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과 사물, 인물에 제대로 된 이름을 주어야 한다는 공자의 정명(正名)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널리 알려진 국가나 지명을 바꾸는 일은 드물지 않다. 2차 대전 이후 해방된 식민지들은 자신들의 나라명에 남아있는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과감히 기존 명칭을 폐기하고 새로운 명칭을 채택했다. 짐바브웨는 그 대표적 예로, 영국 식민주의자 세실 로즈(Cecil Rhodes)의 이름을 딴 로디지아(Rhodesia)를 버리고 짐바브웨라는 이름을 채택했다. 1980년대 말 이후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지면서 새로운 정권이 등장하자 이들은 기존의 사회주의의 이념적 색채가 묻어 있는 거리명과 지명을 과감히 바꾸었다. 레닌의 이름을 딴 레닌그라드가 소련의 붕괴 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바뀐 것은 그 수많은 사례의 단편에 불과하다. 2022년 6월 터키는 자신을 터키 대신 튀르키예로 불러줄 것을 세계에 요구했으며,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 이후 자신의 수도를 러시아식 발음 키이프 대신 키이우로 불러 줄 것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강화했다. 이러한 이름의 변경은 단지 취향이나 문화적 유산의 보존과는 거리가 멀며 국내 혹은 세계 정치권력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지금 미얀마로 불리는 버마의 국명 변경은 식민지 유산, 국내 부족 간 갈등, 엘리트와 일반 대중 간의 간극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 글은 플로리다 국제 대학 언어학 부교수 Phillip M. Carter의 The Conversation 2월 16일 자 기고 Why does Turkey want other countries to start spelling its name ‘Türkiye’?의 번역으로 한 나라가 이름을 바꾸는 동기와 그 배경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왜 터키는 다른 나라들이 자국의 명칭을 '튀르키예'라고 표기하기를 원하는가?
Phillip M. Carter
터키의 최근 철자 변화는 더 진정한 터키적인 것이 되는 것에 대한 것인가? 아니면 거기에는 더 많은 이야기가 있는 것인가?
2022년 6월, 유엔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gan) 터키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영어권에서 터키(Turkey)로 알려진 나라의 철자를 튀르키예(Turkey)로 바꾸기로 합의했다. 2023년 1월 미 국무부도 요청한 변경 사항을 서면 문서에 채택하기로 합의했다.
많은 뉴스 매체들은 터키가 이름을 바꿨다고 보도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터키가 오스만 제국의 후계 국가가 된 1923년 이후 터키인들은 그들의 나라를 튀르키예라고 불러왔다. 이러한 변화는 로디지아(Rhodesia)가 1980년에 짐바브웨(Zimbabwe)가 된 것보다는 오히려 영어로 저머니(Germany)로 알려진 나라가 세계가 독일인들이 말하는 방식인 도이칠란트(Deutschland)로 말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일어날 것과 더 비슷하다.
그러나 에르도안의 요청과 이를 따르기로 한 유엔의 결정은 왜 나라들이 그들의 이름을 바꾸려고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버마에서 미얀마까지
줄리 테텔 안드레센(Julie Tetel Andresen)과 내가 '세계의 언어: 역사, 문화, 정치가 언어를 어떻게 형성하는가'(Languages in the World: How History, Culture, and Politics Shape Language)라는 책에서 설명했듯이, 답은 거의 항상 정치와 권력과 관련이 있다. 이것은 튀르키예의 경우처럼 국내 정치에서 영감을 받거나 지역 또는 글로벌 권력 역학의 변화를 나타낼 수 있다.
1989년 공식적으로 미얀마(Myanmar)로 이름을 바꾼 버마(Burma)의 사례는 이 두 가지 역학을 모두 보여준다.
1824년부터 1948년까지 버마는 영국의 지배를 받았고, 영국은 목재, 석유, 광물 생산을 통제하기 위해 내륙에 식민지를 세웠다. 비옥한 이라와디 삼각주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이후의 정착지는 훨씬 더 수익성 있는 쌀 생산을 통제했다.
영국 행정관들은 식민지 전체에서 그랬던 것처럼 현지의 다양한 인종 그룹과의 관계에서 편애를 하며 영어를 배우고 기독교로 개종하려는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었다. 영국 식민지 버마에서 이 역할을 한 사람은 카렌족(Karens, 파오어와 카레니어를 포함한 여러 관련 언어를 구사하는 큰 소수 민족 집단)이었다.
100년 동안의 영국 통치 기간 동안, 카렌족은 매우 강력해진 국가 정체성을 배양했고, 그들은 영국의 지원으로 독립 국가의 형성을 요구했다. 카렌족과 버마족(다수 인종 그룹) 사이의 분열은 너무나 극명하게 커져 1942년 제2차 세계 대전 중 일본이 영국령 버마를 점령했을 때, 카렌족은 영국 편을 들었고, 버마족은 일본 편을 들었다. 1948년 영국이 갑자기 버마에서 철수했을 때 상황은 악화되었고, 버마족들은 빠르게 권력 공백을 메웠다.
1989년 버마 군사 독재 정권은 영국이 버마 도시들에 부여한 철자를 대체하거나 수정하기 위해 언어 위원회를 설립했다. 그들은 수도를 랑군(Rangoon)에서 양곤(Yangon)으로 바꾸었다. 버마가 미얀마가 되었다는 것은 세상을 놀라게 했다.
버마어에서는 기록부의 차이나 특정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언어의 특정 스타일은 일반적이다. 일상 회화 구어체에서, 이 나라는 바마(Bama)로 알려져 있으며 영국령 버마가 유래했다. 공식적으로 쓰여진 문어체로, 이 나라는 미얀마로 알려져 있다.
버마에서 미얀마로의 이동은 한편으로는 영국령 버마와 그 식민지 유산과의 거리를 나타내기 위한 탈식민지 세력의 움직임을 나타냈다. 동시에, 그 이름의 변화는 국내 민족 정치로 이어졌다. 바마는 공식 기록부에 접근할 수 없는 많은 민족 언어학적 소수 집단을 포함하여, 비엘리트들 사이에서 선호된다. 그러나 버마 엘리트들은 미얀마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 움직임은 공식적인 문어체 스타일을 사용할 가능성이 더 높은 권력과 권위의 위치에 있는 버마 엘리트들이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외래지명 삭제
모든 이름 변경이 그렇게 복잡한 것은 아니다.
수백 년 동안, 현재 영어로 타일랜드(Thailand)로 알려진 나라는 16세기 포르투갈 식민지 개척자들이 사용하기 시작한 중국어 기원으로 보이는 단어인 샴(Siam)으로 불렸다.
언어학자들은 샴과 같이 명명된 그룹과 특별한 관련이 없는 외부인들이 적용한 이름들을 외래지명(exonym)이라고 부른다. 1939년 태국이 입헌군주제를 선포했을 때, 이 나라는 단순히 타일랜드라는 지역 용어의 변형을 사용하여 자신의 나라를 지칭할 것을 요청했다.
외래지명의 정정은 탈식민지 아프리카에서 흔한 일이었다. 반투어의 포르투갈어 변형인 자이르(Zaire)에서 콩고 민주 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the Congo)으로 바뀐 것과 영국 식민주의자 세실 로즈(Cecil Rhodes)의 이름을 딴 로디지아(Rhodesia)에서 짐바브웨(Zimbabwe)로 바뀐 것은 두 가지 예에 불과하다.
에르도안의 요청에 동기를 부여한 것이 무엇인지는 불분명한데, 정부는 튀르키예가 영어 사용자들 사이에서 새(칠면조를 말하는 것 - 역자 주)와의 혼동을 피한다고 주장한다. 이상하게도, 터키는 그 나라와 그 새와 연관성이 있다. 16세기에 영어 사용자들은 아즈텍 사람들이 길들여온 칠면조와 아프리카에서 터키를 거쳐 유럽으로 수입된 새인 뿔닭(guinea fowl) 사이의 유사성을 발견했다.
그러나 일부 관측통들은 터키어 기원의 단어를 제시하는 것이 에르도안의 민족주의 브랜드에 완벽하게 들어맞으며 취약한 경제와 정치적 혼란으로부터 주의를 돌릴 수 있다고 추측한다.
지금까지 35,000명 이상의 터키인들을 죽인 파괴적인 지진의 여파로 언어 정치가 어떻게 작동할지는 누구도 추측할 수 없다.
'해외 시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포그래픽] 세계 디지털 권력의 지정학: 광케이블, 데이터 센터, 위성, 슈퍼 컴퓨터, 반도체를 장악하고 있는 주요 국가 (0) | 2023.03.01 |
---|---|
순수 아리안을 생산하기 위한 나치 유전자 프로젝트의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인간교배실험장 레벤스보른의 생존자 아이들 (0) | 2023.02.26 |
중국 공공 지식인들의 논쟁: 세계에서 중국의 위치와 그 역할에 대한 물밑 논쟁 (0) | 2023.02.21 |
'지옥'에서 만들어지는 아이폰: '아이폰 도시' 중국 정저우 폭스콘 공장의 열악한 노동조건 (0) | 2023.02.20 |
2차 대전 이후 최대 변화를 예고하는 일본의 새로운 군사정책: 전범 국가의 전수방위 폐기 선언 (0) | 2023.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