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겨울, 이탈리아 전역의 나이트클럽에서는 사람들이 신나는 리듬 속에 실려 나오는 기괴한 가사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조르자입니다. 나는 여성이고, 엄마이고, 이탈리아인이고, 기독교인입니다." 이 가사는 비교적 작은 극우정당인 프라텔리 디탈리아(Fratelli d’Italia, 이탈리아 형제들, FdI)의 조르자 멜로니(Giorgia Meloni) 대표가 그해 10월 대중 연설에서 한 발언의 일부였다. 사람들은 그녀의 외국인과 동성애 혐오를 조롱하기 위해 이 리믹스를 만들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리믹스는 그녀의 민족주의적 메시지를 유행시켰다. 이 45세의 극우 정치인은 이제 이탈리아의 차기 총리가 될 것으로 널리 예상되고 있다. 그 경우 그녀는 이탈리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이며, 동시에 무솔리니 이후 이탈리아를 통치하는 최초의 극우 지도자가 된다.
2012년에 설립된 이탈리아 형제들은 2013년 이탈리아 선거에서 2% 미만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2018년에는 4%를 간신히 넘겼다. 롬바르디아 출신 실비오 베를루스코니(Silvio Berlusconi)와 마테오 살비니(Matteo Salvini), 토스카나 출신 마테오 렌치(Matteo Renzi), 리구리아 출신 베페 그릴로(Beppe Grillo)와 같이 북부 경제 중심지에서 온 남성 마초들이 지배하는 이탈리아 정치 풍경에서 로마식 사투리를 구사하는 '로마치오'(romanaccio)로 노동계급의 지역인 로마의 가르바텔라(Garbatella)에서 자란 여성 멜로니는 어색한 아웃사이더였다. 그녀는 오랫동안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중도좌파 신문인 라 레푸블리카(La Repubblica) 신문의 장난꾸러기 평론가는 그녀를 "쓰레기"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이러한 조롱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부상은 더 이상 무시와 조롱의 넘어 전 유럽에서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탈리아는 9월 25일에 새로운 입법부에 투표했고, 9월 9일에 실시된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FdI는 25%를 약간 밑도는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 멜로니의 강철 같은 시선은 이탈리아 전역의 광고판, 스크린, 포스터, 전단에서 "Pronti a risollevare l’Italia"(이탈리아의 부활을 준비하자)"라는 슬로건 아래 빛을 발한다. "조르지아"는 이탈리아의 첫 여성 총리의 탄생을 유럽은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다.
프롤레타리아 지역 출신의 여성, 멜로니
1977년 1월, 멜로니의 어머니는 첫 딸 아리아나(Arianna)를 낳은 지 1년 반 만에 그녀를 낳았다. 멜로니는 어머니와 할머니가 가장인 가정에서 자랐다. 로마 북부의 부유한 지역 출신의 회계사였던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어렸을 때 사라졌고, 나중에 카나리아 제도 중 하나에 정착하기 위해 배를 타고 떠났다. 그는 가족들을 가끔 방문하곤 했지만 어린 멜로니는 그의 관심 부족을 탓하며 그를 보지 않기로 결심했다. 멜로니는 "이러한 부재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끊임없이 부응하고, 특히 남성 중심의 환경에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라고 썼다.
그녀가 태어난 곳은 로마 가르바텔라(Garbatella) 지역으로 노동계급의 거주지였다. 가르바텔라는 1920년대에 세워졌고 주로 베니토 무솔리니의 거대한 새 기념물과 거리를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오래된 중심 지역에서 제거된 로마인들이 주로 거주했다. 가르바텔라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Pier Paolo Pasolini), 루치노 비스콘티(Luchino Visconti)와 같은 유럽 최대의 영화 촬영소 치네치타(Cinecittà) 감독의 영화에서 자주 등장했으며 노동계급, 대담하고 모성적인 로마의 특성을 가장 잘 대변하는 지역으로 꼽혔다. 이곳은 1946년부터 1994년까지 기독교민주당(DC)이 정치적으로 지배했던 전후 이탈리아 경제 호황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했지만, 서민들 속에 스며든 제1야당인 이탈리아 공산당(PCI)이 번성한 지역이기도 했다. 가르바텔라는 기독교 민주당을 지지하는 가톨릭 교회와 기업 조직들 혹은 노동조합과 이탈리아 공산당이 조직하는 연례 축제 페스타 델우니타(Festa de l'Unità)와 같은 행사 지역 사회 깊숙이 뿌리내린 계급 충돌과 계급 공존의 지역이다.
멜로니의 어머니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했는데, 멜로니 역시 유명한 파이퍼 클럽에서 바텐더 일을 하는 것에서부터 아이를 돌보는 것까지 10대 때부터 그 뒤를 따랐다.
15살 때인 1992년, 벨로니는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독재정권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전직 당원들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창당한 정당인 이탈리아 사회 운동(Italian Social Movement, MSI)의 청년단 문을 두드렸다. 로마 가르바텔라 노동자 계급의 조용한 거리에서 자란 멜로니는 2021년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 운동의 가르바텔라 지부에 가입하기로 한 것은 자신의 "순수한 본능"에 의한 결정이었으며, 이 운동에서 "제2의 가족"을 발견했다고 회상했다.
극우 정치인으로서의 출발과 이탈리아 형제들 창당
1992년, 멜로니가 정치에 입문한 해, 기성의 정치 세계는 무너지고 있었다. 소련은 붕괴되었다. EU는 마스트리흐트 조약을 막 비준하여 이탈리아가 유로화로 가는 길을 가고 있음을 확인했다. 탄젠토폴리(Tangentopoli, '뇌물 도시') 부패 스캔들로 인해 이탈리아 정치 체제는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미디어 환경은 개인 텔레비전의 폭발로 변화하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전후 정치 질서를 휩쓸었다. 기독교 민주당은 해산되었고 이탈리아 공산당은 친유럽 민주당(현재 Partito Democratico, PD)으로 재탄생했다.
멜로니는 MSI 청년 전선의 일원으로서, MSI가 일반적으로 좌익 정치문화가 지배하던 대학에서 유일하게 강력한 우파 정당이었을 때, 학생 조직을 규합하고 조정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 시기는 또한 MSI가 1995년에 파시스트의 뿌리를 떠나 보수 우파 민족주의 정당 국가동맹(Alleanza Nazionale, AN)으로 개명하며 개편된 마지막 해이기도 하다. 1996년 방송에는 멜로니가 무솔리니가 "이탈리아를 위해 한 모든 일을 훌륭한 정치인이라"라고 말하는 것이 포착었고, 그녀는 곧 AN 청년 운동의 회장이 되었다.
1996년 멜로니가 무솔리니를 찬양할 때쯤, 전후 이탈리아 정치체제는 사라졌다. 기독교민주당의 구 선거 연합은 1994년 선거까지 세 가지 주요 방향으로 분열되었다. 경제 자유화를 약속하는 새로운 정당인 포르자 이탈리아(Forza Italia, 전진 이탈리아)는 이탈리아 텔레비전의 규제 완화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언론계의 거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에 의해 막 결성되었다. 북부동맹(Lega Nord)은 로마의 지배와 더 가난한 남부로의 부의 이전에 대한 북부인들의 불만을 표출하는 지역주의적인 목소리였다. 멜로니가 정치 입문 수업 중이던 국가동맹은 신파시스트 MSI와 옛 기독교 민주당의 우파를 융합한 것이었다. 이 3자는 1994년과 2011년 사이에 베를루스코니의 4개 연립 정부의 기초가 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이탈리아의 우파를 계속 규정하고 있다.
텔레비전 재벌인 베를루스코니가 보수적이고 포퓰리즘적이지만 EU에 우호적인 시각과 감세를 옹호하는 중도우파 정당인 포르자 이탈리아를 창당함으로써 이탈리아 정치를 강타했다. 기독교민주당과 이탈리아 공산당이 대립해왔던 수십 년 동안 평범한 이탈리아인들은 지역 정당 지부, 간부, 사무실, 사건들을 통해 정치권력을 경험했으며, 이탈리아 정치체제는 모두 특정 이념 원칙의 틀 안에서 운영되었다. 하지만 베를루스코니즘(Berlusconismo)은 이 모든 것을 화려한 구경거리, 스핀 닥터, 광고 중역, 벨라인(쇼걸)과 공허한 민족주의적 선전으로 대체했다.
급속한 기술 변화의 시기에 이탈리아의 오랜 제도적 타성과 보수주의가 결합된 공동화된 정치는 베를루스코니즘이 약속한 경제 활성화가 대신 지속적인 침체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이탈리아가 후진하고 있을 때, 멜로니는 전진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웨이트리스, 바텐더, 보모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그녀는 1998년 로마 시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2006년 불과 29세의 나이로 로마 주변지역을 포함하는 라치오(Lazio)의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역사적 중앙집권주의와 하위 중산층 사무원, 공무원, 경찰관, 군인들로 구성된 계급과 함께 이탈리아 수도는 오랫동안 포스트 파시스트(post 우파의 거점이었다. 이 포스트 파시스트(post-fascist) 우파는 2008년 시장 선거에서 승리했다. 같은 해 베를루스코니는 멜로니를 이탈리아의 최연소 청소년부 장관에 임명했다. 다음 해에 국가동맹은 포르자 이탈리아와 합당했다. 그러나 2011년 유로존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베를루스코니는 권좌에서 물러났고 그의 정당은 그의 기술 관료적 후계자인 마리오 몬티(Mario Monti)를 지지했다. 그것은 멜로니를 포함한 국가동맹의 베테랑들에게는 더 이상 인내하기 힘든 것이었다.
포스트 베를루스코니의 이탈리아는 변덕과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첫 번째는 2014년에 정점을 찍은 중도좌파 PD의 마테오 렌지(Matteo Renzi)였다. 그 후 베페 그릴로(Beppe Grillo)와 그의 포스트 이념적이고 포퓰리즘적인 오성운동(Five Star Movement, M5S)이었다. 이 당은 2018년 선거에서 1위로 급상승했고 거의 33%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어 북부동맹(Lega Nord)을 동맹(Lega)으로 재브랜드화한 마테오 살비니(Matteo Salvini)가 유럽 난민 위기를 이용해 포퓰리즘 이미지를 강화하며 북부 거점을 넘어섰고, 2019년 6월 유럽 선거에서 정점을 찍었다.
멜로니가 포르자 이탈리아와 결별한 2011년 이후 이탈리아는 유로존의 부채 위기로 촉발된 극심한 불황의 한가운데에 있었고, 멜로니는 2012년 그녀의 가장 큰 정치적 도박인 이탈리아 형제들(FdI) 창당에 착수하기로 결정했다. MSI의 삼색 불꽃이 타오르는 로고와 함께 극우 정당에 자리를 잡은 이 신당은 국제 금융 시장, 이민자 및 동성애자 권리에 대한 적대적 견해를 공개적으로 표명하면서 민족주의, 보호주의 및 강력한 유로 회의주의적 의제로 통합되었다.
2019년 최고의 정점을 찍었던 동맹은 또 다른 강경 우파 정당인 멜로니의 FdI에 의해 가려졌다. 멜로니와 FdI의 미미했던 출발은 동맹의 지도자 살비니의 몰락 덕택에 창대해졌다. 살비니는 2019년 여름의 대부분을 모히토를 마시고 비키니를 입은 여성들과 춤을 추며 국가의 해변 클럽을 자만하는 투어로 보냈다. 그 해 8월, 그는 오만 속에서 M5S와의 짧은 연정을 갑작스럽게 끝냈지만, 자신의 새 정부를 설립하는 데 실패하고 야당 벤치에 앉게 됐다.
살비니가 진지하지 않다는 평판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인 2020년에 특히 심각하게 나빠졌다. 그리고 2021년, 그는 유럽 연합의 팬데믹 회복 기금에 의해 이탈리아에 할당된 2,000억 유로의 분배를 감독하기 위해 기술 관료인 전 유럽 은행 총재 마리오 드라기(Mario Draghi) 하에서 구성된 국가 통합 정부로 동맹을 끌고 들어갔다. 또한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존경심을 표명했던 살비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더 큰 피해를 입었다.
동맹이 드라기의 통합 정부에 합류한 곳에서 FdI는 그것에 관여하지 않은 유일한 주요 정당이었다. MSI의 반공주의 유산을 물려받은 덕택에 FdI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대서양주의를 지지해왔고, 살비니의 성급한 푸틴과의 로맨스라는 과오를 공개적으로 피할 수 있었다. 멜로니는 또한 M5S에서 PD에 이르는 다른 정당들, 그리고 새로운 중도 진영과 다양한 다양한 녹색당, 급진 좌파 정당들이 FdI, 동맹, 포르자의 우파연합에 대항하는 연합 구성에 실패하면서 득을 보았다.
포스트 파시스트 멜로니와 이탈리아 형제들
9월 25일 선거 이후 이탈리아의 새로운 좌우 연정이 탄생할 가능성은 있지만 가능성은 낮다. 지금은 멜로니를 총리로 하거나 그녀에서 충성스러운 총리를 뽑는 우파 3당의 정부가 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멜로니와 FdI의 집권은 유럽에서 새로운 위험을 예고한다.
이탈리아는 유럽과 세계 정치에서 항상 조기 경보이자 실험실로 다른 나라의 위기를 예고했다. 이탈리아는 히틀러에 앞서 무솔리니를 가졌으며, 프랑스에서 악숑 디렉트(Action Directe, '직접 행동'이란 의미로 1979년에 결성된 프랑스 극좌 테러 단체)가 등장하기 전에 이탈리아에는 좌파 극단주의 붉은 여단(Red Brigades)이 있었으며, 독일의 적군파(Red Army Faction)는 그 뒤를 따랐다. 미국이 트럼프(Trump)를 얻기 전에 이탈리아는 베를루스코니(Berlusconi)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베를루스코니의 실정 이후, 이탈리아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따라잡기 전에 코미디언이 이끄는 최초의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운동(Five Star Movement)을 만들었다. 오성의 의제는 정치적 혼란이었고, 종종 그 결과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형제들 지도자 멜로니는 자신이 파시스트임을 부인하지만 무솔리니 시대의 구호인 "디오, 파트리아, 파밀리아"(Dio, patria, famiglia, 하나님, 조국, 가족)를 고수하고 있다. FdI의 전신인 MSI는 무솔리니 밑에서 일했던 인물들에 의해 설립되었고 그 정당은 확실히 1920년대와 1930년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연적인 고향으로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중부 르마르슈 지역의 FdI 주 총리인 프란체스코 아카롤리(Francesco Acquaroli)가 1922년 무솔리니의 로마 행진을 기념하는 만찬에 참석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탈리아의 정치 평론가들은 멜로니가 파시즘보다는 낙태와 이민과 같은 것에 대해 미국 공화당원들과 더 가우며, 극우파와 보수 주류의 융합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들은 또한 이탈리아의 실제 파시스트 투표는 여전히 MSI가 항상 얻었던 이전의 4%이며 새로운 FdI 유권자들은 M5S와 동맹에서 유입된 임시적인 표라며 애써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멜로니의 도덕적, 경제적 영감은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Viktor Orbán)으로,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헝가리의 반대파를 무너뜨리고 대중적 합의를 무기화하여 정당성을 확보했다. 그는 일시적인 안정감을 제공했지만 헝가리인들은 경제적 불안과 무엇보다도 그들의 권리를 잃는 형태로 그것에 많은 대가를 치렀다.
유럽 의회는 이달 초 헝가리를 더 이상 완전한 민주주의로 간주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선거는 치러지지만, 유럽의 규범과 민주적 기준은 헝가리가 이제 '선거 독재'가 될 정도로 체계적으로 무시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동맹과 FdI는 그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멜로니는 국가 주권 존중, 자연 가족 보호, 기독교 정체성 및 사회적 시장 경제의 이름으로 유럽 강경 우파를 강화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데 오르반 및 그의 동맹자들과 긴밀히 협력한다는 비밀을 결코 숨기지 않았다.
두 사람은 SNS에 친근한 셀카로 만남을 광고했다. 결국, 그들은 낙태, 성소수자 권리 및 이주에 대한 같은 사회적으로 보수적인 찬송가를 부른다. 그들은 유럽 법에 의해 보장된 개인의 권리가 아니라 주권적 권위주의에 기반을 둔 사회라는 공동의 목표를 공유한다.
멜로니가 파시스트는 아니라는 주장 불구하고 그 연결고리를 완전히 무시하기에는 너무 견고하다. 그녀는 이번 선거 유세에서 "디오, 파트리아, 파밀리아"는 파시스트 슬로건이 아니라 아름다운 사랑의 선언이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원래 인용문이 이탈리아 혁명가 주세페 마치니의 것이라고 반박했지만 파시스트 정권 시절, 마을 벽, 사무실 입구에 이 문구가 칠해져 있고 교과서에 인쇄되어 있다는 것을 전율하며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녀의 반박은 헛소리에 불과하다. FdI는 "동질적이고, 스포츠적이며, 젊고, 건강한 사회"를 호소하며 청소년의 일탈은 스포츠 참여와 건강한 육체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무솔리니의 파시즘의 주장과 매우 유사하다. 또한 멜로니와 FdI는 이민자들이 토착 유럽인들을 대체한다는 극우의 "거대 대체"(Great Replacement) 음모론에 호소하며 반유럽 반난민 정책을 외치고 있다. 멜로니의 위험성은 공공연한 파시즘의 추종이 아니라 모호함으로 그 위험성을 가리는 것이다. 선거 운동 기간 동안 그녀는 민주적이고 자유주의-보수주의 노선을 홍보했다. 그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하고 나토와 키이우에 대한 군사 원조를 지지했다. 그러나 그녀는 2014년 크림반도 합병 이후 러시아에 대한 EU의 제재에 반대했다. 그리고 그녀의 2021년 책 '나는 조르자이다'(I Am Georgia)에서 푸틴의 러시아가 "유럽의 가치와 기독교적 정체성을 수호한다"라고 썼다.
멜로니가 이끄는 정부는 아마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수십 년간의 경제 침체와 현재 생활비 위기로 인한 급격한 인구 감소 속에서 GDP의 135%에 달하는 부채를 가진 경제를 물려받을 것이다.
2000년대 후반 베를루스코니 밑에서 일했던 몇몇 노장들을 제외하면, 그녀의 정당은 국가 정부 경험이 없다. EU는 예의 주시하고 있으며 멜로니는 유럽에 동맹국이 거의 없다. 그리고 살비니는 특히 2024년 유럽 선거를 앞두고 이탈리아 우파의 '원조'로서 자신의 자리를 되찾을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따라서 그녀가 서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비록 빈약할지라도 이탈리아의 민주주의 체제를 약화시킬 시간이나 정치적 자본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메로니의 실패에 대한 이러한 전망은 나무나 나이브하다. 세계의 많은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좌파가 신뢰할 수 있는 비전이나 전략을 제공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극우파가 이탈리아에서 성공할 수 있다. 좌파는 사람들에게 우파에 반대표를 던지라고 요구하지만 정치적 비전이나 경제적 대안이 부족하다. 좌파는 의사소통을 할 때 엘리트주의적으로 들리는 반면, 우파는 키워드, 슬로건, 개념을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단순화했으며, 특히 폭력과 테러리즘 이탈리아인들을 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중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멜로니가 망명 신청자에 의해 자행된 것으로 알려진 강간 영상을 트윗하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멜로니는 베를루스코니의 정치적 거짓말을 되풀이하고 있으며 완전한 거짓말일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믿을 것이라고 말하는 포퓰리즘 플레이북에 가장 가깝기 때문에 위험하다. 이탈리아의 극우파는 이미 미국 공화당의 우경화와 르펜이 지배하는 프랑스 우파, 급진적 민족주의에 점점 가까워지는 스페인 우파, 스웨덴 제2당이 된 스웨덴 민주당 그리고 독일 우파의 징후이자 선구이며 모범사례였다. 이탈리아는 늘 반혁명의 실험실이었기에 오늘 이탈리아의 멜로니와 이탈리아 형제들의 성공은 내일의 유럽을 비추는 거울이 될 위험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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