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영화 40

영화 《울프워커스》, 3차원 에니메이션의 메마른 자본의 현실주의를 넘어선 2차원 카툰의 아름다운 저항 판타지

필자 주: 이 글은 영화의 줄거리와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무수한 맥락의 옷을 걸친 단순한 플롯 플롯이 단순하다고 해도 그 플롯을 둘러싼 맥락이 한 겹 일 수는 없다. 단순한 플롯은 때론 수많은 맥락의 겹을 뒤집어쓰고, 그 수많은 맥락의 겹은 보는 이의 관점과 그가 처한 시대와 공간의 맥락과 겹쳐져 작가가 배치한 이야기를 넘어서는 복수의 의미들을 확대 재생산한다. 영화 《울프 워커스》는 그런 작품이다. 영화 《울프워커스》는 아일랜드 킬케니 숲의 늑대 소탕 임무를 맡은 사냥꾼 아빠 빌 굿펠로우(Sean Bean 목소리)의 딸 로빈(Honor Kneafsey 목소리)이 우연히 울프워커(늑대인간) 소녀 메브(Eva Whittaker 목소리)와 친구가 되고, 똑같은 늑대인간이 되어 인간으로부터 늑대들을 지킨..

문화/영화 2021.04.26

영화 《어나더 라운드》, 모조(mojo)를 상실한 소시민들의 순응을 위한 저항기와 혈중알코올농도 체험기

필자 주: 이 글은 영화의 줄거리와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금기에 대한 금기, 일탈의 저항 대신 순응의 저항 모든 금기에 대한 금기는 저항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정체된 일상 속에서 위기에 빠진 중년 남성들이 술을 통해 일상 회복을 그린 영화 《어나더 라운드》(Another Round, 덴마크 원제는 Druk)는 금기를 금기하는 저항의 영화다. 하지만 그 저항은 일상의 회복을 위한 것이기에 일탈을 소망하기보다는 순응을 소망한다. 같은 학교의 역사 교사 마틴(Mads Mikkelsen 분), 체육 교사 토미(Thomas Bo Larsen 분), 음악 교사 피터(Lars Ranthe 분)는 심리 교사 니콜라이(Magnus Millang 분)의 4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다. 지겨운 일상 잡담이 오..

문화/영화 2021.04.22

영화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 밀실형 정치 스릴러와 현장형 역사 다큐의 조우

필자 주: 이 글은 영화의 줄거리와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알리-프레이저 '세기의 대결'과 추악한 FBI 코인텔프로(COINTELPRO)의 폭로 1971년 3월 8일 밤 10시 30 분,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세기의 대결'으로 불리는 알리와 프레이저의 WBC, WBA 통합 헤비급 매치 시작을 알리는 공이 울리자마자, 그로부터 수십 마일 떨어진 펜실베이니아 미디어의 FBI 사무실에 일군의 절도범들이 조심스레 문을 따고 들어간다. 실내침투조와 실외대기조를 합쳐 모두 8인조로 구성된 이 절도범들은 FBI 직원들이 권투경기를 지켜보는 동안 사무실에 있는 FBI 비밀문서를 몽땅 털어 달아난다. 이들은 다음 날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자신들을 "FBI 조사를 위한 시민위원회'라고 밝히며 FBI가 불법적으..

문화/영화 2021.04.14

영화 《사운드 오브 메탈》, 청점(聽點, point of hearing)을 통한 '정상'(normal)의 탈신화화와 재정의

필자 주: 이 글은 영화의 줄거리와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시점(視點, point of view)에서 청점(聽點, point of hearing)으로 아무것도 없는 검은 스크린 속에서 전자 기타의 무거운 금속성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조명이 켜지고, 그 조명 아래 주인공 루벤(Ruben, Riz Ahmed 분)이 드럼을 앞에 놓고 메탈 소리를 온몸으로 느끼며 영화 《사운드 오브 메탈》은 시작된다. 영화 《사운드 오브 메탈》은 드러머인 루벤이 청각장애인이 되어가는 과정, 아니 침묵과 공동체의 의미를 깨달음으로써 스스로 청각장애인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모든 영화에는 시점(視點, point of view, POV)이 있다. 글쓰기의 전지적 혹은 제한적, 1인칭 혹은 3인칭 시점처럼 영화는 공..

문화/영화 2021.04.10

영화 《더 파더》, 상실된 주체와 왜곡된 시공 그리고 껍데기만 남은 '아버지'

필자 주: 이 글은 영화에 대한 줄거리와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더 파더》, 잡을수록 미끄러지는 정체성 한 중년 여성이 바쁜 걸음으로 거리를 지나 한 건물 입구로 들어가 계단을 오른다. 그 바쁜 걸음 뒤로 헨리 퍼셀과 드라이든의 오페라 《킹 아서》 3막의 '당신은 어떤 권능을 가졌는가'(원제: What Power art thou이며, 흔히 Cold song이라 불림)가 흐른다. 당신은 어떤 권능을 가졌는가? / 바닥으로부터 나를 불러일으켜 세운 그대는 누구인가? / 마지못해 천천히 영원한 눈의 침상으로부터 당신은 보지 못하는가 내가 얼마나 굳어 있고( / 놀랍도록 늙었는지 / 가혹한 추위를 견디기에는 너무 부적합한지 나는 움직이는 것도 힘들고 / 숨을 들이켜는 것조차 어렵다 / 나는 움직이는 것도 ..

문화/영화 2021.04.06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 핑크빛 여성성(Femininity)의 복수극

필자 주: 이 글은 영화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성 복수극의 내러티브와 여성성에 기대 복수극의 내레이션 배우 에메랄드 펜넬(Emerald Fennell)의 감독 데뷔작 《프라미싱 영 우먼》(Promising Young Woman)은 꼭 30년 전에 발표된 《델마와 루이스》나, 2017년 《리벤지》와 같은 여성 복수의 내러티브를 공유한다. 그러나 그 내러티브를 이야기하는 방식으로서 내레이션은 완전히 다르다. 《델마와 루이스》는 가부장제로부터의 탈주를 그린 로드무비고, 《리벤지》는 강간범을 향해 질주하는 피 묻은 복수극이다. 무법을 상징하는 서부를 배경으로 하는 이들 영화에서 복수는 여성성 대신 피 묻은 남성성에 기댄다. 하지만 준법의 반듯한 교외(suburban)지역을 무대로 하는 《프라미싱 영 우..

문화/영화 2021.04.01

영화 《맹크》(Mank), 《시민 케인》 저자 발굴의 고고학

필자 주: 이 영화평에는 영화의 줄거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핀처 부자가 다시 불붙인 《시민 케인》(Citizen Kane)의 창세기 논쟁 데이비드 핀처(David Fincher) 감독은 그의 전작 《소셜 네트워크》(Social Network)에서 페이스북의 저자를 찾아 나섰던 것처럼 그의 2020년 영화 《맹크》(Mank)에서도 영화 《시민 케인》(Citizen Kane) 각본의 저자를 발굴하려 든다. 그러나 그는 영화 《맹크》에서 《시민 케인》의 각본을 누가 썼는지에 대한 케케묵은 창세기 논쟁의 결론이 마치 이미 내려진 것으로 내러티브를 전개한다.. 자신의 아버지 잭 핀처(Jack Fincher)의 대본에 기초한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 《맹크》는 허먼 J. 맹키위츠(Herman J. Mank..

문화/영화 2021.03.25

영화 노매드랜드(Nomadland), 원주민 유목민을 몰아낸 백인제국 유목민의 엘레지

필자 주: 이 글에는 영화 내용과 결말의 스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국(Empire)으로부터의 길, 위에서 아래로 기업에 의해 만들어진 제국, 엠파이어(Empire)는 불황과 함께 유령촌이 된다. 영화 노매드랜드(Nomadland)는 한때 번영을 누렸던 이 엠파이어 타운의 우편번호(ZIP)가 중단됐다(discontinued)는 자막과 함께 시작된다. 중단된 ZIP(Zone Improvement Plan), 엠파이어는 개선계획을 세울 필요조차 없는 타운이 되어버렸다. 남편만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니라 모두가 제국 엠파이어를 떠나버려 혼자가 된 주인공 펀(Fern, 프랜시스 맥도먼드 분)은 가진 것을 이전 동료들에게 나누어 주고 단출한 짐만 꾸려 흰색 밴에 몸을 싣고 길에 나선다. 클로이 자오(Chlo..

문화/영화 2021.03.22

메타 동화로서 영화 미나리, 그 상징과 의미들

필자 주: 이 포스팅은 영화 미나리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지 않지만 약간의 스토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메타 동화로서 영화 미나리 논밭에서 더이상 일할 수 없어 방구석으로 밀려난 할머니가 그 구석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들에게 잠자리에서 동화를 들려주는 일이다. 그래서 그 할머니들의 동화는 늘 아이들이 접할 수 없는 “옛날 옛적에”(Once upon a time)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그러나 영화 미나리의 할머니 순자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가 아니며, 손주의 말대로 “한국 냄새가 나는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다. 그래서 순자가 손주들에게 들려주는 동화는 “옛날 옛적에”란 동화로 시작하지 않는다. 대신 순자는 발터 벤야민이 꼽은 동화의 또 다른 공통점인 결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Ha..

문화/영화 2021.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