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시사

오타와 비상사태 선언: 캐나다 트럭운전사들의 "자유 호송대"는 누구를 위한 자유인가?

Zigzag 2022. 2. 8.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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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주: 캐나다 수도 오타와 짐 왓슨(Jim Watson) 시장이 일주일 넘게 코로나19에 반대하는 트럭 운전사들의 항의에 대응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오타와의 중심은 차량과 텐트가 도로를 막고 마비되었다. 왓슨 시장은 시가 "이 전투에서 지고 있다"며 "완전히 통제 불능 상태"라고 말했다. '자유 호송대' 혹은 프리덤 컨보이(Freedom Convoy)라 불리는 이 시위는 지난달 모든 트럭 운전자가 미국-캐나다 국경을 건너기 위해 예방 접종을 받아야 한다는 새로운 규칙의 도입으로 촉발되었지만, 시위는 코로나 보건 정책에 대한 더 큰 도전으로 변했으며, 나치 깃발이 등장하는 등 극우적 시위의 성격까지 보이고 있다. 시위대는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을 희롱하고 폭행하는 사례도 늘고 있으며, 절도 사건도 급증하고 있다. 시위대는 코로나 19 방역 정책 제한 철폐와 저스틴 트뤼도(Justin Trudeau) 총리 정부에 반대로 요구를 확장하고 있다. 왓슨 시장은 시위대가 불꽃놀이를 하고 무분별한 파티 행각을 벌이고 있으며  도시를 되찾기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그것은 시위대에게 연료, 화장지, 음식과 같은 공급품을 가져와서 그들을 도우려는 사람들을 체포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밝혔다. 이들 시위대의 점령을 한편 Abacus Data의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캐나다인의 68%는 시위대와 "공통점이 거의 없다"라고 느꼈고 32%만이 트럭 운전사와 "공통점이 많았다"라고 응답했다. 이 글은 레이크헤드 대학(Lakehead University) 젠더, 섹슈얼리티 및 정체성 교육 교수 Gerald Walton의 Conversation 2월 6일 자 기사 Whose freedom is the ‘freedom convoy’ fighting for? Not everyone’s의 번역으로 프리덤 컨보이가 외치는 '자유'는 그들만의 자유,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이기적 자유라고 비판하고 있다.

누구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자유 호송대'인가? 만인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의회가 위치한 오타와의 팔러먼트 힐에서 코로나19 제한에 반대하는 집회를 하는 동안 한 참가자가 트럭 운전사에 대한 연방 백신 의무화에 항의하는 전국 횡단 컨보이를 위한 푯말을 들고 있다. 사진: THE CANADIAN PRESS/Justin Tang

소수의 트럭 운전사와 지지자들이 연방, 지방 및 준주 정부에서 부과한 코로나 19 프로토콜에 대해 집회를 하고 반대할 권리를 주장하는 소위 "자유 호송대"(freedom convoy, 이하 컨보이)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거기에는 문제없다.

문제는 그들이 말하지 않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에 있다.

자유라는 한 단어의 외침이 그 활동가의 주문이다. 누가 자유를 반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집회 기간 동안 일부에서 행사한 자유를 살펴보자.

●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무료 급식소로 가서 직원들을 위협하고 음식을 달라고 요구하기.
●    호송대 지지자들이 누리는 자유를 위해 싸운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전쟁 기념물들을 모욕하기.
●    프라이드 깃발을 게양한 사람들의 재산을 포함하여 공공장소에서 배변하기.
●    수많은 쇼핑몰과 상점들이 강제 폐쇄시켜 상점 주인과 직원들이 생계를 꾸릴 자유를 박탈하기.
●    집회 여파로 학교를 폐쇄하고, 부모에게는 직장에 갈 자유를, 아이들은 학교에 갈 자유를 부정하기.
●    인종 차별적이고 위협적인 발언을 하여 오타와 시내의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게 만들기.

소위 자유에 대해 성질을 부리면서, 대다수의 참가자들은 명백하게 대부분 후과가 있는 비난받아 마땅하고 잘 문서화된 이러한 행동들을 비난하거나 규탄하지 않았다.

그들이 요구하는 자유, 즉 생계를 위협하지 않으면서 코로나19 예방 접종을 거부할 권리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에게 막대한 위험을 초래하는 동시에 의료 시스템을 고갈시키고 다른 사람들을 위한 치료를 거부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누구의 자유인가?

하지만 다른 캐나다인들에게 "자유"는 어떤 의미일까?

원주민에게 자유에 대해 물어보라. 그들에게 식민지 개척자들에 의한 수세기 동안의 학대와 집단 학살에 대해 물어보라. 그들에게 기숙학교 공포와 학대의 유산에 대해 물어보라.* 60년대 떼어내기(60s scoop, 1960년대 원주민 아기들을 강제로 부모에게서 떼내어 강제 입양시켰던 만행 - 역자 주)의 참상과 아동복지에 대한 정부의 지속적인 통제에 대해 물어보라.

* 캐나다 진실과 화해위원회는 19세기 말, 20세기 원주민에게서 아이들을 빼앗아 기숙학교에 강제로 입학시켜 학대한 것을 '문화적 인종학살'(cultural genocied)로 규정했고, 최근 캐나다 정부는 이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최근에선 과거 기숙학교 터에서 수백구의 시신들이 발견되면서 이것이 단순히 문화적 인종학살이 아니라 실질적 인종학살임이 드러났다.

원주민들에게 그들이 매일 캐나다인들로부터 직면하고 있는 미묘하고 노골적인 인종차별에 대해 물어보라. 계속 번창하는 편협과 편견으로부터 그들의 자유는 어디에 있는가?

무슬림 캐나다인들에게 언어적, 신체적 폭행, 심지어 대량 살인으로 표현되는 이슬람 혐오증의 형태로 무지와 차별로부터의 자유에 대해 물어보십시오.

아시아계 캐나다인들에게 코로나 19의 원인으로 그들을 비난하는 다른 캐나다인들의 편협함과 인종차별에 대해 물어보라. 타인의 순전한 어리석음으로부터 그들의 자유는 어디에 있는가?

남성의 손에 의해 성차별, 성희롱, 성폭행, 성적 착취에 계속 직면하는 여성과 소녀들에게 물어보라. 젠더 기반 폭력으로부터의 자유는 어떤가?

트랜스 공포증을 정기적으로 직면해야 하는 트랜스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이민자, 장애인, 빈곤층, 과체중자, 영어 이외의 언어를 말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사회적 편견, 무지, 차별 및 증오의 일반적인 표적이 된 사람들 중 아무에게나 그들의 자유가 어떻게 다른 캐나다 사람들에 의해 끊임없이 짓밟히는지 물어보라.

만인의 자유는 아니다

자유는 중요하지만 많은 캐나다인들이 "프리덤 컨보이"에 의해 고려되지 않고 있다.

나는 1996년부터 사회적 배제와 편견에 대한 연구를 수행해 왔다. 내가 가르치는 수업에서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내 일이다. 나는 만인에게 평등하다고 여겨지는 나라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겪는 배제, 조롱, 차별의 경험을 주의 깊게 경청한다. 아마도 "프리덤 컨보이"도 마찬가지로 주의 깊게 들어야 할 것이다.

나는 또한 자유에 대해 직접 피부적으로 알고 있다. 퀴어 캐나다인으로서 나는 어떻게 동성애 공포증이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추악한 머리를 드는지 증명할 수 있다. 우리는 많은 이성애자인 시스젠더(cisgender, 생물학적 성과 성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 - 역자 주) 사람들이 당연시 여기는 방식으로 우리 자신이 되기 위한 자유를 가질 수 없다.

그 집회에서 타자를 위한 자유가 아닌 아닌 자신의 자유를 열렬히 옹호하는 사람들을 들을 때 나는 무지를 볼 수밖에 없다. 다행히 교육은 무지에 대한 치료제다.

캐나다에서 수십 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인권 투쟁은 자유에 관한 것이다. 그것이 캐나다의 인권 역사와 캐나다 인권 박물관(Canadian Museum for Human Rights)이 명확히 하는 바이며, 인권 연구 센터(Centre for Human Rights Research)와 같은 연구 허브도 마찬가지다.

이 "프리덤 컨보이"가 진정으로 의미하는 것은 이기심이다. 다른 사람과 상관없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은 참가자들의 심통 맞은 요구이다. 자유는 그들이 거울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제한된다.

다른 사람들의 자유에 그렇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자신들의 잇속만 챙기고, 디젤을 뿜어대고, 이웃을 가로막는 폭도 대신에, 그들은 집에 가서 다른 사람들의 관점에서 캐나다에 대해 배우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집에서는 마스크가 필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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