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해방과 동시에 남북 각각에 미소 군정 체제가 성립하면서 분단의 기운은 싹트기 시작했다. 1948년 남북한이 각각 독자 정부를 수립하면서 분단은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1950년~1953년 한국 전쟁은 분단을 고착된 구조로 정착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남북한은 각기 자신만의 독자적 체제를 구축·발전시킨다. 같은 유전자와 언어구조, 문화를 가졌지만 근 80년간의 분단 동안 남과 북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어느 체제가 더 우위에 있는가 혹은 누가 체제경쟁에서 이겼는가 혹은 이기고 있느냐는 분단시대와 분단체제의 담론으로는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를 기대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이 분단의 담론은 상대를 이해하기보다는 자신을 상대에게 강요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를 아는 과정은 분단의 극복 아니 최소한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로 나가기 위한 첫걸음이다. 이 시리즌 근 80년의 분단과정에서 남과 북이 어떤 변화를 겪었는가를 비교하고자 한다. 이 비교는 이해를 위한 것이며, 남북한의 차이는 우위나 열위로 설명되기보다는 다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여기에 제시된 남북한 비교 자료는 남북한이 유엔이나 혹은 관련 국제기구에 제공한 공식 통계에 기초한다. 이 글에서는 다른 특별한 사유가 있지 않은 한 남북을 통칭할 때는 남북한, 남북 각각을 칭할 때는 한국과 북한, 혹은 South Korea와 North Korea로, 그리고 분단 이전의 지역을 표기할 때는 남한과 북한으로 표기한다. |
기존의 남북한 키 비교 연구들의 문제점: 일반화할 수 없는 탈북자 상대 연구조사의 일반화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공화당 상원의원 존 메케인은 선거 토론회에서 북한을 "억압적이고 잔인한 정권"이며, 북한에서의 삶을 포로수용소에 비교하면서 북한 주민들이 한국 주민들보다 3인치(7.62cm)가 작다는 통계를 인용했다. 영국 신문 인디펜던트 역시 2012년 기사에서 출처를 명시하지 않은 채 북한 인구의 키가 한국보다 3인치 작다고 적고 있다. 이들이 어떤 통계를 인용한 것인지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와 유사한 수치를 제시한 연구들은 존재한다.
우선 《한국영양학회지》에 2007년 33(5)에 게재된 장남수와 황지윤의 '식량난 전후 북한이탈주민의 건강영양상태 비교'는 20세 이상의 탈북 남성 109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1995년 한국 남성 평균 키 172cm와 비교할 때 북한 남성들의 키가 3.7cm~4.7cm(1.45~1.85인치) 정도 작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이 연구는 샘플 수가 너무 적어 일반화할 수 없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며, 3인치에 한참 모자란다. 백순영(Pak, Sunyoung)의 2004년 Economics & Human Biology에 게재된 ''남북한의 생물학적 생활 수준'(The biological standard of living in the two Koreas)은 1999년~2003년 사이에 한국에 입국한 2,384명의 성인 탈북자와 283명의 아동 및 청소년 탈북자를 상대로 한 연구는 그 조사대상의 규모에서 장남수와 황지윤의 연구보다 광범위하다. 이 연구에 따르면 연령별로 남북한 주민 간에 신장 차이가 있으며, 성인 그룹 중 가장 젊은 20세~21세 탈북 남성과 여성은 한국의 또래 집단보다 각각 5.9cm(2.3인치)와 6.6cm(2.6인치)가 작았다. 백순영의 연구는 북한의 신장과 관련된 연구나 기사에서 종종 인용되고 3인치에 비교적 근접하기 때문에 매케인 인용의 근거가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백순영의 연구대상 대부분은 함경북도 출신, 90%가 중등교육만을 수료하여 자료 자체의 편향이 심하여 일반화의 근거가 될 수 없다. 학문적 접근과 별도로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가 2005년~2008년까지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 8,214명(19세 이상 성인 6967명, 18세 이하 1257명)을 대상으로한 조사에 따르면 성인 탈북자 남성의 경우 한국 성인 남성 평균 신장보다 8.6cm(3.38인치), 여성은 6.3cm(2.48인치)가 작았다. 이 조사는 데이터의 규모가 가장 크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치상으로 3인치에 가깝다. 하지만 '탈북'이란 현상이 1990년대 중반 북한의 대홍수와 기아 사태 이후 본격적으로 대두되었고, 그들 중 대부분은 영양과 건강 상태가 좋지 않고, 북한 사회의 주변에 위치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탈북자들을 상대로 한 조사로 북한 인구의 평균 키값을 구하고 일반화하는 것 자체가 비과학적인 시도이다.
북한 인구의 키, 학문과 정치 욕망의 대상이자 결탁의 산물
탈북자를 대상으로 한 이러한 연구나 조사와 달리 비교적 객관적인 데이터로 해외와 국내 언론에 자주 인용되는 것이 2009년 《Journal of Biosocial Science》에 게재된 다니엘 슈베캔디에크의 '남북한 사이의 신장과 몸무게 차이'(Height and Weight Differences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이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2002년 UN이 북한의 7세 미만 남아 2,880명과 여아 3,112명을 대상으로 한 데이터에 기초해 북한 7세 남아와 여아가 한국보다 각각 12.7cm와 12.4cm가 작다. 그는 같은 유전자를 가진 남북한의 키 차이는 사회경제적 요인, 특히 GDP와 같은 경제적 요인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슈베캔디에크 연구의 가장 큰 문제는 그가 강조한 사회경제적 요인을 간과한 채 특정 시점에만 유효한 데이터를 일반화의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2년 UN 조사에서 7세는 1995년에 태어난 아동이며, UN의 데이터 자체는 매우 특수한 국면의 데이터로 결코 일반화될 수 없는 자료이다. 북한은 1995년 이후 홍수로 인한 극심한 기아를 겪었으며, 영양실조로 인한 사망이 그 이후 몇 년 동안 1950년 이후 가장 높았던 시점이다. 그의 연구가 일반화의 근거가 되기 위해서는 1990년대 중반 이전과 2010년대 이후(1995년 이훌 출생자들의 성장이 완성되는 시점)에 대한 연구가 동반되어야 한다. 그의 글에는 UN 자료에 근거한 북한 성인 여성에 대한 조사가 함께 포함되어 있지만, 체중 분석만 있을 뿐 키에 대한 분석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누락되어 있다. 따라서 유전자가 아닌 GDP와 같은 사회경제적 요인이 키의 결정요인이라고 주장하기에는 그의 데이터가 처음부터 왜곡되어 있다.
북한의 키가 관심거리가 되는 이유는 크게 학문적인 욕망과 정치적 욕망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학문적으로 키에 대한 결정요인이 유전자인가 아니면 후천적인 사회경제적 요인인가는 오랜 논쟁과 관심이었다. 세계에서 평균신장이 가장 큰 네덜란드와 국민소득은 낮지만, 신장이 큰 에스토니아나 라트비아 등 동유럽 슬라브권은 키와 유전자의 상관성을 증명하는 사례로 인용되며, 반대로 이민(소위 후진국-->선진국)과 남북한의 키 차이는 사회경제적 요인의 중요성을 입증하는 사례로 인용된다. 같은 유전자를 지녔지만 다른 발전경로를 밟아온 남북한의 키 차이는 사회경제적 요인을 강조하는 진영의 강력한 증거가 된다. 따라서 이 입장에서는 남북한의 신장격차가 클수록 자신들의 이론 근거가 단단해지는 것이다.
정치적 욕망은 이러한 학문적 욕망에 편승한다. 이 연구자들의 논문 초록(abstract)은 대부분 자신 연구의 특정 부분, 예컨대 남북한 남녀와 여러 연령층의 비교 중 키 차이 가장 큰 부분을 담는다. 남북한 여성 키 차이가 3cm, 남성 키 차이가 5cm면 후자를 남북한의 키 차이로, 남북한 30~40대 키 차이가 5cm, 20대 키 차이가 7cm면 후자를 남북한 키 차이로 일반화해 초록에 적시한다. 언론 특히 북한에 비판적인 보수 언론들은 연구의 여러 결과물 중 부풀려진 그 부분을 확대하고, 예컨대 북한 주민의 키가 "조선시대 평균 키와 비슷한 수준"과 같은 과잉 일반화로 북한을 비난하는 근거로 사용한다.
북한의 키는 따라서 팩트로서 접근되기보다는 학문적 욕망과 정치적 욕망에 의해 동원되고 재단되어 왔다. 그렇다면 북한의 키는 실제로 한국과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과연 위의 연구가 사실이 아니라면 팩트는 무엇일까?
남북한 키 비교: 남북한 키 차이 1인치 내외 혹은 그 미만
남북한의 키와 관련된 비교적 최근의 믿을만한 통계자료는 NCD Risk Factor Collaboration에서 발표한 자료다. NCD Risk Factor Collaboration은 200개 국가 및 지역의 비전염성 질병 (NCD) 위험 요소에 대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전 세계의 보건 과학자 네트워크이며, 세계 보건기구(WHO)와 긴밀하게 협력관계에 있다.
아래 도표는 1896년 이후 남한과 1948년 이후 한국의 출생 연도별 평균 성인 키이다. 아래 도표의 연도는 출생연도이며, 그 연도에 표시된 키는 그 출생연도에 출생한 사람들이 성인, 만 18세가 된 해의 키이다. 아래 도표에서 1896년 남성의 키가 159.75cm라는 것은 1896년에 출생한 사람들이 만 18세가 된 1914년의 키이다. 1996년의 여성 키 162.34cm는 1996년에 출생한 여성이 만 18세가 되는 2014년의 키를 의미한다. 1896년 출생자부터 1996년 출생자까지 남성의 키는 15.17cm 성장했으며, 여성의 키는 약 20.17cm 성장했다.
북한의 경우 1896년 출생자부터 1996년 출생자까지 성인 남성의 평균 신장은 11.41cm, 여성은 9.85cm가 성장했다.
1996년 출생자를 기준으로 보면 한국의 성인 남성은 북한보다 약 2.93cm(1.15인치)가 크고 여성은 3.37cm(1.32인치)가 크다. 1924년 출생자까지 북한 성인 남성의 키는 163.77cm로 남한 성인 남성 163.74cm보다 컸다. 하지만 1925년 출생자부터는 남한과 한국 남성의 키가 더 컸다. 이미 1945년 출생자 북한 남성의 키는 165.93cm로 남한 남성의 167.33cm보다 약 2cm가 작았다. 북한 여성은 1946년 출생자가 155.43cm로 남한 여성의 155.36cm보다 컸으나 1947년부터 남한 여성의 키가 북한 여성보다 더 크기 시작했다. 1970년생의 경우 북한 여성은 157.25cm, 한국 여성은 159.71cm로 약 2cm의 차이가 발생했다. 남북한에는 신장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차이가 3인치라는 것은 과장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남과 북의 신장을 비교하면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인류의 키와 관련된 글에서도 다루었지만, 지난 한세기 동안 한국 남성과 여성의 키 성장은 세계적으로 거의 예외적인 속도였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1인당 GDP의 가파른 증가와 증가율 세계 1위에 오를 정도로 높은 육류소비는 한국 남녀의 높은 키 성장률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 남성 평균신장 15.7cm 증가는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증가율이다. 한국 여성의 평균신장 20cm 증가는 세계 1위이다. 아래 도표를 보면 남북한 성인 남녀의 출생연도에 따른 성별 키 비율이다. 1보다 큰 값은 남성 평균 키가 여성 평균보다 크다는 것을 의미하며, 세계평균은 107이다. 1896년 출생자와 1996년 출생자 북한 성인남녀의 키 비율은 108로 변화가 없다. 하지만 남한 성인남녀의 키 비율은 1896년에 출생한 남녀의 비율은 1.12였으나 1996년에 출생한 한국 남녀의 비율은 1.08로 그 차이가 -4% 줄어들었으며, 이는 같은 기간 전 세계 성인남녀 키 비율 격차 감소 폭 중 제일 큰 폭이다.
아울러 북한의 신장 증가 폭은 남성의 경우 전체 208개 국가/지역 중 45위로 결코 낮은 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국의 1인당 GDP 1/20에 불과한 1,781달러와 약 1천 칼로리나 낮은 식단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지금 정도의 키 성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비교적 안정적인 보건의료 시스템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최근 통계자료는 남북한 성인 간의 키 차이가 더 작음을 보여준다. 아래의 NCD Risk Factor Collaboration 자료를 보면 남북한 19세 남녀의 키 차이는 1cm에 불과하다. 그것도 1990년대 중반 식량난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북한 청년들의 신장이 한국보다 약간 컸으며, 식량 위기 이후 그 관계가 역전되면서 2019년 현재 북한 19세 남성의 신장은 174.69cm, 한국은 175.52cm 그리고 북한 여성은 161.22cm, 한국 여성은 163.23cm이다.
인간의 키는 부분적으로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고, 또한 부분적으로는 사회적 환경에 의해 좌우된다. 보수언론들이 북한의 키에 주목하는 이유는 키가 한 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키는 체중보다 사회적 지표 예컨대 소득수준, 유아사망률, 의료비 지출 데이터와 더 긴밀한 연관 관계가 있다. 그것이 바로 북한에 비판적인 보수언론이 남북한의 키 차이에 주목하는 이유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이 남북한의 키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으며, 그 차이 또한 완전히 1인당 GDP라는 요인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만약 그 설명대로라면 한국 주민의 신장은 북한 주민보다 훨씬 커야 한다. 분명 소득수준과 식단의 차이가 북한 인구의 키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어려운 상황에도 북한 인구의 키가 지속해서 성장하는 것은 소득수준과 영양의 차이를 상쇄하는 의료체제와 같은 다른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서 보았듯이 남북한의 키를 단지 팩트와 물리적 차이를 넘어 학문적 욕망과 정치적 욕망으로 지식-권력의 결탁으로 접근하려는 세력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 힘이 키를, 남북한의 키 차이를 끊임없이 자신들의 담론으로 재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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