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령당한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
6월 말 스리랑카 대통령 고타바야 라자팍사(Gotabaya Rajapaksa)는 나라의 경제가 "완전히 붕괴"되었으며 연료가 완전히 바닥났다는 이유로 7월 10일까지 실질적인 봉쇄를 선언했다. 하지만 7월 9일 토요일,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수만 명의 시위대가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며 대통령 관저를 습격하고 그의 행정부실을 장악했다.
경찰은 일부 지역에서 군중을 향해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았고, 허공으로 총을 쏘기도 했다. 그러나 군중이 계속되어 대통령 관저로 이동함에 따라 바리케이드가 무너지고 많은 사람들이 스리랑카 국기를 들고 구호를 외치며 대통령 관저로 돌진했다. 스리랑카 최대 시위 현장의 이미지에는 시위대가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며 식민 시대를 연상시키는 대통령 관저 건물의 웅장한 계단 위를 뒤덮고 있었다. 시위대 일부는 대통령 침실의 침대에 누웠고 수십 명은 야자수로 둘러싸인 야외수영장으로 뛰어들고 정원 잔디밭에 누워 즐거워하는 장면도 목격됐다.
콜롬보의 갈레 페이스(Galle Face)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도 보안과 바리케이드를 뚫고 건물을 습격한 수천 명의 시위자들에 의해 점거되었다. 몇 달 동안 갈레 페이스는 사람들이 텐트에서 생활하고 라자팍사가 사임할 때까지 이동을 거부하는 반정부 시위 캠프의 장소였다.
독립 이후 최대 경제 위기
스리랑카는 국가 독립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 올해 1분기(1~3월) 경제가 1.6% 위축되는 등 70여 년 만에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고 있다. 5월 물가상승률은 사상 최고치인 45.3%를 기록한 반면 루피는 올해 달러 대비 50% 이상 절하됐다. 식량 가격은 5배나 급등했다. 유엔은 인구의 70%가 이미 하루에 적어도 한 끼를 거르고 있다고 밝혔다.
위기는 스리랑카가 지난 4월 국제 채무 불이행을 했을 때 시작되었고 대출 기관은 정부에 6,300만 파운드의 미지급 이자를 갚을 수 있도록 30일을 주었다. 하지만 현재 외환보유고가 바닥난 스리랑카에 그것은 이행할 수 없는 요구다. 스리랑카 경제는 완전히 붕괴되어 식량과 기초 의약품조차 거의 수입할 수 없다. 모든 석유 판매가 중단되고 학교가 문을 닫고 의료 절차와 수술이 약물과 장비 부족으로 연기되거나 취소되고 있다. 스리랑카는 현재 510억 달러의 외채를 상환하지 못해 국제통화기금(IMF)과 구제금융 협상을 벌여 왔으나 IMF 대표단은 정부와 재융자 계약을 체결하는 데 실패해 지난달 말 스리랑카를 떠났다.
스리랑카 위기의 원인: 라자팍사 형제의 부패와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
1970년 정치에 뛰어든 쌀과 코코넛 부농의 아들인 마힌다는 전형적인 스리랑카를 지배하는 전통적인 엘리트 집안이었다. 싱가포르국립대학교(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의 라젠 샐리(Razeen Sally) 교수는 스리랑카에서는 “기성 가문이 아니면 정치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 시스템은 국가를 약탈할 수 있는 기존 내부자에게 맡겨졌습니다."라고 말했다.
스리랑카의 현재 위기는 내부와 외부의 문제가 만나 발생한 것이다. 내부적인 문제는 라자팍사 형제가 국가를 마치 형제기업처럼 운영함으로써 무능과 부패가 만연하게 된 것이며, 외부의 문제는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이다.
라자팍사 형제들은 2005년부터 시작된 마힌다의 10년 집권 기간 동안 국가를 가족 기업처럼 운영했다. 그는 고타바야를 국방 장관에 임명했고 바질과 그들의 맏형인 카말은 관개 및 경제 개발 부처를 책임졌다. 스리랑카는 산더미 같은 외채에 힘입어 수년간 성장을 누렸다. 마힌다는 타밀 반군에 대한 26년간의 내전에서 피투성이지만 결정적인 승리로 유권자의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중국 국영 기업 및 관리들과의 의심스러운 거래를 포함한 부패 혐의가 마린다 주변을 맴돌았다. 고타바야도 연루된 정도는 적지만 2006년 우크라이나에서 미그 전투기를 구매한 것과 관련하여 정밀 조사에 직면했다. 2021년 판도라 페이퍼(Pandora Papers)로 알려진 금융 문서가 유출되면서 라자팍사(Rajapaksa) 형제의 조카가 역외 계좌에 수백만 달러를 숨겨 놓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고타바야는 2019년 당선과 함께 내각을 유능한 인재 대신 마린다와 바질 등 자신의 형제와 충성파로 가득 채웠고 그들은 무능했다. 2019년 그들은 급격한 세금 감면을 시행했는데 이는 정부 수입을 크게 감소시켜 스리랑카가 식품, 의약품, 가스 및 연료와 같은 필수 품목을 구매하는 능력을 방해했다. 부채가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구하는 것에 반대했다. 고타바야는 2021년 세계 식량 가격이 치솟자 작물 수확량에 타격을 주는 화학 비료 금지했다. 이로 인해 농업 부문과 식량 안보에 문제가 발생했고 많은 스리랑카 사람들이 식사와 생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또한 스리랑카의 차 무역 및 기타 산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팬데믹과 그에 따른 폐쇄는 관광 부문에 크게 의존하는 경제를 위축시켰다. 다른 다양한 영역에 대한 정부의 잘못된 관리는 높은 인플레이션에 기여하고 위기를 악화시켜 불확실성, 불안정성 및 폭력의 새로운 촉매로 작용했다.
형제들은 종종 다투기도 했지만 자신들의 부패가 드러나는 것에는 하나의 목소리로 반대했다.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 스리랑카 지부의 상키타 구나라트네(Sankhitha Gunaratne) 부국장은 마린다와 바질이 쓰나미 구호 구호를 전용하고 공적 자금을 토지 구입에 사용하는 등 수많은 비난에 직면했지만 많은 조사가 중단되거나 철회됐다고 말했다. 그녀는 “라자팍사 부패 혐의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늘을 제공하는 큰 나무와 같다”라고 말했다. 고타바야는 2020년 부패를 조사하는 기관들을 약화시키고 법원에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하는 헌법 수정안 20조를 통과시켰다.
스리랑카의 위기는 또한 더 광범위하고 서로 맞물린 일련의 글로벌 현상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 식량 및 에너지 가격을 급등시켰고 스리랑카의 어려운 상황을 극단으로 몰아갔다.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이 야기한 에너지와 식량난으로 저 멀리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이미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케냐, 에티오피아, 소말리아와 같은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48시간마다 1명이 기아로 사망하고 있다. 동아프리카의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 전쟁으로 식량을 구할 수 없는 형편에 놓이게 됐다. 이러한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가 스리랑카에도 영향을 미쳤다.
국제 위기 그룹(International Crisis Group) 컨설팅 회사의 분석가인 앨런 키넌은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이 스리랑카의 에너지 위기를 가속화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효과"로 적어도 "2개월은 유지될 수 있다고 본 스리랑카의 연료에 대한 신용 한도가 2달에서 1달로 줄었습니다. 구제금융을 받는다 해도 식량, 연료, 약품을 더 적게 사는 셈입니다."
민주주의를 살리기 위한 시민들의 저항
스리랑카는 긴 내전, 여러 인도주의적 재난, 2018년 입헌 쿠데타 등으로 수십 년에 걸친 불안, 폭력과 정치 부패를 경험했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이러한 오랜 정치적 불안정의 다른 한편에는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 역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반대 단체, 시민 사회, 노동조합, 정치적 폭력의 희생자들은 국가가 후원하는 폭력과 강제 실종에 반대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에는 회원들이 강제실종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책임을 촉구하는 데 동원된 어머니 전선(Mothers' Front)의 강력한 활동도 포함된다. 예를 들어, 2009년에 끝난 내전 이후 실종된 희생자 가족들은 1,900일 이상 계속해서 시위를 벌였다.
비참한 정부 정책으로 인해 구성원의 생계가 영향을 받은 농어업 공동체, 정부 주도의 토지 수탈에 반대하는 공동체, 고등 교육을 군사화하려는 시도에 반대한 교사 및 노동 조합원 등의 항의도 격렬했다. 이러한 시위와 다른 많은 시위는 스리랑카에서 야당 동원의 풍부한 역사에 기여했다.
마힌다 라자팍사 전 대통령(2005-2015년 재임)의 권위주의적 관행과 불처벌은 정치적 억압, 시민 사회 및 반대 단체의 희생자들에 의해 새로운 차원의 행동주의를 촉발했다. 정부에 대한 이러한 비판자들은 언론의 자유에 대한 위협, 감히 라자팍사 정부에 대항하여 통치한 대법원장에 대한 부당한 탄핵과 같은 내전 동안 자행된 잔학 행위와 만연한 권위주의를 비판했다. 이 기간 동안의 민주주의의 후퇴는 여러 단체들이 공동의 명분 아래 결집하도록 촉발했고, 정권 교체를 요구하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전국 운동과 같은 운동으로 이어졌다. 2015년 마힌다의 대통령 선거 패배는 광범위한 야권 세력의 결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고타바야 라자팍사의 대통령 임기 동안 타밀과 이슬람 시민을 통합하기 위한 첫 번째 운동은 2021년 2월 스리랑카 동부의 포투빌에서 북부의 폴리칸디까지 행진을 조직했다. 수천 명이 모여 소수 민족 공동체를 위한 평등과 정의를 요구하며 행진이다. 시위대는 감시와 위협과 법원의 중단 명령을 거부하고 시위를 계속했다.
고타바야는 코로나 19과 공중 보건 문제를 시위 진압에 이용했다. 방역기간 동안 군대는 폭력적으로 시위대를 진압해 군이 운영하는 검역소로 끌려가는 장면을 널리 방영해 공포 메시지를 내보냄으로써 시위를 잠재우려 하였다. 그러나 시위대가 정부에 대한 반대는 단호했기에 이러한 시도는 그들의 투쟁을 저지하지 못했다.
2020년, 스리랑카의 다양한 단체들은 대통령의 권한을 더욱 공고히 하고 감사기구와 부패 조사기구와 같은 독립 기관을 약화시키려는 수정 헌법 20조에 반대하여 뭉쳤다. 이들은 대법원에 법적 문제를 제기했다. 활동가들은 또한 시위, 소셜 미디어 캠페인, 정치적 토론을 통해 반대 의견을 표명하여 정부가 몇 가지 변경 사항을 도입하도록 했다. 여당은 의회에서 과반수를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당은 수정안을 여러 번 수정해야 했다. 그리고 지난 4월 이후 가속화된 경제 위기 5월의 친정부 시위대의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폭력에도 불구하고 고타바야 정부를 규탄하기 위한 시위는 피로를 모른 채 계속되었고, 그 일련의 전통과 파고가 7월 9일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 점령으로 이어진 것이다.
스리랑카의 민주주의 앞에는 여전히 험난한 과정이 놓여있다. 이번 시위가 또 다른 엘리트에 의한 기존 엘리트의 대체가 될지 아니면 불안정한 민주주의의 안정화의 여정이 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더불어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의 여파는 동유럽의 전장터를 넘어 아프리카와 남아시아에 미치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뜨거운 여름, 높아지는 전기세 요금과 인플레 압력 속에서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이 국지전을 넘어 보이지 않는 세계대전임을 그리고 그 전쟁이 한 지역의 물리적 전쟁을 넘어 세계 곳곳의 불안정한 민주주의의 기반을 더욱 뒤흔드는 정치적 전쟁임을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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