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조지 오웰] 고물상의 매력: 호기심, 유용성, 그리고 사재기 본능을 자극하는 공간

Zigzag 2022. 12. 15.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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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도시적 풍경과 백화점의 틈바구니들 속에서 사라져 가는 아케이드를 사랑했던 독일의 철학자이자 평론가였던 발터 벤야민은 지독한 수집광이었다. 조지 오웰은 벤야민처럼 골동품상 대신 고물상에서 스러져가는 근대의 매력을 발견했다. 아래 번역한 그의 1946년 1월 이브닝 스탠더드(Evening Standard) 에세이 Just Junk – But Who Could Resist It? 는 고물상이 왜 우리를 잡아끌고 우리는 왜 그 인력에 저항할 수 없는가에 대한 재치 넘치는 글이다. 오웰에 따르면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고물상의 낡은 물건들의 향연,  그런 호기심과 별도로 때로 유용한 쓸모를 가진 물건들의 발견, 그리고 갈까마귀나 아이들처럼 물건을 수집하는 본능이 우리로 하여금 고물상을 지나치지 못하게 한다.

그저 고물이지만 누가 그것에 저항할 수 있을까?

조지 오웰 (George Orwell)

이브닝 스탠더드(Evening Standard), 1946년 1월 5일 자에 게재된 오웰의 에세이 'Just Junk – But Who Could Resist It?'. 출처: Orwell Foundation

런던에서 가장 매력적인 고물상(junk shop)이 어디인지는 취향의 문제이거나 논쟁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나는 그리니치(Greenwich)의 더 음침한 지역, 엔젤(Angel) 근처의 이슬링턴(Islington), 할로웨이(Holloway), 패딩턴(Paddington), 에지웨어(Edgeware) 거리의 배후지에 있는 일류 중고 가게들로 여러분을 안내할 수 있다. 로드스(Lord’s)의 근처에 있는 몇 개를 제외하고(심지어 그것들은 그나마도 쇠락해버린 거리의 한켠에 자리하고 있다) 나는  “좋은” 동네라고 불리는 곳에서 다시 한번 볼 가치가 있는 고물상을 본 적이 없다.

고물상은 골동품상(antique shop)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골동품 가게는 깨끗하며, 상품들이 매력적으로 진열되어 있고 가격이 약 두 배로 책정되어 있으며, 가게 안에 들어가면 보통 무언가를 사도록 괴롭힘을 당한다.

고물상은 유리창 너머로 미세한 먼지막이 있고, 그 재고품은 문자 그대로 썩지 않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포함할 수 있으며, 보통 뒤쪽의 작은 방에서 자고 있는 주인은 판매에 열의를 보이지 않는다.

또한, 그것의 가장 훌륭한 보물들은 언뜻 보기에 결코 발견할 수 없다. 그것들은 대나무 케이크 받침대, 영국 식기 접시 덮개, 순무 시계, 모서리가 잔뜩 접힌 책, 타조 알, 단종된 제품의 타자기, 렌즈 없는 안경, 마개 없는 디캔터, 박제 새, 철조망, 열쇠 다발, 너트와 볼트 상자, 인도양의 소라 껍데기, 나무로 만든 구두 골, 중국 생강 단지, 그리고 하이랜드 소의 사진들 속에서 분류되어야 한다.

고물상에서 주의해야 할 것들 중 몇 가지는 빅토리아 시대의 브로치와 마노 또는 다른 준보석들의 로켓(locket, 사진 등을 넣어 목걸이에 다는 작은 갑 - 역자 주)이다.

아마 6개 중 5개는 끔찍할 정도로 추하겠지만, 그중에는 아주 아름다운 물건들도 있다. 그것들은 은으로, 혹은 더 자주 금색동(어떤 이유에서인지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는 매력적인 합금)으로 세팅된다.

그밖에 뚜껑에 그림이 그려진 종이 상자, 광택이 나는 항아리, 약 1830년경에 만들어진 총구 장전식 권총, 병에 담긴 배 등도 찾아볼 가치가 있다. 이것들은 여전히 만들어지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우아한 모양과 유리의 섬세한 녹색 때문에 오래된 것들은 항상 최고이다.

또는, 다시 오르골, 황동 말, 구리 뿔 화약통, 쥬빌리 머그잔(1887년 쥬빌리가 10년 후의 다이아몬드 주빌리보다 훨씬 더 즐거운 기념품을 생산했다), 그리고 하단에 그림이 있는 유리 문지들이 있다.

유리 안에 산호 조각이 들어있는 다른 것들도 있지만, 이것들은 항상 환상적으로 비싸다. 아니면 빅토리아 시대의 패션 접시와 눌린 꽃으로 가득 찬 스크랩북을 마주칠 수도 있고, 특히 운이 좋다면 스크랩북의 큰형 격인 스크랩 스크린(scrap screen)을 마주칠 수도 있다.

스크랩 스크린은 오늘날 너무 희귀한 것으로, 일반적인 색이 있는 스크랩을 잘라내어 다소 일관된 그림을 만드는 방식으로 온통 붙여 넣은 평범한 나무 또는 캔버스 스크린이다. 가장 좋은 것은 1880년경에 만들어졌지만, 만약 당신이 고물상에서 그것을 산다면 그것은 분명히 결함이 있을 것이고, 그러한 스크린을 소유하는 것의 큰 매력은 스스로 그것을 수리하는 것에 있다.

여러분은 미술 잡지, 크리스마스 카드, 엽서, 광고, 책 표지, 심지어 담배 카드의 컬러 복사물을 사용할 수 있다. 스크랩을 하나 더 넣을 수 있는 공간은 항상 있으며, 신중하게 배치하면 무엇이든 조화롭게 보이도록 만들 수 있다.

따라서, 내 스크랩 스크린의 한쪽 구석에서만, 검은 병을 사이에 두고 세잔의 카드 플레이어들이 중세 피렌체의 거리 풍경에 침투하고 있는 반면, 거리 반대편에는 고갱의 남해 섬 주민 중 한 명이 영국 호숫가에 앉아 있는데, 그곳에는 레그 오브 머튼 슬리브(leg-of-mutton sleeve, 여성복의 소매가 양의 다리처럼 어깨 부분이 부풀고 소맷부리가 좁은 형태를 말함 - 역자 주)를 입은 여성이 카누의 노를 젓고 있다. 그들은 모두 완벽하게 함께 집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모든 것들은 호기심이지만, 사람들은 고물상에서도 유용한 것들을 발견한다.

켄티쉬 타운(Kentish Town)의 한 가게에서, 공습 이후로, 나는 한때 6펜스짜리 오래된 프랑스 칼 총검을 샀고, 그것을 부지깽이로 4년 동안 사용했다.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 고물상은 예를 들어 큰 대패와 같은 특정 목수 도구나 코르크 뽑개, 시계태엽 손잡이, 스케이트, 와인 잔, 구리 냄비, 여분의 유모차 바퀴와 같은 유용한 물건을 살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어떤 가게에서는 거의 모든 자물쇠에 맞는 열쇠를 찾을 수 있고, 다른 가게에서는 사진을 전문으로 하기 때문에 액자가 필요할 때 유용하다. 사실, 나는 액자를 사는 가장 저렴한 방법은 사진을 산 다음에 그 사진을 버리는 것이라는 것을 종종 발견했다.

그러나 고물상의 매력은 당신이 고른 싸구려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관대하게 추산하면 그 내용물의 5퍼센트가 가질 수 있는 미학적 가치에도 있지 않다. 그것의 매력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는 갈까마귀, 즉 어린아이가 레모네이드 병에서 구리 못, 시계태엽, 유리구슬을 사재기하게 만드는 본능에 있다. 고물상에서 즐거움을 얻기 위해 당신은 어떤 것도 살 의무가 없으며, 어떤 것도 사고 싶어 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토트넘-코트(Tottenham-Court) 도로에 있는 가게를 알고 있는데, 그곳에서 나는 수년 동안 불쾌하게 추하지 않은 것을 본 적이 없고, 그리고 베이커 가(Baker-street)에서 멀지 않은 또 다른 곳에서는 거의 항상 유혹적인 것이 있다. 첫 번째 가게는 두 번째 가게만큼이나 나에게 강하게 어필한다.

초크 팜(Chalk Farm) 지역에 있는 또 다른 가게는 오래된 금속의 쓰레기 조각들만 판다. 내가 기억하는 한, 똑같은 낡아빠진 도구와 긴 납 배관이 트레이에 놓여 있었고, 똑같은 가스난로가 문간에서 썩어 들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물건을 산 적이 없고, 내가 사려고 생각한 것을 본 적도 없다. 하지만 내가 [그곳을] 잘 보기 위해 길을 건너지 않고 그 길을 지나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1946년 1월 5일 토요일 에세이, 이브닝 스탠다드(Evening Stand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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