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자 주: 서구 사회에서 어떤 영역의 선구자가 백인이 아니고 더구나 여성일 경우 그 업적은 쉽사리 잊혀지거나, 언급되지 않거나 아니면 백인 남성들에 의해 전유되곤 한다. 로큰롤의 대모(Godmother of Rock & Roll)로 불린 시스터 로제타 사프(Sister Rosetta Tharpe, 1915-1973)가 바로 그런 선구자이다. 그는 가수이자, 작곡가, 그리고 빼어난 연주자였으며 그의 음악은 어반 블루스, 민족음악, 스윙의 비트를 혼합한 것으로 로큰롤의 선구가 되었다. 그는 로큰롤 여명기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2017년 로큰롤의 전당에 헌액 되었다. 그의 음악은 리틀 리처드, 조니 캐시, 척 베리, 엘비스 프레슬리, 제리 리 루이스 등 로큰롤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1930-1940년대에 걸쳐 가스펠과 재즈와 블루스 등 대중음악을 접목한 연주로 인기를 끌었으며 스피리추얼 한 가사를 리드미컬한 반주에 얹은 연주가 특징적이었다. 그는 종교와 세속적인 경계를 넘나들며 연주 활동을 이어갔고 스피리추얼 음악을 메인 스트림으로 끌어올렸다. 그의 1938년 앨범 'Rock Me'는 당대 평론가들에 의해 "로큰롤 하고 영적인 가창"으로 칭송되었고 후대 로큰롤 가수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여성 기타리스트가 드문 시대에 천재 플레이어로서 칭송되었다. 그는 기타 테크닉의 개척자로 디스토션(distortion)과 스트링 벤딩(string-bending)을 선보였다. 그러나 마틸다 효과'처럼 남성 음악가들에 의해 그의 업적은 가로채어졌으며 2017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 전까지 그의 이름은 거의 잊혀졌다. 이 글은 리버풀 대학교 음악학과 부교수 Freya Jarman의 The Conversation 7월 6일 자 기고 Sister Rosetta Tharpe, singer who inspired Elvis: one of many women sidelined from musical history의 번역으로 시스터 로제타 사프의 로큰록에서의 위치와 업적, 남성 중심의 대중음악에서 여성 음악가들과 그들의 공헌이 망각되는 과정과 내러티브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엘비스에게 영감을 준 가수, 시스터 로제타 사프: 음악 역사에서 소외된 많은 여성들 중 한 명
Freya Jarman
엘비스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는 호주 영화감독 바즈 루어만(Baz Luhrmann)에게 완벽한 주제이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쇼맨십의 화려함과 루어만의 트레이드마크인 비주얼 스타일이 완벽한 동반자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프레슬리버스"(Presleyverse) 자체가 엘비스 프레슬리에 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엘비스의 위대한 신화인 엘비스의 아이디어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루어만은 위대한 신화를 거래한다.
이 특별한 신화는 백인 남성과 그가 모든 것을 어떻게 바꿨는지에 대한 영감을 주는 이야기에 관한 것이다. 흑인 여성 가수와 그 길을 만든 음악가에 관한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는 두 개의 인용구를 비교하여 난제를 요약할 수 있다. 루어만의 각본에서 엘비스는 "로큰롤은 기본적으로 가스펠과 리듬 앤 블루스이다"라고 인정했다. 화면 밖에서 “로큰롤의 대모”인 시스터 로제타 사프는 그 진실의 이면에서 지친 채 말을 했다.
이 키즈와 그들의 로큰롤은 속도가 빨라진 리듬 앤 블루스입니다. 그것은 내가 영원히 해온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녀는 그랬다. 1915년 아칸소주에서 소작농 가정에서 태어난 사프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회중 기반을 가진 오순절 교단인 하나님의 교회(Church of God in Christ)의 음악 세계에 몰두하면서 그녀의 형성기를 보냈다.
오순절 교회는 일반적으로 미국에서 가스펠 음악 발전의 중심에 있었고, 흑인 공동체에서 가장 유명했지만 백인 오순절 교회에서도 마찬가 지로 음악이 회중에서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격정과 열정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젊은 로제타는 기타를 연주하고 음악을 통해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법을 배웠다. 사프는 시카고의 종교계에서 빠르게 음악적 명성을 얻었고 19세에 뉴욕으로 이사하여 그녀의 공연이 대중적인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경력 전반에 걸쳐 그녀는 신성한 음악 세계와 세속 음악 세계를 원활하게 오가며 두 분야 모두에서 높은 수준의 성공을 누렸다.
사프의 보컬 퍼포먼스는 연설과 노래 사이에서 춤을 추는데 이는 카리스마 넘치는 설교자들에 귀를 기울이는 일생의 경험에서 끌어 온 것이다. 바로 로큰롤의 기반이 된 보컬 안무(vocal choreography)다. 그녀의 기타 연주는 초창기 다른 여성인 멤피스 미니(Memphis Minnie)에 의해 널리 사용되었던 새로 등장한 증폭 악기에 대한 디스토션(distortion)과 스트링 벤딩(string-bending) 기술을 개척했다.
사프의 획기적인 테크닉에서 우리는 대중음악 역사의 표준 기타 연주자들의 직접적인 음향적 조상들을 들을 수 있는데, 이 연주자들의 혈통은 머디 워터스(Muddy Waters), 척 베리(Chuck Berry) 또는 BB 킹(BB King)과 같은 남성 기타리스트들의 것이라고 훨씬 더 일반적으로 여겨진다.
음악 역사에서 여성을 열외로 취급하는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다. 바흐(Bach), 모차르트(Mozart), 슈만(Schumann), 멘델스존(Mendelssohn), 말러(Mahler)는 그것을 증명할 수 있다. 안나 막달레나(Anna Magdalena), 마리아네(Marianne), 클라라(Clara), 파니(Fanny), 알마(Alma)는 더 유명한 남성 클래식 작곡가의 아내 또는 자매이다.* 과학에는 멤피스 미니 (Memphis Minnie)와 시스터 로제타(Sister Rosetta)가 겪었던 이 특정 현상에 대한 "마틸다 효과"(Matilda Effect)**라는 이름도 있다.
* 역자 주: 안나 막달레나 바흐(Anna Magdalena Bach)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두 번째 부인이자 유명한 성악가이자 작곡가였다. 안나는 바흐 악보 필사를 도왔으며 후에 바흐의 필체와 상당히 유사한 필체를 가지게 되었다. 바흐의 이름으로 알려진 작품 혹은 알려지지 않은 작품 가운데 안나가 썼을 가능성이 높은 작품들이 여럿 있다. 마리아네 혹은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Maria Anna Mozart)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친누이며 신동 소리를 들었던 유명한 피아노 연주자였다.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의 억압으로 마리아네는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채 동생의 반주자에 머물렀다. 클라라 슈만(Clara Schumann)은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이자 10대 초에 유럽 순회공연을 할 정도로 유명한 천재 피아니스트였다. 슈만의 작품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클라라 자신도 피아노 독주곡과 협주곡 등 여러 작품을 남겼다. 파니 멘델스존(Fanny Mendelssohn)은 펙릭스 멘델스존의 누이이다. 파니는 어린 시절부터 작곡에 재능을 보였지만 아버지 멘델스존이 파니의 작품 공개를 금지했기 때문에 파니의 작품은 동생 펠릭스 멘델스존의 작품으로 출판되었다. 알마 말러(Alma Mahler)는 뛰어나 작곡가이자 저자, 사교계의 명사였다. 그는 구스타프 말러와 결혼했다. 말러는 결혼 초 알마에게 작곡을 금지했고 알마는 말러의 악보를 청서 했지만 말러로부터 존중받지 못했다.
** 역자 주: 마틸다 효과는 여성 과학자들의 업적이 인정되지 않고 그것이 남성 동료의 것으로 전유되는 편향을 가리킨다. 이 용어는 여성 참정권자이자 노예 폐지론자인 마틸다 조슬린 게이지(Matilda Joslyn Gage)의 '발명가로서 여성'(Woman as Inventor)라는 에세이에서 처음 언급되어 그녀의 이름을 따라 '마틸다 효과'라 불리게 되었다. 마틸다 효과는 역사적으로 오래된 관행이다. 예를 들어 기원전 6세기의 수학자 테아노(Theano)의 업적은 그녀의 남편(혹은 아버지/스승) 피타고라스에 의해 가려졌다. 12세기의 이탈리아 의사 살레노의 트로롤라(Trota of Salerno)의 저작은 남성 이름으로 대체되었고, XY 염색체의 성별 결정 시스템을 발견한 19-20세기 과학자 네티 스티븐스(Nettie Stevens)의 업적은 토마스 헌트 모건(Thomas Hunt Morgan)의 것으로 간주되었다. 로자린드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은 DNA 구조 발견에 공헌했지만 1962년 노벨상은 프랜시스 클릭(Francis Crick)과 제임스 왓슨(James Watson)에게 돌아갔다.
1870년 마틸다 조슬린 게이지(Matilda Joslyn Gage)가 처음 기술한 이 용어는 발견을 특정 프로젝트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남성 동료들에게만 돌리는 경향을 묘사하고 있다. 예를 들어, DNA의 이중 나선 구조를 발견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프랜시스 클릭(Francis Crick)과 제임스 왓슨(James Watson)의 이름에 오랫동안 가려져 온 로자린드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을 생각해 보라.
음악에서 "발견"의 특정 순간을 지적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왜냐하면 정확히 "새로운" 것을 식별하는 것이 항상 그렇게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로제타 효과"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여기서 여성의 음악적 공헌은 주변 남성들의 공헌에 의해 가려졌다.
재능 있는 여성
20세기 대중음악에는 분명히 위대한 여성의 규범 같은 것이 있다. 팝 역사 101과의 피상적인 상호 작용만으로도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 다이나 워싱턴(Dinah Washington), 마할리아 잭슨(Mahalia Jackson)과 같은 이름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여성들은 주로 그들의 음악적 혁신이나 기악 기술이 아니라 그들의 목소리로 기억된다.
대중음악 역사의 거대 내러티브에서 여성은 특정 역할에 신중하게 포함되고 다른 역할에서 소외되었다. 클래식한 훈련을 받은 피아니스트 니나 시몬(Nina Simone)조차 피아노 반주자가 아닌 민권 시대 미국의 목소리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시몬의 탁월한 피아노 연주가 이 전체 브랜드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악기 자체는 주목할만하다. 여성 싱어 피아니스트는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시몬 외에도 토리 아모스(Tori Amos), 레지나 스펙터(Regina Spektor), 앨리샤 키즈(Alicia Keys), 노라 존스(Norah Jones) 그리고 캐롤 킹(Carole King)이 있다. 그러나 캐런 카펜터(Karen Carpenter)는 드럼에서 나오도록 촉구되었고, 닥터 후(Doctor Who) 테마에 대한 델리아 더비셔(Delia Derbyshire)의 기술적 마법은 BBC 라디오포닉 워크숍(BBC Radiophonic Workshop)의 익명성 뒤에 가려져 있었고, 멤피스 미니(Memphis Minnie)의 이름은 그녀의 동시대 머디 워터스(Muddy Waters)의 이름만큼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너무 늦은 이야기
대중음악에서 여성의 역사는 클래식 여성의 경우만큼 추적하기 어렵지 않지만 이 이야기(그리고 실제로 현실)는 특정 기능에 여성을 가두어 놓는다. 시대를 초월한 상징적인 목소리는 이러한 기능 중 하나이지만 선구적인 음악 혁신가는 그렇지 않다.
루어만의 영화는 프레슬리가 아프리카계 미국인 음악 문화에 빚진 음악적 빚에 정면으로 직면한다. 흑인 복음주의 음악과 빌 스트리트(Beale Street, 멤피스 다운타운 거리로 블루스 음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거리 - 역자 주) 음악 장면을 프레슬리의 창조적인 고향(이곳은 그가 백인 미국과 공유했던 소리 세계인데 왜냐하면 그가 어린 시절부터 그곳들에 깊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으로 설정하면서, 이 영화는 프레슬리를 동정적으로 그렇게 한다.
재현(epresentation)으로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프레슬리 역시 백인 주류 외부의 문화와 백인 예술가의 관계에 대한 길고 복잡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여기에는 흑인 기원의 음악 스타일 활용(랩의 에미넴[Eminem], 재즈의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 포함), 흑인 아티스트들의 인기 있는 노래 커버(비틀스[Beatles]의 'Please Mr. Postman' 또는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의 'I Shot Sheriff') 또는 그냥 실질적인 문화적 차용(이기 아젤리아[Iggy Azalea]의 'Bounce' 또는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의 'dreadlocks'를 생각해 보라).
진실성(authenticity)에 대한 질문은 프레슬리의 음악적 유산에 무겁게 드리워져 있으며,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로큰롤의 역사는 미국의 길고 암울한 인종 정치의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으며, 이를 말하려면 세심한 주의와 감수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중음악 역사에서 시스터 로제타 사프와 같은 여성을 주제로 한 동등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을지도 모른다.
'문화 > 음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롤링 스톤 번역] 영화배우이자 팝 히트메이커 올리비아 뉴튼 존, 향년 73세로 별세 (0) | 2022.08.09 |
---|---|
비욘세, 새 앨범 '르네상스'의 장애차별적 언어 사용 (0) | 2022.08.02 |
BTS의 활동 중단: 글로벌 소프트파워 욕구와 남북 안보 사이의 투쟁의 산물? (0) | 2022.06.22 |
임윤찬, '피아노 올림픽'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 60년 역사상 최연소 우승자 등극 (0) | 2022.06.19 |
[가디언 번역] 한국 뽕짝은 부활을 넘어 국경도 넘을 것인가: 이해연의 '단장의 미아리 고개'부터 250의 '뽕'까지 혁신하는 뽕짝 (0) | 2022.0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