버틀러(Andrew C. Butler) 등의 역사 영화를 교재를 쓰는 수업에 대한 연구는 이미지와 텍스트가 기억에 미치는 질적 차이를 보여준다. 버틀러 연구진은 학생들에게 팩트가 담긴 텍스트를 읽게 하고 관련된 역사 영화를 보여주었다. 영화를 본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기억 보존력이 50% 정도 높았으며, 텍스트형 정보와 영화의 정보가 충돌할 때 응답의 절반이 잘못된 정보를 담고 있었으며, 이 경우 응답자들은 잘못된 정보가 올바른 정보라는 확신을 드러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정보가 픽션 영화에 기초한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정보의 오류를 텍스트의 문제로 돌렸다. 공상을 실제의 상황으로 이야기하고 그것이 공상임을 모르는 작화증(作話症, confabulation)은 정신병적 증상으로 여겨지지만, 일반인들에게도 종종 발생한다. 미국 전직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은 2차 대전 당시 군에서 선전 영화 편집 일을 담당했는데, 자신이 경험하지 않았던 나치 포로수용소와 공군 전투를 마치 본인의 경험처럼 이야기하곤 했다. 인간의 사건을 인식하는 방법과 기억을 하는 방법은 인과와 내러티브라는 동일한 방식을 따른다. 이 과정에서 인간들은 종종 직접 겪은 사건과 제삼자로부터 듣거나 책과 영상을 통해 접한 간접 정보들을 종합하곤 한다. 따라서 기억은 사실로만 구성된 팩트의 아카이브이와 사실과 환상을 바탕으로 산 신기루의 조합이다. 이것이 바로 언론과 정치인, 그리고 허위정보의 유포자들이 100% 허위정보보다 팩트와 허위정보를 섞는 이유다. 그리고 그 조합된 허위정보가 이미지와 결합할 때 정보의 보존력과 신뢰도는 팩트보다 훨씬 높은 감염도로 퍼져나간다.
텍스트보다 사진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가 더 높은 이유는 간단하다. 텍스트는 기호로 이루어져 있고, 그 기호는 소통 혹은 전달을 위해 해석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지로 이루어진 사진은 사람들에게 텍스트보다 해석의 공간과 여지를 더 엄밀하게 제한한다. 사람들은 사진이나 이미지를 인물이나 사건의 직접적 인용처럼 생각한다. 즉 사진이나 이미지는 어떤 인물이나 사건을 그들의 입을 통해서 직접 듣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시공 속에 존재하는 인간에게 사진은 특정 시간과 공간을 이미지 속에 고정했다는 인상을 준다. 이미지 혹은 이미지와 동반된 정보는 텍스트 정보보다 사람들을 속이기 더 쉽다.
이미지 조작의 종류와 목적
사진이 조작된 것임을 첫눈에 알아본다 하더라도 인간의 지각작용은 그 사진이 조작되었다는 정보보다 사진의 이미지를 더 오래 간직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그 이미지가 조작되었다는 정보는 희미해진다. 포토샵은 물론 간편한 이미지 보정/조작 앱, 이미지의 디지털화,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이미지들은 쉽게 변형 조작되어 순식간에 전파된다. 이미지 조작에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크게 조작과 거짓 연결, 의도적 선택, 부분적 수정, 위조와 사칭으로 나뉘어진다.
이미지 조작의 가장 손쉬운 방법은 조작된 내용과 거짓 연결(Manipulated Content-False Connection)이다. 잘못된 명명(mislabeling)이라고 불리는 이 방법은 원래 이미지를 그대로 놓아두고 그 이미지에 다른 맥락과 내용을 접붙이는 것이다. 가령 아래 좌측은 조선일보가 2012년 ‘해운대의 성난 파도…오늘 태풍 카눈 수도권 관통’이라는 제목과 함께 실린 사진이지만 실은 3년 전에 촬영된 사진이고, 우측은 채널 A가 2015년 세월호 시위 폭력 시위를 보도하며 사용한 사진이지만 실은 2003년 농민대회 사진이었다. 두 사진은 원본을 변형하지 않고 사용했지만, 사진의 맥락을 거세하고 다른 맥락을 기입했다. 이 맥락의 전도는 보통 현재의 맥락을 강조하기 위한 것인데 조선일보의 경우는 태풍의 위력을 과장하고, 채널A의 경우는 시위의 폭력성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이다.

두 번째로 의도적 선택은 이미지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정보를 조작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다. 사진 선택 효과는 미묘하지만, 종종 전체 사건에서 특정 순간을 고립 시켜 사실을 왜곡하고, 스테레오 타입을 이용해 편집자의 의도를 독자나 시청자에게 손쉽게 주입하기 위해 사용된다. 여러 사진을 놔두고 연예인의 눈 감은 사진, 정치인의 물 마시는 사진, 시위대의 위협적인 모습을 담은 사진을 사용하면 전체 상황은 왜곡된다. 또한 전체 내용에서 맥락을 자른 채 동영상의 특정 부분만을 편집하게 되면 오히려 해당 인물이나 사건을 완전히 반대로 표현할 수도 있다.
세 번째로 이미지 조작의 다른 방법은 부분적인 이미지의 수정이다. 이 방법은 특정 메시지를 강화하거나 감추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된다. 아래 사진은 2003년 걸프전 당시 LA Times 1면에 게재됐다. 제일 우측의 최종 사젠에서는 영국 병사가 아이를 안고 있는 이라크 민간인을 엄호하기 위해 그에게 몸을 낮추라고 지시하고 있다. 이 사진은 얼핏 보기에 본질적인 부분에는 차이가 없고 단지 주변적인 것만 바뀐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첫 번째 사진에서 군인은 다른 곳을 보고 있고, 두 번째 사진에서 이라크 민간인이 다른 곳을 보고 있다. 이 두 사진의 합성은 영국 군인과 이라크인의 시선이 만나면서 영국군이 민간인을 돌보는 이미지로 변신했다. 이 사진의 작가 브라이언 월스키(Brian Walski)는 사진의 "구성을 개선"했다고 말하지만, 걸프전 당시 서구세계의 간섭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이 "개선"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아래의 1942년 베니토 무솔리니의 두 사진을 비교하면 좌측의 수정본에서는 우측의 원본 사진에 있는 말 조련사가 없다. 이 수정은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지도자로서 영웅적인 측면을 부각하기 위한 것이다. 생각해보라. 절세의 지도자가 말도 제대로 타지 못해서 조련사가 말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면 그의 지도자로서 위신과 체면은 대중의 조롱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네 번째로 이미지 조작의 다른 방법은 위조와 사칭(Fabrication and imposter)의 내용이다. 조작(manipulation)이 팩트를 왜곡하는 것이라면, 허구는 팩트를 날조하는 것이며, 사칭은 이미지와 관련 정보가 언론이나 권위 있는 소스로 가장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정적이나, 특정 개인과 집단 혹은 사건에 피해를 주고 동시에 그 허위 정보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한 목적의 노골적인 사기행위다. 아래 사진은 2004년 민주당 상원의원 존 케리(John Kerry)의 대선 캠페인 당시 돌아다녔던 사진이다. 케리가 배우 제인 폰더와 함께 베트남 반전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이 사진은 합성된 사진으로 그의 반대자들이 조작해 퍼뜨린 것으로 뉴욕 타임스를 비롯해 각종 매체에 실렸다. 소위 정통 매체들조차도 사진의 조작 여부를 감별하지 못했다.

아래의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사진은 좌측 원본에는 프롬프트에 기자 질문 내용이 떠 있지만, 우측 조작 사진 프름프트에는 "말문이 막히시면 원론적인 답변부터 하시면서 시간을 끌어보십시오"라고 조작되어 있다. 또한, 그 아래 한국경제와 파이낸셜뉴스 사진은 아예 신문을 사칭해 허위 정보를 유포하는 경우다.

사진의 지문: 메타 데이터와 광(photo-)정보
'조작과 거짓 연결'처럼 이미지에 다른 정보를 연결하는 경우는 사진의 메타 데이터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스마트폰이나 디지털카메라는 촬영 장소, 시간, 카메라 종류 등의 정보를 담은 메타 데이터를 내장하고 있으며, 이러한 메타 데이터는 엑시프툴(ExifTool) 같은 간단한 앱으로 그 메타 데이터를 읽는 것이 가능하다.
트럼프가 코로나 19에 걸렸다고 발표한 다음 날인 2020년 10월 3일, 그는 와이셔츠 차림과 재킷을 입고 각기 다른 방에서 집무를 보는 사진을 올렸다. 코로나 19를 독감 정도로 취급했던 그이기에 이 사진은 코로나 19에 대한 자신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실제로 코로나 19가 독감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며, 동시에 병마에도 집무를 보는 훌륭한 직업의식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사진의 메타 데이터는 이 두 사진의 촬영 시간차가 불과 10분에 불과했음을 드러냈다.

맥아피사의 창립자 존 매커피(John McAfee)는 2012년 카리브해 벨리즈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도피 중에 잡지 VICE 관계자와 만나 인터뷰를 했고, VICE는 인터넷에 '우리는 지금 매커피랑 함께 있다. 멍청이들아"라는 글을 올리며 그와 함께 있는 사진을 게재했다. 그러나 그들은 사진을 올리면서 장소 정보가 담긴 메타 데이터를 제거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벨리즈 당국은 그 사진에서 매커피가 과테말라에 있는 것을 알아냈고, 결국 그는 체포됐다.

메타 데이터 외에도 모든 디지털 기기는 이미지 센서를 가지고 있다. 이 센서들은 광자를 흡수하는 무수한 광감소자(photosite)를 가지고 있다. 소위 광전효과를 통해 광자의 흡수는 광감소자들은 클럽의 조명등처럼 광자를 배출한다. 광감소자에서 방출되는 전자의 전하를 측정하여 디지털 값으로 변환한다. 이는 감지된 빛의 양을 나타내며 이것이 사진이 만들어지는 방법, 일종의 빛으로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미지 센서 제조 과정과 실리콘 재료의 고유한 차이로 인해 각 광감소자의 차원은 조금씩 다르고, 각 광감소자의 광자 변환 능력과 빛에 대한 민감도는 다르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광감소자의 민감도 차이는 육안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일종의 지문과 같은 차이를 만들어 낸다. 이로 인해 같은 기종의 카메라로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사진을 찍어도 그 사진들에는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를 디지털 포렌식 용어로는 광반응불균일성. (Photo Response Non-Uniformity, PRNU)이라고 하며, 메타 데이터와 달리
PRNU는 좀처럼 제거할 수 없다. PRNU는 사진 조작, 딥페이크를 식별하는 중요한 원천 자료다.
메타 데이터, PRNU 외에도 이미지를 출력하는 경우 그 프린터의 특성을 담은 정보를 노출한다. 많은 컬러 프린터는 문서에 비밀스러운 추적 점(dot)을 추가한다. 사실상 보이지 않는 노란색 점은 프린터의 일련번호와 문서가 인쇄된 날짜와 시간을 나타낸다. 2017년 연방수사국(FBI)이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러시아 간섭 의혹을 상세히 밝힌 국가안전보위부 문서의 출처로 리얼리티 위너(Reality Winner)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이 기술을 사용했다. 위너는 미국군의 아래도급 업체인 Pluribus에서 근무하며 관련 정보를 손에 넣고 이를 매체인 The Intercept에 보냈다. 그러나 The Intercept가 소스의 진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자료가 정보당국에 넘어가게 되고, 이를 통해 FBI는 정보 유출자로 위너를 특정할 수 있었다.
이미지 검증 툴
이미지의 허위정보 여부를 가장 손쉽게 확인하는 길은 구글 이미지 검색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미지의 URL이나 직접 이미지를 올려 검색함으로써 여러 유사한 이미지들 간의 차이를 구별하고, 이미지의 소스와 그 신뢰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 틴아이(TinEye)는 이미지 생산일과 관련 정보를 보여줌으로써 구글 이미지 검색보다 더 상세한 검증이 가능하다.
포토포렌식스(fotoforensics) 역시 사진 비교 사이트다. 그러나 사진의 압축률에 대한 분석을 제공해 사진 조작 여부를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동영상 분석을 제공하는 곳도 있다. 인비드(Invid)는 크롬이나 파이어폭스 브라우저 플러그인 형태로 동영상 분석을 제공한다.
이러한 기술적인 수단이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한 것은 이미지와 관련 정보를 대하는 자세다. 유네스코는 2020년 6월 30일 세계 소셜미디어 데이에 즈음에 잘못된 정보(misinformation)과 허위정보(disinformation)의 방지를 위해 "멈추고, 공유하기 전에 주의하라"(Pause. Take care before you share) 캠페인을 전개했다. "멈추기"(pause)는 심리학자, 신경과학자, 행동과학자들의 연구에 기반한 것으로 정보를 공유하기 전에 잠시 숙고를 위하여 멈추는 것이 검증되지 않고 오해의 소지가 있는 정보의 확산을 줄이는 데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사람들에게 충격적이거나 감정적인 내용을 충동적으로 공유하고, 정확성에 의문을 갖지 않고 공유하는 습관을 버리는 것이 곧 잘못된 정보와 허위정보를 줄이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임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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