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시사/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

전쟁 속에서 사라진 러시아의 공론장: 정보허무주의와 사생활로 뒷걸음치는 모스크바 사람들

Zigzag 2022. 5. 2.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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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자 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석 달 째로 접어들면서 초기에 플래카드를 들고 모스크바 거리에 나와 전쟁을 반대했던 사람들을 이제는 거의 찾아볼 수없다. 국영매체에 대한 불신만큼이나 서구 언론에 대한 불신이 높은 모스크바에서 전쟁에 대한 정보를 그대로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비판 세력 탄압과 언론 재갈 물리기가 일상이 된 사회에서 러시아인들은 '전쟁'이란 말을 내뱉는 대신 푸틴의 '특수 군사 작전'(special military operation)에 익숙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부차의 학살과 민간인에 대한 러시아군의 살상 정보에도 그들은 국영 매체가 제공하는 정보를 자신들의 전쟁에 대한 일종의 강요된 무관심을 덮는 안심 담요(comfort blanket)로 사용하며 공적 목소리를 내는 대신 사생활로 후퇴하고 있다. 이 글은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작가 Eliot Rothwell의 영국의 진보매체 Tribune의 4월 28일 자 기고 Apathy in Moscow의 번역으로 러시아와 모스크바 사람들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무관심의 원인, 만연한 냉소주의와 공론장의 실종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모스크바에서의 무관심(Apathy)

우크라이나에 대한 잔혹한 전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러시아인은 거의 없지만, 수년간의 비정치화는 적극적인 반대 세력을 무너뜨려 현재 수도에 드리워진 정체(停滯) 감을 만들어냈다.

모스크바 거리에서는 푸쉬킨 광장 주변에 몇 개의 추가 경찰 장벽을 제외하고 전쟁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사진: Vitolda Klein / Unsplash

2월 24일,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은 블라디미르 푸틴이 우크라이나에 전면전을 일으켰다는 것을 거의 알지 못한 채 깨어났다. 또 다른 아침 일상의 시작을 알리는 경보음이 울리자, 그들은 몸을 뒤척이고, 전화기를 확인하거나, 아침 뉴스 프로그램으로 텔레비전을 바꾸었다. 이른 시간에 러시아 언론의 수많은 알림은 푸틴의 군대가 도네츠크(Donetsk)와 루한스크(Luhansk) 지방에서 처음으로 그다음에는 우크라이나 전역의 '핵심 군사 목표물'에 대해 '특수 군사 작전'(special military operation)을 시작했다는 푸틴의 발표로 그들의 주의를 환기했다. 가상사설망(VPN), 야당 성향의 텔레그램 채널 및 외국 뉴스 소스에 액세스 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전쟁'이라는 단어와 우크라이나인의 삶에 대한 파괴적인 영향에 직면했다.

전쟁의 처음 몇 주 동안 일부 러시아인은 '목소리'(voice)와 '출구'(exit) 전략*과 씨름했다. 러시아의 대도시 전역에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중앙 광장에 모여 '전쟁 반대'와 '후이 보이니에'(khui voine)', '엿 먹어라 전쟁'(fuck war)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전쟁 반대를 표명했다. 2월 24일 이후 반전 시위에서 수천 명이 체포되었으며, 다른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에 전쟁 이미지를 게시한 이유로 대학에서 쫓겨나거나 직장에서 해고되었다.

* 역자 주: 목소리와 출구 전략은 경제학자 앨버트 허쉬만(Albert O. Hirschman)이 1970년에 발표한 유명한 저작 'Exit, Voice, and Loyalty'에서 나온 개념이다. 이 저작은 어떤 조직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그 성원들은 보통 목소리(voice) 혹은 저항을 선택하거나 출구(exit) 혹은 이민이나 탈출을 선택한다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수십만 명의 러시아인들이 발틱 국가들, 코카서스, 두바이, 터키, 서부에 있는 안전한 피난처를 찾아 러시아 공항으로 그들의 소지품, 어린이, 그리고 애완동물들을 끌고 떠나기로 결정했다. 대부분의 외국 특파원과 지역 독립 언론인들도 떠났는데 그들의 작업은 '전쟁' 또는 '러시아 연방 군대의 신용을 훼손'하는 어떠한 것도 잠재적으로 15년 형을 언도할 수 있는 새로운 법률에 의해 마비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은 결코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집에 남아 있다. 지난 5년 동안 내가 가장 잘 살았던 모스크바의 거리에서는 푸쉬킨 광장 주변에 몇 개의 추가 경찰 장벽을 제외하면 전쟁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제재의 실질적인 효과는 아직 체감되지 않고 있다. 모스크바 중심부에 흩어져 있는 쇼핑센터에는 H&M, Zara, Ikea와 같은 일부 국제 체인점이 전쟁 발발 몇 주 만에 문을 닫았다. 그러나 러시아 영업 중단을 발표한 맥도널드는 여전히 도시 일부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동부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앞으로 몇 달 동안 배달이 계속될지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하지만 현재로서는 코카콜라가 슈퍼마켓과 모퉁이 상점에서 계속 판매되고 있다.

전쟁은 모스크바에서 실제적인 물질적으로 분명히 나타나지는 않지만 생각과 대화를 지배한다. 이제는 진부한 소련 시절의 식탁 토론과 달리, 오늘날의 모스크바인들은 술집과 식당에서 공개적으로 친구 및 지인들과 전쟁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 지역에서 단골들은 정규군은 전쟁을 '특수 군사 작전'이라고 비꼬며 "누가 거기 DNR**이 필요하냐. 우리는 이미 집에 DNR이 있다"와 같은 인기 있는 러시아 농담 형식을 따라 한다. '전쟁'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사람을 흐레노부하(khrenovukha)***의 의무 샷으로 처벌하는 것에 대한 냉소적인 이야기가 있었다.

** 역자 주: 우크라이나 동남부의 친 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미승인 국가 도네츠크 인민공화국(Donetskaya Narodnaya Respublika)의 약자
*** 역자 주: 흐레노부하는 서양 고추냉이 뿌리로 만든 쓴 맛이 나는 독한 보드카의 일종이다.

이러한 농담은 체념, 절망감에서 비롯된다. 모스크바의 많은 친구와 지인들은 전쟁을 지지하지 않지만 전쟁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낀다. 수십 년 동안 푸틴의 국정 프로젝트는 러시아 인구의 뿌리 깊은 무관심을 조장했다. 정치 활동이 정치적 변화로 이어지거나 시위와 체포가 크렘린 권력의 전당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믿는 러시아인은 거의 없다. 그에 대한 응답으로 러시아인은 내면으로 돌아서 자신, 가족, 개인 생활 등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 그들은 국가에 반대하는 삶을 추구하지 않고 국가를 무시하고 국가로부터 편안한 거리에서 삶을 구축한다.

일부 친구와 지인의 무관심은 농담 대신 일종의 정보 허무주의(information nihilism)로 발전했다. 그들은 러시아 국영 언론이 거짓말을 하고 왜곡한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어떠한 정보 출처의 진실성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그들은 거짓과 진실을 구분할 수 있는 도구 없이 정보와 허위 정보의 홍수와 싸우며 방황한다. 모스크바 지역에 다차(dacha, 주말농장과 같은 러시아의 시골 주택 - 역자 주)를 건설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BBC 러시아어 정기 구독자인 한 친구는 나에게 말했다. "나는 뉴스에서 그런 헛소리는 듣지 않아. 나는 우리의 뉴스가 완전히 쓰레기라는 것을 알지만, 너희들의 뉴스는 그렇지 않다는 걸 내가 어떻게 알지?"

다른 이들은 러시아 국영 언론의 거짓말을 안심 담요(comfort blanket, 안도감 혹은 안정을 위해 끌어안는 담요나 물건을 의미 - 역자 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어떤 전쟁에서든 자기 나라가 호전적이고 악의적인 행위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많은 러시아인들이 러시아인들이 문화적, 역사적, 가족적 유대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는 우크라이나에서 자신들의 군대가 잔학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러시아 국영 언론은 러시아인이 시선을 돌릴 수 있도록 하면서 이러한 어려움을 없앨 수 있도록 돕는다.

나는 심지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것은 완전히 망한 것(polniy pizdets)'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서조차 '우리는 단지 군사 기반 시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라는 말을 전쟁 초기에 대화에서 몇 번 들었다. 키이우와 하르키우의 주거 지역이 파괴된 사진이 나왔을 때 같은 사람들은 그 건물이 '군사적 표적'이라고 나에게 장담했다. 세계가 부차(Bucha)에서의 잔혹행위를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아마도 임시적이겠지만 이미 모스크바를 떠나 트빌리시로 향했다. 관영 매체의 안심 담요를 두른 이들은 참여를 거부하며 조용해졌다. 공포감이 커질수록 안심 담요는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전쟁을 열렬히 지지하는 일부 러시아인도 있다. 몇 년 전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 볼가 강에 있는 한 마을의 친구의 친구가 전쟁이 시작된 지 몇 주 되지 않아 내가 아직 러시아에 있는지 묻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나에게 '군사적 해결은 불가피했다'라고, 러시아는 '러시아어를 말하는 사람들을 방어할 의무'가 있으며, '약물에 찌든 키이우의 파시스트들은 파괴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 자신의 차 뒷유리에 붙인 지금은 악명 높은 'Z'의 사진을 보냈다. 최근에 러시아 남부의 한 마을에서 모스크바로 이사한 또 다른 친구는 그녀가 인스타그램에 상당히 무미건조한 반전 메시지를 게시했지만 몇 초 후에 전화벨이 울렸다고 말했다. 전화의 반대편에서 그녀의 할아버지는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그녀를 질책했다. 그는 대략 '너는 너 자신의 사람들에게 달려들고 있다'로 번역되는 문구를 사용했다.

서방 소셜 미디어 평론가들이 열광적으로 집어 든 'Z' 캠페인은 아직 모스크바에서 실질적인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학교와 병원 같은 일부 기관들은 'Z' 캠페인에 대한 상징적인 지지 제스처를 조직했지만, 이것이 지시된 것인지, 자발적으로 행해진 것인지, 아니면 나중에 탄압을 피하기 위해 현재 표면적인 지지를 보이고 있는 국가 직원들의 사례인지는 불분명하다. 금융 분야에서 일하는 한 친구는 모스크바 북부에 있는 딸의 초등학교 수업을 위한 WhatsApp 채팅을 공유했는데 교사가 부모에게 'Z' 테마의 지원 프로그램을 조직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한 학부모는 '왜 우리 아이들과 이 학교를 정치화하는 겁니까?'라고 답했다. 그러자 교사는 해당 메시지에 대한 답장을 제한했다가 완전히 삭제했다.

전쟁의 첫 달이 지난 후에도 모스크바는 평온을 유지했다. 어떤 사람들은 러시아 밖에서 새로운 삶을 찾았고,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구축한 사생활로 더 강렬하게 뒷걸음질 쳤다. 러시아 국영 매체들은 전쟁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제공하는 한편, 불신자들과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 혼란스럽고 미묘한 상태는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몇 달 안에 제재의 부정적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경제적 재앙이 현실이 될 것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부패한 엘리트들은 그들이 약탈한 부를 자신들이 시작한 전쟁으로부터 절연물로 사용하는 동안, 평범한 러시아인들은 고통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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