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대북제재가 계속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의 뿌리는 물론 1950년 한국전쟁이다. 그러나 비교적 최근의 직접적인 뿌리는 1980년대 중반, 북한의 핵확산방지조약(Nonproliferation Treaty, NPT) 가입 이후 계속된 북한의 핵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북한의 대립 그리고 북한과 한국의 긴장이다. 앞으로 1985년부터 2022년까지 북한의 핵문제를 둘러싼 타임라인을 몇 차례에 걸쳐 게재할 생각이다. 여기에 제시된 타임라인은 군축협회 (Arms Control Association)와 미국외교협회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그리고 해외 기사들 중 북한 핵 및 미사일과 관련된 것들을 참조했다. 따라서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비교적 객관적으로 보이는 타임라인일지라도 미국의 관점이 반영되어 있을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 타임라인은 모두 다음과 같은 9개의 시기로 나뉜다. 1) 1985년의 북한의 NPT 가입부터 김대중 대통령 당선 직전인 1997년까지의 첫 번째 타임라인, 2) 1998년 햇볕정책부터 2000년 악의 축까지의 타임라인, 3) 2003년 6자 회담 1차부터 2007년 방코 델타 아시아 계정에 동결된 북한 자금 2,500만 달러 동결 해제, 영변 핵시설 폐쇄 개시, 노무현-김정일의 남북 정상회담, 4)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에서부터 2009년 북한의 두 번째 핵실험, 2010년 천안함 침몰과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긴장 고조 국면 시기, 5) 2011년 김정일 사망과 김정은의 계승, 그리고 2012년 북한의 잠정적 핵시설 가동 중단 선언과 대북 식량지원 재개 및 북한의 미사일 실험에 따른 대북 제재 강화, 6) 2013년 북한의 핵실험과 유엔 제재 강화, 2014년 중단거리 미사일 발사, 2015년 잠수함 탄도미사일 시험, 그리고 2016년 북한의 4 번째 이자 가장 커다란 폭발력의 핵실험 및 사드의 한국 배치 등 첨예화되는 한반도 긴장 고조 과정, 7) 2017년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따른 대북 제재강화와 한반도 긴장 극대화 국면 그리고 2018년 4.27 문재인-김정은 남북정상회담과 6.12 싱가포르 김정은-트럼프 북-미 정상회담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의 9월 평양방문 등의 극적인 한반도 긴장완화 국면, 8) 2019년 제2차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의 성과 없는 결렬과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 그리고 2020년 남북대화의 단절과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 경색과정, 9)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집중하고 일본이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북한의 안보 위협을 자국의 방위력 배가의 근거로 제기하는 와중에 북한이 급속도로 미사일 발사와 대륙간 탄도미사일 시험을 강화하는 2021년부터 대북 유화 대신 대북 강경책을 채택한 윤석열 정부의 등장 그리고 최근 한미일 합동 군사 훈련에 대한 경고로서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시위한 2023년 2월까지의 새로운 군사적 긴장고조 국면.
북한핵과 미사일을 둘러싼 이 타임라인은 긴장완화와 긴장고조 사이를 오가는 매우 복잡하고 변덕스러운 과정이었다. 현재는 러시아, 중국, 일본, 미국, 북한, 한국 등 한반도를 둘러싼 남북한 당사자와 주변 4개국 모두 외교대화보다는 대립, 군사적 무장 강화 노선을 채택한 그 어느 때보다도 무력충돌의 가능성이 높아진 심각한 국면이다. 향후 한반도가 어디로 향하게 될 것인지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둘러싼 이 장기적인 타임라인 속에서 패턴과 교훈을 얻는 것이 필수적이다.
2011년
2011년 2월 16일: 상원 증언에서 제임스 클래퍼( James Clapper) 국가정보국장은 북한이 2010년 11월에 처음 공개된 우라늄 농축 시설을 넘어 추가 신고되지 않은 우라늄 농축 시설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2011년 2월 28일: 미군과 한국군이 대규모 연합 군사훈련 실시한다. 북한은 이번 훈련에 대한 대응으로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하고 있는데, 미국 관리들은 이 훈련이 최근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기 훨씬 전에 계획되었다고 주장한다.
2011년 3월 15일: 북한은 방문 중인 러시아 관리에게 6자 회담에 복귀할 용의가 있으며 우라늄 농축 활동에 대해 이야기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다.
2011년 3월 17일: 남한은 다자 회담이 다시 시작되기 전에 북한의 비핵화 약속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한 조치를 요구하면서 최근의 북한의 제안을 거부한다.
2011년 4월 18일: 중국은 남북 양자회담을 시작으로 미국과 북한의 유사회담, 그리고 마지막으로 6자 회담의 재개를 포함한 3단계 다자 회담의 활성화를 제안한다.
2011년 4월 18일: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북한으로부터의 상품, 서비스, 그리고 기술의 수입 금지를 재확인하는 행정 명령을 공고한다.
2011년 4월 26일: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협상 활성화를 위해 다른 3명의 전직 국가 원수와 함께 평양을 방문한다.
2011년 5월 9일: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이 핵 포기를 약속하는 조건으로 서울에서 열리는 2012 핵안보 정상회의에 북한을 초청할 가능성을 소개한다. 북한 대변인은 비핵화는 침략의 길을 열기 위한 남한의 시도라고 말하며 전제 조건을 거부한다.
2011년 6월 13일: 미국 군함이 북한 화물선 한 척을 중국 앞바다로 퇴각시킨다. 이 선박은 버마로 미사일 부품을 운반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북한 선박은 검문을 거부했지만, 미국 구축함의 미행으로 인해 자발적으로 항로를 바꾸었다.
2011년 7월 22일: 위성락 6자회담 한국 특사는 발리에서 열린 동남아시아 국가연합 회의와 별도로 북한 외무성 리용호 특사를 만난다.
2011년 7월 24일: 일본과 한국, 미국의 외무장관들은 남북회담에서 있었던 논의를 환영하며 "앞으로 지속 가능한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한다.
2011년 7월 28일-29일: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북핵 다자간 회담을 재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뉴욕에서 만난다. 이는 거의 2년 만의 북미 고위급 회담으로, 미국은 북한이 협상 과정에서 건설적인 파트너가 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면 협상을 재개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8월 1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북한 외무성 성명은 미국과의 다자간 회담을 "조기" 재개하려는 북한의 관심을 나타낸다.
2011년 8월 24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Dmitry Medvedev)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회담 후, 평양은 회담이 재개되는 상황에서 핵과 미사일의 생산과 실험의 모라토리엄을 준수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다.
2011년 9월 24일: 최영림 북한 총리는 중국 외교 순방에서 한 달 전 김정일이 러시아에 밝힌 입장을 되풀이하면서, 북한은 6자 회담의 맥락에서 핵실험 중단을 고려할 용의가 있다고 중국 고위 관리들에게 말한다.
2011년 10월 24일부터 25일까지: 미국과 북한은 제네바에서 6자 회담 재개를 위한 절차를 논의한다. 글린 데이비스(Glyn Davies) 대사는 스티븐 보즈워스 대사의 후임으로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맡게 된다.
2011년 12월 17일: 17년간 집권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한다. 그의 뒤를 약 28세로 추정되는 막내 아들 김정은이 잇는다.
2011년 12월 29일: 김정은이 북한의 새 지도자로 공식 선언된다.
2012년
2012년 2월 29일: 베이징에서 열린 미국과 북한의 2월 23~24일 회담에 이어, 양국은 별도의 성명을 통해 북한의 영변 우라늄 농축공장 가동 중단, IAEA 사찰단 초청, 핵 및 장거리 미사일 시험에 대한 모라토리엄 조치 이행에 관한 북한의 합의를 발표한다. 미국은 엄격한 감시 아래 북한에 24만 톤의 식량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한다.
2012년 3월 16일: 북한은 김일성의 100주년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4월 중순에 인공위성을 발사할 것이라고 발표한다. 미국은 이번 발사가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2월 29일 합의를 위반하는 것이며 식량 원조와 다른 약속의 감시와 관련하여 북한의 신뢰성을 훼손할 것이라고 말한다.
2012년 3월 29일: 피터 라보이(Peter Lavoy) 아태부 차관보 대행은 하원 군사위원회에서 미국이 북한의 위성 발사 발표로 인해 2월 29일 합의에 따라 북한에 식량 지원을 전달하기 위한 준비를 중단했다고 말한다.
2012년 4월 13일: 북한은 남서쪽 구석에 있는 서해위성발사장에서 3단 액체연료 로켓 은하 3호를 이용하여 기상위성을 발사하려고 시도한다. 첫 번째 단계에서, 약 90초 후에, 로켓은 의도된 경로에서 약간 동쪽으로 방향을 바꾼 후에 부서진다. 첫 번째 단계는 노동 중거리 탄도미사일 엔진 4개로 구성된 클러스터로 구성된 것으로 보였다. BM-25 무수단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보이는 2단계는 점화되지 않았다. 로켓 발사 실패의 원인은 불분명하다. 분석가들은 두 번째 단계에서 구조적 결함이 있었거나 첫 번째 단계의 엔진 4개가 모두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북한은 북한 인민이 2009년 4월 발사 이후 인공위성이 성공적으로 궤도에 진입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하지 않았던 발사 실패를 인정한다. 미국이 대북 식량지원 계획을 공식 중단한다.
2012년 4월 15일: 북한은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 기념 퍼레이드에서 6개의 도로 이동식 ICBM인 KN-08을 열병식에서 공개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미지 분석에 근거해 이 미사일들이 설계상의 심각한 이상을 드러내는 모형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2012년 4월 16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가 탄도미사일 개발의 적용 가능성 때문에 안보리 결의 1718호(2006년)와 1874호(2009년)를 위반했다고 비난하고, 북한에 이를 준수할 것을 촉구했으며 그렇지 않을 시 제재 강화에 직면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2012년 4월 19일: 리언 패네타(Leon Panetta) 미 국방장관은 하원 군사위원회에서 북한이 미사일 개발에 대해 중국으로부터 "어느 정도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지만, 제공되는 지원의 규모는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2012년 12월 1일: 북한은 12월 10일에서 22일 사이에 장거리 로켓을 사용하여 또 다른 위성 발사를 시도할 것이라고 발표한다. 은하 3호라고도 불리는 이 로켓은 서해 위성발사장에서 발사되며 2012년 4월 13일 발사 때와 같은 궤적을 따를 것이다. 이에 미 국무부는 위성 발사를 이 지역의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는 '고도의 도발 행위'로 볼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한다.
2012년 12월 9일: 북한은 서해에서 조립한 로켓의 1단 결함이 발견되어 12월 29일까지 발사 기간을 연장한다고 발표한다.
2012년 12월 12일: 북한이 은하 3호를 발사한다. 발사 직후 조선중앙통신은 발사가 성공했고 위성은 궤도에 진입했다고 보도한다. 일본과 한국 관리들은 발사를 확인하고 북한이 1단계와 2단계로 지시한 지역에 파편이 튀었다고 보도한다. 북미 항공우주 방위사령부(North American Aerospace Defense Command, NORAD)도 발사를 확인하고 물체가 궤도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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